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친노(親盧)는 반성 없고, 비노(非盧)는 시대정신 없다"
2014.11.16 시사브리핑 이홍섭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정동영 상임고문이 지난 13일 전주 시민강좌 강연을 통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상황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이어가면서 호남여론에 대해 "특정계파 당 장악 시 100% 신당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정 고문은 강연 첫머리부터 문희상 위원장을 겨냥했다 그는 "문희상 비대위 이후, 당 더 엉망 됐다"고 비판하고 문 위원장에게 "구태정치 전형·혁신대상 전락했다"강도 높게 비난 했다.
정 고문은 이어 "비대위원장이 앞장서서 특정 계파의 숙원인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하고, 지역위원장을 선정하는 조직강화특위도 당원의 참여를 원천 배제한 채 자기들끼리 밀실에서 제멋대로 심사하고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렸다"며 "지난 총선에서 사실상 특정 계파가 공천했던 비례대표 의원 11명이 지역위원장을 신청한 것도 야당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내 친노(親盧)-비노(非盧) 구도와 관련해서도 "친노는 책임과 반성이 없고, 비노는 시대정신이 없다. 둘 다 공통점은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라며 "노선과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남는 것은 벌거벗은 패거리 권력투쟁뿐이고, 이것이 오늘 새정치연합에서 목격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정 고문은 "분명한 것은 친노도 비노도 정부가 될 수 없다. 계파에게 정권을 주는 국민은 없다"며 "지금처럼 친노-비노 얘기가 계속 나오고 그렇게 구분되고 표현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민주당이 정부가 될 가능성, 정권교체 할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하고 "노무현의 공만 인정하고 과는 인정하지 않으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며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을 넘어서 또 다른 세상, 더 좋은 세상을 꿈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 고문은 또 “친노(親盧)는 책임과 반성이 없고, 비노(非盧)는 시대정신이 없다.”며 “둘 다 공통점은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라며 “노선과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남는 것은 벌거벗은 패거리 권력투쟁뿐으로 이것이 오늘 우리 국민들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목격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동영-참여자지전북시민연대 강좌 원고 전문]
세월호와 야당의 길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민심 경청투어에서 만난 '분노와 절망'
지난 10월 26일 무주·진안·장수를 시작으로 11월 6일 순창·남원까지 전북 도내 시·군 전역을 다 돌며 경청투어(傾聽 Tour)를 했다. 야당 당원은 물론 농어민, 재래시장 상인, 노인회, 노동자, 종교인, 정치인 등 각계각층의 인사를 두루 만났다.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단 한 사람도 새정치민주연합(이하 민주당)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민심 이반이 극심하구나. 호남이 언제까지나 민주당에 자식 같은 애정을 가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민주당 프리미엄이 사라졌다. 민주당이라고 해서 무조건 찍어주는 것은 옛날 이야기다.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특히 정권교체가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 가지고 정권교체가 가능하겠는가'라는 질책을 넘어서 '이런 야당으로 집권해서 되겠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를 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의 민주당 갖고는 안 된다. 다른 제3의 신당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분출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특정 계파가 당권을 장악하게 되면 그 당은 지지할 수 없다. 그 때는 100% 신당으로 가야 된다.' 그것이 현재 호남의 다수 여론이고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이런 현장의 생생한 느낌을 모르는 곳이 딱 한 군데 있다. 바로 여의도에 있는 당 지도부다. 그렇게 무사태평(無事泰平)하고 평온해 보일 수가 없다. 아직도 당이 결정하면 호남은 당연히 따라온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는 리더십의 부재 상태다. 야당이 지금과 같이 유례없는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은 노선과 정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의 근간은 호남인데, 정통 야당은 사회·경제적 약자의 저항을 옹호하고 민주주의 가치와 평화를 지향하는 호남정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것은 기득권과 특권층을 위한 사회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약자와 서민도 더불어 잘사는 공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대의 때문이었다. 그걸 위해 호남은 자신을 기꺼이 희생해가면서 전면에 나서서 행동하고 실천해 왔다.
그렇게 호남은 늘 그 시대의 진보를 선도해 왔다. 동학혁명이 그랬고, 5.18이 그랬다. 그것이 바로 호남정신이요 자랑이었다. 야당이 야당다워지고 국민들로부터 정권을 담당할 만하다고 평가받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호남정신으로 상징되는 '진보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며, 정권교체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새정치연합 비대위 문제와 특정 계파의 사당화
현재 야권의 지지율 추락과 사상 최악의 침체는 정부 여당이 잘해서가 결코 아니다. 야당 특히 제1야당이 스스로 자멸한 결과이다. 그래서 더 뼈아프고 통탄스럽다.
