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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정욱식의 진짜 안보]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대담 - 책 '10년 후 통일' 이야기

 

[김종대-정욱식의 진짜안보②]“美 네오콘이 9‧19 합의서 찢어버려”

'10년 후 통일' 정동영 대담…“‘개성공단’ 실체로 존재하는 통일방안”

 

2013.11.18  국민TV뉴스  온라인뉴스팀

 

 

 

 

 
▲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 뉴스1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이하 김): 네, 2부 계속 갑니다. 제가 오늘 책 하나를 들고 나왔습니다. 10년 후 통일 한반도의 미래 지승호가 묻고 정동영이 답하다. 이렇게 제목이 되어있는데 이 책에 앞에나 온 어떤 그 표지의 카피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OECD는 최근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곧 꺼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2031년 한국의 잠재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월가의 골드만 삭스는 한국이 2040년에 독일과 일본을 추월하고 일인당 국민소득 8만6천 달러로 세계 두 번째가 된다고 예측했다. 이렇게 정 반대의 전망이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전자는 분단경제로써 남한 경제를 분석한 것이고 후자는 남북 통합경제를 예측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호는 어디로 갈 것인가?'』

 

네, 흥미롭지 않습니까? 정반대의 전망이 나온 이 책 이 책의 저자 전동영 전 통일부 장관님 나오셨습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이하 동) :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이하 정) : 장관님, 자리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 잘 듣고 있었습니다. 진짜 안보.

 

김 : 감사합니다. 그 다음에 일부에서 계속 그 저기 우리를 즐겁게 해주신 우리 정청래 의원님도 자리에 같이 하고 계십니다. 정의원님이 아직 가시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청 : 그러니까 나가시다가 정동영 전 장관님께서 10년 후 통일 이 책을 들고 오시는 걸 딱 보고 저도 이 책 읽었습니다. 이 책의 소개는 본인만큼 잘해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2부에도 자리를 함께 하시겠다, 그래서 제가 자청해서 나왔습니다. 제가 한 10분

 

동 : 자청 맞아요.

 

정 : 네, 허허

 

청 : 그런데 인제 요 책을 가지고 인제 대화를 이어 가실텐데, 제가 이 책이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읽고 페이스북, 트위터에 이 책을 꼭 읽어야 된다,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이 읽어야 될 필독 도서다 라고 제가 얘기를 했어요.

 

김 : 그 이유를 좀 말씀을 해 주세요.

 

청 :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이 책 내용이 대한민국 한반도가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을 매우 적확하게, 좌표를 잘 그려놨다 라는 것이고, 우리 1부 때 그런 얘기 했잖아요? 왜 남과 북이 싸우면 지냐 이기냐 가지고 그러냐? 남과 북이 같이 이길 수 있는 길은 평화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분단의 경제와 이 통일 후의 남북통합 경제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를 정확하게 분석해냈고, 그리고 우리가 경험으로, 아찔한 여러 가지 순간들이 있었는데, 천추의 한, 박복한 민족, 이렇게 김대중 대통령이 말씀하신 그 내용도 여기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클린턴 말기 때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에 갔고,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사전 정지 회담을 했어요. 그게 뭐냐면, 클린턴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이었어요. 그러면, 곧바로 북한과 미국이 수교를 하게 되고, 그러면 이어서 북한과 일본이 또 수교를 맺게 되고, 그러면 일본은 일제 배상금 110억 달러를 북한에 지원하게 되고, 남북 철도를 연결하게 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이런 모든 내용들이 사실은 타결 일보직전에, 연방대법원에서 플로리다 주에서 실제로 앨 고어가 패배를 하죠. 그러면서, 한반도의 운명이 180도 바뀌죠. 악의 축 발언이 나오고. 그 과정을 소상하게 얘기했고, 그래 인제 결국은 그 길이 대한민국 평화의 길이라는 것이고.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가장 장시간 면담을 하고, 또 때로는 담판도 짓고 하면서 9.19 성명을 이끌어냈거든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정 : 그렇죠.

 

청 : 그래서, 9.19는, 9.19 정신으로 돌아가면 한반도는 정말 평화로운 세상이 되는 거죠. 그런데, 이 9.19를 이끌어낸 분이 인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인데, 지금까지 분단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지금 현재까지는. 우리가 주동적으로 남북관계를 풀려고 시도했고, 그것이 성과물로 나타난 것이 9.19구요. 그때는, 이 책에도 나옵니다만, 미국에서 우리에게 귀동냥을 해서 ‘아, 북한이 지금 어떻게 하고 있어?’ 이렇게 물어보고 했던, 유일한 기간이거든요.

 

김 : 아, 우리가 주도했군요.

 

정 : 그렇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담판을 통해서, 그리고 남북철도도 연결하자, 뭐 이런 것을 쭉 했는데… 그 과정들이 아직까지 성공하진 못했지만, 성공할 뻔했던 그 기록들이 여기 다 나와 있어요.

 

그리고,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길로 다시 돌아가서, 9.19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서, 한반도 평화번영의 시대를 열어야 되는 거 아니냐 하는 것을 그냥 탁상에서, 그냥 이론으로 이 책이 쓰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럼스펠드 만나서 설득하고 하는 과정, 그리고 국민들이 잘 몰랐던 내용, 이런 내용을 디테일하게 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글머리를 읽으면서 정말 심장이 뛰었어요. 와! 이 내용 자체가,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전쟁의 위협 없이 한반도 우리 7천만 배달겨레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직장에서 열심히 살고 생활전선에서 참 피곤하게 살고 그러는데, 열심히 이렇게 돈 벌고 집 사고 하는데요. 그런데, 전쟁 한 번 나면 모든 게 다 끝나잖아요.

 

정 : 그렇죠.

 

청 : 그래서, 정말 국익은, 이 책을 보면 진짜 국익은 여기에 있다, 한반도 남과 북이 평화롭게 사는 것, 그것이 가장 큰 국익이다, 가장 큰 행복이다 하는 내용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진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사서, 공짜가 아니라 사서 읽어봐야 됩니다.

 

정 : 하하하,

 

김 : 아, 그걸 특히 강조하시네.

 

동 : 저자인 제가 설명하기는 굉장히 쑥스러운 그런 내용을 대신 이렇게 잘 설명해 준 정청래 의원한데 밥을 사야 되겠습니다.

 

김 : 하하하.

