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건 국가건 대충 패배해선 답이 없다. 오히려 철저한 패배속에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진다. 독일과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 패배했다. 대충 패배가 아니라 철저한 패배였다. 그러나 폐허속에서 다시 일어섰다. 대한민국도 한국전쟁의 폐허속에서 세계경제 10위권의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정치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번 가보았던 경험을 되살려 더 잘 가는 것 또한 정치다. ’졌잘싸(졌지만 잘싸웠다)‘에 안주하면 민주당에 미래가 없다. 역대 대선에서 진보진영 후보가 보수진영 후보에게 도덕적 청렴도에서 밀린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기자는 대한민국의 나아갈 방향과 민주당의 혁신 그리고 계속되는 북한 핵실험 및 개성공단 폐쇄 7년을 맞아 대결국면으로 치닫는 남북관계 상황에서 민주당의 진로와 남북관계 해법을 동시에 제시할 인사를 찾았다.
16년 전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경험과 지혜를 통해 꽉 막힌 남북관계와 민주당 집권의 단초를 얻기 위해 8일 삼성동 소재 사무실에서 장장 3시간에 걸쳐 마라톤 인터뷰를 진행했다.
브레이크뉴스는 4선(15, 16, 18, 20대)국회의원과 제31대 통일부장관, NSC상임위원장, 열린우리당 당의장, 제17대 대통령선거에 도전하여 530만표차로 패배한 정동영 전 대표(민평당)를 2회에 걸쳐 인터뷰를 게재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패배의 근본적 이유는?
▶저의 준비가 부족했다. 후보의 품성, 정책, 공약, 전략, 참모 등이 거론되지만 90%는 후보의 책임이 크다. 당시 캐치프레이즈는 ‘개성-동영’이었다. 새로운 한반도 지평을 여는 거대 담론, 거대 비전이었다.
하지만 MB의 ‘부자되세요, 4대강 추진’을 막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역사의 추가 진보진영에서 보수진영으로 넘어가 그 결과 한반도 운명이 바뀌었다.
저의 패배가 한스러웠다. 역사적 민족사의 갈림길에서 DJ, 노무현이 씨를 뿌리고, 물주고 애써 키운 한반도 평화번영 정책이 좌절되었다. DJ이후 전라도 출신이 집권하기엔 너무 빨랐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이해찬을 밀었다. 민주당 대권 후보군에는 저를 비롯하여 손학규,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이었다.
한명숙, 유시민은 이해찬으로 단일화했다. 차라리 제가 이해찬 후보에게 양보하고 제2의 DJP연합을 했더라면 여권이 분열되지 않고 3기 민주정부를 출범시켰을 것이다. 역사적 죄인으로 통감한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김대중, 노무현에 이어 3기 민주정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면 개성공단 10개 정도는 추진되어 북핵문제는 비핵화가 이뤄졌을 것이다. 남북한 경제공동체가 형성되어 남북국가연합으로 가지 않았을까?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를 이룩하여 민족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 정치권 일부에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기득권 양당제를 타파하고자 다당제를 시도해 보지만 매번 실패하는 것 같다. 또한 20석을 기준으로 하는 원내교섭단체 문턱도 너무 높다. 민주평화당 대표도 역임하셨는데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 정치지형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 DJ를 대통령으로 만들 때 대변인의 중책을 맡아 평화적 정권교체도 이루고 저에겐 행운이었다. 15대 국회에 첫 입성했는데 일관된 노선의 핵심은 정당개혁, 민주주의 실현이었다.
국회의원 공천이 총재 1인 지배체제에서 결정되었다. 저는 정풍 쇄신운동의 중심에 서서 대선후보를 결정하는데 2002년도에 국민경선을 관철시켰다. 당원공천이 뿌리가 되어 열린우리당이 탄생되어 당의장의 중책을 맡아 정치개혁에 앞장섰다.