만약 7.30 재보선에서 야당이 패배하지 않고 여당의 패배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사실 동작을 전략공천 파동이 있기 전, 그러니까 선거 후보등록 불과 10여일 전만 해도 새누리당은 영남을 제외하고 전패 위기감이 돌았었다. 세월호 참사와 총리 인사 참극 등 박근혜 정부의 연이은 실책으로 민심 이반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그런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야당이 자만하지 않고 관리만 잘했더라도 충분히 이겼을 것이고, 그렇게 됐다면 오히려 지금쯤 여권이 큰 자중지란에 빠졌을 판이었다. 야당으로서는 이 다음 총선, 그 다음 대선까지 정권교체로 가는 데 고속도로가 열렸을 것이다. 따라서 7.30 재보선을 야당이 스스로 공천 참사로 자멸하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승리를 헌납한 것이 현재 야권 추락의 큰 원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7.30 재보선 패배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야당이 패배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패착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새정치연합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면서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현 문희상 비대위도 명백히 잘못 가고 있다.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세월호를 버렸다. 둘째 특정 계파의 사당화로 스스로 혁신대상으로 전락했다. 셋째 여전히 노선과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1. 새정치연합은 세월호를 버린 정당이다
제일 큰 건 역시 세월호 문제를 아주 엉망으로 다룬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 유족이 처음에 가장 핵심적으로 요구했던 독립적인 진상조사기구에 수사권과 기소권, 그 중에 수사권은 새정치연합 특별법에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걸 협상 테이블에 아예 올리지도 않았다. 야당이 스스로 자기검열해서 협상 테이블에서 빼버린 것이다. 이것은 야당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더군다나 현 문희상-문재인 비대위가 주도하고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박수 쳐서 통과시킨 세월호 3차 합의안과 그걸 토대로 국회에서 최종 통과시킨 세월호 3법은 가장 나쁜 합의안이었다. 1,2차 합의안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세월호 3법 합의안은 타결이라 부르기 민망한 '야당의 굴복'이다. 결과적으로 유가족만 배제시켰고,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와 국민을 압박했던 가이드라인이 그대로 관철됐다. 대통령은 정부조직법까지 얻을 수 있는 걸 다 얻었고, 야당은 스스로 망쳐놓은 판을 뒷수습하는 데 그쳤다.
야당 역사상 이처럼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협상하고 합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 야당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이 제시한 가이드라인 테두리 안에서 협상하고 합의할 수가 있나. 옛 민정당 시절의 민한당이 아니고서는, 대통령이 정한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따라서 협상하는 야당이 전 세계에 어디에 있는가.
그 때문에 유가족은 물론 시민사회와 야권 지지자들로부터 "차라리 야당은 빠져라, 새정치연합은 야합당이다, 과거 민한당 같다, 새누리당 2중대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세월호 3법으로는 성역없는 수사와 철저한 진상규명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소한 수사권도 보장되지 않은 진상조사위는 허울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유가족이 직접 특검후보군 추천에 참여하지도 못 하고, 설사 우회적으로 추천에 참여한다 해도 특검의 최종 선택·임명권자는 박근혜 대통령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특검은 원천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야당이 특검 추천의 전권을 행사했던 내곡동 사저 특검조차 청와대의 방해로 진실 규명에 실패한 바 있다.
또한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대로는 향후 국가적 재난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기존 해경의 골격을 그대로 존치했고, 청와대의 재난 콘트롤타워 기능 복구는 여전히 빠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가 세월호 문제를 다루는 걸 보면서 여·야 모두 '문제해결 능력'에 있어서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됐다. 핵심인 수사권과 기소권이 빠진 채 반쪽짜리 특별법으로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못 하고 유야무야 넘어가게 된다면, 여·야 모두 그 역사적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가 어떤 사건인가.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국가적 대사건이다. 따라서 세월호 특별법은 유가족만을 위한 법이 결코 아니다.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하고, 그렇게 해서 다시는 제2의 세월호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고, 설사 사고는 날 수 있다 하더라도 온 국민이 TV 생중계로 지켜보는 상황에서 정부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 하고 그대로 수장시키는 참사로 만들어선 안된다는 국민적 요구와 합의가 담긴 법이다.