 

청 : 저는 물러가도 되겠습니까?

 

김 : 네, 아유 감사합니다.

 

정 : 아유, 의원님 또 책 소개까지, 또 멋진 소개까지 감사 말씀 드립니다.

 

청 : 살림터에서 나왔군요. 정동영, 지승호 지음, 한반도의 미래, 10년 후 통일, 지승호가 묻고 정동영이 답하다. 15000원이군요.

 

김 : 쌉니다.

 

동 : 오늘부터 책이 좀 팔리겠는데요. 예, 아이고, 감사합니다.

 

청 : 인터넷 서점에서 어디든지 살 수 있죠?

 

동 : 인터넷에서 사면 13500원입니다.

 

김 : 하하하.

 

정 : 정 장관께서 디테일까지.

 

청 : 전국 서점에 절찬 판매 중. 제가 옛날에 쓴 책도 있는데, 그거는 서점에 안 깔았어요. 왜냐하면…

 

정 : 끼워넣기하지 마십쇼.

 

청 : 보관, 소장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하여튼 10년 후 통일, 여러분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 : 예. 책 소개 감사 드립니다. 이만 인사 드리겠습니다.

 

청 : 고맙습니다.

 

정 : 네. 의원님 감사합니다.

 

김 : 어휴, 그냥 뭐 다 휘젓고 가시네.

 

정 : 그러니까요.

 

김 : 우리가 할 일이 없어, 사회자들이 진짜.

 

정 : 그러게, 무슨 말부터 꺼내야 될지 참으로…

 

김 : 우선, 장관님 오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방금 정의원 소개대로, 진짜 영광과 좌절이 교차하고, 어떤 기대와 환희, 그런가 하면 또 안타까움이 교차했던 게 남북관계인데, 그 주인공이십니다. 이런 어떤 그 지난 역사를 다 이렇게 모으셔 가지고 최근에 이렇게 책을 내셨는데, 어떤 집필 동기라든가, 최근에 이 책을 왜 내시게 됐는지 좀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동 : 네, 지난 봄에 개성공단이 닫히는 걸 보면서, 또 인제 전쟁이 나네 마네 이렇게 한반도가 휘둘리는 것을 보면서, 뭔가 우리 국민들이 막연히 이미지로만 이해하고 있잖아요, 한반도 정세를? 특히, 북한 그러면 뭐가 떠오르느냐 이렇게 물어보면, 대개는 독재, 가난, 세습, 핵, 뭐 이렇게 얘기한단 말이죠. 뭐, 정확한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미지만 가지고는 사태의 그 본질을 볼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예컨대 핵문제 역사 20년이 어떻게 흘러왔고, 또 막연히 북한 핵 문제는 이건 불가능한 문제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한 번 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인제 이런 생각으로, 어디 그 강연을 갔는데요. 그 때 그 출판사 대표가 마침 거기에 있었던가봐요. 그래서 이걸 책으로 만듭시다, 그래서. 강연했던 거를 풀어서, 일방적으로 쓰게 되면 좀 딱딱해서, 인터뷰 전문 작가인 우리 지승호 선생하고 이렇게 대담식으로, 구어체로 이렇게 만들어 봤습니다.

 

김 : 아니, 그래서, 읽기는 참 편하고 좋았어요. 다 쓰시고 보니까, 느낌이 어떠십니까?

 

동 : 글쎄요.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있었던 사실들을 취합해 놓고 보니까, 역시 인제 핵심 질문이 그건데요, 이 한반도 문제가 누구의 문제냐 하는 거지요. 결국은, 이게 미국의 문제도 아니고, 중국의 문제도 아니고, 내 문제, 우리 문제, 남북의 문제, 특히 이 우위에 서 있는 한국의 문제. 그래 지도자의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가, 뭐 이런 것들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됩니다.

 

김 : 네. 사실 그런 정서가 저한테도 좀 전염이 된 게, 제가 어제 초저녁에 잠을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아침까지 한 시도 쉬지 못하고 읽었습니다.

 

동 : 아이고, 감사합니다.

 

김 : 그 전율이 느껴졌는데, 장관님이 이번에 쓰신 이 책에서 어떤 서두가 사실은 좀 무겁습니다. 예를 들면은, 이 남북관계가 왜 이렇게 어려운가 하는 어떤 그 굉장히 좀 무거운 얘기부터 시작을 하는데, 34페이지에는 인제 전쟁과 집단적 증오, 이 남북한 사이에. 독일은 전쟁을 안 했는데 우리는 했다, 이런 어떤 것 때문에 인제 다시 화해가 참 어렵고. 그거 한 2장 넘기면 36 페이지에 또 하나는 뭐냐 하면, 너무 국내 정치에 종속된 이 통일정책, 외교. 국내 정치에 휘둘리는 이런 어떤 우리의 특수한 면을 먼저 얘기하셨어요.

 

동 : 그게 본질이죠, 핵심이죠.

 

김 : 그런 면에서는 정말 풀기가 어렵구나, 이런 또 생각이 듭니다.

 

   
▲ <10년 후 통일>(살림터) 인터뷰 전문작가 지승호씨가 인터뷰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통일론

동 : 그러니까, 인제 모든 게 정치로 수렴된다 하는 말이, 특히 분단 문제에서는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지금 어쨌든 우리가 한국 전쟁이 끝난 지 60년, 동서고금의 전쟁사에서 어떤 전쟁이 60년이 되도록 휴전 상태에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고 요지부동으로 있는, 그런 사례가 어디에 있는가, 세계사에? 그러면, 왜라는 질문이 당연히, 왜, 왜 한반도에 이러한 그 불안정한 상태가 60년이나, 또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지속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당연히 나올 수 있는 거지요.

 

김 : 아, 이 소개를 빼먹었는데,… 제가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1953년 7월 27일 생이십니다, 그죠?

 

동 : 휴전협정일이지요.

 

김 : 바로 그날이죠?

 

정 : 운명이란 표현도 부족한 거 같은데, 숙명인 거 같은데…

 

동 : 다른 사람은 잊어먹어도, 저는 평생 잊을 수는 없죠.

 

김 : 네.

 

동 :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생 때도 휴전체제, 대학생 때도 휴전체제, 군대갔을 때도 휴전체제, 정치인이 됐을 때도 휴전체제, 또 제가 아들을 낳아서 그 아들 둘이 군대에 갔을 때도 휴전체제, 그럼 내 손자 때도 이렇게 될 수는 없잖아요?

