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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개성동영' 정동영의 말말말

개성동영정동영의 말말말

 

방향 잃은 한국의 외교 안보


 

한반도, 신냉전 시대 도래

 

20006.15 공동선언의 옥동자인 개성공단이 10여년 만에 문을 닫게 되었다. 세계 냉전이 종식된 지 25년이 넘었는데, 유독 한반도만 역사의 시계를 냉전 시대로 되돌린 것이다. 이른바 신냉전 시대가 현실화 되었다.

 

1조원 넘는 돈이 투자된 개성공단에는 우리나라 124개 중소기업이 입주해 있고, 이들 업체에 만여 명의 근로자가 고용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입주업체의 협력업체는 5,000여개이고, 협력업체 근로자수는 124천여 명에 이른다. 이제 이분들이 실직자가 될 판이다.

 

식위천(食爲天)이라고 했다. 정치적, 군사적, 안보적 파장을 떠나 국민들에게는 우선 먹고 사는 게 하늘이다. 왜 먹고사는 터전을 파괴하는가? 이분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제발 대통령이 평화만이라도 제대로 관리해 달라는 것이 이분들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하겠다고 선서한다. 그리고 우리 헌법 23조에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역행하여 긴장과 대결을 고조시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고 있다.

 

이번 박 대통령의 결정은 시스템에 의한 결정이 아니었다. 외교안보에 관한 최고 조정기구인 NSC조차 작동되지 않았다. 나는 이번 조치가 시스템에 의해 걸러졌다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은 자신의 결정이 주변 지역 정세는 물론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모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박 대통령의 개성공단 중단 조치는 초법적 행위

 

이번 결정은 법치주의의 파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왕조국가 시대가 아니다. 오늘날 법치주의 시대에 모든 국가작용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행하여져야 하는데, 박 정권의 개성공단 중단조치는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이루어진 초법적 행위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한 법적 근거로 문의해 볼 수 있는 것은 헌법 76조와 남북교류협력법 174항뿐이다. 그러나 헌법 76조의 긴급 재정경제 명령은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만 가능하므로 이번 사태에는 적용할 수 없다. 또한 남북교류협력법 174항에 따른 통일부 장관의 협력사업 정지조치의 경우 ‘6개월 내의 정지 기간을 정해야 하며 청문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법적 요건과 절차를 모두 외면했다.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 헌법상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

 

아울러 개성공단과 관련된 조약들은 국제법상 조약의 효력을 갖는데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한다면 비엔나 협약 위반의 소지도 있다. 따라서 북한이 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고로 외교안보는 군주의 아젠다이다. 대통령이 외교안보 정책을 수행하는데 두 가지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는 대한민국의 국익이다. 두 번째는 대한민국의 평화이다. 그런데 박 정권의 이번 조치가 대한민국의 국익과 평화 증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모두 다 불이익뿐이다.

   

 

박 정권, 최악의 외교 안보적 무능

 

박 정권은 이번 북한의 핵과 로켓(미사일) 파동 국면에서 네 가지를 잇달아 발표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한미 간 사드 공식 논의 시작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론 제안 개성공단 중단이 그것이다. 네 가지 모두 최악의 정책이다.

 

첫째,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자충수이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핵심 쟁점은 유엔안보리에서 북한에 어떤 제재를 할 것인가였다. 그런데 확성기 방송 재개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북한 제재라는 본질이 희석되고 말았다. 또한 핵 실험에 대한 대응수단이 고작 확성기를 트는 것이라면, 이건 대응책이 없다는 자기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핵 문제 해결 사이에 대체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가?

 

둘째, 5자회담론을 보자. 이는 북한을 빼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대한민국이 5자 공조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6자회담 의장국이 누구인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이 이 제안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판단능력에 심각한 흠결이 있음을 선행자백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은 당일 날로 박 정부의 5자회담론을 퇴짜 놓았다. 이는 유관 당사국의 핵심적 이익도 파악하지 못한 채 감정적, 즉흥적 대응의 결과로 초래된 외교 참사이다.

   

 

사드, 북한 미사일 방어와는 아무 관련 없다

 

셋째, 한미 간 사드 논의를 공식화했다. 중국의 턱밑에 있는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자는 것은, 비유하자면 미국의 턱밑 쿠바에 중국 미사일 부대를 설치하겠다는 것과 똑같다. 이는 아무런 전략적 고려도 없이 美中 갈등 구조에 스스로 빨려 들어가는 꼴이다. 대륙의 패권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략 개념에 우리가 연루되는 것은 국가 안보를 누란으로 몰고 가는 경거망동이다. 지금 한반도에 가장 위협이 되는 무기는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사정거리 300km~800km)과 장사정포이다. 북한은 남한을 향해 800기의 스커드 미사일을 실전배치했다. 그러나 사드는 5km 이상 날아가는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100km 이상 높은 고고도에서에서 요격하는 방어 시스템이지, 스커드 미사일을 요격하는 게 아니다. 그나마 사드 1개 포대는 고작 48발의 요격 미사일이 있을 뿐이다. 또한 사드에 따라붙는 X-band 레이더의 탐지범위는 베이징과 블라디보스토크를 포괄한다. 베이징과 모스크바가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박 정부는 한반도 사드 배치는 한중 관계의 마지노선이다라는 중국의 발언을 엄중하게 헤아려야 한다. 한 가지 사실만 언급하겠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과 교역량을 합한 것보다 중국과의 교역량이 더 크다.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가야

 

넷째, 바로 개성공단 중단이다. 이는 박 정부의 자기 부정이다. 박 정권 초반인 201343일 개성공단이 중단된 적이 있다. 그때 박근혜 정권은 북한과 끈질긴 줄다리기 끝에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합의문에 명토박아 놓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발표하는 것은 선행 행위와 모순된 행동이자 명백한 자기 부정이다.

