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오늘 강남 구룡마을 어버이날 잔치에 가서 어르신들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렸습니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졌습니다. 살아 계신다면 카네이션 꽃을 하나가 아니라 열개 스무개라도 어머니 가슴에 달아드리고 싶은데...(나뭇가지가 멎고자 하나 바람이 부니 멈춰지지 않는것 처럼 못다한 효도를 바치고 싶어도 부모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것을 일컬어 풍수지탄 이라고 하지요)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아들만 아홉을 낳으셨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보통 9남매 10남매를 두셨지만 아들만 내리 아홉을 낳은 분은 우리 어머니말고는 아직 못보았다.
(어머니)저는 아홉 아들 가운데 다섯번 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공교롭게 저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휴전협정이 맺어진 날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다섯 째 아들이면서 동시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자식을 잃으면 부모 가슴에 묻는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평생 가슴속에 상처를 간직하고 사셨습니다. 저는 한번도 어머니께 형들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어머니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우리 어머니는 내가 대학 다닐 때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셧습니다.그런데 상경 하자마자 아들은 박정희 독재 반대하는 데모 하다가 유치장으로 구치소로 잡혀갔고 서울 지리도 잘 모르시던 어머니는 구치소 담벼락을 서성거리시다 병을 얻어 자리에 누우셨습니다. 구치소에서 나와 강제징집으로 군대에 끌려 갔을 때 어머니는 가까스로 일어나셔서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옷장사를 하시며 생계를 꾸리셨습니다.평생 한이 되는 불효를 저지른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어머니,미처 입 밖에 소리를 내어 부르기도 전에 가슴부터 먹먹해지는 이름은 어머니--입니다. 생전에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셨던 큰아들과 함께 오붓한 여행 한번 같이 못해드렸던 것이 한으로 남습니다. 재작년 어버이날을 사흘 앞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는 이젠 아무리 사무치게 불러도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플톡님들, 살아계신 부모님께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해드리십시오. (5월 8일 정동영이 플토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