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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 team/Today's DY Issue

정동영 친노패권주의와 정면승부

 

정동영 친노패권주의와 정면승부

전주(병) 정동영 후보 친노패권주의에 희생당한 호남정치 복원선언

 

20160406 국제뉴스 양승관 기자

▲ 전주(병) 국민의당 정동영 후보는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친노패권주의 피해자와 수혜자의 대결"이라고

언급

 

4.13총선 전주(병)에 출마한 국민의당 정동영 후보는 "자신은 친노의 수혜자가 아닌 피해자"며 "호남정치부활과 정권재창출을 위해서 반드시 친노 후보를 꺽고 당선돼야 한다"고 전북CBS, 전라일보, 티브로드 전주방송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 후보는 "호남에서 친노.친문 심판정서가 폭발하고 있다"며 이어"노무현 정신과 참여정부는 권위주의를 깨자는 것이었지만 참여정부와 친노들은 자신의 이득을 챙기자는 것이었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뿌리가 된 호남을 아쉬울 때만 이용하고 버렸다"고 비판했다.

 

또 자신은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친노가 지원한 이해찬 전 총리를 경선에서 꺾고 대선후보가 된 것이 화근이 돼 친노로 부터 표적이 됐다"며 "대선후보 시절 친노와 영남세력들은 정동영에서 철수하고 영남 친노 패권을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죽이기에 나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정 후보는"4년 전 특정계파 때문에 강남에 출마한 걸 말하면 만나는 주민들마다 그게 사실인지 되물으며 모두 놀란다"며 "이번 선거는 그 계파(친노)를 심판하는 선거이고, 김 의원이 바로 '노사모' 의원"이라고 언급하며 각을 세웠다.

 

 

정 후보는 지금까지 SNS와 인터넷에서 '곶감동영','배신자'...등으로 불리며 친노와 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 맹공과 비난을 받아 오면서도 그는 참여정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정치를 했음을 인정하고 최대한 말을 아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랬던 그가 무슨 이유로 이처럼 친노를 정조준하고 십자포화를 쏟아 붓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동안 정 후보가 친노로 부터 철저하게 배척당하고 외면당하는 굴욕까지 자신이 부족하다며 참고 있었던 묵은 한이 폭발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정동영과 친노의 인연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에서부터다. 당시 노무현 후보의 승리가 확정된 상태에서 정동영 후보는 타 후보들이 연이어 경선에서 사퇴했지만 끝까지 남아 승자인 노무현 후보와 당 이미지 쇄신에 앞장섰다.

 

 

이후 들어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국민의 염원처럼 서민과 진보를 지향했지만 실제로는 재벌 대기업정책과 미국 우선정책 등을 폄으로써 이에 반대하는 정동영 열리우리당 의장과 노무현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않고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정동영은 이러한 참여정부의 실정에 따른 민심이반을 우려 이를 돌파하고자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친노 인사들이 대거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하면서 '도로 열린우리당'이 되고 계파간 정쟁의 장소가 되고 말았다.

 

 

한편 정동영은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에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당선되자마자 곧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에 연락을 취했으나 닿지 않았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연락을 했더니 열심히 잘 해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

 

지난 2007년 대선패배의 원인이 전적으로 정동영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시 참여정부의 실정으로 국민들은 실망감과 반감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다음은 대통령선거를 1년 정도 앞두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실정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조사한 2006년 9월 여론조사 결과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 대한 국정 운영 전반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의 부정적인 평가가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여론조사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내용 중 가장 평가가 인색한 실업대책의 경우 '잘 못한다'는 응답은 2003년 이래 66%, 75%, 77%였다가 올해 83%로 늘어나 참여정부의 무능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동, 인사정책도 '잘 한다'는 각각 2%와 3%에 그친 데 반해 '잘 못한다'는 74%와 78%에 달했다. 긍정 평가가 가장 높은 개혁정책의 경우도 긍정 대 부정 응답이 6% 대 68%로 나타났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개혁. 실업. 인사. 노동 5개 분야로 나눠 '매우 잘 한다' 5점, '보통이다' 3점, '매우 잘 못하고 있다' 1점으로 점수를 매겼다.

 

 

실업대책이 1.82점으로 가장 낮게 평가됐으며 인사정책은 1.89점, 노동정책은 2.01점,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은 2.05점, 참여정부의 개혁정책은 2.11점으로 5개 분야 모두 보통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는 노무현 대통령 정부 출범 이래 계속 악화됐는데 실업대책의 경우 2003년 2.19점에서 2004년 2.04점, 2005년 2.01점이었다가 올해 1.82점으로 떨어졌다.

 

 

인사정책과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인사정책은 2.58점→2.36점→2.26점→1.89점, 대통령은 2.55점→2.43점→2.37점→2.05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개별과제 평가 = 국정 운영과 동일한 방식으로 점수화한 개별과제에 대한 정부의 해결 노력 역시 낮은 평가를 받았다.

 

 

빈부격차 해소와 물가안정이 1.85점과 1.86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고, 부정부패 비리 방지(1.96점), 교육개혁(2.06점), 주택정책(2.09점) 등도 만족도가 낮았다.

