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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 team/Today's DY Issue

박근혜 시대, '정수장학회 저격수' 한홍구를 만나다

박근혜 시대, '정수장학회 저격수' 한홍구를 만나다

[신년 인터뷰]한홍구 정수장학회 공대위 집행위원장

2013.1.10  김도연 기자

역사학이 발 빠른 학문은 아니지만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1년 동안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공동대책위원회의 집행위원장으로서 한 교수는 박 당선인의 정수장학회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왔고 MBC와 부산일보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숱한 대중 강연을 다녔다.

'2012년에 가장 뜨거웠던 인물'로 한홍구 교수를 꼽은 <미디어스>는 8일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자신의 서재를 둘러보고 있다 ⓒ미디어스
 
멘붕의 시대 속에서 힐링이 난무하고 있다. 48%가 겪고 있는 고통과 신음소리는 SNS를 통해서 쉽게 느낄 수 있다. '정수장학회 저격수' 한홍구 교수는 48%가 그랬던 것처럼 '멘붕'을 겪지 않았을까? 그는 "(선거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지만 9월부터 이대로 가면 질 것이라는 예감을 했기 때문에 큰 멘붕을 겪지 않았다"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교수가 집행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수장학회 공대위는 지난해 10월 박근혜 당선인의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에 맞불 기자회견으로 대응하며 '정수장학회 끝장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역사왜곡'에 침묵하고 있는 타 지식인과 다르게 한 교수의 꾸준한 사회참여는 권력의 사냥개가 된 언론에 자각을 촉구한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한 공로로 지난해 12월 '올해의 송건호 언론상'을 받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은 "사회 전방위에 걸쳐 여러 현안의 역사적 연원을 파헤치고 사회문제와 병리현상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의 노력에도 민주‧진보 진영은 참패했다. 한 교수는 이번 대선의 패인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그는 '친노'의 반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일갈했다. 인터뷰 내내 차분했던 그는 친노와 노동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격앙된 목소리로 크게 꾸짖었다.

"'친노'가 노동문제의 해결 없이 한국의 민주화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지난 몇년 동안 늘 떠든 거지만 김주익의 변호사는 노무현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 김주익은 목을 매달았고 노무현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친노가 이 지점을 뼈아프게 반성을 해야 한다…(중략)…자칭 진보라는 민주당과 지식인, 언론이 손을 놓고 있었으니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는 최근에서야 사태의 심각성이 불거진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 문제를 방치한 언론과 지식인의 태만을 비판했다. 한 교수는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이라며 진보 언론과 지식인, 그리고 민주당에 대한 쓴소리를 이어갔다.

저격수의 명성답게 한 교수는 "이번 박근혜 인수위 인선은 불통과 오만" "윤창중은 함량 미달" "통제에 대해 (침묵하는) 기자들은 권력의 YES맨이 될 것" "김재철과 짝짜꿍했던 이들의 만행을 기록한 흑서가 필요하다" 등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기자가 '역사의 진보'에 대해서 묻자, 그는 뜸을 들이며 "대한민국이 겪었던 20세기 백 년 중 단 3년만이 민주정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일 수도 있다"며 미래에 대한 비관보다 현재에 대한 우려를 더 내비쳤다. 그의 지적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가져올 미래는 역사의 정체일까?  한 교수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양극화가 더 고착되고 80년 광주 도청에서 총 들고 지킨 이들의 죽음은 개죽음이 될 것"이라며 "스스로 역사의 주인으로 참여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전문.

"민주당과 친노의 반성, 찾아볼 수 없어…노동문제 성찰 없다면 민주화 불가능"

미디어스(아래 미): 대선 이후 혹시 '멘붕'을 겪었나?

한홍구 (아래 한) : 기대를 많이 했지만 이대로 가면 진다는 예감이 있었기 때문에, 대선이 끝난 후 '멘붕'까지는 아니었다. 물론 당일에는 투표율이 높게 나왔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하면 진다'는 인식을 9월부터 계속 갖고 있었다.

미 : 한 교수가 보기에 이번 대선의 패인은 무엇이었나?

한 : 민주당이 하나로 움직였다고 생각지 않는다. 또, 지식인들도 생각 외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SNS에서 소시민들이 죽어라 하고 열심히 싸웠다.