 

김 : 그렇습니다. 예. 바로 정전협정이 체결되던 그 날. 예, 아시니까, 한 평생, 그러니까 한 평생.

 

정 : 그 날, 예. 자연스럽게 올해 만 60세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확인이 되는 거 같습니다.

 

동 : 하하하, 들으시는 분들이 야, 나이 많구나 이렇게 생각하실 거 같아요.

 

김 : 이 정전협정을 어떻게 극복해야 된다는 게 업이 되어버리셨네, 본의 아니게.

 

동 : 인제 자기 암시일 수도 있지만, 제가 정치를 시작하면서, 아, 이 분야에 이 부분에서 내가 좀 기여를 해야 되겠다 라고 마음 먹기는 했었죠. 그리고, 인제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저에게 복지부 장관을 하라고 자꾸 대통령이,…

 

김 : 아, 그러셨습니까? 아~

 

동 : 제가 그 당시엔 복지 부분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준비가 되지 않았고. 남북문제는 또 제가 북한 담당 기자 출신이었기 때문에,

 

김 : 아, MBC에서 예.

 

동 : 나름대로 또 어쨌든 목표가 있었죠. 개성공단을 한 번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만들어 내보고 싶다는. 김대중 대통령 정상회담을 통해서 밑그림을 그렸고, 또 정주영 회장이 설계도를 만들었고.

김 : 그렇습니다.

 

동 : 계속 평탄작업은 하는데 물건은 안 나오는 상태였단 말이죠. 그래서, 인제 그런 야심이라고할까 욕심이 있었죠.

 

김 : 네.

 

동 : 그런데 어쨌든, 공교롭지만 제가 통일부 장관 겸 NSC 위원장으로 있던 그 시기에 개성공단이 가동되기 시작했고, 만들어졌고, 그 다음에 9.19가 만들어졌단 말이죠.

 

김 : 그렇습니다.

 

동 : 그런데, 앞으로 10년 한반도에서 개성공단과 9.19는 계속해서 굴러가야 할 2개의 중요한 바퀴죠.

 

김 : 축이죠.

 

동 : 그렇기 때문에 그 9.19와 개성공단에 얽힌 전후좌우, 그 다음에 그것의 의미를 한 번 좀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게 인제 이 책의 내용입니다.

 

정 : 그러니까, 지금 장관님, 제가 기억나는 게 2004년도에 처음 통일부 장관으로 인제 일을 시작하셨을 때, 제일 먼저 하셨던 일이, 그 베트남에 체류 중인 탈북자들을 대거 송환하는 일이잖습니까?

 

동 : 저는 개인적으로 반대했는데요. 제가 7월 1일날 취임했는데, 이미 결정이 돼 있었습니다, 외교 안보관계 장관회의에서. 그래서, 이거를 뒤집어 보려고, 이렇게 대량으로 460명.

 

정 : 그렇죠.

 

김 : 그렇습니다, 전세기로.

 

동 : 비행기로, 전세기로 2대로 실어 오는데, 이건 분명히 남북관계에 영향을, 악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그리고, 냉랭한 관계였는데. 그런데, 이미 뭐 그 당시 외교부 장관이 베트남에 가서 또 이미 협약까지 다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뭐 어쩔 수 없이 감수했는데, 그 바람에 이제 더 뒷걸음질쳐서 사실은 1년 동안 제대로 뭐 통일부 장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 못 했죠.

 

정 : 그러니까, 당시 북한에서 당신은 평양을 밟아보지 못하는 통일부 장관이 될 것이다 이런 표현까지 쓰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인제 탈북자들을 대거 송환하면서 북측에서 첫 반응이 기억나는 게, 정동영 우리 장관님께 당신은 평양 땅을 밟아보지 못하는 통일부 장관이 될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불과 1년 사이에 아주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아마 우리 장관님께서, 통일부 장관으로서는 유일하게 김정일 위원장하고 단독회담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동 : 예.

 

정 : 인제 임동원 장관 같은 경우엔 그 때 당시에 국정원장이었기 때문에, 통일부 장관 직책으로 김정일 위원장을 그렇게 장시간 만난 또 유일한 분이시란 말이죠. 그래서, 이게 남북관계 그 1년 사이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동 : 그렇죠. 답답했는데, 저만 답답한 게 아니라, 당시에 이제 노무현 대통령도 답답하게 생각해서, 다른 장관으로 장관을 바꿔줄라고까지 생각했어요.

 

김 : 아, 배려해 주신다고. 여기서 거 뭐 성과도 없으니까.

 

동 : 안 되지 않느냐? 그래서, 내 좀 더 해 보겠습니다, 이래서. 뭐 역대 대통령이 그렇게 또 장관을 배려한 예는 없었을 거 같은데,… 그러던 차에 이제 어쨌든 2005년 6.15 그래서, 제2의 6.15 시대라고 불릴 만큼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탔죠. 그래서, 남북간에 어쨌든 상징적인 게 예를 들면, 제주 해협을 통과시켜줬다 라든지. 또, 어쨌든 북한의 고위대표단이 동작동 국립묘지, 6.25 전사자…

 

김 : 아, 이건 뭐 깜짝 놀랄 얘기였어요.

 

정 :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동 : 그거는 뭔가 서로 한 번 해 보자는 그런 의지의 표현이란 말씀이지요. 그래서, 그런 동력이 있었기 때문에, 제2의 6.15 시대라고 규정할 만한 그런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추동력으로 사실 9.19를 밀 수가 있었던 거지요.

 

정 : 그렇죠.

 

김 : 네. 자, 여기에서 제일 인제 어떤 정세가 좀 급물살을 타게 된 계기는 뭐니뭐니 해도, 2005년 6월 17일날 우리 정동영 장관님께서 인제 김정일 위원장을 5시간 동안 만난, 이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많은 국민들이 인제 우선 궁금해 하는 게 있습니다. 직접 김정일 위원장하고 장시간 이렇게 대화를 해 보시니까, 어떤 사람이라고 느끼셨습니까?

 

정 : 참고로, 지난 주에 나오셨던 우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께서는 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쭉 분석하신 결과 내린 결론은, 김정일 위원장은 굉장히 소심한 사람이다.