단언하건데 만약 국민경선제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노무현 신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당개혁, 원내교섭단체 조건이 20석에서 10석으로 하향 조정되어 다당제로 가는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 정치를 해오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 정치개혁 불철저를 반성한다. 18대 국회서 투자자 국가간 소송인 ISD(Investor-State Dispute)반대투쟁을 했다. 불명예스럽게도 대한민국이 베네주엘라, 아르헨티나보다 많은 ISD 80건이 제소되어 전 세계 최다 제소권 국가이다. 소송비용만 6조 6천억원으로 국민 1인당 12만원 꼴이다. 재앙이다. 호주는 법원이 존중해줬지만 한미FTA는 독소조항인 한미사법제도를 인정하지 않아 ISD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하여 투쟁했지만 실패했다.
두 번째로 제17대 대선에서 제가 이해찬 후보에게 양보하고 제2의 DJP연합을 했더라면 여권이 분열되지 않고 3기 민주정부를 출범시켰을 것이다. 역사적 죄인으로 통감한다.
- 윤석열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하는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70년의 분단, 70년의 휴전상태를 그대로 두고 강대강의 힘에 의한 평화와 비핵화만 부르짖는 것이 현 정부 최선의 방책으로 생각하는가?
▶ (첫 마디가)아연실색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단군이래 최고 지성을 가진 국민, 최고 시민이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은 최고 지성, 최고 통찰력, 균형감을 지닌 최고 지도자라고 생각해 윤석열 후보를 선택했는데 평균의 상식, 평균의 시민이 사고하는 것에 한참이나 미달하고 있다.
충격이다. 외교, 안보, 경제, 남북관계 등 상상을 초월한다. 큰일이다.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윤 대통령이 부르짖고 있는 자유는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대한민국 국익이 줄줄 새고 있다.
윤 대통령은 기본적인 팩트마저도 이해가 부족하다. 분단사 교과서마저도 안 읽은 것 같다. 한마디로 상식이 결여되어 있다.
- 윤석열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 한 가지만 지적해 주시죠.
▶ 상식을 회복해야 한다. 외교는 전략적 모호성을 띈 가장 정직한 거짓말이다.(동시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국론을 분열시키지 않고 상식에 기반한 정치를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검찰을 동원한 독재정치를 하고 있다. 일종의 소프트 파시즘이랄까?
- 더불어민주당의 혁신위가 출범했다. 혹자는 지도부의 선당후사 정신이 사라지고 혁신의 대상이 혁신을 하겠다고 비판하는데 이러한 노선의 연장선상에서 총선과 대선 승리가 가능할까?
▶ 승리 가능하다.(단호했다)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그러나 민주당 자체가 우선 변해야 한다. (기자는 민주당이 받을 준비는 하지 않으면서 국민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검찰독재를 부르짖고 있지만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도긴개긴이다. 최근 혁신위가 출범했다지만 연이어 브레이크가 걸려 동력을 잃은 모양새다.)
- 민주당은 연이어 대선 패배, 지방선거 패배를 했다. 역대 진보진영 후보가 보수진영 후보에게 도덕성과 청렴도에서 밀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선당후사 정신도 실종되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에 매몰되어 패배의 백서도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에 총선 승리와 대선 승리를 위해 조언을 하신다면....
▶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민주당 정신 차려야 한다. 무엇보다 도덕성 회복, 개혁노선 정립, 민주노선을 확립해야 한다. DJ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할 때 첫 머리에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을 표방했다.
노선이 중요하다. 부패, 무능, 도덕적 타락은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 개혁노선으로 정립해야 한다. 기득권 앞잡이가 돼선 결코 안된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 부패, 전과 등 ‘정치부패’와의 절연을 선언해야 한다. 노선없는 정치와 결별해야 한다. 고시합격, 장관, 박사 등이 아니라 노선으로 검증하여 햇볕정책에 공감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노선으로 걸러내야 한다.