미 : 과거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지지했던 50대가 변했다는 평가가 있다.

한 : 일단 민주정권 10년 동안에 상처 받았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민주정권이 그들에게 상처를 준 것일 수도 있고 수구 언론이 덮어씌운 것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애써 눈감아왔다. 그 50대의 상당수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탄생할 때 지지표를 던졌던 분들이었다는 데서 민주당이 뼈아프게 반성을 해야 한다. 하지만 총선과 대선 이후 반성도 없었고 대책도 없었다. 참 절망스럽다.

   
▲ (부산=뉴스1) 전혜원 기자=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대선후보가 계사년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이번 참배행사에서는 노건호씨와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 참여정부 인사, 전국에서 모인 지지자들을 비롯해 많은 인파가 모였다. 2013.1.1/뉴스1

미 : 민주·진보 진영의 패배 후유증이 크다.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한 : 솔직하게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망정이지 사실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국회의원 출마도 못할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노무현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와 친노들이 가지고 있는 자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반성을 할 기간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충분했다. 4·11총선이 그렇게 됐는데 그걸 이겼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래서 선거 결과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멘붕이 심하지 않았다.(웃음)

미 :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한 : '친노'가 노동문제의 해결 없이는 한국의 민주화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지난 몇년 동안 늘 떠든 거지만 김주익의 변호사는 노무현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 김주익은 목을 매달았고 노무현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친노가 이 지점을 뼈아프게 반성을 해야 한다. 하지만 반성을 하지 않는다. 민주정권 10년을 겪은 이들, 살림살이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민주주의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아무런 준비 없이 나왔다. 경제 민주화라는 건 결국 삼성개혁과 노동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 빼놓고 경제민주화하자는 데 먹히겠나? '차라리 박근혜가 시혜적으로 해주는 게 나아' 그런 생각으로 50대가 투표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박근혜가 더 잘할 것 같다.(웃음) 민주·진보 진영이 허물어진 건 민주와 노동이 따로 갔기 때문이다. 밑바닥부터 노동문제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성찰이 없다면 5년 후에 또 진다.

박근혜 당선인의 인선…"대변인에 윤창중, 언론인들 치욕스럽지 않나?"

미 :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원회 인선을 보면 주요 요직에 극우적 인사들이 포진됐다.

한 : 박정희가 18년을 집권했다. 사람들은 박정희를 보고 '용인술의 천재'라는 말을 한다. 한 번 믿은 사람은 확실하게 밀어주고 상황을 봐서 그 자리를 바꿔서 충성 경쟁을 시키기도 하고. 하지만 용인술 천재의 말로는 어땠는가? 10·26이 왼팔과 오른팔이 싸워 가지고 발생한 사건이다. 말년의 박정희는 정말 눈이 어두웠고 불통과 독선만 가득했다. 박근혜가 보고 배운 박정희는 그 마지막 시기, 즉 가장 나쁜 시기의 박정희다. 이번 인사도 그의 불통과 오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 (서울=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일 오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참배한 후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2013.1.1/뉴스1

미 : 대표적인 인물이 윤창중과 이동흡이다.

한 : 역시 박정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는 중정부에서 사람을 두들겨 패던 사람을 정면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옛날 중정부에서는 사람을 잡아다 두들겨 팼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조지는데 흔하게 쓰이는 수단이 바로 '말과 글'이다. 윤창중은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는 논리로, 가장 천박하게 사람을 조진다. 말을 세게 하더라도 내용과 품격이 있어야지. 그런 면에서 윤창중은 함량 미달이다. 이동흡 역시 법조 내부 평가가 매우 나쁜 인물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안에 대해 합헌 의견을 내는 등 재판관으로서의 자질도 부족한 사람이다. 이런 인사가 주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짧은 5년 동안 권력 누수 없이 권세를 누리기 위해 처음부터 강경하게 밀어붙이겠다는 박근혜의 의지가 담겨 있다.

미 : 박 당선인은 기자들과의 스킨십을 멀리하고 있다. 인수위 기자실도 제한적으로 배분하고 있다.