 

김 : 걱정이 많다,

 

정 : 예예, 이렇게 인제 평을 하셨는데, 직접 만나셔 갖고 장시간 대화, 이런 어떤 평가도 좀 굉장히 흥미로울 거 같은데…

 

동 : 우선, 첫 느낌은 인제 말이 통한다는 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본인이 굉장히 그 결단력이 있는 그런 지도자라는 것을 좀 과시하고자 하는,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이런, 옆에서 참모가 뭐라고 해도 분명하게 결정을 하고, 또 아닌 건 아니라고 또 얘기를 하고, 하면서도 물론 인제 쭉 한 나라를 뭐 20년 이상 이렇게 주물러 왔으니까 가능한 거지만, 굉장히 그 뭐 여유가 있었다고 할까요? 올브라이트 장관이나 김대중 대통령도 만나고 나서 그런 평가를 했지만, 굉장히 총명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유머감각이 있다 이런 평가를 두 분이 하셨는데, 저도 그런 인상을 받았구요. 그 다음에 그 연출 감각이 굉장히 뛰어나다.

 

김 : 연출 감각, 예컨대 어떤 겁니까?

 

동 : 본인이 영화도 좋아하고, 뭐 드라마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예컨대 인제 6월 17일 오전 11시에 티토 기념관, 대동강변에 있는, 거기서 만나게 되는데, 그 북측 운전기사가 이렇게 안내를 하는데, 어떨 때는 시속 백 몇십 킬로로 과속 질주를 하고, 어떨 때는 또 한 삼사십 킬로로 아주 서행을 하고, 왜 그런가 했더니 정확하게 11시 정각 한 2~3초 전에 현관문에 내리게 하더라구요. 그러더니, 그러니까 11시 정각이겠죠? 00초에 문이 쫙 열리는데, 한 5-6 미터 전방에 딱 위원장이 서 있는 거예요. 기막힌 연출.

 

김 : 우리 방송보다 정확하시네,

 

정 : 하하하, 그러니까요. 일분 일초도 안 틀리게.

 

동 : 그리고, 나중에 인제 내려와서 기자회견도 하고 했을 때, 보도 나간 화면 중에 김정일 위원장이 그 귀엣말, 제 귀에다 대고 뭐라고 한, 그 얘기를 하는 장면이 한 컷 이렇게 나왔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무슨 다른 건 안 물어보고, 귀에다 대고 뭐라고 하더냐 인제.

 

정 : 전 세계 정보기관들의 초미의 관심사였을 거 같은데…

 

동 : 이걸 물었는데, 뭐 이제는 얘기할 수 있습니다만, 뭐 좋은 소식을 내려 보내겠습니다.

 

정 : 네.

 

김 : 아!

 

동 : 그건 뭐나면, 정상회담, 2차 정상회담을 제안했단 말이죠. 거기에 대한 인제 응답인 것이죠. 그런데, 그 때 이제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2가지가 주요 목표죠. 하나는 6자 회담을 돌리는 거, 재개시키는 거죠, 1년 이상 표류하고 있었으니까. 그 다음에 하나는 정상회담 합의를 끌어내는 거였는데,…

 

김 : 어휴, 제일 굵직굵직한 거만…

 

동 :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2000년 6.15 1차 정상회담 맨 끝줄에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조속한 시일 내에 두 번째 정상회담을 서울에서 개최한다, 그랬는데, 인제 그 이후에 부시 정권이 등장하고, 악의 축 등등 해서 살벌해졌잖아요? 2차 핵위기도 발생하고, 그래서 현실적으로 인제 어렵게 돼 갔어요. 그리고 5년이나 흘렀고, 그래서 인제 제가 제안한 게, 합의문에 있던, 서울에서 개최한다는 것은 그건 이제 없던 걸로 합시다. 그리고, 장소는 위원장께서 결정하십쇼. 백두산이 됐든, 금강산이 됐든, 평양이든 어디든 좋습니다. 우리는 제주도를 선호합니다. 장소는 인제 일임을 하고, 대신 시기 문제는 지금으로부터 3개월 내에 개최하는 것을 희망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런 얘기를 했는데, 인제 나중에 언질을 한 거죠. 좋은 소식을 보내겠다 그랬는데, 한 달 여 뒤에 북쪽에서 이제 대표단이 8.15 때 왔어요. 와서 이제 밤중에 호텔 방에서 만났는데, 제 3국을 제안했단 말이에요. 뜻밖이었어요.

 

정 : 북측에서요.

 

김 : 어허.

 

동 : 제3국에서 하자. 그 3국이 나중에 인제 보니까, 이르쿠츠크를 의미했던 거예요.

 

김 : 아, 러시아의.

 

동 : 이르쿠츠크. 제가 지난 8.15에 인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사단법인 '대륙으로 가는 길'에서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 철도로, 이르쿠츠크까지 가봤거던요. 가면서 깨달았어요. 아, 이르쿠츠크의 의미가 이런 의미구나. 그러니까, 지금 오늘도 공교롭게 푸틴 대통령이 와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데, 그 때도 푸틴이었어요, 2005년 때도. 대통령 두 번 하고 또 총리로 왔다가, 다시 지금 대통령으로 온 거 잖아요? 그런데, 러시아 지도자가 오는데, 지금 유일하게 극동, 동부 시베리아 개발에, 극동 러시아 개발에 아주 관심을 가진 지도자란 말이지요. 그러니까, 푸틴의 정치적 관심과 경제적 관심 2개가 있었다고 보는데요. 남북한의 지도자를 이르쿠츠크에 부르게 되면, 이것은 한반도의 주요한 당사자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는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고…

 

김 : 어, 역시 연출이군요.

 

동 : 그렇지요.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도 미국이라든지 중국과의 대국 관계에서, 그 미국을 상대하거나 중국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러시아를 또 끌어들이는, 그런 아마 큰 장기판, 뭐 바둑판, 그런 게임을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인제 우리 입장에서는 그건 불가하다, 한반도 내에서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풀어 가야지, 강대국의 그 입김에 흔들리면 안된다는 인제 분명한 입장이 있어서, 그건 불발 됐습니다만,…. 푸틴 입장에서는 인제 정치적으로 그 남북한 지도자를 모으는 거와 함께, 동시에 자신이 관심 있는 동부 시베리아 개발, 즉 이르쿠츠크에 있는, 주변에 있는 최대의 가스전, 그리고 석유, 그리고 바이칼 호가 세계 담수의 20%를 거기에 담고 있습니다.

 

김 : 엄청 크네요.

