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합, 개조해야
'합리적 진보' 방향 분명해야
[인터뷰] 당 개조와 신당 창당, 그 갈래에 선 정동영 전 장관
[레디앙] 2014.10.17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났다. 정 전 장관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탄압 받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희망버스에 중견 정치인으로 열성적으로 참여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또 이미 참여정부의 한미FTA 추진에 대해 공개적인 반성 입장을 제출하기도 하면서 정 전 장관의 발언과 행보는 진보적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준 바도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중소영제 자영업자의 문제를 강조하는 발언을 자주 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세월호 협상을 둘러싼 새정치연합의 태도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며, 당의 환골탈태를 주문하고 있다. 그를 만나 한국의 정치현실과 새정치연합의 변화 방향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지난 13일 정 전 장관의 싱크탱크인 ‘대륙으로 가는 길’ 인근의 카페에서 대화를 진행했다. 인터뷰 정리는 장여진 기자가 맡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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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권: 최근 새정치연합에 대해 강한 비판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표현 수위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당의 전직 대선후보이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견 정치인이 자신이 20여년 몸을 담고 있는 조직에 대해 ‘난파선’이라는 규정까지 하면서 강하게 비판하는 핵심 이유는 무엇인가?
정동영: 정당의 존재 목적은 정권 창출이다. 그런데 현재의 새정치연합으로 과연 2017년에 정권 획득이 가능한가? 얼마 전 서울시당이 조사한 결과를 보니깐 우리 당원 45%가 정권 획득이 어려울 것이라고 답변했다. 야당이 야당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응답도 85%에 육박했다. 야당의 가장 충성스러운 지지자여야 할 당원들이 현재의 새정치연합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굉장한 위기에 빠져있는 거다. 그런데 당은 상대적으로 태평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비판의 말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가치는 실종되고 권력투쟁만 남아
정종권: 2007년과 2012년 2번의 대선에서 민주당은 실패했다. 때문에 집권 가능성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지는 건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현재 새정치연합이 보이는 어떤 측면과 모습들이 집권 가능성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들이라고 보나?
정동영: 정당에서 노선이 실종되면 권력투쟁만 남는 것인데, 현재 새정치연합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민낯의 권력투쟁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노선과 가치를 둘러싼 각축이나 경쟁이 아니라 노골적인 권력투쟁만 남아있다는 거다. 결정적으로 7.30 재보선의 실패가 그렇다. 세월호 참사 3개월 반 만에 치룬 선거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무능, 무책임, 오만이라는 3중의 악재 속에서도 여당에게 승리를 헌납한 어처구니없는 결과로 나타났다. 여기서 새정치연합은 척추가 무너진 셈이고, 박근혜 정부는 5년의 임기 속에 중요한 분기점을 넘긴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여권의 지리멸렬 수순으로 이어질 거라고 예상했지만, 우리의 자충수로 인해 야당이 오히려 지리멸렬해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세월호 참사는 정부여당의 악재였기에 7.30 재보선에서 여당의 부담이 더 컸을 텐데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야당이 세월호 참사 해결 과정에서 더 망가졌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누구를 대표하고 있나?
정종권: 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보나?
정동영: 그것 역시 새정치연합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를 대표하고 있는가’라는 자기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문제가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정치연합은 7.30 재보선이 어떤 선거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에서부터 실패했다. 이를테면 만약 내가 7.30 재보선을 규정할 수 있는 위치였다면, 먼저 ‘4월 16일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의미는 1년 반 간의 박근혜 정부의 국정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 국민들에게 새누리당을 확실히 심판해 과반수를 붕괴시켜 달라고 자신 있게, 당당하게 말했어야 됐다고 봤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정권의 국정 운영을 바꾸기는커녕 위기에 흔들리던 박근혜 정부를 더욱 공고하게 붙잡아준 꼴이 됐다. 독선과 독주, 불통을 더 이어나갈 수 있도록 했다.