한 : 박근혜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는 태생이 공주고 여왕이다. 그러다보니 대화와 토론은 찾아볼 수 없고 명령과 복종하는 관계만 있다. 애초에 대화와 토론이 불가능한 사람이다. 굉장히 위험한 사람이다. 이렇게 통제를 할 경우, 기자들은 권력에 대해 예스맨의 역할만 할 것이다. 정권을 잡기 이전부터 환관이니 내시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언론인이라고 갖다 쓴 게 윤창중이다. 난 외려 언론인들에게 묻고 싶다. 윤창중 같은 사람을 대변인으로 뽑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가? 내가 언론인이었다면 치욕스러웠을 것이다.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투쟁, 우리 공대위는 끝까지 갈 것"

미 : 그간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투쟁을 했다. 성과가 있었다고 보나?

한 : 성과라고 할 게 있는지 모르겠다. 총체적으로 볼 때, 정수장학회가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이슈화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사실을 모르거나 과거의 일로만 치부하고 있다. 정수장학회의 문제의 본질은 MBC와 경향신문이다. 최필립과 이진숙의 대화록이 공개된 것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의미를 모르는데, 이는 MBC를 민영화하겠다는 말 아닌가? MBC가 민영화가 될 경우 현직 대통령이 MBC지분의 30%를 갖는 게 된다.

미 : 정수장학회 공대위 활동은 현재 어떠한가?

한 : 대선 끝나고 정식으로 모이진 못했다. 하지만 계속 갈 것이다. 정수장학회 공대위는 문재인 후보가 선거에서 이겼더라도, '시민들을 위한 장학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는 그 싸움이 조금 더 어려워진 것일 뿐이다. 대통령이 누가되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장물은 장물이고 뇌물은 뇌물이니까. 우리는 끝까지 갈 것이라는 걸 명시하고 싶다.

미 : 박근혜 임기 내에 MBC민영화가 시도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는데?

한 : 박근혜가 자기 임기동안 MBC 민영화를 밀어붙이진 못할 것이다. MBC와 관련해서 본인과의 상관성이 명백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럼에도 김재철 사장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이유는 '떡고물'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개떼처럼 이익을 위해 모여 있는 판국이다. 언론운동을 하는 쪽에서 고민을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방송을 망가트린 자들의 만행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흑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훗날 민주정권이 들어섰을 때 김재철과 함께 짝짜꿍하며 MBC를 말아먹은 자들을 방송계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 <미디어스>가 정말 언론을 다룬다면 팩트에 근거해서 흑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정리가 되려면 MBC 구성원들이 내부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미 : 약속을 깨고 정수장학회 이사들이 연임됐다.

한 : 당연한 결과다. 형식적으로만 공익법인이다. 우리나라의 재벌이 만든 재단들의 운영을 보면 뻔하지 않나? 박근혜가 정수장학회의 실소유주이기 때문에 10년 동안 이사장을 할 수 있었다. 아직도 영향력이 미치고 있는데 정수장학회와 박근혜가 무관하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볼 수 있겠는가.

미 : 부산일보의 편집장이 해고됐고 다시 편집장을 뽑았는 등 부침이 심하다. 언론노조와 정수장학회 공대위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운동을 하겠다고 했는데.

한 : 잘 안 됐다. 내가 부산에 몇 번 내려가서 강연을 했는데, 부산 자체도 싸움이 길어지면서 동력이 쇄진됐다. 또, 민주당의 전략 부재로 부산일보·정수장학회 등 과거사 문제를 쟁점화를 시키지 못했다. 민주당은 과거사도 민생도 손을 놨었다. 내가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만 민주당 강연에서는 늘 '정수장학회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결정타가 아니다. 승패는 민생에서 갈린다'고 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도저도 아니었다. 적어도 박근혜가 나서서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을 했을 때, 정치권이 치고 나가면서 이슈화시켰어야 했다.