 

동 : 그래서, 무진장한, 무한한 전기, 그리고 이 철도, 이거를 연결해서 하는, 그 원대한 시베리아 개발 구상, 이거를 인제 몽골, 중국, 북한, 남한으로 이어지는, 뭐 그런 이니시어티브(initiative)를 푸틴이 생각했던 거구나, 이런 느낌이 오더라구요.

 

김 : 예.

 

   
▲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지난 13일 ‘김종대-정욱식의 진짜안보’에 출연했다. 좌로부터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정청래 의원, 정동영 전 장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 국민TV뉴스

 

동 :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가면서, 내가 타고 가는 거보다는 이거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한 번 쯤 이런 길을 달려 봤더라면, 좀더 거시적인, 좀더 시야를 툭 트이는 그런 전망을 가지고 나라를 운영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더라구요.

 

정 : 네, 그렇죠.

 

김 : 그러니까 뭔가 좀 원대하고, 이렇게 개방적인 사고를 하면은, 이렇게 지금같이 어떤 자폐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이런 대북정책은 좀 완화되고, 많이 개선될 것 같아요.

 

동 : 그렇죠. 그러니까 한반도는 지구상에, 지금 지구상에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1, 2, 3, 4등을 정하라 그러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아니에요. 뭐 1, 2, 3, 4 등이 다 동서남북을 싸고 있는데,… 제 핀란드인 친구 한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한국에서 제일 부러운 게 있다, 그게 뭐냐? 위치다 그러더라구요.

 

김 : 위치?

 

정 : 네네.

 

동 : 그러니까, 핀란드나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은 이 바깥으로 나올라면, 지구의 중심으로 나올라면, 빙 발틱해를 통해서, 뭐 북대서양 통해서 나와야 되거든요.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큰 4강이 지척에 있으니, 그런데 이게 인제 이 지정학적인 위치가 우리 역사에선 때로는 저주였고,

 

김 : 그렇습니다.

 

동 : 때로는 축복이었고, 그런데 이 저주를 축복으로 지금 만들어가는 사명이 지금 이 동시대인들에게 있는 거고, 특히 지도자들에게 있는 거죠.

 

김 : 네. 아, 책에서도 민족의 대운이라는 표현을 보고 전 가슴이 뛰더라구요. 그런 말씀이세요.

 

정 : 그러니까, 제가 일본의 동북아 전문가를 만났는데요. 그분하고 인제 이런저런 말씀 나누다가, 경제 얘기가 잠깐 나왔습니다. 경제 얘기가 잠깐 나왔는데, 그래서, 그분도 자기가 보기에는 이러다가 한국이 새로운 어떤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 한국도 일본처럼 장기불황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런데, 덧붙이는 말씀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과 다른 게 딱 한 가지가 있다. 그게 뭡니까 그러니까 북한이다 라고 그렇게 얘기하시더라구요.

 

김 : 네.

 

정 : 그만큼 나라 밖에 있는 경제학자들조차도 한국이 어떤 한국 경제, 한국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유력한 땅이 북한에 있다라고 하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우리는 자꾸 이러한 어떤 지정학적, 혹은 지경학적 기회 자체를 갖다가 자꾸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자폐 현상이 좀 이렇게 심해지고 있는, 이런 부분들이 최근 몇 년 새 계속 있는 거 같애요.

 

동 : 우리가 지금 당장 발 등에 떨어진 게 고령화 문제 아닙니까?

 

김 : 그렇습니다.

 

동 : 65세 이상의 노령인구는 늘어가고 노동력 인구는 줄어드는데, 그 해법을 어디서 찾습니까? 남북 경제공동체로 가게 되면 노동력 문제는 해결되는 거에요. 천만 명의 양질의 노동력이 예비군으로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걸 활용하자는 거죠. 그리고, 어쨌든 아까 책 표지를 읽어주신 대로, 지금 젊은이들 일자리, 취업, 청년들의 미래, 사실 저희가 대학 다닐 때보다 지금 더 고통스러운 거 같거든요, 젊은이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게 비정규직 밖에 더 있습니까?

 

김 : 그렇습니다.

 

동 : 그런 상황 속에서 뭔가 희망을 열어줘야 되는데, 그것이 바로 대륙으로 가는 길을 여는 거다. 푸틴이 원하고 있고, 시진핑도 원하고 있고, 북한도 원하고 있고, 미국도 나쁠 거 없죠. 결국은 한국 지도자의 비전과 결단, 이것만 있으면. 또, 어쨌든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동안 인프라 그건 깔았잖아요?

 

김 : 예.

 

   
▲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러 정상 오찬에서 건배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 뉴스1

 

동 : 기본적인 신뢰는, 또 하면 된다는 거를 그냥 무슨 책상 위에서 그림으로만 있는 게 아니라, 개성공단 같은 그런 구체적인,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물건, 공단을 만들어 돌리고 있잖아요? 실증 사례가 있단 말이죠.

 

김 : 네.

 

동 : 그러니까, 사실은. 그런데, 인제 문제는 뭐냐 하면, 이게 발목을 잡는 이른바 종북, 또 공안통치, 이거와는 양립을 못해요. 말하자면, 남북긴장과 안보불안이 조성되야만 종북몰이 효과가 극대화되는 거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을 하고, 금강산 관광객이 늘어나고, 개성공단이 확장되고 하는 속에서는, 종북 공세를 못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국내 정치가 결국 발목을 잡는 거예요. 여기서 풀려나는 것이 저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좋은 일이고, 우리 국민을 위해서, 특히 우리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 4년이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4년 남았잖아요.

 

김 : 그렇습니다. 자, 제가 약간 각도를 달리해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어쨌든, 뭐 대한민국 최고의 언변가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신 거예요, 이건 제 관점에서는 그렇습니다. 지금 김정일 위원장이 보니까, 합리적이고 어떤 대화가 좀 통하는 사람 같았다고 하는데, 그 반대로 김정일 위원장은 정 장관님을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동 : 언변이란 말은 그렇게 썩 뉘앙스가 좋지는 않은데, 어쨌든 뭐 많이 저 나름대로 준비는 해 갔어요. 준비는 해 갔는데, 어쨌든 11시에 만나서 원래 예정은 12시에 점심을 하기로 돼 있었는데, 11시, 12시, 1시, 1시반까지 얘기해서, 인제 그 다음에 배가 고프니까 밥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그래서, 2시, 3시, 4시까지, 어쨌든 5시간 동안을 대좌한 셈이란 말이죠.

