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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전쟁은 공멸... 전쟁, 평화 문제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

10.4 남북공동선언이 16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남북 관계는 따뜻한 봄에서 막 뜨거워지려는 여름이 올 찰나, 급격한 겨울을 맞이하며 얼어붙기를 반복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트럼프와 바이든 대통령의 줄다리기를 우린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 관계는 단절된 듯 보인다. 다시 불씨를 살릴 방법은 없을까. 겨울이 지나 새싹이 피어오르기를 기다리기만 해야 할까. 이에 CEO저널은 지난달 17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10.4 남북공동선언을 되돌아보고 한반도 평화에와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견해를 듣고 왔다.

▷ 장민창 : 10.4 남북공동선언이 16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해당 선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합니다.

▶ 정동영 : 10.4 선언에 앞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오늘이 10월 17일인데,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 날입니다. 바로 유신 체제가 선포된 날이에요. 1972년 10월 17일이죠. 유신 체제 선언이 10.4 선언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군홧발에 짓밟힐 때 마다 한반도의 분단도 장기화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가 지속해서 발전했다면 아마 우리도 통일 한국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독재 정권의 폐해가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옥죄고 있다고 생각해요.

10.4 선언,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선언이 선언으로만 끝났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서 훌륭한 합의를 했는데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어요.

또 합의를 실천할 수 있는 정부가 계승됐어야 했는데 보수 정권이 탄생하면서 10.4 선언은 껍데기만 남은 선언이 돼 버렸습니다. 10.4 선언은 6.15 공동선언을 계승하고 2005년에 있었던 9.19 공동성명을 이행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또 9.19 성명은 세 가지의 핵심이 있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 북한이 미국과 수교하겠다는 것, 또 하나는 남한이 북한에 전기를 제공해주겠다는 것, 그런 핵심적인 내용이 있었는데 2달 뒤에 보수 정권으로 넘어가면서 10.4 선언이 좌초된 것이죠.

▷ 장민창 : 현재 10.4 선언 제5항 ‘남북 경제협력’ 관련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성공단은 가동이 중단됐는데 이를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 정동영 : 남북 관계는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이뤄집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맥락을 봐야 한다는 거예요. 2016년 2월 10일에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일방적으로 중단했습니다. 개성공단을 꼭 닫았어야 했을지 의문이 듭니다. 또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관한 전말도 밝혀지지 않았어요.

2016년 1월에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했습니다. 그 직후에 정부는 ‘핵실험과 개성공단은 무관하다’고 말했어요. 이후 한 달 동안 개성공단은 정상적으로 가동됐습니다. 그런데 2월 10일에 닫아버렸단 말이에요?

개성공단 중단은 남북 평화의 안전판을 제거해버리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에 광화문에서 개성으로 출근하는 버스가 비무장지대를 건너가고 되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이 얼마나 큰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겠습니까.

개성공단은 북한이 닫은 게 아니라 우리가 일방적으로 닫은 겁니다. 2013년에는 북한이 별도로 노동자들을 철수시키고 개성공간을 닫았단 말이에요. 이후 2014년에 다시 개성공단을 복구하면서 남북은 ‘어떠한 경우에도 개성공단을 닫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당시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과 관련해 어떠한 토론과 논의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국무회의와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물론이고 아무런 논의도 없이 갑자기 중단을 결정해버렸어요. 굉장히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장민창 : 이산가족 상봉도 전면 중단됐습니다. 특히 이산가족 생존자의 1/3이 90세 이상인데, 이들의 인도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까요?

▶ 정동영 :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정치가 무엇입니까? 이념과 사상이 무엇입니까? 전쟁 중에 가족이 해체됐단 말이에요. 이념과 체제 때문에 서로 생사도 모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굉장히 반인도적이죠.

2005년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산가족 중에 상봉을 신청한 사람이 12만 명인데, 벌써 2~3만 명 정도가 돌아가셨다. 1년에 몇백 명씩만 만나면 1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화상 상봉이라도 하자’라고요.

결국 2005년 8월에 화상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현재 적십자사에 등록된 이산가족의 3분의 2 정도가 돌아가셨을 거예요.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죠. 핵 문제와 한미동맹 문제를 떠나서 최우선적으로 인도적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정부가 가져야 합니다.

▷ 장민창 : 윤석열 정부의 대북 외교 스탠스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 정동영 : 좀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실패’입니다. 외교, 안보, 남북 관계에서 역대 최악의 실패입니다.

