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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정동영 "대통령은 국민안전최고책임자(CSSO)다"

 

"대통령은 국민안전최고책임자(CSSO)다"

르디가 만난 사람, 정동영 전 NSC 상임위원장

 

2014.06.03  르몽드디플로마티크  이종훈 기자

 

    

 

“MB(이명박)정부는 “노무현이 한 것은 다 틀렸다”면서 2008년 집권 이후 맨 먼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폐지했다. NSC 상임위와 사무처, 위기관리 컨트롤타워를 해체하고 수십만 페이지의 매뉴얼 2800여 권을 싣고 나가 정부 부처 어딘가에 주었다. 그 매뉴얼이 지금 어디에 먼지가 쌓인 채로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 재난컨트롤 타워의 기능을 해체한 것이다. 세월호 관련 청문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명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의 원인 제공자이다. 폐선 연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린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

 

6월은 남북분단 아픔의 반복적 상징이자, 남북화해의 새 다짐을 의미하는 달이다.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이 남북한에 깊은 상처의 골을 남겨놓았다면,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00년에 남북정상이 천명한 6·15남북공동선언은 그 상처를 딛고 민족화해로 향하는 비상의 날갯짓이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발효된 날 태어난 운명 때문이었을까. 정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시절 통일부 장관이자 NSC 상임위원장으로서 개성공단 착공 등 남북 경협과 국가 안보관리에 대한 책임을 맡았고, 특히 2005년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및 비핵화를 담은 ‘9·19공동성명’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본지는 정 전 장관이 상임고문으로 활동 중인 사단법인 ‘대륙으로 가는 길’에서 그를 만나 국가 재난관리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았다.

 

 -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로 분노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이대로 지속할 수 없다는 신호적 재난이었다. 돈, 돈, 돈을 쫓아 왔는데 위험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울리히 벡이 지적한 ‘위험사회’였다. 돈과 물질만능에서 사람, 사람, 사람으로, 속도와 경쟁에서 생명과 안전으로, 고속성장과 경제 지상주의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가치가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살리는 것이다. 정부가 미덥지 않으니까 정치권은 진실을 밝혀야 한다. 사회적 치유는 책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미국은 2001년 9·11 당시 사고조사위원회에서 20개월을 조사했다. 전·현직대통령을 비롯해 수백 명을 조사했다. 진상규명과 교정작업을 벌였다. 그 중심에 야당이 설 때 대안정부로 자리매김을 하는데 현재로서는 안타깝다.”

 

 - 노무현 정부 당시, 안보 및 재난업무의 책임자인 NSC 상임위원장으로서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현대 안보는 포괄적 안보로 생명안보를 포함한다. 청와대가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김장수 전 안보실장의 발언은 무책임의 극치이다. 4월 16일 사건 당일 오전 8시52분부터 오전10시17분까지 85분 동안, 최초 위기 감지부터 “엄마 아빠 보고 싶다”는 카카오톡 마지막 발신까지 국가는 없었다. 이게 비극이다. 진실, 책임, 치유가 중요한데 아직 진실이 다 안 나왔다. 이 304명이 살아있던 85분 동안 국가 상징의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나. 몇 시 몇 분에 누구로부터 어떤 보고를 받고 어떤 지시를 내렸나.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청와대 안보실장이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발언한 것은 곧 대통령의 사고방식을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국민은 질문하고 답변을 들을 권리가 있다. 여기서부터 진실은 시작된다. 미국은 2001년 9·11 당시 부시 대통령이 3회의 대국민담화, 11번의 TV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도자는 국민이 불안해 할 때, 국민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미국은 당시 각 부 장관이 50여 차례 브리핑을 했다. 정부는 국민 생명에 설명할 책임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4월 29일과 5월 19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은 5월22일 사임했다-편집자)

 

 - 그럼, 국가가 없었다는 이야기인가?

 

“그 당시 국가가 제대로 있었더라면 304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3단계로 국가가 없었다. 1단계로 배의 선장이 도망쳤고, 2단계로 바다의 지휘탑, 컨트롤타워는 부재했다. 누군가 이순신 장군처럼 구조를 기다렸던 304명을 위해 행동해야 했는데 없었다. 3단계로 청와대와 안전행정부, 중앙재난대책본부가 깜깜했다. 국가는 없었다. 안전행정부는 사건 당일 오전 9시 30분 잘못된 보고를 받고 장관이 경찰학교 행사장에 사진 찍으러 갔다. 오전 8시 52분 상황 발생 이후 38분이 이렇게 경과했다. 아직 47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세월호에 있던 304명은 해경 헬기 소리가 나고 해경선이 보여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 대통령 책임제 국가의 대통령이 갖는 의미는?