 

김 : 그 때 식사 메뉴는 기억나십니까?

 

동 : 예. 뭐 거창하게 차려졌던 거 같아요.

 

김 : 그래요?

 

동 : 네, 평양에 가서 이게 물을 갈았더니 배탈이 나서, 사실은 이 식사시간은 좀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어쨌거나 그 얘기를 하면서 사람이란 그렇잖아요? 처음에 미지의 상대인데, 만나서 얘기가 이렇게 통한다 싶으면 얘기가 더 길어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김 : 그렇습니다.

 

동 : 그래서, 사실은 그 날 준비해 간 그 메모, 어젠다 그게 다 떨어졌습니다. 모든 얘기를 다 했어요.

 

정 : 예. 하실 말씀 다 하셨군요.

 

동 : 다 한 거죠. 인제 그 중에 그 5시간을 한 마디로 인제 압축을 하면은, 그런 얘깁니다. 통 크게 한 번 합시다. 그런 거였어요. 왜냐하면, 인제 김정일 위원장은 자기가 통 큰 지도자라는 말을 굉장히 듣기를 좋아한다고 해요. 그런데, 통 큰 지도자신데, 자, 남은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노무현 정부 이상으로 북쪽을 이해하고 북과 대화가 통하고 북을 도와줄라고 하는 정권이 또 나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물론, 2년 뒤에 제가 후보로 나와서 떨어진다는 걸 예상한 건 아닌데,… 제가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남은 시간이 2년 밖에 없습니다. 한 번 통 크게 합시다. 그래서, 아까 말씀한 통 큰 조치들이 인제 주거니 받거니 나왔죠.

 

김 : 그 때 나왔죠. 해운 합의라든가, 또 8.15에 인제 북한 대표의 국립묘지 참배.

 

동 : 요즘 같으면 상상할 수 없지만, 그 때 남쪽에다 대고 북이 무리한 요구를 했어요. 자신들의 체제 선전 집단 마스게임 있죠? 아리랑 동영상으로 8만명 학생들을 통해서 카드섹션으로.

 

김 : 그렇죠. 야, 그게 아주 동영상으로 카드섹션이 되는데, 참 기가 막힙니다.

 

동 : 남쪽에서 그걸 관람할 수 있게 관광객을 만 명을 보내달라, 보냈지 않습니까? 그 때 뭐 온갖 욕설과 악담을 많이 들었습니다만, 어쨌든, 그런 통 큰 조치들이 인제 서로 신뢰에 바탕이 되면서 9.19의 제1항,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와 개발중인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다 라고까지 갈 수 있었던 거지요.

 

정 : 그렇죠. 당시의 남북관계가 그렇게 정상화되지 않았으면 참. 그런데, 돌이켜보면 2005년도에 정세가 참 안 좋지 않았습니까, 초반기에? 그러니까, 부시가 떨어지길 바랬는데, 부시가 재선에 성공을 했구요. 그 때 당시에 화면에 비춰졌던 노무현 대통령의 좀 약간 절망 어린 표정, 사실 그게 인제 LA 발언에서도 그런 것들이 좀 묻어나지 않았습니까? 인제 그런 과정들이 있었고, 또 콘돌리자 라이스, 인제 그 전에는 국가안보 보좌관이었습니다만, 2기 들어서면 인제 국무장관으로 가면서 인준 청문회에서 또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얘기를 했고.

 

동 : 그것이 또 악화시키는 계기가 됐죠.

 

정 : 또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하고, 이러면서 굉장히 어려운 국면 때 통일부 장관으로 재직을 하셨었죠. 그런 우여곡절이 있었고, 특히 그 상대가 미국, 그냥 보통의 미국도 만만치 않은 나라인데, 그 미국의 지도자가 부시고, 그 부시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네오콘들이구요. 이런 미국을 상대로 한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었고, 거꾸로 그러한 미국하고 또 말 한 마디도 지지 않을려고 하는 북한, 또 이런 북한을 설득하기가 참 만만치 않아서, 어떻게 보면 한국 외교 사상 가장 힘든 환경, 힘든 조건 이런 속에서 어떻게 보면, 여러 가지 성과를 이루어 내셨는데요.

 

김 : 방북이 이루어졌고,

 

동 : 운이 좋았던 게 나는 한국 대사를 했던 크리스토퍼 힐이 동아태 차관보로 가면서 6자 회담 대표, 힘이 있는 대표가 들어섰고, 또 힐이 야심이 있었단 말이죠. 코소보 사태를 해결한 그 명성에다가 한반도 문제를 한번 어떻게 해보겠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그리고 하나 또 저에게 행운이었던 것은 키신저와의 관계였습니다. 제가 통일부 장관 때 서울에서 만났고, 평양에 갔다 와서 2005년 6월 17일 갔다 온 직후에 미국에 가는데 워싱턴에 먼저 안가고, 뉴욕에 먼저 가서, 코치를 해주더라고요, 키신저를 활용하라고, 키신저에게 먼저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먼저 소상하게 설명해줍니다. 본인은 미국 공화당에서 대부, 외교 안부 정책에서는 다 후배들이고, 제자들이지요. 굉장히 좀 기쁘게 생각했어요. 그런 사전에 먼저 설명을 받은 것에 대해서, 그러면서 걱정 말라고, 해들리나 라이스나 다 럼스펠드 다 전화해놓겠다고

 

김 : 그래서 럼스펠드 다 만나시고

 

