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으로 가는 길을 열어 가자]
핀란드인 친구가 내게 말했다. 한국에서 제일 부러운 건 '위치다.' 라고.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북극에 치우쳐 있어 춥고 겨울이 길고 외부로 진출하려면 발틱 해와 북해를 지나 한참을 남진해야 한다.
그들 눈에는 4대 강국의 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한반도의 위치가 부러울 만도 하다. 하지만 오랜 역사 속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때로 저주였고 때로는 축복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광복 68년, 정전 60년 분단의 고통과 갈등을 이기고 민주주의와 경제적 성취를 이룬 것은 분명 축복이리라. 하지만 핀란드인 친구가 부러워하는 지리적 이점은 아직 누리지 못하고 있다. 동서남북 네 방향 가운데 북쪽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8.15 광복절에 (사)'대륙으로 가는 길' 회원들과 함께 시베리아 철도에 올랐다. 육로가 끊어져 있으니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내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탔다. 서쪽으로 4천 km를 달려 바이칼 호수까지 간다. 5천 km를 더 가면 모스크바가 있고 쭈욱 가면 베를린, 파리로 간다.
최근 중국 내륙 도시 정주와 독일 북부 함부르크 사이 1만 킬로미터를 오고 가는 유라시아 대륙 열차 시대가 열렸다. 부러워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10년 전에 남북 간에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를 이어 놓았다. 이 철도(TKR)를 남과 북이 손잡고 만주(TCR)와 시베리아(TSR)로 연결하기만 하면 대륙 철도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를 막는 자 누구인가?
지난 백 년 동안 한반도와 관련한 여러 개의 국제조약에서 주변열강들은 한국인의 참여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한국 문제를 논의하고 이익을 나누어왔다. 우리에게는 발언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야 한다. 조수석에 북한을 앉히고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의 고속철도 위로 올라가야 한다. 주변 강대국들을 뒷좌석에 태우고 협력을 구하면서 같이 가야 한다.
둘러보면 분단됐다가 통일을 이룩한 나라로 베트남과 독일이 있다. 베트남은 무력과 전쟁으로 통일했고 독일은 동독이 백기 들고 투항한 흡수통일이었다.
한반도 통일은 어떤 모습이 될까? 독일형 통일과 베트남형 통일 둘 다 우리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통일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체 모델이 생긴 것이다. 개성공단 모델이다. 개성공단은 국내 또는 해외의 다른 산업공단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것은 경제적 가치와 군사 안보적 가치를 뛰어넘는다. 개성공단은 손에 잡히는 한국형 통일 방 안이다. 남의 자본과 기술, 북의 노동력과 토지가 결합하니 국제적 경쟁력이 생겼다.
개성공단은 정치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2004년 7월 통일부 장관에 취임했을 때 개성공단은 벽에 부딪혀 있었다. 벽은 미국의 속도 조절론이었다. 2차 핵위기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천천히 가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워싱턴에 날아가 네오콘 수장을 설득했다. 미국은 입장을 바꿔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나는 개성공단이 민족의 미래를 열어가는 대안이라고 믿는다. 개성공단을 원래 설계대로 2,000만 평 토지에 2,000개 공장이 들어서고 50만 인구가 생활하는 첨단 공업도시로 완성해내야 한다. 그와 동시에 해주, 남포, 원산, 신의주, 나진 선봉, 함흥, 청진 등 해안선을 따라 경제특구를 설치해가면 북은 중국과 베트남을 뒤쫓아 가게 될 것이다.
세계적 금융기관 골드만삭스는 2040년 한국 경제가 영국 프랑스 독일을 추월하고, 2050년에는 미국 다음으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될 것으로 예측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한국이 30~40년 뒤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일본을 제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는 한국의 잠재 성장률이 2031년이 되면 0%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어두운 전망을 보고했다. 한마디로 한국 경제의 엔진이 꺼진다는 예상이다.
왜 이렇게 정반대의 예측을 한 것일까? 전자는 한국 경제가 평화적 점진적으로 북한경제와 결합하는 것, 다른 말로 개성공단을 확장해 가는 상황을 전제로 예측한 것이고, 후자는 남북이 분리된 것을 전제로 남한만의 단독경제를 기준으로 전망한 결과치이다.
그렇다면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북한과의 적대와 대결을 청산하고 화해와 협력의 한반도경제 시대를 여는 길뿐이다. 그것은 곧 대륙으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이다.
2013. 8. 16.
정 동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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