박정희 정권도 1972년 7.4 공동성명을 통해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 3원칙에 합의했어요. 전두환 정권 때도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했어요. 노태우 정권은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며 남북관계의 이정표, 한반도 평화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최초로 대북 식량 지원을 개시했고 김대중 정부는 6.15 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역대 정부가 어떻게 분단 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해나갈지 고민을 했는데 현재 정부에서는 그런 고민과 숙고가 전혀 보이지가 않아요. 상식적으로 잘 납득이 가지 않는 그런 길을 가고 있는데 참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장민창 :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장관 후보자 시절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해야 한다”며 대북 강경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이외에도 정부 관료가 북한과의 군사합의를 없애자고 발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정동영 : 굉장히 ‘선동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접경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바라보겠습니다. 해당 합의는 비무장지대에서 남북으로 5㎞ 이내에서 포 사격훈련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늘 포 소리가 들리다가 들리지 않게 된다면 주민들은 큰 심리적 안정을 취하겠죠?

또 5㎞ 범위 안에서는 연대급 이상 야외 기동훈련을 하지 않고 비무장지대에 가깝게 있는 초소들을 철수시킨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군사분계선에서 동부지역은 40㎞, 서부지역은 20㎞ 범위 내에서 공중 전투기 훈련을 하지 않는다는 합의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해당 합의로 인해 북한을 향한 정찰 감시 능력이 약화했다’는 논리의 주장을 펼치는데, 서로 똑같은 거리를 합의한 겁니다. 우리 군이 불편해진 만큼 북한도 불편해졌어요.

또 우리나라와 미국은 고고도 정찰 기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고고도에서 정찰을 진행해 인공위성으로 사진을 찍고, 영상 정보 정찰기로 감청하면서 인적 정보를 종합 분석하며 북한군의 이상 동향을 파악합니다.

최첨단 정보 감시 활동에 그 어떠한 방해도 작용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오히려 북한은 정찰 감시 수단이 열악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쪽 상황을 더 잘 모르게 됩니다. 시야가 좁아진 거죠. 그러면 20㎞ 안에서는 공중 훈련을 못하게 했기 때문에 더 안전해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신원식 장관은 ‘우리가 비행 훈련을 하지 못해서 정찰을 못하게 됐다’고 선동했습니다. 물론 ‘9.19 군사합의가 우리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파기하겠다’고 말하면 보수 세력의 박수를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접경 지역 주민들은 직접적으로 위협을 느끼지 않겠어요?

그 점에서 봤을 때 해당 발언은 참 어리석은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그리고 9.19 군사합의를 파기한다면 신원식 장관은 평화를 파괴한 역적으로 역사에 남게 될 겁니다.

▷ 장민창 :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더군다나 대통령실은 선제타격을 언급한 적도 있고요. 이러한 대통령실의 강경 정책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 정동영 :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외교와 안보, 남북 관계 전문가가 아니에요. 검사를 하면서 이를 깊이 고민할 시간을 가졌던 분도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 이처럼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를 어떻게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제 타격, 정권의 종말을 말하는데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만약 북한 정권이 종말을 맞는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미국 정보당국의 분석에 의하면 북한은 핵탄두를 60~100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 북한을 상대로 우리는 티끌만한 피해도 입지 않고 북한을 종식시킨다는 생각은 만화에서나 가능한 얘기예요.

전쟁은 공멸입니다. 북한 정권만이 종말하는 게 아니라 남한 경제도 종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선제 타격을 운운하고 전쟁 불사를 언급하고 핵무장을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핵무장 해서 반미 국가가 될 자신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미국이 결단코 한국의 핵무장, 전술핵 배치를 원치 않는데 미국의 의지에 반해서 어떻게 핵을 개발할 겁니까? 핵무장이나 전술핵 배치와 관련해 지금까지 대통령이 쏟아놓은 발언은 아주 무책임했고 무지의 소치였다고 봅니다.

특히 핵무기 문제는 미국의 손바닥 위에 있어요.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 틀을 벗어나서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전술핵 배치는 미국이 안 된다고 하니까 끝났잖아요. 허언한 것이죠.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대할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 장민창 :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고, 해당 선언의 후속조치로 한미 핵 협의그룹을 발촉했습니다. 한미 핵 협의그룹으로 확장억제가 이뤄져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질 수 있을까요?