그리고 세월호에는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핵심 모순과 과제가 다 들어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까지 민영화하는 정부, 무분별한 규제 완화는 재앙이라는 것, 비정규직을 줄이고 제대로 대접해야 한다는 것. 이 소중한 교훈들을 마주하고서 세월호 같은 사건에서도 대한민국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계기를 통해 대한민국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 모두가 원했고 공감했다. 여기에는 여야의 구분이 없었고 보수와 진보도 없었다. 그러나 4월 16일 참담했던 그 날 아침과 오늘 현재. 과연 우리는, 대한민국은 달라졌는가? 그 날의 충격보다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오늘이 더 충격적이다.
세월호 참사 6개월이 지난 10월 17일 판교에서 또 다시 16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일어났다.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이 한 발짝도 달리지지 않았다는 걸 재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세월호가, 또 다른 판교가 어디에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불길함을 간직한 채, 국민의 불안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결국 무책임하고 오만한 대통령과 정부여당, 그리고 무능하고 무원칙한 제1야당 새정치연합의 책임이다. 그래서 세월호에서 1차 탈출자는 이준석이고, 2차 탈출자는 박근혜 대통령이며, 3차 탈출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세월호 특별법은 유가족과 국민의 요구,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에서 출발한 법안이다. 대통령이 국민과 유가족에게 약속했던 대로만 실천했다면, 세월호 문제는 진작에 풀렸다. 지금쯤 진상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가족의 의견을 항상 수렴하고, 유가족의 의견이 반영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했던 대통령의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언제 그랬냐는듯 안면 몰수로 나오고 있다. 7.30 재보궐 선거에서 이기고 나니까 대통령은 뒤로 빠져서 뒷짐 지고 나 몰라라 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국회와 국민을 상대로 으름장을 놓고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세월호 특별법은 보수적인 법조계까지 참여해서 법적 충돌 문제 등을 다 고려해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게 가장 이상적'라고 판단해서 만든 법안이다. 세월호 특별법이 사법체계를 흔든다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주장은 얼토당토않는 궤변에 불과하다.
결국 대통령은 세월호 진실로부터 탈출했다. 이준석 선장이 세월호에서 탈출해서 304명을 수장시켰듯이 세월호 특별법 국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진실로부터 탈출·도피한 것이다. 이것이 세월호 특별법이 극심한 난항을 겪고 국정 난맥상으로 이어진 핵심 원인이다.
그리고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세월호 문제를 아주 억망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협상 과정에서 너무나 무능하고 무기력했다.
세월호 사태는 누가 봐도 현 정부에게 정치적으로 아주 부담이 크고 곤란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거꾸로 야당이 스스로 연속된 자살골로 더 피를 흘리고, 더 망가져버렸다. 반면 가장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할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면죄부를 주면서 승리의 미소를 짓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갤럽 여론조사(10.14~16일자 조사)에서 우리 국민 55%가 '세월호의 진상(사고 원인과 책임)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고, 58%가 '세월호특별법 등 관련 소식들에 여전히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다. '관심이 없다' 즉 세월호 피로감을 말하는 사람은 40%에 불과했다.
세월호 피로감에 이제 그만하자, 관심없다라고 말하는 40%는 누가 대변하나.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대변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잘 대변하고 있고, 매우 집요하고 끈질기게 지지자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 있다. 그래서 그 40%는 현재 새누리당의 지지율 40%대와 정확히 일치하고, 그 지지기반도 공고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55%와 여전히 세월호에 관심이 있다고 하시는 58%의 국민은 누가 대변해야 하나?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이어야 한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이 이걸 제대로 대변하지 않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이미 세월호를 버린 정당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국민이 새정치연합을 버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시민의 힘으로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고, 4.16 이전과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 "세월호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야당과 시민사회는 끝까지 유가족과 국민과 함께 해야 한다.
2. 현 비대위가 특정 계파의 사당화로 혁신대상으로 전락했다
현 비대위가 들어서면서 당내 혁신마저도 거꾸로 가버렸다. 그 때문에 당을 위기에서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당 지지율을 창당 이후 최저인 10%대로 추락시켰다.
얼마 전에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당에서 당원과 서울시민들을 상대로 조사한 여론조사(10.9일자 조사)를 보니까 우리 당원들조차 45%가 '당이 이대로 가서는 정권교체 가능성이 없다.' 그리고 무려 85%가 '새정치연합이 지금 야당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렇게 답변했다. 내가 최근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접한 바닥 민심과 정서와도 너무 일치해서 깜짝 놀랐다. 이런 객관적인 지표들까지 접하면서 당이 내부에서부터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참으로 안타까웠다.