미 : MBC는 '한홍구-서해성의 직설'의 문구를 리트윗한 정동영 후보에 대해 악의적인 보도를 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 정동영 의원에게 미안하다. 우리 이야기를 좋은 뜻을 가지고 퍼 날랐는데 MBC와 우익 언론에 의해서 공격당했다. 기자라면 적어도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들여다보고 뉴스가치가 없다면 기사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뻔뻔하게 우리 이름까지 싹 지우고 공중파에 띄웠다. 그러고 나서 우리를 보호하려고 그랬다나? 정동영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물론, 정동영이 전주에서 너무 빨리 국회의원 출마를 하는 등 행보에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지난 2-3년 동안 현장을 그보다 더 많이 찾은 의원이 어딨는가? 그 정도 급의 정치인이 사고방식과 입장을 180도 바꿨다. 더 놀랐던 건 민주당 내에 정동영을 공격하던 이들이 너무 많았다. 현장을 가보지 않은 자들이.

   
▲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웃음을 짓고 있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미디어스

"진보 언론, 무기력만 남아"…"손배‧가압류, 지식인과 진보 언론의 지적태만"

미 : 대선 토론회에서 이정희 후보가 '다카키 마사오'를 언급했다. 공중파 TV에서 다카키 마사오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발언이 있고 나서 언론이 본연의 책무를 방기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 : 2007년도와 비교해보라. 이명박과 박근혜 경선 당시, 이미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최태민과 전두환의 6억원 등의 비리가 흘러나왔고 메인 뉴스에도 나왔다. 허나 이번 대선에서는 한겨레, 경향, 미디어스,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등 진보 언론들이 참으로 무기력했다. 그런 걸 가지고 파헤치지 않았다. 그런 팩트들을 진지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현재 나는 일주일에 한 편씩 꾸준히 역사 관련 글을 생산하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와 담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 : 언론뿐 아니라 참여형 지식인들의 움직임도 둔화됐다는 일각의 비판이 있다.

한 : 우리사회에서 지식인의 지적태만을 확인할 수 있는 문제를 꼽자면 바로 손해배상·가압류이다. 지식인들이 밥값을 못한 것이다. 손해배상·가압류에 대해서 지식인들이 아예 손을 놓고 있었다. 이건 한국에만 있는 현상이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 3권을 하위 법률이 받쳐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어떤가? 모든 파업에 손배·가압류를 하는데 노동 3권이 뭔 의미가 있나? 자본가에게 손해를 끼치니까 파업에 힘이 실리는 거지. 사람을 죽인다든지, 방화를 한다든지, 회사의 재산을 고의로 불태웠다든지 명백한 폭력성과 불법성이 있으면 손배·가압류를 물려야겠지만, 회사의 정상적인 조업 손실에 대해 감히 어떻게 손배·가압류를 물리는가? 거기에 대해서 지식인과 언론이 외국에서 사례도 찾고 법령도 개발하고 공론의 장을 만들었어야 했다. 전경련도 총 자본의 입장에서 손배·가압류는 하면 안 된다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지난주 <한겨레>에서 동일방직에 대해서 썼다. 가만 생각해보니 동일방직에서는 자살한 이들이 없었다. 여성 노동자들이 그렇게 똥물을 뒤집어쓰며 폭력을 당했음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서로를 믿고 단결했던 것도 있겠지만 나는 '손배·가압류'를 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칭 진보라는 민주당과 지식인, 언론이 손을 놓고 있었으니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민생을 도외시한 채, 그들만 '민주화'가 된 것이다. 이런 식이면 지식인들은 계속적으로 사라지고 진보는 되풀이되는 패배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미 : 지난 <미디어스> 인터뷰 도중 '역사학자라서 행동이 느리긴 하지만 낙관적이다, 넓게 보면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고 말씀하셨다. 51%가 아닌 시민들에게 힘을 주는 말씀 부탁드린다.

한 : 우리 역사를 보라. 20세기 중에서 앞의 10년은 대한제국이었고, 나머지 90년 동안은 제국주의 일본과 군사독재를 겪었다. 한 세기 중 단 3년만 민주 정권이었다.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여기까지가 한계일 수도 있다. 7-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력이 동력을 잃어버렸다. 진보정당도 매우 암울한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박근혜 집권 이후 더욱 양극화가 고착돼 아이들이 장래희망에 '정규직'을 쓰게 되는...이게 현실이라면 80년 광주 도청에서 총 들고 지킨 이들의 죽음은 개죽음이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 수밖에 없다는 걸 끊임없이 상기하며 스스로 역사의 주인으로 참여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