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의 정치, 화구주의]
‘평화’라는 두 글자를 생각한다. 눈을 감고 나뭇결을 매만지듯 가만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 따뜻하다. 어머니와 고향을 떠올리는 것만큼 벅찬 감흥이 인다. 옛사람들이 화(和)라는 글자를 만들 때 수확한 벼(禾)를 여럿이 나누어 먹는다(口)는 의미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치우침도 모자람도 없이 오순도순 나누는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이보다 더 적실하게 전하는 글자는 많지 않다.
평화를 읊조리며 한반도를 본다. 천신만고 끝에 평화의 길이 열리고 있다. 갈길은 멀지만 평화의 여정에서 만나는 어려움들은 우리들의 지혜로 너끈히 풀 수 있다. 다시 눈을 감고 우리들 살림살이를 생각한다. 한반도 평화의 길은 대전환을 맞고 있지만, 먹고사는 문제로 눈을 돌리면 암담하다. 통 큰 대전환은 민생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평화는 삶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민생에서 꽃을 피워야 비로소 완성된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든 이들이 최선의 삶을 온전하게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이 평화의 참모습이다. 먹고 자고 입고 즐기는 문제에 공포와 고통이 있다면 평화는 오지 않은 것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사회경제적 조건에 결핍과 불평등이 있다면 평화는 아직 모두의 것이 아니다.
삶의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최우선이 밥이다. 예부터 밥이 하늘이라고 했다. 맹자가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을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실 어법으로 말하면, 실업은 밥을 얻을 기회가 없는 공포이자 아픔이다. 소득이 주는 것은 밥이 적어지는 것이다. 자영업자의 한숨, 비정규직들의 차별 앞에서의 절망, 청년들의 좌절도 밥에 대한 눈물이다. 4차산업, 미래산업 문제도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것인가?’라는 밥에 대한 걱정이다.
정치에서는 노선이 제일 중요하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가장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이 노선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노선은 ‘밥의 정치, 밥의 노선’이다.
밥의 정치는 진보와 개혁을 또렷이 정의할 수 있다.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일이 개혁이고 진보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최우선적 노력이 우리시대의 선이자 ‘밥의 정치’ 핵심이다. 우리시대 가장 큰 문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즉 밥의 불평등에 있다. 평등은 이념의 관심사가 아니라 밥의 문제이다. 밥을 만드는 정치, 공평하게 나누는 정치는 가능하다. 모두가 잘 사는 정치는 결코 꿈이 아니다.
밥의 정치는 일자리, 집, 소득 민생 3대 과제로 압축된다. 일자리에서 청년실업, 신성장 미래산업, 비정규직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집의 문제 즉 주거복지도 3대 정책 패키지가 필요하다. 집값 안정을 통해 모두가 맘 편히 자고 싶다는 꿈을 이루고, 약자들에게 공공이 주택을 공급해야 하고, 천정부지로 오르는 전월세에 세입자의 걱정을 덜어주어야 한다. 소득안정과 향상을 위한 3대 정책 패키지는 자영업자의 눈물을 닦는 것, 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 최소한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소득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민주평화당은 8월 5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민주평화당은 이 전당대회를 통해 최우선적으로 노선을 분명히 하고 리더십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이는 동전의 양면이다. 노선이 없는 리더십은 허망하다. ‘어디로 가는가’란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리더십이 허약하면 길을 열지도 앞으로 진일보하지 못한다. 노선은 앞장서 길을 열고 이끄는 리더를 통해 마침내 현실이 된다. 결국 첫째도 노선 둘째도 노선이다.
나의 노선과 정체성은 밥의 정치에 있다. 이를 평화를 빌어 새롭게 정의하면 ‘화구주의(禾口主義)’라 할 수 있다. 쌀을 만들고 함께 나누는 정치의 의미가 또렷이 부각된다. 화구주의는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밥을 만들고 함께 나누는 민생정치의 본질을 말한다.
민주평화당의 노선은 화구주의가 되어야 한다. 이는 국민의 삶의 문제를 현장에서 해결하는 민생현장주의이며, 개혁적이며 진보적 해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진보적 민생주의의 대중적 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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