계파 수장들이 모여서 당을 끌고 가겠다고 선언한 이후 당이 더 엉망이 됐다. 비대위가 계파 극복의 사명을 띄고 출발했는데 특정 계파의 독과점 연합체가 돼버렸고, 혁신을 하라고 했는데 비대위 자체가 혁신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당은 난파 직전인데 당원과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계파끼리 서로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하다. 이게 바로 진짜 위기의 핵심이다.
위기 상황에서 당을 추스르기 위해 등장한 비대위이기 때문에 고질병인 계파를 청산하고 여러 세력을 통합하면서 단일대오로 만들어도 정부여당을 상대할까 말까 한 상황인데, 당의 위기 상황을 틈타 특정 패권적인 계파가 당권 장악 프로젝트를 노골적이고 급속도로 밀어붙이면서 사실상 당을 사당화화고 있다.
비대위원장이 앞장 서서 특정 계파의 숙원인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하고, 지역위원장을 선정하는 조직강화특위도 당원의 참여를 원천 배제한 채 자기들끼리 밀실에서 제멋대로 심사하고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렸다.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 사실상 특정 계파가 공천했던 비례대표 의원 11명의 지역위원장 신청. 이것도 야당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런 일련의 비대위가 하는 조치들이 마치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시나리오처럼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 태도 또한 누가 옆에서 떠들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밀어붙이겠다는 독선과 오만이 서려 있다. 그 때문에 당내 불만과 분열상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현 비대위처럼 정당 사상 스스로 '우리는 계파 독과점 연합체요', '아프리카식 부족연합체요'라고 공개 선언한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는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당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게 혁신이지, 비대위도 권력이라고 이 비대위를 맡은 틈에 조직강화특위를 구성해서 당을 장악하겠다는 발상. 그것이야말로 구태 정치의 전형이다. 현 비대위가 구태 정치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이런 모습으로 계속 밀어붙인다면, 결국 정권교체를 무산시켜 보수 장기집권, 새누리당 장기집권 시대를 열게 만드는 역사적 과오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계파가 문제가 되는 것은 패권적 권력을 추구하면서 번번이 유리한 선거를 망친다는 데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이 그랬다. 또다시 그렇게 가면 2016년 총선은 물론 정권교체도 무망(無望)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여전히 노선과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당이 이런 상태로 가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그 근본으로 파고들어가 보면, 역시 노선과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당의 기본은 노선과 정체성이다. 그것이 사라지면 벌거벗은 권력투쟁만 남게 된다. 바로 계파정치가 극성을 부리게 된다. 이것이 오늘 국민들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목격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 국민들이 야당에게 느끼는 가장 큰 문제점이자 동시에 요구 사항은 2가지라고 생각한다. '야당다운 야당, 대안 있는 야당'이다. 또 야당이란 반대자로서의 기능이 있고, 대안자로서의 기능이 있다.
반대자로서 기능은 이 정부가 독선, 불통, 독주로 갈 때 여기에 명백하게 '아니오'라고 말하면서 강한 야당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대안자로서 기능은 세월호 이전의 대한민국과 다른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해 '이런 방향으로 대한민국호의 방향을 틀어라'고 하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현 정부가 실패하면 우리 국민이 야당을 다음 정부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바닥으로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그렇게 야당이 제 역할을 해야 민주공화국도 지켜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두 가지 기능에서 다 미달이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 정부에 대한 대안도 아닐 뿐만 아니라, 현 시점에서 확실한 반대자 역할도 못 하고 있다.
1990년 218석의 거대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을 상대한 야당은 71석의 평화민주당이었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는 79석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또 유신 말기에 야당이 흐물흐물하니까 야당성회복투쟁동지회라는 게 나와서 김영삼 총재를 중심으로 강력한 선명 야당을 내걸고 유신의 종식을 이끌어내는 데 야당이 앞장섰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어떠한가? 용기도, 당당함도, 치열함도 없다. 국민은 야당이 무언가 끝까지 물고 늘어져 '야무지게' 관철시키는 모습을 본 지 오래이다. 국민은 지금 세월호 참사에 대한 피곤함이 아니라 야당의 무기력함에 피곤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기관의 댓글 조작사건에 대한 피곤함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진실을 밝히고 처벌을 원하는 상황에서조차 선거의 유불리로 판단하는 안일함에 피곤해 하고 있다. 문제투성이인 기초연금안 통과에도 어르신의 노후와 국민연금에 미칠 악영향에 대응하지 않고 지방선거에 미칠 유불리에 더 주목했다. 국민들은 정부여당 비판·반대에 대해 피곤해 하는 것이 아니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 하고, 있는 대안조차 강단 있게 주장하지 못 하면서 집권여당에 질질 끌려다니는 무능함에 피곤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새정치연합은 여전히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자기 확신이 없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이 대표해야 할 층은 비정규직 850만명, 영세자영업자 300만명, 농민 300만명, 청년실업자 100만명 등 서민층과 중소기업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새정치연합 때문에 그들이 특별히 득을 본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지를 못 받고 있는 것이다.