 

“선장은 도망을 가고, 안전행정부 장관은 경찰학교 행사장에 가고, 구조를 기다리던 세월호 안의 학생들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한 장면이다. 생명과 어긋나는 결정적 장면이다. 304명의 생명을 살리지 못한 최종적이며 최고의 책임은 대통령 책임제 국가의 대통령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 때 책임을 인정했다. 대통령은 Chief Security & Safety Officer(CSSO)로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의 최고 책임자’이다. 이번에 국민들은 대통령으로부터 “내가 대한민국 안전의 책임자”란 말을 기다렸다. 이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고 인정할 수 없다. 왜 그 이야기를 못하나. CSSO를 인정해야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복원된다. 그런데 재난컨트롤 타워를 장관에게 미루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치유가 안 된다. 치유를 위해서는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

 

- 사고 당일 청와대의 초동 대처에 아쉬움이 많은데.

 

“세월호 사건 당일 오전 8시 55분 목포 해경에 여객선 조난신고 접수되었다는 내용이 전자상황판에 뜬 것을 청와대가 확인하고 바로 해경 말단 조직에 전화를 했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시스템이 불똥 튀게 돌아갔을 것이다. 이를 ‘격발효과’라고 하는데 청와대가 위기관리센터로서 초동대처의 격발효과를 거두도록 기능을 했어야 했다. 가장 짧은 시간에 대통령 책상 위에 세월호 사태 보고가 올라가야 했다. 어떤 대통령이 그 보고를 받고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겠냐. 이날 오전 9시 30분에 재난컨트롤타워라는 안전행정부 장관이 세월호 보고를 받은 후 경찰학교에 사진을 찍으러 가고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 10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서 “구명조끼 나눠줬다는데 왜 이렇게 찾기 힘드냐?”고 질문했다. 대통령이 현장 상황 파악이 안 된 상태였다.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의 최고 책임자(CSSO)인 대통령의 그 말은 합당했나?”

 

-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 안보와 재난 관리를 관장했던 NSC는 어떻게 운영되었나.

 

“김영삼 정부 때 사고가 많아 ‘사고 공화국’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미국 NSC를 벤치마킹했다. 상임위원회와 사무처를 설치했고, 직원은 20~30명 규모였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사무처를 100여 명으로 확대하고 국가 안보와 재난 관리의 최고사령탑 역할을 했다. 최고사령탑은 대통령이었고, 평상시 대리 사령탑이 상임위원장이었다. 당시 통일부 장관인 내가 겸임을 했다. 비상시는 바로 대통령이 관장하게 되어 있었다. 평상시 국정원, 국방부, 외교부, 통일부, 외교안보수석, 현안 부서 장관, 국무조정실의 부서장들이 평상시 위기관리를 했다.”

 

- NSC 상임위원장 재임시절 재난관리 관련하여 어떤 사례가 있었나.

 

“NSC는 2005년 시스템 매뉴얼을 완성했다. 당시 휴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이 발생했을 때 북한에 전통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했는데 의외로 회신이 빠르게 왔다. 휴전 이후 최초로 우리 산림청 헬기 여러 대가 비무장지대에 진입해 다행히 불을 껐다. 우리 화물선이 원산 앞바다에서 좌초해 북한과 협조하여 해경 삼봉호가 들어가 끌고 나온 적도 있다. NSC 시스템이 한국에는 필수 불가결한 안보재난의 컨트롤타워였다.”

 

 - 당시 각 부처 간 통합관리의 팀워크를 어떻게 다졌나.

