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스토리] '낭만파' 정동영의 '눈물 젖은 밥'과 '개나리 사랑'
2013.12.05 스포츠서울닷컴 오경희 기자
민주당 정동영(왼쪽) 상임고문의 고등학교(오른쪽 위)와 군 시절/ 정동영 고문실 제공 |
가난한 시골 총각이 전주 아가씨에게 반했다. 도도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총각은 매일 여대 앞 기숙사를 서성였다. 음악은 먼 나라 얘기였던 그는 음대생 그녀를 만나려고 명곡 대사전에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했다. 뜨거운 마음을 더는 감출 수 없어 막걸리에 취한 어느 날,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날, 길가 개나리꽃을 꺾어 그녀에게 고백했다. 민주당 정동영(60) 상임고문과 아내 민혜경(56)씨의 사랑 이야기다.
6.25 전쟁 휴전협정일인 1953년 7월 27일 전북 순창군 구림면에서 태어난 정 고문은 '귀공자' 이미지와 달리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열일곱 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군 제대 후 복학시절에는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옷장사를 하며 '눈물 젖은 밥'을 먹었다. "어머니의 재봉틀이 저를 키운 힘이었다. 결혼한 뒤에는 아내와 두 아들, 어머니와 동생 셋 모두 8명의 식구가 한 집에 살면서 가난했지만 가족의 힘으로 좌절하지 않고 버텨냈다"고 말했다.
청년 정 고문을 버티게 한 힘은 아내였다. 그의 연애는 뜨거웠다. 친구인 시인 황지우씨의 소개로 대학 때 아내 민씨를 처음 만난 그는 첫눈에 아내에게 푹 빠졌다. '시골 촌놈'이라 '피아노 치는 여자'가 좋았다고 말했다. 아내가 다니던 숙명여대 기숙사 앞을 발이 닳도록 다녔다. 사랑 쟁취 작전은 수위 아저씨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사가지고 가서 수위 아저씨를 구워삶았다. 아저씨는 아내가 몇시에 나가고 들어오는지 정보를 줬고, 연애 전략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사랑의 메신저였던 수위 아저씨를 결혼식에 초대하기도 했다.
애끓는 사랑도 부모의 반대를 넘기 힘들었다. 아내의 부모는 두 사람의 만남을 강하게 반대했다. 대학 졸업식 날 친구 황지우씨와 함께 꽃다발을 들고 찾아갔지만 아내는 그의 선물을 뿌리쳤다. 그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등을 돌렸다. "교육자 집안의 딸이었으니 얌전한 아내의 졸업식에 남학생이 나타났다고 생각해 봐라. 얼마나 황당했겠나. 나 역시 친구 앞이라 창피했다. 그 뒤로 헤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2년 만에 재회했다. 부모의 반대는 여전했다. "아내의 집을 찾아가서 딸을 달라고 애원했다. 통행금지 시간이 넘어서 갈 데도 없고 담벼락 밑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며 웃음 지었다. 다시 사랑을 잃을 수 없던 그는 무모한 결단을 내렸다. 다니던 방송사에 사표를 내고 무작정 아내를 설악산으로 납치했다.
"당시 경찰 출입기자였는데 연애냐 직장이냐의 기로에 섰다. 방법이 없으니까 사표를 내고 아내를 찾아갔다. 아내 부모님도 어쩔 수 없어서 허락했다. 뭐 어쩔건가. 시집보내긴 틀렸지(웃음). 지금은 나를 큰 아들처럼 생각한다."
아내와의 연애 이야기를 풀어놓자 추억에 젖어드는 듯했다. 책장 한편에 꽂혀있는 빛바랜 명곡 대사전을 펼쳐보면서 "싫다는 사람 데리고 와서 고생만 시킨 것 같아 미안하다. 아내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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