투지와 결기를 상실한 야당,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치열하게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세우지 못 했기 때문이다. 깃발이 분명하지 않고, 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야당은 나침반 없는 항해를 하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대한민국호의 운항을 맡기겠는가.
따라서 '나는 누구인가, 누구를 대변할 것인가, 정치를 왜 하는가' 하는 자기 중심과 야당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모두를 대표하겠다'는 것은 사실은 아무도 대표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야당마저 중도, 중간층을 외치면서 새누리당과 가까워지면, 그 속에서 죽어나는 것은 서민과 사회?경제적 약자들이다. 민주주의 정당이라면 구체적으로 누가 누구를, 어떻게, 왜 대표하는지를 말해야 한다. '누구의 대표'인지가 분명한 정치인이 많아져야 민주주의가 좋아진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건, 서민과 사회?경제적 목소리를 못 내는 약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정확히 대변하는 노선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합리적 진보' 노선이다.
진보는 결코 추상적이고 낡은 이념적인 목표가 아니다. 현실 속에서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외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증진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두고 행동하는 것이 진보다. 서민이 눈물 흘리는 현장에 함께 하며 그 눈물을 닦기 위해 실천하는 정치세력이 진보라면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진보언론이나 보수언론이나 어디서 인터뷰하든 내 입장이나 견해는 항상 똑같다. 뭐가 두려워서, 뭐가 그렇게 자신이 없어서 진보매체에 가서는 진보적으로 말하고, 보수매체에 가서는 중도적으로 말하는가. 그건 가치와 노선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철학과 신뢰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런 사람을 진보든 보수든, 국민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종합해서 말하면,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시급하고 핵심적인 '혁신 과제'를 꼽자면 크게 3가지다. △계파 패권과 사당화의 중단·청산, △당의 주인인 당원에게 주인 자리를 되찾아주는 당원주권 실현, △세월호와 비정규직·중소기업·영세자영업자·농민·청년실업자 등 서민과 사회경제적 약자를 제대로 대변하고, 이를 위한 보편적 복지-경제민주화-남북평화·경제협력을 핵심 사명으로 하는 분명한 노선과 정체성 확립이다.
친노-비노를 넘어 '비욘드 노무현'으로
가끔 '정동영은 친노냐 비노냐.'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렇게 말한다. 지노(知盧)다 지노. 노무현을 제대로 알고, 그리고 영어로 말하면 노무현을 넘어서 '비욘드 노무현'(Beyond 노무현)이다. 이걸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친노, 친박. 이런 게 무슨 내용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것을 어떻게 넘어서느냐 하는 것이 지금 새정치연합과 야권이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친노(親盧)는 책임과 반성이 없고, 비노(非盧)는 시대정신이 없다. 둘 다 공통점은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노선과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남는 것은 벌거벗은 패거리 권력투쟁뿐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 국민들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목격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분명한 것은 친노도 비노도 정부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이 친노에게 정권을 주겠는가, 아니면 비노에게 정권을 주겠는가. 계파에게 정권을 주는 국민은 없다. 국민이 친노든 비노든 정부를 맡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둘 다 답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처럼 친노-비노 얘기가 계속 나오고 그렇게 구분되고 표현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민주당이 정부가 될 가능성, 정권교체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의 5년은 분명히 공이 있다. 공은 당연히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데 과오도 있다. 뭐가 과오인가? 우선 떠오르는 게 부동산 문제다. 2004년 총선 전에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분양원가 공개를 공약했다. 그러나 선거에서 과반의석을 얻었음에도 그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다 부동산이 폭등한 이후에 어쩔 수 없이 분양원가 공개를 했다. 그 때는 이미 늦었다. 부동산은 이미 폭등할 대로 폭등한 뒤였다. 그래서 당시 부동산 대책 입안을 주도했던 김수현 청와대 비서관이 2006년 11월 1일 한 특강에서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부끄러운 것을 기록하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졸속적인 한미FTA 밀어붙이기다. 이런 부분들에 대한 과오 인정과 반성, 이게 없는 것이 이른바 특정 계파로서 친노의 한계라고 보여진다.
