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은 5.18 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겪었던 분들의 얘기에 따르면 당시 광주는 지옥을 방불케 할정도로 끔찍했다고 합니다. 광주시청 자료에 따르면 당시 희생된 분들만 사망자 약 230명, 부상자 약 3380명, 행방불명자 약 80명, 연행구금자는 1400여명, 유공자는 무려 5천2백3십여명에 이릅니다.
당시 MBC 기자였던 정동영 의원은 계엄령으로 광주에 취재를 가는것 조차 어려운 상황속에서 목숨을 걸고 광주로 내려갔습니다. 역사의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광주의 상황을 전했던 정동영의 리포트는 끝내 보도되지 못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의 언론 왜곡과 달리 "광주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만발하는 도시"라고 보도하며 광주의 진실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광주의 진실을 알리지 않는다면 당장 몸은 편할지 몰라도 내 양심이 허락치 않고, 평생 마음이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광주로 내려간 정동영 의원은 “비록 총성이 머리 위로 오가도 마음만은 편하다”며 당시 자신의 마음을 리포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 리포트는 1980년 5월에 보도되지 못한채 그 행방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2007년 5월 광주 MBC에서 5.18관련 자료들을 정리하던 중 우연하게 발견했다고 합니다. 광주에서 서울로 현장 상황을 전했던 그의 육성이 생생하게 담겨있는 '보도되지 않은 리포트' . 27년만에야 빛을 봤던 그 리포트의 전문을 지금 공개합니다.
[정동영의 '보도되지 않은 5.18 리포트']
본 리포트는 5.18 당시 광주로 내려간 정동영 의원이
서울 MBC 본사로 현지 상황을 전달한 전화 통화 내용 전문과
방송 리포트 전문입니다.
1. 전화 통화 내용
정동영 :
예, 정동영입니다.
예, 저희들은 잘 있습니다. 예 좋습니다.
교대도 좋습니다마는 여기 있으니까 마음은 편합니다.
총탄이 늘 머리 위로 계속 총성이 나서 그렇지 마음은 편합니다.
어제하고 오늘하고 완전히 세상이 다릅니다.
어제까지는 일단은 학생들이 장악을 한 상태에서 시민들이 전혀 불안감이나 이런건 없었습니다. 밤에는 물론 총성 때문에 공포감에 떨기는 했지만 주간에는 전혀 생활의 지장도 안 받았고, 물론 알아서 가게문을 안 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시내 통행하는 문제라든가 시내 전화 주고받고 돌아다니고 그러는 문제는 전혀 없이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녔습니다.
저희들도 이쪽 시민들하고는 자유롭게 대화가 되는데요, KBS 보도 때문에 KBS 기자를 찾아라, 때려 죽이겠다, 그리고 그 이후로 어제도 학생들이 시위할 때 선언을 했는데요, “국내 기자들한테는 일체 소스나 협조를 않겠다” 그렇게 공식선언을 했구요, 그래서 학생 측에 접근을 하는건 어려움이 있었지만 광주 시내의 표정이라든가 이런건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만발하는 도시였고, 황금동 같은데, 금남로의 큰 네거리의 계엄령 해제, 전두환 나가라는 플래카드가 날리고, 사람들 말하는 데는 전혀 거리낌이 없고 그런데서는 완전히 자유천하였습니다.
오늘 되면서 일단 상황은 완전히 180도 바뀌었죠. 제가 아침에 쭉 광주천을 따라가지고 한바퀴 돌았어요, 계속 군인들한테 검문을 당하면서...시민들은 골목에 안돌아 다닙니다.
어제 밤에 3시경부터 7시까지 지금도 현지에선 간이 들립니다. 총성이 수천번이죠, LMG, 수류탄 투척하는 소리, 자동화기 소리해가지고 완전히 전쟁터 같은 공포 분위기였기 때문에 시민들이 아침에 나와서 생사 확인하고 말이죠.
서석동 전남의대 병원이 있는 데서 세탁소에 들어가보니까 2층 건물인데 총알이 다섯발이 관통을 해서 방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가족들은 안다쳤는데 양복장이 뚫려가지고 옷 같은 것은 구멍이 났습니다. 이불 뒤집어 쓰고 벌벌떨다가 나와보니까 다행히 이웃사람들도 그렇게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시민들 피해, 사상자는 아직 확인이 안됩니다. 별로 없는 것 같구요.
그리고 새벽 4시경에 벌써 도청주변, 반경 2km정도 해서 도심지까지는 무혈입성하다시피 들어왔어요. 거기서부터 이쪽 학생시민군 측하고 4시 이후에 교전이 되었는데요, 그건 주로 금남로하고 제봉로, 충장로 등 중심지 간선도로 빌딩이라든가 옥상에 올라가 있는 학생들과 교전을 해가지고...