 

2007년 출간된 박근혜 대통령의 자서전(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박근혜 당시 의원은 북한 핵문제를 밥상론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서양에선 음식을 먹을 때 스프, 메인요리, 후식 등이 단계적으로 나오지만 한국은 밥상에 밥, , 찌개, 반찬 등을 한꺼번에 올려놓고 먹는데, 이처럼 북핵 문제를 미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계적으로 접근하기보다 포괄적으로 일괄 타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했던 그 포괄적 해법을 문서화한 것이 바로 20059.19 공동성명이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바로 9.19 공동성명의 핵심이다. 이처럼 북미관계의 해법은 핵 포기와 안전보장의 주고 받기식 포괄 타결만이 유일한 길이다.

      

 

한반도 문제는 포괄적 해결이 유일한 해결책

 

1962년 쿠바 미사일위기를 극복한 케네디는 소련에 강력한 대응을 하면서도 막후 협상 라인을 유지하였다. 자신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을 주미 소련대사관에 보내 아나톨리 도브리닌 소련대사와 비밀접촉라인을 계속 유지했다. 그리고 결국 미국은 터키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는 대신 소련은 쿠바 미사일 기지를 철수해 주고받기식 타결을 해 평화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자서전에서 밝혔던 자신의 생각과 구상을 왜 실천도 해보지 않고 이런 최악의 외교적 안보적 참사를 되풀이 하는지 묻고 싶다.

 

박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중국 책임론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리더십의 전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120년 전 동학군이 전라도 순창 옆 고부에서 가렴주구와 학정에 견디다 못해 일어났다. 동학군이 봉기했을 때 조선 정부는 중국군의 개입을 요청했고, 일본군도 질 수 없다며 따라 들어왔다. 한반도가 전쟁터가 됐다. 지금 북한이 핵실험을 한 곳은 함경북도 풍계리이고, 로켓을 쏜 곳은 평안북도 동창리이다. 모두 우리 영토이다. 우리 영토에서 벌어진 일을 중국에게, 미국에게, 일본에게 해결을 요구하면 해결이 되겠는가? 120년 전과 똑같은 무능한 리더십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이 화해와 상생 정신으로 남북 경협을 통해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촉진한다는 것은 정파를 떠나 초당적인 합의사상이다.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끌어낸 정권은 바로 노태우 정권이었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도 지난 3년 동안 남북교류협력 원칙을 지지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교류와 협력이 핵개발에 기여한다는 주장은 자가당착이다.

 

 

존재감 없고 무능한 야당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정치의 역할이다. 정부 여당의 무지, 무능, 무책임도 가슴 아프지만 도대체 야당은 무엇을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초법적 조치를 취하는 데도, 야권의 존재감은 제로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반민족적 폭주에 야권은 아무런 견제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지리멸렬 하고 있다. 3당에게 호소하고자 한다.

 

첫째, 3당은 이 엄중한 사태에 공동 대응해야 한다.

 

둘째, 이 순간 가장 참담한 국민은 개성공단 입주업체 임직원들이다. 3당은 입주업체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 입주업체들은 의지할 데가 없다. 그 분들이 새누리당에 의지하겠는가, 청와대에 의지하겠는가.

 

우리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3통 시대(통상, 통행, 통신)를 열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2.11일 개성공단 중단 조치는 3통 시대를 3불 시대(대화 불가, 접촉 불가, 교역 불가)로 되돌린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린 것이다. 이는 시대착오적이다. 이웃 중국과 대만은 3통 시대를 열어 일주일에 800편 비행기가 오가며, 200만 명의 대만인이 중국 영주권 발급 받았다. 중국도 하는데 왜 한민족은 못하는가? 자신 있게 말하지만 남북 간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났다. 북한과 교류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취하자는 것이지, 북한에 가서 살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국과 대만은 3통을 향해서 가속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나마 남아있던 개성공단 마저 차단해 암흑의 3불 시대로 역주행하는 이유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에게도 간곡하게 요청 드린다. 그동안 입주업체들은 행여 북한이 임금인상을 요구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그리고 한국 정부가 세금 더 내라고 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개성공단 특수에 대해 쉬쉬하고 지내왔다. 그러나 이젠 개성공단 들어가기 전과 후에 어떻게 회사가 커졌고 얼마큼 수익이 증가했는지, 그리고 개성공단이 중소기업에게 얼마나 단비 같은 존재인지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그래야 개성공단을 지켜낼 수 있고, 일자리를 지켜낼 수 있고, 평화를 지켜낼 수 있다.

 

 

전략적 인내, 실패한 미국의 대북정책

 

끝으로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 한 마디만 언급하고자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시절 대통령이 되면 이란, 북한 등 적국과 직접대화를 통해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존 멕케인 공화당 후보가 당신은 너무 순진하다고 공격했을 때 어떻게 대화를 통한 외교가 순진한 것이냐고 맞받았던 장면이 선하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후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대북 관계를 방치해 버렸다. 오바마 대통령 집권 기간에만 북한은 세 차례의 핵 실험과 로켓을 쏘아 올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왜 입장을 선회했을까? 아마 그것이 미국의 국익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대 한반도 정책의 기본원칙은 국익이다. 그런데 개성공단 중단은 미국의 국익에 기여한다. 사드 배치 국면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의 국익에 기여한다.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가면 갈수록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익에 봉사한다. 북한을 빙자하여 평화 헌법 9조를 개정하고 군국주의화에 성큼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국익은 어디에 있는가? 미국, 일본, 중국의 국익에 봉사하면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챙겨야할 대한민국의 국익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