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평화와 노동' 7] 개성공단 재가동과 9·19 복원은 우리 몫이다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전 통일부장관)
2013.04.26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났으나 제3차 한반도 핵위기는 지속되고 닫힌 개성공단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군사적 용어를 동원해 ‘강 대 강’의 비난전을 벌이던 남북이 조금은 누그러진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상황이 위태롭기는 하지만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다.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3가지 원칙을 확실하게 못 박을 필요가 있다. 첫째,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용납될 수 없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글자 그대로 재앙이다. 이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둘째,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핵무기는 용납될 수 없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 셋째, 반드시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
1993년 북핵 1차 위기 때부터 지금까지 20년 역사에서 딱 한 번 북측이 핵포기를 선언한 적이 있다. 그것은 2005년 9월19일 베이징 6자 회담 공동선언을 통해서였다. 당시 한국은 주도적으로 외교력을 발휘해 대화를 통해서 북한과 미국을 설득했으며 북이 핵을 포기하고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9·19 합의 석 달 전인 6월17일 평양에서 나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남북이 서로 통 크게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곧바로 남쪽은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를 허용했고, 북쪽은 8·15 60주년 공동행사에 파견한 북한 대표단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헌화 참배하게 하는 등 이른바 통 큰 조치를 실천했다. 이는 북이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는 데 중요한 배경과 근거로 작용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세 가지 원칙(전쟁 불용·북한 핵무기 불용·대화 해결)의 작동을 위해 우선 중요한 것은 개성공단을 지켜 내는 일이다. 남과 북이 기싸움을 하는 양상을 벗어나 조업중단 중인 개성공단이 돌아가도록 양측이 통 크게 주고받아야 한다. 남쪽은 지난 5년 이명박 정부의 대북 대결정책과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하고 북쪽은 북미 간 버티기 국면에서 개성공단을 볼모로 잡지 말아야 한다.
나는 2004년 개성공단이 처음 가동될 때 통일부장관이었다. 그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자격으로 미국으로 가서 당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에게 개성공단 건설의 전략적 필요성을 역설했다.
“개성공단사업은 경제사업 이전에 군사전략적 가치가 큰 안보사업이다. 북한 포병화력이 집중돼 있는 휴전선 바로 위쪽 가로 8킬로미터, 세로 8킬로미터의 총 64제곱킬로미터에 남한 기업들이 공장을 짓는 것이다. 광화문에서 개성공단까지의 거리가 60킬로미터에 불과한데 개성 인근에 배치된 북한 장사정포 사거리 안에 2천만명의 수도권 시민이 살고 있다. 이런 취약점 때문에 한미동맹은 늘 조기경보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해 왔다. 인구 50만명의 개성공업도시를 건설하게 되면 사전경보 기능이 대폭 향상될 것이다.”
나의 설명에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동의했고 이후 미국은 개성공단에 공장 입주가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사실 개성공단은 그 경제적 가치 이전에 지난 정부 아래서 남북이 긴장과 대치 국면에 빠졌을 때도 우리 국민에게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유지시켜 준 평화의 안전판이었다.
남북이 이번 위기를 뚫고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가치는 더욱 올라갈 것이다. 남북의 소통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분위기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핵 해결의 종점이자 출발점은 바로 북의 핵무기 포기와 미국의 대북 적대관계 청산을 핵심으로 한 9·19 공동성명을 살려 내는 일이다. 북의 핵 능력은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개발이 정지되지만, 대화가 멈추고 대결로 돌아설 때 눈치 보지 않고 증강돼 온 것이 현실이다. 지난 5년간 한미 양국의 대북 무시정책 아래 6자 회담이 멈추고 9·19가 죽어 있을 때 북한은 2차례 핵실험과 3차례 핵투발(投發) 수단 발사시험으로 핵 능력을 대폭 향상시켰다.
북은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고 하고 있지만 한국·미국·중국 모두 북의 핵 보유를 용납할 수 없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은 북의 핵 보유와 북미관계 정상화는 병행할 수 없다는 확고한 태도를 갖고 있다. 이 같은 북미 간 정면충돌 속에서 실마리를 찾으려면 2005년 9·19 합의가 한국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한국이 구경꾼이 아닌 당사자 위치를 확보해서 역할에 나서야 한다.
최근 존 케리 국무장관이 9·19 이행을 언급한 것은 오바마 1기의 '전략적 인내' 정책의 수정을 의미한다. 북한 문제에 대한 '외교적 개입론자'인 케리 장관의 9·19 언급은 과거의 대북 무시정책의 실패를 수정하고 대화 테이블을 열겠다는 의지표명으로 보인다. 특히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동아시아 미사일방어계획(MD)을 축소할 수 있다는 그의 언급은 문제의 본질을 건드린 것으로 주목할 대목이다.
우리를 둘러싼 4대 강국의 이해관계와 미중 양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교차하는 한반도에서 평화를 지켜 내는 일은 누구에게 맡겨 둘 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천해야 할 중대과제다. 문제의 핵심은 ‘이게 과연 누구의 문제냐’를 분명히 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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