▶ 정동영 : 꿈이죠, 꿈. 확장 억제를 아무리 강화해도 북한이 핵을 포기합니까? 이미 핵은 북한의 정체성이 돼 버렸어요. 북한의 정체성이자 생존 전략이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북한 핵 억제 능력을 강화한다고 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요?

북한을 비핵화하기 위해서는 일단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이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또 그것이 외교입니다. 그런데 외교적 수단을 배제하고 확장 억제를 강화해 비핵화를 이끌어내겠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얘기죠.

▷ 장민창 :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 세력의 대립이 심화 중입니다. 특히 한·미·일, 북·중·러 간의 대립 구도가 선명해지고 있는데, 그 원인에는 무엇이 있다고 보십니까?

▶ 정동영 : 1년 6개월 전에는 이러지 않았어요. 윤석열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겁니다. 평화의 문이 아니라 갈등과 대결, 우발적 충돌로 갈 수 있는 지옥의 문을 열었다고 생각해요. 왜 친일을 합니까? 왜 ‘숭미’를 합니까?

기본적으로 우리가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된 후 일본과 우호를 갖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면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중국과 러시아와도 적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건 당연한 상식이에요. 그런데 상식을 깨뜨리고 친일, 숭미,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적대하면서 한국을 위험에 빠뜨려 버렸습니다. 아주 최악의 실책입니다. 국민들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상황은 미국이 원하던 겁니다. 미국 외교의 오래된 꿈이 이뤄졌다고 하잖아요? 미국은 10여 년 전까지 우선순위가 중동에 있었어요. 이후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 정책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려고 노력했는데, 한·미·일 동맹이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고리입니다. 그 고리를 윤석열 대통령이 채워준 셈이죠.

강제 징용의 불법성 등을 포기하면서 일본과 함께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지, 또 미국 외교의 꿈을 이루게 해줌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적이 되고 북한의 군사력이 획기적으로 강화해 우리가 위험에 처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심각성을 윤석열 대통령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현재 굉장히 엄중한 국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장민창 : 최근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진행했습니다. 이 정상회담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 정동영 : 이 판도 윤석열 대통령이 만들어 준 겁니다. 1년 6개월 전에는 우리나라와 러시아의 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였어요.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것은 경제와 문화, 인적 교류뿐만 아니라 군사 및 안보 문제를 협력한다는 함의를 갖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1년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썰렁했어요. 그런데 1년 6개월 만에 김정은과 푸틴이 손을 잡고 전략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 군사정찰 위성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죠.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의 K2 전차와 K9 자주포, 나로호와 누리호 등의 우주 위성 발사 로켓은 모두 다 러시아의 기술이었습니다. 러시아의 기술을 통해 전차와 첨단 대포를 만들고 인공위성을 발사했는데, 러시아의 군사 협력 파트너가 남한에서 북한으로 바뀌어 버렸어요.

스스로 우리 안보를 파괴해버린 셈입니다. 2대 군사 강국 중 하나인 러시아를 우군에서 적군으로 만들어버린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한심한 일이죠.

▷ 장민창 :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났습니다. 이 상황을 극복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 정동영 : 어쩌면 미국이 북한의 딜을 받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당시 북한은 ‘영변 핵 시설 단지에 미국 사람들이 와서 참관해라. 참관인 앞에서 핵 시설을 뜯어내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영변에는 50년 동안 북한이 건설한 300여개의 핵 시설이 있어요. 또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뽑아서 추출하는 방사화학 실험실이라는 곳도 있습니다. 100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핵 단지가 바로 영변에 위치해요. 이를 뜯어내는 데만 10년 이상 걸립니다.

또 북한은 UN이 제재한 민수용 제재를 풀어달라고 제안합니다. 또 석탄과 농수산물 수출 제재, 석유 수입 제재를 풀어달라고도 하죠. 그런데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이 제안을 왜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미국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인정해야 할 현실입니다. 그런 현실을 돌파한 최초의 대통령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해당 대목에서 당시 문재인 정부에 큰 아쉬움을 느낍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 클린턴 대통령은 “운전석에는 당신이 앉으시고 미국은 조수석에 앉아 도와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정상회담을 열고 철도와 도로를 깔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설치에 합의한 겁니다. 미국의 손바닥 위에서 한 게 아니라 햇볕 정책이라는 큰 구상 아래에서 한반도 문제를 화해와 헙력, 평화의 방향으로 밀고 갔단 말이죠.

