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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얼마나 어렵게 쌓은 공든 탑인데, 그리 쉽게 허무나요?

[얼마나 어렵게 쌓은 공든 탑인데, 그리 쉽게 허무나요?]

 

2004년 12월 15일 눈발이 휘날리던 날, 저는 통일부 장관으로 개성공단의 첫 번째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습니다. 허허벌판에 공장하나 덜렁 있는 풍경이었지만, 그날이 있기 까지는 정말 어렵고 힘든 나날들이었습니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의 합의이후 4년 반이 걸렸습니다. 북한과 협의해서 규정을 만들고, 미국과 협의해서 공장을 지었습니다. 


 


 

 

저는 통일부 장관으로 취임하자마자, 장관실에 개성공단 일정표를 크게 붙여 놓고 뛰어다녔습니다. 직접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 상무부를 방문해서 개성공단의 전략적 가치를 설득하며 미국의 부정적 인식을 돌려 놓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개성공단은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도 쉽게 공든 탑을 허물어 버린 박근혜 정부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낍니다. 정책은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북관계는 훨씬 더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개성은 ‘열린 성’입니다.]

 

개성공단은 한국의 노동집약형 중소기업에게 유일한 기회의 문입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한 달에 15만원의 임금으로 양질의 노동력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동안 남북관계의 경색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탈하지 않은 이유는 말이 통하고 기술이 좋으면서도 저렴한 인건비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한국 중소기업의 희망의 문을 닫았습니다. 핵실험은 북한이 했는데, 왜 자기 나라 중소기업을 처벌합니까? 북한은 중국과의 협력으로 대안을 찾을 수 있지만, 우리 중소기업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개성은 북한이 개혁개방과 국제경제체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개성은 시장경제의 실험실이고 남북경제공동체의 현장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변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했고, 남북경제공동체의 미래에 못을 박았습니다.

 

[평화경제가 답입니다.]

 

평화는 땅이고, 경제는 꽃입니다. 튼튼한 땅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듯이, 평화와 경제가 선순환해야 합니다.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한반도 냉전체제의 종식 즉 한반도 평화체제입니다. 평화체제란 국민의 평화로운 삶이 보장되는 체제입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질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땅위에서 남북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의 목적은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평화 없이 어떻게 경제를 살립니까? 어마어마한 분단비용을 지불하면서, 어떻게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습니까?

 

야당이 야당다워야 합니다. 지금까지 야당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민주주의, 평화, 그리고 복지입니다. 어느 순간 보수정권의 종북 놀음에 휘둘려 평화라는 가치가 야당에서 사라졌습니다.

 

정치는 이념놀음이 아닙니다.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역사적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된 야당이 존재했다면, 그래서 평화경제라는 깃발이 있었다면 박근혜 정부가 저렇게 쉽게 개성공단의 문을 닫을 생각을 했겠습니까?

 

한손에는 한반도 평화체제, 다른 손에는 남북경제공동체가 우리의 살길입니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세계 속의 모델국가이자 그 안에서 온 국민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진정한 평화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