세월호 참사 해결 과정에서도 ‘나는 누구인가’라고 할 때 사회경제적으로 목소리가 약하고 작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했다면, 세월호 유족들과 국민을 위해 맞서 싸워야 했었다. 여당은 위선적인 협상 태도만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에 임하는 새누리당의 자세는 정권을 보위하는 것에 바빴다. 여야 정당 누구도 세월호 참사의 당사자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맞서 싸워야 할 역할을 했어야 할 야당이 제 역할을 못하고 어버버하다가 유족과 여당 사이의 ‘중간자’ ‘조정자’로 위치지어지고 말았다.
이 문제의 뿌리를 따지고 보면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서부터 당의 뿌리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정종권: 세월호 참사의 대응 과정의 안일함과 7.30재보선의 공천 실패라는 현상적 문제의 근본에는 새정치연합의 자기 정체성이 제대로 서지 못했던 게 문제의 뿌리라는 것인가?. 그런데 당 내 일각에서는 새정치연합이 너무 ‘왼쪽’으로 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반면에 또 다른 일각에서는 ‘오른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어디로 가려는 당인지를 헷갈리게 한다.
민주당 10년 집권 이후 ‘이명박근혜’가 당선된 것은 새정치연합의 집권 경험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 중요한 원인 아닌가?. 가령 한미FTA나 비정규직 문제들에 대한 민주당 정권의 정책에 대한 반발 말이다. 민주당 집권 10년 과정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진전되었지만 비정규직, 농민, 서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서는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과 뚜렷한 차별성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과거에 대해 정치적 레토릭 말고 좀 더 적나라하게 짚고 평가해야 할 문제들은 없나?
참여정부, 시대적 과제를 오판
정동영: 1997년 12월, 그러니깐 IMF 외환위기 직후 청와대에서 호출이 왔다. 당시 이인제, 이회창, 김대중 등 3인의 대선 후보가 호출된 것이다. 나는 당시 김대중 후보의 대변인으로 후보를 모시고 청와대에 갔다.
그때 당시 김영삼 대통령 앞에 백지 3장이 놓여 있었다. 각서였다. 모든 후보들이 다가오는 15대 대통령에 자신이 당선될 경우 IMF에서 제시한 것을 지체 없이 이행하겠다는 백지 각서였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때만 해도 나는 그 각서의 의미를 잘 몰랐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 2월 25일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읽다가 목을 메던 장면이 있다. 앞으로 다가올 위기와 파국에서 국민들이 겪게 될 고통과 피눈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목이 잠겨 말을 잇지 못했던 것이다. 그 장면이, 이후 다가올 5년간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예고했던 것 같다.
김대중 정부 5년간의 일들은 그래서 불가피했다고 본다. 불이 난 집에 불을 끄기 위해 IMF 요구사항을 수용한 것은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 다르겠지만 … 일단 오늘 주제는 아니니깐.
아무튼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노무현 정부가 재집권에 성공했는데, 그런데 나는 참여정부가 당시의 시대적 요구를 오독했다고 본다. 김대중 정부 5년간에 국민들이 흘렸던 피눈물과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으로 들어갔어야 했다고 본다. 그게 참여정부의 시대적 과제였다는 거다. 실제로 2002년과 2003년이 비정규직이 가장 폭증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당시 시대적 과제를 정치개혁으로 읽었다. 저는 그게 발을 잘못 디딘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개혁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실질적인 삶의 문제 개선, 구체적으로는 비정규직과 중소영세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완화시키고 경감시켜주는 것으로 시대적 과제를 잡았어야 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임기 5년이 끝날 때에는 한미FTA 협상까지 가버렸다.
그래서 제가 2010년 8월에 공개적으로 반성문을 제출했다. 당시 반성문을 제출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2008년 리만브라더스가 무너지고 미국의 금융위기를 목도했기 때문이다. 신기루였다. 그런 위기를 불과 9개월 전인 대선 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금융자유화를 통해 한국도 금융 허브로 자리매김해서 일자리도 만들고 돈도 벌자고 생각했고, 그를 위해 미국 월가에서 배우자는 거였는데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신기루였던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두 번째 계기는 용산참사였다. 용산참사 이후 참사 현장의 골목 미사에 참여했는데 당시 문정현 신부가 나를 가르키며 ‘저 사람이 조금만 더 잘 했더라면 이분들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을 때 정말 충격이었다. 강론 현장에서 직접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 이전에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용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이후에 관련한 법안도 제출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내가 참여정부 5년에 대한 반성문을 제출하게 된 핵심 계기이고 이유이었다.
