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동지 여러분께.
추석 한가위 인사를 딱딱한 말씀으로 드리게 돼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것이 오히려 한가위 명절을 뜻깊게 쇠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민주주의입니다.'
우리가 꿈꿔 왔던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 바꿔 말하면 모든 국민이 인간의 존엄을 누리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실질적 민주주의는 뒤로 미뤄지고 안타깝게도 낮은 단계의 민주주의부터 지켜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도래하자 국민이 민주당을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당의 존재이유는 뭘까요?
민주당의 존재이유는 민주주의 아닐까요.
탄생부터 지금까지 60년 민주당의 역사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만들고 되찾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지금 민주당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정원과 청와대와 기득권 세력들이 만세를 부르겠지요.
민주당이 없는 세상에서 국정원은 제멋대로 인권을 유린하고 정치 개입하고 선거 마다 공작을 벌이겠지요.
박근혜 대통령은 여왕처럼 통치하고 우아하게 군림하겠지요.
기득권 세력은 지역 차별, 빈부 차별, 계층 차별의 심각한 격차사회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며 쾌재를 부르겠지요.
우리는 누구입니까?
민주당 동지 한 분 한 분의 인생이 민주주의의 역사입니다.
한 분 한 분이 민주당의 살아있는 심장이요. 대한민국입니다.
현직 검찰총장을 언론과 권력이 짜고 몰아내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에 스멀 스멀 공포의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지지율은 미소로 관리하고 통치는 공안으로 끌고 간다는 신종 유신통치가 시작되는 느낌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에 불안을 느낄 때 국민 앞에 서줘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과거 독재 정권 아래서 그랬듯이 민주당이 국민 앞에 서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며칠 전 천주교 광주 대교구가 평신도들과 함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미사 후에 거리 행진에 나섰습니다. 국민의 힘으로 국정원 선거 개입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다짐과 함께 대주교께서도 행렬의 앞에 서셨습니다. 유신 독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천주교의 선언은 이 시대의 도덕과 양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이란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요?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누구보다도 정보기관의 혹독한 탄압을 받았던 김대통령은 다시는 정보기관이 인권유린이나 정치 개입을 해서는 안된다는 선언과 함께 안기부 간판을 내리고 국가정보원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국가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지키고 평화를 지켜야 할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국민의 기대를 배반한 반역의 역사는 길고 질깁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정보기관이 평화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사건 한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992년 9월 17일 제 8차 남북 고위급 회담 대표로 평양에 가있던 총리 앞으로 전문 한 장이 날아 들었습니다. 요약해 말하면 회담을 깨라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을 떠나올 때 어떻게 해서라도 회담을 성공시키고 돌아오라고 했던 대통령의 당부와는 완전히 어긋나는 훈령이었죠. 결국 합의는 깨졌습니다.
돌아와서 보니 그 전문은 조작된 가짜였습니다. 안기부장 특보 이모씨 등 정보기관 수뇌부가 짜고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남북 긴장과 안보 불안을 조성하는 것이 석 달 앞으로 닥쳐 온 대선에서 여당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계산으로 저지른 짓이었습니다.
92년 당시는 세계적 탈냉전의 흐름 속에 한반도도 화해와 협력의 강물이 급물살을 타고 있을 때였습니다. 훈령 조작 사건을 시발로 결국 한반도는 다시 긴장과 대결 국면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사건을 보고받은 대통령은 전시같으면 사형감이라고 화를 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임기 말을 틈타 정보기관 내부 세력이 벌인 평화 파괴행위였습니다.
1996년 4월 4일, 15대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 판문점에 느닷없이 중무장한 북한군 중대 병력이 나타나 박격포를 설치하는 등 무력시위를 벌였습니다.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신문 방송 통신은 선거 당일까지 온통 이 사건으로 도배질을 했습니다. 보수 여론은 결집했고 여당은 승리했습니다.
훗날 이사건의 배후에 안기부 수뇌부가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앞에서는 정권의 반대파를 종북이니 용공이니 하는 딱지를 붙여 몰아세우면서도 뒤로는 북한 군부에 돈을 줄테니 무력시위를 벌여달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거래를 벌인 추악한 속살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이같이 어두웠던 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에서 나왔습니다. 이렇듯 피와 땀과 눈물로 쟁취한 이땅의 민주주의가 다시 위험에 처했습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선거입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선거에 대대적으로 개입해 주권자인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 영향을 끼친 정치 공작은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역사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3자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국기 문란 사건의 본질과 국민적 분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인됐습니다. 국민 인식과 동떨어진 채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국민의 힘으로 비뚤어진 대통령의 인식을 바로잡을 수밖에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다시 민주주의입니다.
먹고사는 문제, 민생이 곧 민주주의입니다. 아들 딸들 취직 안되고 장사 안되는 문제의 뿌리에 민주주의가 있습니다.
국민은 민주주의를 향한 대열의 선두에 민주당이 당당하게 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곧 민주당 소생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신발 끈을 동여매고 다시 광장에 섭시다. 국민과 함께 나아갑시다.
2013년 한가위에
민주당원 정동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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