동 : 실제 키신저 장관이 좀 도와줬어요. 워싱턴에 갔을 때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웠고, 그래서 체니 부통령이 네오콘의 수장이잖아요.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 그러니까 '미국과 적대관계만 해소되면 아무튼 핵을 내려놓고 싶다. 내려 놓겠다'는 그 메시지를 전하는데 힐난하듯이 이렇게 물었죠. 체니 왈 'Do you believe him?' '너 그 사람을 믿어?' 믿지 않는 다는 얘기죠. 체니 부통령은 기본적으로 북한 핵 문제의 핵심은 북한 문제고, 북한 정권문제고 그러니까 북한 정권을 부셔야 핵 문제를 해결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거기다가 김정일 메시지라고 전하니, '그 사람 말을 믿냐?'. 응대하는 게 '아니 그 사람 말을 믿고 안 믿고가 포인트, 핵심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을 우리 묶어내는 것이 더 중요한 거 아니냐?' 그랬더니 '그러면 그가 말한 대로 한달 내에 6자 회담에 나온다면 당신이 전한 메시지를 한번 고려해보마' 여기까지는 한 거지요. 그래서 어쨌든 간에 보통 미국도 아니고 네오콘의 미국이었는데, 네오콘의 미국 속에서 힐이라는 협상 대표가 있고, 남북이 소통하는 그 결과를 가지고, 8월 달에 제4차 6자 회담, 4차의 전반 회담이 열리고 9월 달에 919의, 어쨌든 타결로 갔지 않습니까?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냐 하면, 우리 남북 관계사에서 한반도 사에서 91년도 기본 합의서가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대장전이라고 한다면, 이 919는 핵과 관련해서 작은 소장전이다. 작은 마그나카르다다. 핵 포기를 선언했고, 미국이 북한과 수교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일본도 수교를 약속했고 그 다음에 휴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꾸자는 합의가 6자간의 도장을 찍은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난 5년 동안은 919의 9자도 나오지 않았거든요. 이것은 미국이나 중국이 만든 게 아니라 그런 남북 관계에 제2의 615시대라고 하는, 그런 조건 속에서 한국외교가 주동한 추동한 선도한 그런 금자탑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어떤 정권이 했던 간에 이 6자 회담의 무대는 우리에게 굉장히 유용한 무대입니다. 길게 봐서는 동북아의 집단 안보 체제까지 갈수 있는 내다 볼 수 있는, 그런데 우리가 발언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대등한 입장에서, 아니면 그들을 끌고 가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그런 무대를 될 수 있으면 자주 열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면 지금 조건을 붙여서 말하자면 소극적이지 않습니까?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필요 없다는 둥,

 

김 : 비핵화가 선행되어야 된다는 둥..

 

정 : 그렇죠, 그런 점이 좀 안타깝죠.

 

김 : 그렇죠, 저기 책에서도 '6자 회담과 919 폐기는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업적이다' 이런 표현도 쓰셨어요. 이건 일종의 반어적 표현이라 보여지고요.

 

동 : 핵 고도화가 이루어진 시기가 지난 5년이 사실은 제일 집중적으로 북의 핵 능력이 경량화 소량화 다량화 되는 시기 아니었습니까?

 

김 : 다종화,

 

정 : 다종화, 그런 점에서 보면 결국 대화와 협상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에는 핵 능력은 일단 멈춘단 말이죠. 그런데 적대로 돌아서고 대결로 돌아서고 압박으로 가면 그 기간에 북은 죽기 살기로 핵 능력 고도화에 매달리는 거죠. 지난 5~6년이 그런 기간이었단 말이죠.

 

김 : 이 책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이 바로 이 대목인데요, 919 공동성명이 하루 만에 거의 휴지조각이 되는 어떤 급 반전 사태가 일어납니다. 이 책에서도 그 부분이 상당히 의미 있게 거론이 됩니다만, 참 읽을 때마다 이건 떠올리기만 해도

 

정 : 안타깝죠..안타깝죠

 

김 : 네, 정말 이렇게 안타깝고 우리 한반도 평화의 마지막 촛불이 말이죠, 꺼지려는 경각에 달리는 순간, 촛불을 켜자마자 그 상황이 안타까운 장면인데

 

정 : 돌이켜보면 BDA 방코델타아시아(Banco Delta Asia)은행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크게 보면 2가지를 날려버렸어요. 하나는 6자 회담을 날려버렸고, 더 중요하게는 2차 정상회담도 이것 때문에 무산됐다고 보시는 거 아닙니까?

 

동 : 그렇죠. 2차 정상회담이 쭉 늘어져 버리는 거죠.

 

정 : 그래서 아까 2005년 하반기에 2차 정상회담을 추진한 그런 말씀을 잠깐 해주셨는데요. 이게 왜 무산됐는지, 책에는 그 내용이 안 담겨 있는 것 같아서 그 내용을 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동 : 919 이후에도 우리가 계속 채근을 하죠. '빨리 날짜를 잡자' 근데 계속 북에서 '조금만 더 시간을 보자. 시간을 보자'하고 2005년 말까지 와요. 그래서 2005년 12월 31일이 날 종무식을 하고 제가 그만두는데,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파격적으로 선택지를 줬습니다. 그 다음해가 지방 선거인데 '당으로 돌아가던지, 아니면 정상회담 관련 마무리를 하고 가던지, 선택을 해라' 근데 물론 이 정상회담 남북 관계를 끌고 가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당이 또 경각에 달려 있었어요. 고민하다가 가도 독배일 것은 뻔했지만, 당으로 돌아가서 지방 선거에 참패하고 독배를 드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눈 딱 감고 그래도 내가 쭉 해오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매듭을 지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좀 있습니다.

 

정 : 역시 국내 정치가 좀 남북 관계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동 : 919 말씀하신 것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일반 우리 국민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인들도 또 언론인들도 대부분 북이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들이다. 특히 대표적으로 '919 같은 거, 핵 포기 한다고 해놓고, 그것도 깨버린 거 아니냐' 라고 하는데 이건 180도 다른 사실, 사실 관계가 다릅니다. 그러니까 919의 전 후를 쭉 살펴보면 우리 정욱식 대표께서 말씀하신 대로, 보통 정권이 아닌 미국의 네오콘들이 919 합의를 견딜 수 없어했던 겁니다. '아니 저 깡패정권이 폭정의 전초기지, 악의 축인 북한과 우리가 수교를 해?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이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전 후 사정이 쭉 책에 들어있습니다만, 네오콘이 찢어 버린 겁니다. 하나는 BDA 방코델타아시아에 북한이 불법적으로 자금 세탁을 했다고 해서 걸고 들어온 것이고, 또 결정적으로는 경수로 문제지요. 당시에 이 경수로 문제는 1차 핵 위기와 2차 핵 위기, 앞으로 핵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핵심입니다.

 

정 : 20년 한반도 핵 문제를 관통한 핵심적인 문제 아닙니까?