정종권: 그런데 그런 과거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중견 정치인들도 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도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는 분도 있고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민주당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도 적지는 않는데 그런 반성의 모습은 별로 보지 못했다. 결국 정동영의 공개반성문은 개인적 차원의 반성문인 건가, 아니면 민주당 정권을 운영했던 이들의 일부라도 공유하고 있는 집단적 반성문인가?
정동영: 공개적으로 쓴 사람은 나밖에 없긴 하지만 일부도 그 의미를 공유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지금 당 내 친노-비노라는 구분이 사용되고 있지 않나. 어떤 지도자도 공과 과는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공은 계속 발전시키고 과는 극복해야 한다. 저는 그런 점에서 반성문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특정 계파로 지칭하는 사람들은 과오에 대해서는 인정하기를 싫어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 누구와 공유하고 있나
정종권: 참여정부의 5년이 IMF 이후 국민을 치유하는 5년의 시간이 됐어야 했다고 보는 의견에 공감한다. 문제는 민주당 집권의 과거에 대해 정동영처럼 진단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지금 (새정치연합) 당 내에 집단적으로 존재하냐는 거다. 소위 개혁파라고 하는 486 정치인 중에서 정동영처럼 반성하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정동영: 당시 정부여당은 비슷한 판단이었다. 미국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느꼈던 충격은 나만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을 함께 만들고 했던 선후배, 동기들이 아마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정종권: 이러다가는 새누리당의 일당 독재가 지속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능을 하기에 새정치연합은 그럴 응집력이나 의지도 없거니와 정체성 측면에서도 회복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신당 창당론도 나오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김대중, 노무현 시절의 민주당은 아주 강하다고는 할 수 없더라도 지금보다는 강한 정당이었던 거 같다. 그런데 현재의 새정치연합 모습은 의석수와 무관하게 더 약해지고 무력화된 거 같다.
정동영: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던 어떤 주부를 만나 대화를 한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말을 했다. 자기 자신은 보수 성향인데도 프랑스에 20년간 살다보니 진보개혁적인 정책에 공감하게 됐는데, 한국에 와보니 한국정치 전체가 극우로 향해간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지금의 야당 역시 자기 눈에는 굉장히 오른쪽에 있다고 하더라.
제3자의 시각으로 객관적으로 보면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진보정당이 없다시피 한 현실이지 않냐. 여기서 새정치연합의 몫이 무엇일까? 새누리당의 2중대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오히려 가치와 철학에 있어 새누리당과 차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새정치연합에서는 중도 강화론이 더 우세한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오진이다. 새정치연합이 누구를 대표하고 있냐, 혹은 대표해야 하냐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당내에는 당이 너무 왼쪽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들이 왼쪽으로 가고 있냐고 물어보면 근거는 대지 못한다.
새정치연합은 현재 2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현장과 유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말로 내 의사를 대변해주길 바라는 다수의 약자들로부터 정말로 나를 대변해주는 정당이라는 인상과 이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정체성의 문제이자 노선과 가치의 문제이다.
정종권: 좀 더 직설적으로 물어보겠다. 김대중의 평민당 시절부티 지금까지, 그러니깐 87년 이후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정체성이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이었던 걸까?
정동영: 민주당은 전통적으로는 보수 야당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지도를 통해 당의 노선이 중도개혁 노선,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여기서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할 때에는 ‘합리적 진보(정당)’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한쪽에는 강력한 보수가 있다. 새누리당에 김무성 대표가 드러내놓고 ‘보수정권 창출이 목표다’라고 말하지 않나. 그런데 다른 한쪽은 진보정당이 지리멸렬해지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합리적 진보라는 방향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 내에서는 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건 사실이다.