그런데 2019년 2월에 우리는 운전석에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미국의 계산에 의해서 하노이 노딜이 일어났죠. 결국 한반도의 궤도는 대화와 협상의 궤도에서 이탈해버렸습니다. 이후 북한은 남한과 미국에 대한 기대를 접고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안보는 핵무기로,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와 하겠다고 작정해버렸어요. 운명이 바뀌어 버린 겁니다.

▷ 장민창 :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실현에는 많은 산이 놓여있습니다. 평화협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선행돼야 한다고 보시는지, 평화협정이 과연 가능하다고 보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 정동영 :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평화협정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에요. 동서고금의 전쟁사에서 전쟁을 한 당사자가 전쟁이 끝난 이후 70년 동안이나 전후 처리를 하지 않은 전쟁은 한국 전쟁이 유일합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베르사유 강화조약을 통해 전후 처리가 이뤄집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뒤처리를 했습니다.

임진왜란을 한 번 봐 봅시다. 1599년에 임진왜란이 끝나는데 그 다음해에 사명대사가 도쿠가와 막부에 가서 사과를 받고 포로 3000명을 데리고 귀환합니다. 이후 조일 평화시대 300년을 열어요. 이처럼 전쟁이 끝나면 전후 처리를 한 후 관계를 회복해 나갑니다. 그런데 한국 전쟁은 70년이 지났는데 전후 처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왜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지 않았을까요?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 미국, 중국이라는 4자가 치룬 전쟁입니다. 이후 우리는 북한과 기본 합의서도 채택했고 중국과 수교도 했어요.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한국 전쟁의 숙적 관계가 바로 북한과 미국 간의 관계입니다. 북한과 미국은 70년째 적이에요. 이 숙적 관계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과 미국 간 적대 관계를 해소하려면 당사자들이 모여 평화협정을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이 그럴 의사가 없어요. 결국 우리가 미국을 설득해서 북한과 미국의 관계 개선을 도모해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과 미국의 적대관계라는 고리를 풀어야 해요.

가장 비극적인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1990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이 통일됩니다. 우리는 북한과 남북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소련, 중국과 수교를 맺는 과정을 거치게 되죠. 당시 우리가 북한이 미국, 일본과 수교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을 해 줬어야 했는데 우리가 이를 방해했어요. 북한은 곧 무너질 거라고 본 겁니다.

1992년 1월에 김용순 북한 대남 비서가 미국에 특사 자격으로 방문합니다. 워싱턴에 가서 미 국무부 차관에게 ‘미국과 수교가 이뤄진다면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것을 용인하겠다’고 말해요. 그러나 미국은 이를 묵살합니다. 또 2000년 10월에 북미 공동 코뮤니케가 발표됩니다. 당시 북한 군 2인자였던 조명록 차수가 클린턴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합니다.

이후 ‘북한과 미국 간의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며 수교하겠다’고 발표해요. 당시에 북한의 미사일 문제가 불거졌을 때인데, 클린턴 대통령은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을 평양에 파견해 정상회담을 준비합니다. 그 때 미국의 정권이 바뀌어버린 거예요. 그러면서 해당 관계는 깨져 버립니다. 이게 두 번째 비극입니다. 이후 2007년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세 번째 비극이 되풀이됩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 장민창 :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당이 바뀔 때마다 대북 정책 방향성이 극명하게 변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대북 정책의 일관성인데, 이를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어떤 스탠스를 가져야 할까요?

▶ 정동영 : 국내 정치와 남북 관계를 분리해야 합니다. 정권 유지에 남북 관계를 악용해 온 뼈아픈 역사가 있어요. 박정희 정권 시절 7.4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에 가고 박성철 북한 부수상에 서울에 오는 그림을 연출해 냅니다. 이를 통해 통일에 대한 열망을 띄워놨지만 결국 총통제로 가 버렸단 말이죠. 국내 정치에서 남북 관계를 악용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또 아주 상징적인 사건이 하나 더 있어요. 1996년 4.15 총선거를 앞두고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총을 들고 시위를 합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대한민국 정보기관이 북경에서 북한에 돈 보따리를 건네주며 선거 전에 시위를 해달라고 매수를 한 사실이 드러났죠. 아주 반역사적인 국가 범죄입니다. 그래서 아까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윤석열 정부도 남북 관계를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악용하고 있는 거예요. 보수 결집을 위해서 말이죠.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의 대결에서의 승리를 말하는데, 지금이 공산 전체주의 세력과 대결할 때입니까? 베트남은 공산 전체주의 세력 아닌가요? 지금 중국과 대결할 때예요? 시대착오적이고 굉장히 난센스입니다. 국민 상식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어요.