 

 

이처럼 어느 것 하나 10개 개별과제 중 '보통이다'는 의미의 3점을 넘은 것은 하나도 없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나마 2005년에 유일하게 3.13점을 받았던 남북 관계 개선은 가장 큰 폭으로 떨어져 2.49점이었다. '바다이야기' 영향으로 부정부패 비리 방지(2.27점→1.96점)와 언론자유 보장(2.73점→2.45점)도 크게 하락했다. 물가안정을 제외한 9개 개별과제 모두 지난해와 비교해 점수가 떨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평가는 취임 이후 잘한 일로는 개혁 추진(4%), 부동산 정책(3%), 언론자유 개방(3%), 남북관계 개선(3%) 등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잘한 일이 줄어드는 대신 '잘한 일이 없다'는 응답이 67%까지 치솟았다.

 

'잘 한 일이 없다'는 응답은 2003년 41%, 2004년 48%, 2005년 56%로 해마다 계속 늘어났다. 잘못한 일들이 경제 분야에 집중된 것은 취임 이후인 2003년 이래 계속된 현상이다.

 

물가 불안, 실업 대책, 경제 악화 등은 해마다 노 대통령이 가장 잘못한 일 1~3위였다. 올해도 고용 불안(실업문제) 14%, 부동산 정책 9%, 경제 불안 5% 등 경제 분야가 상위를 차지했으며, 여기에 인사 정책(8%)이 잘못한 일로 새로 추가됐다.

 

 

이와 같이 당시 노무현 댕통령과 참여정부의 실정으로 등 돌린 민심과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상당수의 많은 사람들이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를 적극 지원하고 나서며 같은 당 대통령후보인 정동영이 아닌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48.7%를 얻어 17대 대통령으로 당선하게 된다.

 

여기에 당시 가장 민감했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DASS등의 차명주식보유 및 실소유주 관련비리는 이명박 후보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밝힌 동영상까지 공개됐지만 당시 참여정부와 검찰은 청와대의 지시로 이명박 후보의 비리를 조사하지 않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참여정부와 친노 인사들은 서울에 있는 미국 대사관이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 보고한 전문으로도 확인 할 수 있다. 해당전문에 따르면 노무현정부의 청와대 참모들이"정동영이 떨어져도 상관없다. 이명박이 되어도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는다"고 보고한 것이다.

 

심지어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은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제시하고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아도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서슴치 않고 했다.

 

17대 대선은 투표율이 역대 대통령선거 중에 가장 낮은 63%의 투표율을 보여 참여정부의 실정으로 민심이반이 들어난 선거였음에도 친노와 상당수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은 잃어버린 500만표와 정권재창출을 못한 모든 책임을 정동영에게 있다며 맹비난하며 따져 묻는다.

 

그동안 정동영 후보가 친노로부터 어느 정도로 가혹하게 무시하고 배척당했는지 2015년 4월 28일에 정청래 의원이 남긴 글에서 자세하게 엿볼 수 있다.

 

다음은 정청래 의원이 남긴 글이다.

 

2000년 쇄신정풍운동을 주도했던 용감한 업적도 2002년 대통령 경선당시 줄줄이 사퇴하는 다른 후보와 달리 노무현 후보와 아름다운 경선을 했던 일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노무현 후보를 흔들어대던 후단협을 물리치고 희망돼지 저금통을 들고 전국에서 노무현을 외쳤던 그의 모습도 온데간데 없어졌다.

 

 

통일부장관으로 김정일위원장과 5시간 회담을 통해 남북철도 연결도 개성공단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는 복당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희망사항일 뿐 이었다. 무릎을 꿇고 반성문을 제출하라는 당의 싸늘한 요구만 펄럭였다. 그는 반성하고 또 반성하며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는 반성하고 있는 그의 머리통을 때리며 진정성이 없으니 더욱 반성하라는 힐난만 있었을 뿐 언제 복당심사를 하겠다는 언사는 없었다.

 

2004년 열린우리당 당의장으로 공천장을 주었던 한때 정동영계 의원들한테 걸핏하면 두들겨 맞았다. 정동영에 대한 모욕주기, 왕따돌림, 걸핏하면 들이대는 진정성 테스트 시험지에 정동영은 정답을 쓰고 또 썼지만 못 믿겠다는 통보 뿐 이었다.

 

당시 지도부를 에워싸고 있던 완장맨들의 정동영 이지메는 정말 눈뜨고 못 볼 일이었다.나는 그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정동영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당에서 누구하나 나서서 정동영의 복당을 자신 있게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탈당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복당도 마치 해당행위처럼 취급을 받았고 그는 한 때 동료들이었던 좌석에 안지 못하고 국회 본회의장 귀퉁이 무소속 좌석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야 했다.

당시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는 천신만고 끝에 복당을 했지만 이미 그는 돌아온 탕자였지 당에서 그의 옛날의 명성은 오히려 그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실들과 최근 일련의 정 후보의 발언 등을 미루어 볼 때 이제는 피하지 않고 친노패권주의와의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보인다.

 

아울러 범친노계인 정세균으로부터 공천을 받았던 김성주 후보를 뛰어 넘어 새누리당과 친노패권주의를 심판하고 호남을 강한 제1야당의 전초기지로 만들어 정권재창출을 위한 수권정당을 만들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출처 http://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59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