새정치연합의 진보적 개조, 가능한가?
정종권: 새정치연합을 합리적인 진보정당으로 개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데, 새정치연합과는 다른 새로운 틀을 만들자는 것인지 아니면 당 내에서 그런 방향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것인지?
정동영: 지금까지는 현재의 틀에서 변화와 개조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2가지 방향에서 개혁이 필요하다.
하나는 그동안 압도적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의 리더십으로 운영해왔다면, 이제는 상향식 당내 민주주의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또한 당내에 합리적 진보를 지향하는 리더십을 만들어내어 이 둘의 상호보완 작용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정종권: 새정치연합은 정말 많은 이름이 있었다.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민주통합당, 통합민주당 등 즉 형식적인 재창당의 연속이었다. 이에 비하면 새누리당의 족보는 그나마 간단한 편이다. 결국 재창당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합종연횡의 정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평가가 있다. 권력장악을 위해 세력을 규합하고 봉합하고, 여러 차례 새 인물을 수혈하는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이 상실된 것 같다. 그런데 현재의 새정치연합에서 새누리당을 견제할 수 있는 힘 있는 야당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지, 합리적 진보로서의 개조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최근의 모습에서는 그런 기대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새누리당 지지율은 40%대를 유지하지만 새정치연합은 20% 전후인 지가 오래됐다.
정동영: 지난 10년 동안의 지지율을 살펴보면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을 앞선 게 딱 3번 있다. 한 번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반짝 올랐고, 두 번째는 2011년 손학규 전 대표와 내가 당내에서 중도 대 진보로 각축을 벌일 때이다 그 이후 손 대표가 분당 재보선에서 당선됐을 때이다, 마지막으로는 그해 가을 한미FTA와 관련해 새정치연합이 당론을 선회했을 때였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야당이 야당다운 야당이 되었을 때, 방향성을 가진 야당이 됐을 때 국민들이 지지할 것이라는 것이다.
새누리당에게 배워야 할 것들
정종권: 김무성 대표와 경쟁관계에 있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을 하는 걸 보면서 새누리당이 부럽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맥락인가?
정동영: 권력의지를 갖고 필요할 때는 강하게 응집하는 그런 풍토가 부럽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정권창출을 위해서는 항상 잘 뭉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풍토 자체가 약하다. 내 옆에 동지가 넘어져야 내 자리가 넓어진다는 아주 편협한 계파주의가 지배적이라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한 마디로 비꼰 것이다.
정종권: 그런 점들이 새누리당이 강한 정당이고 새정치연합이 약한 정당이라는 징표로 보여진다. 내부 갈등을 겪다가도 필요할 때 조직이 응집하는 걸 보면 새누리당은 영리한 정당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외에도 새누리당에서 배워야 할 게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정동영: 당의 관료제가 안정되어있는 점을 들 수 있다. 당 지도부가 어떻게 바뀌든 당의 관료시스템이 튼튼하게 잘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당이 안정적으로 유지 관리되는 것 같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당료마저도 계파화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속으로 균열이 정말 많다. 새누리당은 이미 공채제도가 안착화되어 있어 당 대표가 누가 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조직 구조를 갖춘 반면에 새정치연합은 대표 한 명 바뀌면 밑에도 다 바뀌는 구조다.
이와 별도로 새누리당은 권력창출이라는 큰 목표를 갖고 하나가 되는데 우리는 ‘목소리’와 ‘주장’을 두고 분열한다. 정권 창출과 당권 획득은 전혀 다른 것인데… 더 큰 가치를 위해서 대동하는 정치풍토 문화가 약하다.
정종권: 앞으로 바뀔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보나?