독일은 동·서독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은 민주주의가 발전했습니다. 또 연합 정부의 힘을 통해 정치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동·서독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았고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성 있게 동·서독 교류 협력 정책을 지속한 거예요. 결국 독일은 통일을 이뤄냈습니다.

▷ 장민창 :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필요성을 언급하며 ‘남북 의회 교류’를 주장했습니다. 이를 주장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정동영 : 국회에서 비준을 한다면 선언을 쉽사리 파기할 수 없잖아요. 9.19 합의와 판문점 선언을 묶어서 국회에서 비준했다면 야당도 함께 비준에 표결했을 거 아닙니까? 비준을 하지 않는 부분이 매우 아쉽습니다.

▷ 장민창 : 현재 생각하는 대북 외교의 올바른 방향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비전이 궁금합니다.

▶ 정동영 : 핵심은 개성공단 재개에 있습니다.

6.15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개성공단 조성에 합의합니다. 그런데 2004년까지 개성공단에서는 물건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공장도 지어지지 않았어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제게 보건복지부 장관을 제안했는데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통일부 장관을 좀 해야 되겠다고 대통령께 말씀드렸어요. 통일부 장관을 해야겠다는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개성공단을 물건을 만들어내는 공장으로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남북이 합의했는데 실천되고 있지 않으니, 내가 이것을 실천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통일부 장관이 되고 나서 대통령께 다시 찾아가 ‘통일부 장관만으로는 힘이 부족하니 NSC 위원장을 시켜주십시오’라고 요청을 드립니다. 통일부 장관은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다른 나라 장관과 양자 회담을 할 수 없어요. 당시 NSC 위원장 자격으로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 보좌관, 럼즈펠드 국방 장관을 만나 개성공단을 설득합니다. 또 9.19 공동선언을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에곤 바르 박사라는 독일 통일의 설계사라고 불리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을 만나 개성공단을 설명한 적이 있어요. 설명을 듣고 에곤 바르 박사는 무릎을 치면서 ‘놀라운 상상력이다. 만일 독일도 동서 교류를 하면서 동독에 서독의 공단을 설치하는 발상을 할 수 있었다면 통일 이후의 과정이 굉장히 순조로웠을 것’이라고 감탄했습니다.

개성공단을 완성한 후 제2 해주공단, 제3 원산공단, 제4 신의주공단, 제5 함흥공단을 만들어나간다면, 그것이 바로 남북 경제 통일이 되는 것이고 마지막 단계에서 법률적 통일까지 갈 수 있는 ‘한국형 통일 방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를 문재인 정부 때 열어젖히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죠.

▷ 장민창 : 한반도 평화를 비롯해 앞으로 정치권에서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 무엇일까요?

▶ 정동영 : 현재 정권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민심을 잃었어요. 평화 문제는 말 다했고, 노동자를 적으로 돌렸습니다. 또 쌀값 안정과 관련해 거부권을 행사하며 농민들의 표심을 잃었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로 인해 어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고, 간호사법 개정안과 관련해 간호사들과 대치했죠. 또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도처에 생채기를 내고 마음 아프게 했는데 그 분들이 정권을 심판하려 하지 않겠어요?

저는 민심의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주권자가 엄정한 심판을 내년 총선에서 내려야 잘못 가고 있는 국정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으려고 할 겁니다.

저는 우리 국민이 위대하다고 봅니다. 지금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에요. 피와 땀, 눈물과 죽음의 바탕 위에서 쌓아올린 겁니다. 아직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이 무서운 줄 모릅니다. 내년 4월,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될 겁니다.

원문 : https://www.ceojhn.com/news/articleView.html?idxno=2823

 

[월간 CEO저널]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제17대 민주당 대선후보  - CEO저널

[CEO저널=최재혁 기자, 장민창 대학생 기자] 10.4 남북공동선언이 16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남북 관계는 따뜻한 봄에서 막 뜨거워지려는 여름이 올 찰나, 급격한 겨울을 맞이하며 얼어붙기를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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