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민주당과 신당 경쟁 땐 모두 몰락”
2013.12.28. 경향신문 권순철 기자
·“민주당이 앞으로 ‘노무현 정부의 시즌2’를 만들기를 원치 않는다. 민주당은 친노와 비노의 틀을 뛰어넘어야 한다.”
민주당 정동영 상임고문은 “전국 범위의 선거인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정부를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며 “야권 일각에서는 지방선거의 승패가 박근혜 정권과 무관하다고 하는데 이는 무책임한 말”이라고 말했다.
정 고문은 <주간경향>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경쟁을 벌이면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겨줄 공산이 크다”며 “만약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한다면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모두 몰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2007년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정 고문은 “현재의 추세로 간다면 민주당도, 안철수 신당도 승자가 아닌 패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안철수 의원도 야권이 함께 몰락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1주년 지났는데 아직도 시간은 1년 전에 멈춰 있는 것 같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 국민통합과 100% 대한민국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 대통령이 공약대로 실천했으면 국민통합이 상당히 진전됐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많은 공약을 폐기했다. 그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이 국민통합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특정 지지자와 지역만의 정부가 돼버렸다. 박근혜 정부가 이대로 끝나면 ‘박정희 신화’는 영원히 없어질 것이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겠다고 했는데, 아버지의 유지는 지금 시대의 요구를 이어받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21세기 판 정부’가 아닌 ‘1971년 판 박정희 정부’에 머물러 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패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민주당은 시대정신을 제대로 꿰뚫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대선 때마다 시대의 요구가 분출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시대의 요구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였다. 국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출산도 힘들고, 노후 걱정도 많고, 치솟는 교육비와 전셋값 등으로 매우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부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이 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이슈를 빼앗겼다. 박근혜 후보는 민주당이 갖고 있던 두 이슈를 선점했다. 박근혜 후보는 복지국가기본법도 만들고,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영입해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것처럼 보여줬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12년 초만 해도 국민 10명 중 6명이 보수정부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런 좋은 정치적 지형 속에서 정권을 잡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민주당이 저소득층에서 패한 것이 특히 아픈 부분인 것 같다.
“민주당은 지난해 5월 전당대회에서 너무 왼쪽으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사실은 민주당이 왼쪽으로 갔던 것이 아니라 박근혜 후보가 왼쪽으로 왔던 것이다. 그래서 대선 이후 분석해보니 민주당은 월 소득 200만원 이하 소득자에게서 4대 6으로 패했다. 결국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 청년실업자 등으로부터 외면받은 것이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산토끼(중도·보수진영)를 못잡은 것이 아니라 집토끼(진보진영)를 못지켜서 패한 것이다. 대선 당시 서민층은 민주당보다는 새누리당이 자기들 이익을 대변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주당은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48%를 득표했으나 지금은 민주당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다. 민주당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국민은 민주당에 정권을 바꿔주기를 바랐지만 민주당은 스스로 정권 탈환의 기회를 놓쳤다. 그러니까 국민들은 민주당에 실망감이 큰 것이다. 또한 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 죄인의 자세로 임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대선에 패배했으면 누군가는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도 국민을 실망하게 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긴 선거나 다름없다’는 말로 그대로 넘어가려 했으나 국민들은 그런 것을 수용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대선 이후 당의 쇄신 등 개혁적인 노력이 부족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민주당은 우선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했다. 그리고 패배에 대한 원인분석 작업이 부족했다. 민주당이 왜 좋은 여건 속에서 질 수밖에 없었나.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과연 국민이 이런 정당을 정권을 맡길 대안세력으로 생각할 것인가, 민주당은 반성해봐야 한다.”
민주당 초·재선 등 소장파는 왜 과감하게 지도부에 개혁 요구를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나.
“사실 당이 어려울 때는 변혁의 에너지가 재선그룹에서 나온다. 초선들은 아직 정치에 적응하지 못했고, 3·4선 의원들은 결행하기 전에 여러 가지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행동하기가 무겁다. 지난 2000년 말 김대중 정부 말기에 정풍운동을 했던 그룹도 재선그룹이었다. 당시에 정풍운동에 참여했던 나를 비롯해 천정배·신기남 의원 등도 재선이었다. 당시에는 ‘나를 버리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또 당을 살리려면 민심의 개혁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우리는 여당으로 야당보다 당내에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결국 해냈다. 결과적으로 보면 당시 정풍운동으로 인해 노무현 정부로 정권재창출하는 기반이 됐다.”
민주당이 강한 야당, 수권 정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민주당 내에서 노선 논쟁을 치열하게 벌여야 한다. 민주당 의원 127명은 모두 생각이 다르다. 국민들은 민주당이 새누리당, 안철수 신당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고 있다. 의원들은 민주당의 노선은 정확히 이런 것이라고 주장해야 하고, 이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반대파들도 나와야 한다. 민주당은 마치 시대의 요구인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깃발에 새기긴 했지만, 그 깃발을 들고 가는 의원들의 확신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지난 2007년 대선에 패배하고 수백번 수천번 생각해봤다. 결론은 아래(사회적 약자)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에 돌입했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FTA 반대 투쟁에 미온적이었다. 당에서 3분의 1 정도만 반대했다. 용산·쌍용차·한진 사태에도 직접 참여했다. 나는 당시에 민주당이 살려면 노동계와 결합하라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탔을 때 타지 않았다.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다. 민주당은 대학가에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에 답을 줘야 한다. 민주당은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정당이 새누리당도, 안철수 신당도 아닌 민주당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각인시켜줘야 한다.”
현재 안철수 의원은 신당 창당 준비를 하고 있다. 안철수 신당의 창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안철수 신당의 출현은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이 내놓은 새정치에 대한 내용은 찾을 수 없다.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과 민주당에 대한 불만으로 안철수 신당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는 정당을 안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개인의 인기를 중심으로 당을 만들면 개인의 인기가 없어진 후 그 당도 함께 없어졌다.”
최근 문재인 의원이 사실상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노(노무현)의 결집에 대해 어떻게 보나.
최근 국정원 개혁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여야가 국정원 개혁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중요한 것은 국정원의 정치개입 재발방지 대책이다. 여야가 한 가지만 약속하면 된다. 국정원법 9조(국정원장 등의 정치관여 금지 조항)를 개정하면 된다. 이 조항을 ‘국내정치에 개입하거나 선거에 개입한 국정원장을 법정 최고형에 처한다’고 규정하면 된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문제는 대통령과 국정원장의 문제다. 대통령은 현실적으로 처벌하기 어려우니까 국정원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면 된다. 그렇게 개정하면 아무리 국정원장이라도 자기 목숨을 걸고 정치에 개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동영 고문도 차기 대권 잠룡으로 분류되고 있다. 차기 대선에 출마할 것인가. 민주당 일각에서는 지방선거에서 전북지사 후보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는데.
“지금은 당이 우선이다. 지금 (차기 대선 출마) 얘기할 때가 아니다. 전북지사설도 호사가들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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