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동영, 그는 전북의 아들인가?
정세량 기자의 세상 돋보기!
2014.11.15 국제뉴스 정세량 기자
정동영(DY)의 '신당창당'에 대한 작심발언에 정국이 뒤흔들고 있다. 20여년 넘는 정치 성상을 쌓아 온 그가, 계산된 정치적 시나리오 없이 이런 발언들을 쏟아낼리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여기서 민주당이란 새정치민주연합을 가리킨다.
DY가 2007년 대선패배 후 제2의 정치적 도약기를 맞고 있다. 그는 대선패배 후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택했다. 2009년 무소속으로 전주 덕진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2012년 서울로 차출돼 총선을 치렀으나 석패했다.
이때까지를 ‘DY정치 1기’로 평가할 수 있다. 40대 초반에 금뱃지를 달은 그는 오직 출세가도를 위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국 최다득표에 DJ(고 김대중 대통령)의 촉망받는 후계자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실세 권노갑과 맞짱을 떠 그를 2선으로 후퇴시키기도 했다. 마침내 열린 우리당을 창당하며 최대 계파를 형성했고,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에 이르기까지 했다.
그는 ‘몽골기병론’을 앞세우며 출세를 위한 진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를 비판했던 사람들은 ‘조급함이 결국 그를 망치게 할 것이다’고 조롱했다. 결국 그 세간의 비아냥거림에 굴복한 것인지, 화려한 날은 가고 ‘정치적 치욕’의 시간속에 머물러야 했다.
‘포스트 DY’평가되는 2기 정치에서 정동영은 이전의 정치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화려한 여의도 정치에서 벗어나 현장의 고통받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를 실천하게 된 것이다.
그는 희망버스를 타고 쌍용차와 한진중공업의 파업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정치적 쇼’라고 여의도와 정치평론가들이 이죽거렸지만, 괘념치 않고 자신의 길을 갔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철거민들과 고통의 시간들을 나눴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이러한 시간들은 기존의 그의 정치행동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DY가 전북도민 앞에 섰다. 그를 바라보는 도민들의 심정은 “한양에서 과거에 낙방하고 고향을 찾은 이몽룡을 바라보는 월매의 심경이 아닐까” 한다. 춘향 딸에게 행복한 미래를 주고 싶었지만, 거지꼴로 나타난 몽룡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안타까움이랄까.
특히 1년 반 남은 총선을 목도한 시점에서, 전북 정치권의 관심은 지대하다. DY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복잡한 셈법을 굴려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전북을 찾은 DY는 “전북의 고통받고 소외된 서민대중들의 이해와 욕구를 대변하겠다”고 다짐한다.
전북의 발전과 미래비전에 목말라 있는 전북도민들은 또다시 전북 품으로 날아든 DY를 받아 들일 것인가. 그의 정치는 전북의 심장을 겨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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