정동영; 리더십 문제다. 리더가 내려놔야 한다. 그런데 이번 비대위도 안타까운 점이 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당원의 주인은 당원이기에, 당이 위기일 때는 당원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과거부터 관행적으로 해왔던 조직강화특위를 구성해서 지도부를 교체해왔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차라리 당원이 지도부를 뽑아야 하는 게 아닐까. 당원이 직접 대의원, 지역위원장, 당 지도부를 선출해야 당내 상향식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정상적인 당이 아니다. 비대위가 또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기만이다. 당원들이 소외되어 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당원들을 만나면 꼭 나오는 소리가 당원으로서 자기 존재에 대해 의문을 느낀다는 것이다. 의무만 있고 권리가 없다고 한다. 당이 위기인데도 그 누구도 그것을 알려주는 사람도, 묻는 사람도 없이 당원들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는 목소리들이다. 몇몇의 실력자들이 당을 주무르는 것은 비극이다. 당의 혁신과 개혁은 바로 당의 주인인 당원에게 권력을 돌려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종권: 결국 키워드는 딱 2가지인 것 같다. 정체성이나 노선으로 합리적인 진보로의 지향을 분명히 할 것과, 조직문화로써 당의 주인인 당원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 말이다.
정동영: 당원 주권과 정체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래야 제1야당이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은연중 정당의 역할과 기능을 약화하는데 동조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무슨 문제만 있으면 ‘저것들 다 없애버려라’라고 하는데, 정당정치가 약화되면 득 보는 게 누구겠냐. 바로 재벌 기득권, 보수 언론, 사법부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기관들이 아니겠냐. 권력획들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 매개가 되어 이런 비선출 권력기관들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데, 정당 스스로가 정당 자신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당원 주권을 강화하는 것이 당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데 필요조건인 것이다. 그리고 이 위에 강력한 리더십으로 당을 제1야당으로 내세울 때 대안자로서의 정당, 반대자로서의 정당을 모두 대표할 수 있다.
정종권: 인터뷰를 계속 하다 보니 마치 전직 민주노동당 대표와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웃음) 정당정치를 바라보는 의견에서는 많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정당정치를 약화시킨 세력 중의 하나가 바로 새정치연합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지구당 등 정당조직의 자기기반을 없애고 당원들을 선거 때의 거수기 정도로 생각해온 것은 새누리당만이 아니었다.
정동영: 참여정부 때의 잘못이다. 지구당을 없애고 정당정치의 틀을 약화시킨 게 ‘오세훈법’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에서도 동조한 측면이 있다. 당시 나는 의원 신분이 아니라 통일부 장관이었긴 하지만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정치개혁의 잘못된 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
구당구국모임, 같은 비전을 공유한 그룹인가
정종권: 다른 질문 해보겠다. 새정치연합 내에서 최근 결성되고 정동영 고문도 참여한 구당구국모임이라는 건 무엇인가? 모임 참여 면면을 보면 정동영과 다르게 꽤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많던데.
정동영: 구당구국모임이라는 말에는 오해가 있다. 과거 2010년도에 특정 지도부(정세균 체제)의 사당화가 심각했다. 당시 지방선거 때 천여 명의 후보자가 공천 문제에 반발해 탈당하는 등 사태가 심각했다. 그때 지도부의 이런 행태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쇄신연대’가 만들어졌다. 특정 계파의 사당화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이후 친노 세력이 당을 장악한 것이 2012년이었다. 한명숙-이해찬-문재인이 손을 잡고 총선과 대선을 좌지우지 했다. 그때 그런 식으로 당을 운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중도건 진보건 모여서 만든 것이 ‘신쇄신파’모임이다. 보수언론에서는 중도파 결사체라고 했는데 그건 과장된 표현이다. 면면을 보면 천정배나 이종걸은 중도파는 아니지 않냐.
정종권: 친노 패권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정동영: 친노라는 용어는 내용이 없는 말이다. ‘친박’과 ‘친노’는 같은 말이다. 지난 2012년 총선 공천에서 봤던 패권적 태도와 2012년 대선 때 보인 폐쇄적 태도를 경험했기 때문에 또다시 친노 패권이 이루어진다면 정권교체는 물 건너가고, ‘그냥 야당’이나 하자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종권: 친노라는 집단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것인가?
