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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정동영 성명] 재벌·부자 감세 원상복구와 사회복지세 도입으로 무상보육·무상급식 확대해야

[정동영 성명]

 

  재벌·부자 감세 원상복구와 사회복지세 도입으로
  무상보육·무상급식 확대해야

 

-여·야는 그동안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사과하고 '사회복지세' 도입 본격 논의해야

 

-복지증세 위한 국민 대토론의 장 만들자 

 

 

'한 번 약속한 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지킨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유가족·국민과의 약속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쳤다. 이제는 유아 보육 공약까지 걷어차고, 더 나아가 아이들 밥그릇마저 빼앗으려 하고 있다. 아이 엄마들의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는 정녕 들리지 않는 것인가.

 

기초연금 공약을 축소 왜곡하고,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던 전작권 환수를 무기 연기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위반하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잘 시행되고 있던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중지하겠다는 것은 그 이전 자신이 당 대표로 있던 이명박 정부 시기에 국민적 요구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작했던 정책마저 소급하여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2중으로 공약을 위반하는 것이다.

 

유아 보육과 아이들의 점심. 즉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은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정책이다. 또한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정책들이다. 이런 곳에 국민들이 내는 세금을 쓰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혹자는 세금복지, 세금급식이라고 말한다. 맞다. 나라의 세금은 그런 데 쓰라고 걷는 것이다.

 

보육과 교육은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게 맞다. 하늘이 무너져도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은 확대해야 한다. 새누리당과 보수세력·보수언론이 무상복지 포퓰리즘을 얘기할 때, 야당은 더 당당하고 강력하게 재벌·부자 증세-복지국가 실현을 이야기해야 한다.

 

문제는 재원 부족이다. 사실 현재의 복지재정 부족 문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등 여·야 모두가 그동안 끊임없이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며 감언이설로 국민을 속여 온 결과일 뿐이다. 이에 대해 여·야 모두 국민 앞에 진솔하게 사과해야 한다.

 

본인은 지난 수년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재원대책 없는 복지는 거짓이다. 부자증세의 방안으로 사회복지 목적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것 외에는 재정 부족 사태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야 모두 쇠귀에 경 읽기였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어렵고 복잡할 때는 원칙으로 가야 한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내는 게 상식이고 조세정의이다. 따라서 부자증세는 불가피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부자증세가 곧 조세정의이고 사회통합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벌고 있음에도 투자도 하지 않고 금고에 쌓아두기만 하는 재벌 대기업과 고소득자들에게 증세를 해야 한다. 그 이전에 이명박 정권이 재벌 대기업에게 특혜를 준 법인세 감세와 고소득자들에 대해 단행한 소득세 감세부터 즉시 원상복구해야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이어져 온 재벌·부자 감세가 누적으로 이미 100조원을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시행한 재벌·부자 감세만 원상복구해도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재정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재벌·부자 감세의 원상복구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합리적인 증세를 통해 더 많은 복지를 실현해야 한다. 복지 확대는 '소득 양극화-저출산 고령화-계층·세대 갈등 심화'라는 삼중 위기에 직면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안하는 대안은 '복지에만 쓰는 세금' 즉 사회복지세의 신설이다. 재정지출에 대한 신뢰가 약한 상황에서 증세의 사용처를 복지로 못 박는 '복지 목적세'만이 국민의 동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 자주국방을 위해 방위세를, 1980년대에는 미래세대 교육을 위한 교육세를, 1990년대에는 WTO 가입에 따른 농어촌 지원을 위해 농어촌 특별세를 신설했듯이 지금 국민이 열망하는 복지국가를 위해 사회복지세를 마련해야 한다.

 

사회복지세는 이미 여러 복지국가 운동단체들이 국회에 입법 청원을 한 상태다. 사회복지세는 누진적 직접세인 소득세·법인세·상속증여세·종합부동산세 등 4개 세목에 20%를 추가하는 부가세 형태로 연간 20조원을 거둬들일 수 있다.

 

사회복지세는 소득이나 수익에 비례하기 때문에 저소득자는 적게 내고 고소득자는 많이 내도록 설계돼 조세정의에도 부합한다. 월 200만원 이하 소득자는 월 700원만 추가 부담하면 되고, 300만원은 6000원을, 500만원은 5만 2천원, 1000만원 소득자는 24만원을 낸다. 저소득자는 커피 한 잔 적게 마시는 대신 매달 5만원의 무상급식과 22만4천원의 무상보육과 지금의 20만원 보다 더 많은 기초연금을 받는 등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처럼 재벌 대기업에게는 감세 특혜를 주고, 서민에게는 보편적 증세(담배값·주민세·자동차세 인상)를 하면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마저 축소해버리면 결국 재벌경제만 승승장구하고 서민경제는 죽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 서민경제가 망가지면 가뜩이나 위축된 내수가 사라지고, 결국 재벌 대기업들까지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국제경쟁력도 낮아지고, 경제성장 잠재력도 당연히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모두가 죽는 길이다.

 

먼저 재벌·부자 감세와 서민증세를 폐기하고, 국민적 합의를 모아 조세정의에 부합하는 '사회복지세'로 가야 한다.

 

더 이상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감언이설로 국민을 속이려 해서는 안 된다. 세입 총량을 그대로 묶어둔 채로는 무상보육, 무상급식, 기초연금 등도 지속하기 어렵지만, 그나마 취약한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공공주거지원 정책 등 취약계층 복지까지도 방치되는 심각한 복지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민주당에 표를 모아준 이유이기도 하다. 이 두 정책은 각각 300만명 정도의 당사자와 600만명 정도의 부모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들이다. 그야말로 대통령을 탄핵할 만한 중대한 사안이고, 선진국에서조차 국민적인 봉기와 반발이 일어날 사안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조용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점잖아서가 아니라 제1야당이 무능하고 무기력해서이다. 또한 철학과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2011년 복지재원 논쟁 당시 당내 관료 출신과 중도·보수파 의원들의 주도로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가 가능하다'는 당론을 채택한 뼈아픈 과오를 범한 바 있다.

 

따라서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이제라도 보편적 복지 실현을 위해 당의 명운을 걸고 무상급식과 부상보육을 지켜내야 한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도 지키지 못하는 야당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더 나아가 사회복지세 도입 등 복지 증세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어떻게 보편적 복지의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를 놓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국민적 테이블을 만들어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도 국민의 조세 부담 등 국가적 현안을 논의하는 '국민대타협위원회'를 대선 공약으로 제안한 바 있다. 이름이 무엇이 되든 국민적 총의를 모으고 의회와 정부가 받는 방식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현명하고도 유일한 길이다.

 

                                    2014.11.9

 

                      새정치민주연합  정 동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