서울 MBC :
잠깐만요..... (중간 다른 멘트) 네, 통화 계속하세요...
정동영 :
그래서 여기 KBS를 통해서 계속 4시부터 시민들한테 상황전달을 해줬는데, 7시 반까지 공무원들은 전부 제자리로 나오라고 했지만, 시민들은 위험하니까 거리로 나오지 말라 이야기를 했고 외신기자들한테는 영어로 방송을 했어요. 외신기자들도 어떤 신분이건 어떤 임무건 밖으로 나오지 말라, 위험하다, 대신 외국인들 신변보호를 위해서 최대 노력을 하겠다, 그런 내용의 영어, 영자 방송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 7시 반 넘어서 8시 되면서부터 총성이 점점 적어져 가지고 그때, 사람들 문이라도 열고 나와보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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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송 리포트 전문
예, 정동영입니다. 광주 시내에는 지난 21일 이후에 도청앞 빌딩 벽에 매일같이 대자보와 민주회보가 써붙여져서 사태전개 과정을 시민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금남로 주변에는 30장 정도의 벽보에 광주사태가 세계적인 빅뉴스로 취급이 되고 있으며 중앙정보부장 전두환이 우방으로부터 고립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절지에 매직펜으로 쓴 대자보는 KBS를 통해서 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아붙이는 당국의 처사는 광주시민을 모독하고 있다고 말하고 시민군, 자칭 시민군을 앞장세워서 5.18광주봉기를 민주회복의 성전으로 승화시키자고 주장하는 내용들 이었습니다.
또 금남로 전남매일 빌딩 벽에는 광주사태를 1면 톱으로 사진과 함께 보도한 5월 22일자 마이니치신문 영자판이 게시되어 있어서 그 앞에 많은 시민들이 몰리기도 했습니다. 벽보 외에도 ‘광주시민민주투쟁협의회’라는 명의로 된 민주시민회보라는 전단이 매일 5~6천장씩 16절지 전단이 프린트가 되어서 광주시내에 배포되고 있습니다. 또 광주시민 일동 명의로 된 각종전단이 매일같이 뿌려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경찰활동입니다.
광주시내에는 광주경찰서와 서부경찰서 두 개의 경찰서가 있고 그 밑에 31개의 파출소가 있습니다. 경찰서에 경찰관들이 나온다는데 치안유지가 안된다는게 무슨 얘기냐는 서울의 질문은 광주사태가 상식을 초월하고 있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4일부터 경찰서에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해서 오늘은 대부분의 본서 직원들과 파출소 직원이 사복차림으로 출근하였습니다. 치안업무를 개시한 것이 아니고 다만 경찰서 건물과 파출소 건물안에 직원들이 들어와서 서류철과 집기 정리를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무장도 개의치 않고 오후 5시가 넘으면 모두 자리를 비우고 집으로 퇴근하고 있습니다.
무장 학생들과 경찰의 충돌은 없었고 시민들의 경찰에 대한 적대감도 전혀 없는 그런 형편입니다.
다음은 광주시가지 거리 통행 문제입니다. 광주시가지 통행은 새벽부터 밤7시까지는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광주시장 구용상씨를 비롯해서 70만 광주시민의 주요한 통행수단은 자전거가 되고 있습니다. 금남로에는 아침부터 수천대의 자전거행렬이 붐비고 있고 장형태 도지사는 오늘 오토바이 뒤에 타고 군부대에서 시내로 들어오는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시장물가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오전 9시 광주시 한복판 대인시장에를 나가봤습니다. 무한개에 150원에서 200원, 5.18 이전보다 50원정도가 올랐고 배추한단에 300원, 100원정도 올랐습니다. 양파 2개에 100원, 배정도 올랐고 오이 1개에 80원에서 100원, 어제 KBS에서 시내에서 오이3개를 천원이라고 했다면서 터무니없는 보도를 비난하는 성명이 많았습니다. 야채값은 별로 오르지 않았습니다. 갈치, 조기, 오징어, 낙지라든지 생선은 값이 반으로 떨어졌습니다. 외부에서 반입이 되지 않고 있고 재고품을 팔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상해가고 있는 생선이었습니다. 정육점도 고기배달은 지난 5월 21일부터 안되고 있고 재고품을 파는 정도이고 값은 그대로입니다.
옷가게, 신발, 빗가게 등도 대부분 문을 열기는 했지만 손님은 없었습니다. 대인시장안에 보해소주 대리점에는 오늘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와서 소주를 사간 상인들이 약 30여명이 되었고 50상자가 팔렸습니다. 소주값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시내 문을 연 담배가게가 몇개 있었고 거북선이 300원 한산도가 220원등으로 담배값이 문 열린 데에서는 오르지 않았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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