노무현 대통령도 부동산 정책과 미국 금융위기 후 한미FTA 재협상을 주장하면서 반성적 성찰을 했다. 우리는 이 반성적 성찰을 계승해야 한다. 노무현의 공만 인정하고 과는 인정하지 않으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을 넘어서 또 다른 세상, 더 좋은 세상을 꿈꿔야 한다.
민주정부가 10년 동안 집권해서 많은 업적을 만든 것도 사실이다. 민주정부 10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사회적?경제적 역동성이 생겼고, 정치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확실히 닦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비정규직이 가장 많이 늘어났다.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부동산은 폭등했다. 이런 것은 잘못했기 때문에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노무현 정부에서 각료를 했으니까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2010년 8월 참여정부에 참여한 정치인 중 처음이자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반성문을 썼다. 나는 새정치연합도 당 차원에서 공식적인 반성문을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
개헌 논쟁도 마찬가지다. 본말이 전도됐다. 선후관계가 잘못 설정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야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개헌론을 전면에 세우려고 하는 것은 크게 봐서 '세월호 탈출용', '세월호 지우기용'이라고 생각한다. 골치 아픈 세월호 국면을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 개헌 문제를 본격적으로 사회적 이슈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여기에는 여·야가 똑같다.
설사 개헌 논의를 하더라도 '선(先) 선거제도 개편-후(後) 개헌'으로 가야 한다. 나의 주장은 독일식 소선거구-정당명부제를 깊이 연구하고 도입을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단 한 표도 사표를 안 만드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첫째 국민주권이 확대되고, 둘째 지역구도가 어느 정도 해체된다는 것, 셋째 과반수 정당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4~5 정당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타협하고 합의해야 하는 합의제 민주주의가 필연적이다. 또한 지금까지 목소리가 없던 20~30대 청년층, 여성, 노동자, 농민, 중소기업 등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자기들의 대표를 갖게 된다. 그래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국회에서 담아낼 수 있다.
그러나 독일식 소선거구-정당명부제를 도입하려면 새누리당과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이 공히 지역적 기득권을 일정 정도 내려놓아야 한다. 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정치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건 놔두고 개헌부터 하자고 하면 설득력이 없다.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으면서 선거제도를 바꾼 다음 개헌을 주장해야 설득력이 있고 개헌으로 나갈 수 있는 대중적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등 먹고사는 문제에 더 큰 관심이 있지, 당장 개헌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상보육·무상급식·복지재원 문제
유아 보육과 아이들의 점심. 즉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은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정책이다. 또한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정책들이다. 이런 곳에 국민들이 내는 세금을 쓰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혹자는 세금복지, 세금급식이라고 말한다. 맞다. 나라의 세금은 그런 데 쓰라고 걷는 것이다.
'한 번 약속한 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지킨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유가족·국민과의 약속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쳤다. 이제는 유아 보육 공약까지 걷어차고, 더 나아가 아이들 밥그릇마저 빼앗으려 하고 있다. 아이 엄마들의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는 정녕 들리지 않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지난 11월 9일 성명을 내고 "재벌·부자 감세 원상복구와 사회복지세 도입으로 무상보육·무상급식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육과 교육은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게 맞다. 하늘이 무너져도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은 확대해야 한다. 새누리당과 보수세력·보수언론이 무상복지 포퓰리즘을 얘기할 때, 야당은 더 당당하고 강력하게 재벌·부자 증세-복지국가 실현을 이야기해야 한다.
문제는 재원 부족이다. 사실 현재의 복지재정 부족 문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다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등 여·야 모두가 그동안 끊임없이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며 국민을 속여 온 결과일 뿐이다. 이에 대해 여·야 모두 국민 앞에 진솔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난 수년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재원대책 없는 복지는 거짓이다. 부자증세의 방안으로 사회복지 목적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것 외에는 재정 부족 사태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야 모두 쇠귀에 경 읽기였다.