신념이 없으면 안된다. 대북 갈등과 타도, 전쟁을 불사하는 세력과 결별해야 한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추구하는 세력을 반국가세력이라고 낙인찍는 세력과 결별해야 한다. 동의하지 않은 사람은 반대당으로 가서 정치를 하면 된다.
- 혹자는 ’올드 보이의 귀환‘이라고 비판을 하기도 한다. 내년 4월 10일에 치러지는 총선에 출마하는가. 한다면 예전 지역구 탈환인가 아니면 수도권 출마를 생각하고 있는가?
▶ (한참을 생각하다)정치할 수 있을까? 솔직히 뱃지 욕심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정권교체, 민족사의 운명을 되돌려야 한다. 자가 발전은 금물이다. 핵심은 민심이 천심이듯 민심이다. (선문답 같은 답을 내놓았다)
- 최근 북중러 두만강 접경지역인 국경지대를 다녀온 걸로 알고 있다.
▶ 두만강 접경지역인 방천지역은 군사적 요충지이다. 이곳은 중국이 동해로 나가는 출루이다. 중국은 장지투(장춘, 길림, 토문)지역에 고속철도를 완성했다. 이곳은 동북3성 1억, 한반도 8천만, 연해주를 아우르면 2억의 동북아경제권이 형성된다. 일본의 1.8배에 달하는 거대한 경제권역이 만들어진다.
30년 전에도 두만강 개발계획을 추진했지만 좌절됐다. 방천지역은 북중러가 각각 500만평씩 내놓아 1,500만평으로 국제자유무역지구로 지정하면 동북아경제핵심축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민족 비전, 지도자의 비전이 여기에 있다.
- 미중 패권 전쟁 틈바구니에서 한반도 생존전략은 무엇인가?
▶ 지정학적 비극이다. 하지만 극복해야 한다. 자강, 자립, 자존, 자주의 정신으로 힘을 길러 4강인 미중일러를 움직여 한반도평화 구축에 나서야 한다. 남한은 북의 적화통일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북한은 흡수통일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한은 북의 붕괴를 원하지 않고, 흡수통일 원하지 않는다. 공존을 원한다. 한미군사훈련과 핵 침공 훈련을 통한 흡수통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과 선언과 행동으로 입증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신뢰가 쌓여야 한다.
- 혹자는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있어서 남한도 핵무장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핵무장은 길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정상회담에서 핵 주권포기선언을 이미 해버렸다.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북한이 행동으로 보여주고, 핵위협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한미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해야 한다.
정 전 대표는 “북한 붕괴론은 헛된 꿈이며 평화공존이 해답이다”며, “나라는 부국강병 성취를 해야 하는데 지도자는 철학빈곤에 허덕이고 있다”고 자조했다.
* 인터뷰를 마치며
난세에는 영웅이 필요하다. 드골과 DJ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둘다 정계은퇴를 하고 번복했다.
드골은 정계에 복귀하여 제18대 프랑스 대통령이자 제5공화국의 1대 대통령으로 프랑스를 이끌었고, DJ는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와 외환위기IMF 구제금융 국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의 악조건 속에서 시대의 요청에 부응(정계은퇴번복),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나라를 이끄는 최고 지도자가 되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위대한 역사의 장을 열었다.
미 대통령인 바이든(1942)과 트럼프(1946) 전 대통령도 80의 나이에 대권에 도전하려고 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소감은 69세의 정동영 전 대표는 역사적 갈림길에서 대선패배에 대한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었다.
그는 정동영 개인의 패배로만 그친 게 아니라 한반도 평화번영 정책이 좌절된 데서 오는 자괴감이 커 보였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의 외교, 안보, 남북관계, 특히 개성공단 재개에 있어선 아직도 그 열정이 식지 않아 보였다.
여의도 정치권 호사가들은 지역구 탈환이냐 정치1번지 종로 출마냐에 설왕설래하고 있다. 정치는 생물이다. 누가 그 미래를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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