정동영: 크게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안 했다로 구분을 짓는다. 그런데 중요한 건 정작 노무현 대통령 본인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반성적 성찰을 한 사람이다. 한미FTA문제도 그렇고. 그런데 친노 인사 중 과거 참여정부 시절의 과오에 대해 반성적 성찰을 한 사람이 있는가? 없다. 나에게도 친노냐, 비노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노무현 정부 시절 각료를 했으니 당연히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공과에서 공은 계승하고 과는 지양해야 하는 것이고, 노무현 스스로도 과오를 인정했는데도 친노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건 매우 교조적인 태도이다. 그리고 그것이 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 공천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정종권: 진보정당에서도 그런 말 많이 한다. 정체성이 달라도 같이할 수 있지만, 패권적인 것은 같이 못한다고. 그건 정체성의 차이는 경쟁하고 공존할 수 있지만 패권이라는 것은 나누고 공존하는 걸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의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런 점에서 친노 패권의 위험성과 우려되는 지점들도 많을 것 같다.
정동영: 오늘도 정의당 팟캐스트에 출연해 유시민 전 장관이랑 그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유시민은 생각이 다른 거 같더라. 오히려 새정치연합에서 친노세력은 왕따가 아니냐고. (웃음)
정종권: 쇄신모임은 이러한 문제점을 공유해 당의 변화를 바라는 모임인 것 같은데, 정동영이 지향하는 합리적인 진보라는 관점에서 보면 참여하고 있는 인물들의 정체성이 많이 이질적인 것 같다.
정동영: 전당원 투표제를 도입하자는 사람이 많으니 조직 운영에 대한 문제의식은 비슷한 것 같다.
정종권: 조직문제와 달리 정체성이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많이 다른 것 같던데.
정동영: 정체성은 달라도 같이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냐? (웃음)
정종권: 맞다. (웃음) 당을 향한 정동영의 비판이 주목받는 건 전직 대선 후보였다는 중량감의 문제가 아니라 새정치연합이라는 제1야당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비고적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쇄신모임의 인물들의 공통점이 없어 보이니, 공통의 진로 모색도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솔직히 말하자면 노선과 별개로 당권 장악을 위해 서로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인 것 아니냐는 비판들도 있는 거 같다.
정동영: 제가 만난 사람들이 그런 분들(보수 또는 중도성향)만 있는 건 아니다. 이 분들은 과거 쇄신연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의 모임이고, 그것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과도하게 포장된 것뿐이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특정 개인의 발언은 말 그대로 개인 의견이지 이 모임의 성격을 대변하는 건 아니다. 나와도 의견이 다르니깐.
다만 486 정치인들의 역할이 다소 아쉽다. 정확한 문제의식을 갖고 당을 혁신하자고 해야하는데, 얼마 전 유력한 486 정치인이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거 보고는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그는 중도를 강화해야 한다, 중도 보수적 인물을 보강해야 한다, 선명한 야당을 주장하는 건 근거 없는 이야기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당황스러웠다.
정종권: 중도보수 인물을 수혈하자는 주장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렇게 해서 새정치연합이 합리적 진보정당으로 개조, 변화가 가능하겠냐. 그런데 이미 조직 자체가 낡았고 개조가 어렵다면 새로운 집을 짓는 게 필요하지 않나. 여전히 현재의 새정치연합이 정 전 장관의 고민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조직이라고 보는 것인가? 약간 성격이 다르지만 독일 사민당은 100년이 된 정당이고 집권도 오랫동안 했지만 당의 노선과 구조, 비전 등에 대한 의견 차이로 당수였던 오스카 라퐁텐이 탈당하여 좌파당이라는 새로운 당을 만들기도 했다.