심지어 야당 내에서조차 한 대표적인 친노 인사는 "증세를 주장하다 쫓겨난 정권 많다", 또 다른 친노 인사는 "복지정책이 날아갈 위험이 있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결국 2011년 1월 30일 민주당은 당내 관료 출신과 중도·보수파 의원들의 주도로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가 가능하다'는 당론을 채택해버렸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재정부족 사태로 복지가 날아가게 생겼다. 3년 전 본인의 우려와 주장이 오늘날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따라서 새정치민주연합도 당시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민과 나라를 힘들게 만든 데 대해 반성하고 사과부터 하는 게 옳다. 그래야만 뒤늦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일지라도 복지 증세를 제안한 진정성에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막연한 증세가 아니라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어렵고 복잡할 때는 원칙으로 가야 한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내는 게 상식이고 조세정의이다. 따라서 부자증세는 불가피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부자증세가 곧 조세정의이고 사회통합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벌고 있음에도 투자도 하지 않고 금고에 쌓아두기만 하는 재벌 대기업과 고소득자들에게 증세를 해야 한다. 그 이전에 이명박 정권이 재벌 대기업에게 특혜를 준 법인세 감세와 고소득자들에 대해 단행한 소득세 감세부터 즉시 원상복구해야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이어져 온 재벌·부자 감세가 누적으로 이미 100조원을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시행한 재벌·부자 감세만 원상복구해도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재정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재벌·부자 감세의 원상복구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합리적인 증세를 통해 더 많은 복지를 실현해야 한다. 복지 확대는 '소득 양극화-저출산 고령화-계층·세대 갈등 심화'라는 삼중 위기에 직면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안하는 대안은 '복지에만 쓰는 세금' 즉 사회복지세의 도입이다. 재정지출에 대한 신뢰가 약한 상황에서 증세의 사용처를 복지로 못 박는 '복지 목적세'만이 국민의 동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 자주국방을 위해 방위세를, 1980년대에는 미래세대 교육을 위한 교육세를, 1990년대에는 WTO 가입에 따른 농어촌 지원을 위해 농어촌 특별세를 신설했듯이 지금 국민이 열망하는 복지국가를 위해 사회복지세를 마련해야 한다.
사회복지세는 이미 여러 복지국가 운동단체들이 국회에 입법 청원을 한 상태다. 사회복지세는 누진적 직접세인 소득세·법인세·상속증여세·종합부동산세 등 4개 세목에 20%를 추가하는 부가세 형태로 연간 20조원을 거둬들일 수 있다.
사회복지세는 소득이나 수익에 비례하기 때문에 저소득자는 적게 내고 고소득자는 많이 내도록 설계돼 조세정의에도 부합한다. 월 200만원 이하 소득자는 월 700원만 추가 부담하면 되고, 300만원은 6000원을, 500만원은 5만 2천원, 1000만원 소득자는 24만원을 낸다. 저소득자는 커피 한 잔 적게 마시는 대신 매달 5만원의 무상급식과 22만4천원의 무상보육과 지금의 20만원 보다 더 많은 기초연금을 받는 등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처럼 재벌 대기업에게는 감세 특혜를 주고, 서민에게는 보편적 증세(담배값·주민세·자동차세 인상)를 하면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마저 축소해버리면 결국 재벌경제만 승승장구하고 서민경제는 죽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 서민경제가 망가지면 가뜩이나 위축된 내수가 사라지고, 결국 재벌 대기업들까지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국제경쟁력도 낮아지고, 경제성장 잠재력도 당연히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모두가 죽는 길이다.
먼저 재벌·부자 감세와 서민증세를 폐기하고, 국민적 합의를 모아 조세정의에 부합하는 '사회복지세'로 가야 한다.
더 이상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감언이설로 국민을 속이려 해서는 안 된다. 세입 총량을 그대로 묶어둔 채로는 무상보육, 무상급식, 기초연금 등도 지속하기 어렵지만, 그나마 취약한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공공주거지원 정책 등 취약계층 복지까지도 방치되는 심각한 복지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민주당에 표를 모아준 이유이기도 하다. 이 두 정책은 각각 300만명 정도의 당사자와 600만명 정도의 부모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들이다. 그야말로 대통령을 탄핵할 만한 중대한 사안이고, 선진국에서조차 국민적인 봉기와 반발이 일어날 사안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조용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점잖아서가 아니라 제1야당이 무능하고 무기력해서이다. 또한 철학과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2011년 복지재원 논쟁 당시 당내 관료 출신과 중도·보수파 의원들의 주도로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가 가능하다'는 당론을 채택한 뼈아픈 과오를 범한 바 있다.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이제라도 보편적 복지 실현을 위해 당의 명운을 걸고 무상급식과 부상보육을 지켜내야 한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도 지키지 못하는 야당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더 나아가 사회복지세 도입에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어떻게 보편적 복지의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를 놓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국민적 테이블을 만들어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도 국민의 조세 부담 등 국가적 현안을 논의하는 '국민대타협위원회'를 대선 공약으로 제안한 바 있다. 이름이 무엇이 되든 국민적 총의를 모으고 의회와 정부가 받는 방식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현명하고도 유일한 길이다.
