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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장을 다녀와서... 어제 평화시장에서 청년시절의 오랜만에 옷도 팔고, 짐도 날라 보았습니다. 청년시절의 저를 기억하고 계셨던 미화사 사장님께서는 저를 보더니 “대학생 때 바지를 어깨에 메고 온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울먹이셨습니다. 평화시장에 다녀오니 그 곳에서 제 젊은 날의 아련한 기억들이 다시금 떠오르더군요. 1977년 여름, 군대에 다녀온 직후 여름부터 아동복 반바지를 집에서 미싱으로 만들어서 '미화사'에 위탁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미화사'에서 바지를 판돈으로 '경덕사'에서 원단이나 부자재를 사고, 집에 와서 다시 아동복 바지를 만들어서 '미화사'를 비롯해 '황월사', '은성사', '대왕사', '해인사' 등에 위탁 판매했습니다. 어제 가보았더니 아동복 바지 품목이 어른 바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더보기
화면이 아닌 실제로 서로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며 화면이 아닌 실제로 서로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 지난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해 중단되었던 이산가족 화상상봉이 재개 되었습니다. 그동안 헤어진 부부가 50, 60년 만에 만나고 어머니와 딸이 기막힌 사연을 주고받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가 어느 시대, 어느 땅에 살고 있는지 인간적 갈등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인간적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것이 정치의 몫, 정부의 몫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 서로 화면을 통해 눈물을 흘리는 이산가족의 모습은 바로 6.25가 낳은 우리의 자화상이자 우리가 하루 빨리 벗어나야할 분단의 그림자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산가족 화상상봉은 지난 2005년 6월 17일, 제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직접 만나지 못한다면 화면으로라도 만남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