 

“정부의 통합관리능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해당 장관들이 바빠 팀을 이루기가 힘들다. 해당 부서별로 관점이 다르다. 통합관리의 팀워크가 필요하다. 내가 NSC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던 시기에는 매주 목요일 오후 5시에 저녁을 같이 하면서 협의를 했다. 매주 50~60건이 남북관계, 20건은 외교, 10건은 국방, 기타 10~20건이었다. 매주 해당 장관들이 모여 저녁시간에 비공식 대화를 하면서 팀워크가 쌓여 팀이 되었다. MB 정부 때 MB 사람들에게 NSC 폐지는 잘못되었고, 분단국가에서 위기관리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 박근혜 대통령이 NSC를 복원했지만 재난관리가 포함되지 않았는데.

 

“2013년 말 북한의 장성택 처형 사태 때 우리 외교안보팀의 혼선사태를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부활시켰지만, 외교안보는 NSC가 맡고 재난관리는 안전행정부가 맡는 식으로 이원화되었다. 형식적으로는 맞으나 대통령 책임제 국가에서 최종 책임은 국무총리가 아니라 대통령이 져야 한다. 국가안전처 신설 처방은 잘못된 처방이다. 총리실 밑에 국가안전처를 두는 것은 청와대 책임회피의 발상이다.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생각이 여전히 유효한가? 대통령이 재난 컨트롤타워를 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규제 완화, 경쟁, 물질 만능, 규율 지상주의를 강조하는 가치관을 바꾸라는 것이 세월호가 보내는 아우성이자 요청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공감하고 치유하는 모습이 형식적이다. ‘소통 제로’가 ‘공감 제로’로 이어지고 있다.”

 

- 현재 남북이 불통된 상태에 대해 우려하는 국민이 많은데.

 

“내정에서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남북관계의 핵심은 소통채널 가동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NSC는 판문점 연락관, 개성연락관, 서해 군통신선, 국정원 핫라인 등 4개 라인을 상시 가동했다. 4개 채널이 끊긴 지 7년째이다. 1970년대 수준으로 후퇴했다. 기계적 소통 외에 인간 소통이 중요하다. 최고는 남북정상회담이다. 과거 남북장관급회담은 21번 했으나 2008년 이후 7년째 제로인 상태다. 남북 간에 기계적 소통과 인간적 소통이 막혀 있어 남북 위기 지수가 올랐다. 이를 뚫어줘야 한다.”

 

- 한반도 주변 4강 입장과 우리의 통일 문제가 간단치 않다. 바람직한 해법의 방향은.

 

“4강의 국제 정치, 권력 정치의 희생물로서 분단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남북이 등을 돌린 것이 얼마나 위험하며 한심한가. 한반도 운명은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 남북이 소통해야 하는데 서로 등을 돌리면 우리가 아니라 남이 우리 문제를 결정한다. 중국 왕위 외무부장이 미국 케리 국무장관과 장성택 처형 관련하여 긴급 통화하는 보도를 보면서 매우 모멸감을 느꼈다. 이것이 21세기 한민족의 역량인가.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에게 “귀하들은 남북의 지도자인데 어떤 느낌이었냐?”고 묻고 싶었다. 4대 강국의 공통분모는 현상 유지다. 현 상태로 가는 것은 우리에게 고통이고, 민족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4강은 현상유지를 바라는데, 분단상태를 변화시키려면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다. 소통할 수밖에 없다. 통일을 향해 발을 내딛어야 한다.”

 

정 전 장관은 인터뷰 말미에 자신의 전공인 남북문제로 화제가 이어지자, 남북화해와 통일교육의 중요성을 힘주어 강조했다. 요즘엔 미래의 꿈나무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통일 관련 글을 틈틈이 쓰고 있다고 근황을 소개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만약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재난관리 기능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단절되지 않았더라면, 세월호 사건은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자문해 보았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을 떠나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인 요청이다. 국민의 생명은 정당과 이념을 초월해 최고로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정동영

 

MBC 보도국에 입사, 베테랑 TV 기자를 거쳐 MBC 뉴스 앵커로 활동했다. 이후 제16대와 제18대 국회의원으로 입법활동을 했으며, 통일부 장관(2004~2005)으로 국가안전보장회(NSC)의 상임위원장을 역임했다. 민주당 경선을 거쳐 2007년 제17대 대통령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현재는 사단법인 ‘대륙으로 가는 길’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저서에 <개성역에서 파리행 열차를>(2007), <중산층 나라를 만들겠습니다>(2007), <트위터는 막걸리다>(2010), <10년 후 통일>(2013) <정동영 아저씨의 한반도 통일 이야기>(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