진보진영의 침체와 야권 재편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하다. 진보정당이 지난 10년 사이에 많은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은 불행히도 '지리멸렬'이란 말 이외에는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 많이 안타깝다.
오늘 현재도 고통 받고 있는 850만 비정규직들이 어디에 기댈 것인가? 새정치연합인가, 진보정당인가. 어디 마음 편하게 기댈 곳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오늘 당장이 어렵더라도 점점 나아질 것이라는 현실적 기대감을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하니 새정치연합이나 진보정당 모두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건, 21세기 천지개벽 시대에 새누리당이 '종북'이라는 칼을 들고 칼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한국 진보정당 운동이 지금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 진보정당이 담당했던 역할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도 진보정당에는 개개인을 놓고 보면 훌륭한 분들이 꽤 많다.
부유세라든지 무상급식, 무상교육 등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진전되어 오는 과정에서 진보정당이 중요한 정치적 의제들을 선도해서 상당 부분은 국가제도 속으로 안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를 해왔다. 또한 기성 정당들이 채우지 못한 부분들 특히 노동 분야에 대해서 노동자들과 함께 힘이 되어 주었던 역할은 과소평가하거나 폄하될 대상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2004년 말에는 한때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20%까지 올라갔다. 다만, 그 지지율을 잘 살려서 대안 야당으로 입지를 굳혀 나갔어야 하는데, 이런 저런 사유로 내부 분열이 되고 국민들이 보기에 불미스런 사고가 자꾸 터지다 보니 그런 게 누적돼서 결국 신뢰를 잃고 동반 추락했다. 이 또한 안타깝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이 담당해야 할 몫이 분명히 있고, 더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야권 전체가 전면적인 혁신을 기반으로 해서 진보정당 및 진보세력과도 노선과 정책을 중심으로 적극 연대?협력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 승리만을 위한 야권 연대는 더 이상 당원에게도, 국민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 한다. 한진중공업 문제 해결을 위해 그러했듯, 한미FTA 저지를 위해 그러했듯 노선과 정책을 중심으로 한 공동 실천만이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럴 때에만 제 정당을 넘어 모든 시민사회세력들이 하나가 될 것이다.
나는 낙관적으로 본다. 우리 국민들이 이처럼 깨어있고 뚜렷한 정치의식을 가진 적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한국 사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정체성 상실과 리더십 부족에 대한 핑계일 뿐이다. 우리 국민들은 왜 한국 사회가 이렇게 불평등하고 차별이 심화되고 있는지, 그 원인까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문제는 유권자가 아니라, 정당과 리더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야당, 어디로 갈 것인가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혁신이 안되고 계파정치가 극에 달하고 있는 이유는 '절박함'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리 잘못하고 지지율이 떨어져도 제1야당의 독점적 지위로 인해 국회의원 배지가 어느 정도 보장이 돼 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공천과 지구당 장악에만 관심이 있지, 집권에는 관심이 없고 혁신에 대한 어떤 절박함도 없다. 그냥 이대로가 좋은 것이다.
호남 패권에 안주해 당내 공천만 따내면 된다는 생각에 더욱 계파정치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계파 수장의 당권 장악과 눈치보기?줄대기에만 모든 관심이 가 있을 뿐 당원과 지지자들은 안중에도 없는 계파 패권 정치가 극에 달하면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당 밖에 강하고 의미있는 '야권 경쟁자'가 나타난다면, 절대 그렇게 무사태평하게 지내지는 않을 것이다. 고인 물은 썩듯이 좋은 경쟁자가 없는 독점은 무능하고 무기력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대체자가 없는 '무(無)긴장-무(無)경쟁' 체제에서는 개선의 여지조차 생겨나지 않는다. 이는 고스란히 야권 지지자와 국민의 피해로 연결된다.
현재의 야당에 만족하는 국민 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위기는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과연 현재의 야당으로 혁신과 정권교체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요즘 당에 기회 있을 때마다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야당은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을 게 불을 보듯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정말 따뜻한 위로를 받고 희망을 보고 싶은데, 과연 민주당이 따뜻한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고 있는가? 그게 안 되는 야당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야권 재편을 강하게 요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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