정동영: 정치도 생물이고 정당도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새정치연합과 새누리당, 두 당은 엄청나게 다른 지점에서 떠밀려 왔다. 만약 7.30재보선에서 여당에게 패배를 안겼다면 저쪽이 지리멸렬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두 달 반이 지난 현재 오히려 새정치연합 주변에서 신당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내가 정당 활동 19년차인데 당원들을 만나면 대부분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한다. 특히 호남을 중심으로 강원도, 충청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연말 또는 내년 초에는 지금의 당이 어디쯤 가고 있을 것인지, 당이 혁신의 길로 접어들어 기사회생하는 행로를 잡을 것인지 아니면 당이 해체의 압력을 받는 국면이 될 것인지, 향후 2~3개월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때는 좀 더 큰 소리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의 가치와 철학 논쟁이 별로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안타까운 점이다.
정종권: 차기 새정치연합 당직 선거에 출마를 고민하고 있나?
정동영: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당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현재 분기점에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에 대한 조언과 충고가 있다면
정종권: 마지막 질문 하겠다. 한국의 진보정당들은 현재 정치적 존재감도 약하고 제도정치에서 많이 주변화되어 있다. 그런데 정 전 장관의 지적들은 진보정당의 유력 리더들이 말하는 지점과 굉장히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평가나 조언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정동영: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하다. 진보정당이 지난 10년 사이에 많은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은 불행히도 지리멸렬이란 말 이외에는 적절한 단어를 못 찾겠다. 많이 안타깝다. 오늘 현재도 고통 받고 있는 850만 비정규직들이 어디에 기댈 것인가? 새정치연합이냐, 정의당이냐? 어디 마음 편하게 기댈 곳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오늘 당장이 어렵더라도 점점 나아질 것이라는 현실적 기대감을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새정치연합이나 진보정당 모두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한편으로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게 21세기 천지개벽 시대에 새누리당이 ‘종북’이라는 칼을 들고 칼춤을 출 수 있다는 것도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힘을 합칠 때 지지한다. 현안별로 협력하고 합칠 때 지지한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이 정의당 탄생 이후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소통하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건 큰 당이 해야 하는데 새정치연합이 잘못하고 있다. 또한 통합진보당과는 선을 그었다. 원내정당이 4개밖에 없다. 새정치연합 하나로 충분히 집권이 가능하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7.30때 노회찬도 900표가 모자라서 졌다. 그 때 왜 새정치연합이 보다 적극적으로 선거연대를 하지 않았는지 안타깝다. 만약 그때 더 적극적이었다면 이 지경까지는 안왔을 수 있다.
과거에 진보정당 일각에서는 오히려 보수정당이 집권할 때 진보정치 성장의 토양이 된다고 판단했던 적도 있는 걸로 아는데, 얼마나 고단한 길이냐.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냐. 사람 살리는 게 진보 아니냐?. 2004년에 열린우리당이 승리할 때 민주노동당 역시 10석을 얻었고 한때는 지지율이 20%까지 올랐다. 그런 성공의 기억이 있다. 그러니 제1야당이 잘해야 하고, 진보정당도 계속 자극하고 견제해줘야 한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때 진보정당들이 앞장서서 결합했고, 그것이 자극이 되어 새정치연합도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그래서 나는 크게는 낙관적으로 본다. 우리 국민들이 이처럼 깨어있고 뚜렷한 정치의식을 가진 적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은 다들 왜 한국사회가 이렇게 불평등하고 차별이 심화되고 있는지, 그 원인까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문제는 유권자가 아니라 정당과 리더들에게 있다고 본다. 아직 희망이 있고 기회가 있다고 본다.
정종권: 새정치연합을 합리적 진보정당으로 개조하려는 정 전 장관의 노력이 성공적인 결과에 이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지만, 그 노력들을 지지하고, 진심으로 실현되길 바란다. 또한 그런 개조의 노력이 현실화된다면 진보정당들과도 좋은 파트너십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정동영: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내적으로는 한국사회가 복지국가로 가고, 바깥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만드는 길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평화체제와 관련해 남북문제를 내 손으로 직접 해본 경험이 있어 그것이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복지국가라는 것 역시 민주당의 당헌 개정을 주도해 당헌에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말을 당의 가치이자 목적으로 삽입한 경험도 있기에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확신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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