 

동 : 이 경수로 문제가 폭발했던 게 2차 핵 위기란 말이죠. 2003년에 NPT탈퇴해 버리면서, '경수로를 파기해? 그럼 우리도 다시 연료 봉 돌리겠다' 이렇게 된 건데, 그런데 그런 조건에서 2005년 핵 포기로 간 거는 경수로 문제에 대해서 다리를 만든 거 거든요, 험한 파도에 다리를 하나 걸친 건데, 그 다리가 뭐냐 하면, 그게 만일 경수로를 못 지어주게 되면 우리가 전기 주겠다라는 게

 

정 : 중개 제안

 

동 : 그렇죠, 다리였고요, 또 하나는 힐 대표가 노력해서 어쨌든 나중에 좀 미뤄 놓은 거죠. '나중에 경수로는 좀 얘기하자' 이렇게

 

정 : 적절한 시점에 논의하기로

 

동 : 적절한 시점에 논의하자. 뒤로 미뤄놓고, '만일 안될 경우에는 한국이 전기 주겠다' 이렇게 해서 핵 포기 선언을 끌어낸 거지요. 앞으로 이제 북한 핵 문제 해결함에 있어서 결국 경수로 문제에 대한 고민, 이것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 되겠죠.

 

정 : 당시에 네오콘이 3가지 카드 정도를 들고나왔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BDA 대북 금융 제재였고, 하나는 경수로 문제에 관련해서도 미국이 해석한 적절한 시점이란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하고 NPT와 IAEA에 복귀해서 국제적인 신뢰를 완전히 회복한 다음에 논의 하겠다 이렇게 바로 발표해서 북한이 발끈을 했었죠.

 

동 : 그래서 파기가 되어 버린 거죠.

 

정 : 그리고 끝으로 북미 관계 정상화 문제 관련해서 919 공동성명에서 사실상 핵 문제만 해결되면 관계 정상화로 가는 것처럼 미국이 약속을 해 왔습니다만, 바로 그 다음날 또 미국의 해들리 당시 국가안보 보좌관이었죠. 이 분이 또 한 얘기는 핵 문제만 해결되어서는 안되고, 여기는 미사일문제, 생화학무기문제 또 중요한 게 인권문제 이러한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해결되어야 관계 정상화 가능하다고 그래서 이러한 내용들을 전반적으로 볼 때 919의 합의사항을 어떻게 보면 정면으로 뒤집는, 이런 발언들이었기 때문에

 

동 :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짚어주셨는데, 또 '왜'라는 문제가 나오는데, 60년 동안이나 휴전 체재가 한걸음도 못 나간 것, 거기다가 20년 내내 93년 1차 핵 위기에서 2013년 설날 3차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 이렇게 핵 문제가 계속 악화일로를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왜 그런가?' 라는 것이죠. '과연 이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가?' 이 관련해서 키신저 박사가 한 얘기가 재미있습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작고 약한 나라다. 인구 2천만의 이런 나라를 상대로 해서, 미국, 세계 최강, 중국 러시아 일본 남한까지 이걸 외교로 풀 수 없다는 것은, 외교라는 것은 그럼 어디다가 쓰는 물건이냐, 본인은 중국을 개방으로 이끌어 냈다라는 자기 과시이기도 한데요, 그럼 왜 20년 동안이나, 또 60년 동안이나 휴전 체제라는 것이 지금 언론이 얘기하고 있지 않지만, 그게 핵심일 것 같아요. 결국 남북의 긴장과 한반도의 이런 대치 상황이 이런 한반도의 국지적인 냉전이 결국은 주변 4강의 이해관계와 맞는 거지요. 말하자면 그 중에 제일 큰, 제일 즐겨 하는 사람이 아베 아닐까요? 헌법에 군대도 못 갖게 되어 있는데, 지금 집단자위권이니, 뭐니 해석하는 그 근거가 뭐겠습니까? 어쨌든 남북 대결 이걸 이용해서 가고 있는 거고요,

 

김 : 한반도 정세가 흐렸다 개었다가 정말 어떤 숨막히게 전개되는 이 하나의 시퀀스(Sequence), 나름대로 이 속에서 하나의 우리가 좀 가장 핵심적인 하나의 메타포(Metaphor)를 만들어 주신다는 생각이 드는데 도대체 왜 안 되는 거냐? 왜 못하겠냐? 외교가 못하는 일이 뭐냐? 이런 어떤 문제제기는 상당히 가슴 아프게 들립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지금 시간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될 주제가 있어서 제가 주제를 바꾸지 않을 수가 없는데, 개성공단에 대한 엄청난 구구절절 애정을 수도 없이 표현하고 계세요.

 

정 : 일종의 분신처럼

 

김 : 네 그런, 대체 정장관님께 개성공단은 뭡니까?

 

동 : 제가 2007년에 대선 때 왔을 때 '개성 동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그리고 TSR '시베리아 철도로 가자' 그랬는데, 사실은 이 명박 대통령이 4대강 하지 않고, 개성공단과 TKR TSR로 갔으면 우리 민족에게 대 운이 트였다고 생각합니다. 참 안타까운 거지요, 결국 독일은 왜 같은 해에 우리랑 분단 됐는데, 벌써 23년 전에 통일로 가버렸는가? 우리는 여전히 68년째 분단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큰 차이는 제일 핵심적인 차이는 뭐냐? 독일정치와 한국정치의 차이입니다. 한국의 위정자들은 한국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창출하고 유지하는데 분단을 이용했어요 끊임없이 악용했어요 활용했어요 선거에 써먹었어요. 이게 결정적으로 그러니까 외생변수 미국의 이해관계다 중국 이것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우리가 구한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은 군사력 8강, 세계 15번째 경제적 덩치, 또 깨어있는 국민, 얼마든지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단세력이라고 할까요? 분단에 기생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역사도 왜곡된 것이 너무 안타깝죠. 그래서 이 개성공단이란 것은 바로 거기에 대한 대안으로써 이게 또 밥의 문제지 않습니까? 일자리의 문제이지 않습니까? 통일 그러면 젊은이들은 식상해 하는 주제고 고개를 돌린단 말이죠. 그게 아니라 당신들의 밥이요 일자리요 꿈이다 말이야. 이렇게 가는 것이 단순히 산업공단 하나가 아니라, 이게 한국형 통일 모델이다. 독일형 통일, 베트남형 통일, 둘 다 적용이 불가능해요. 그런데 그럼 한국형이 있어야 될 텐데, 나왔단 말이에요 해답이 이게 바로 정부가 공식으로 3단계 통일 방안이다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실천적으로 실체로써 존재하는 통일 방안이 개성공단이란 말이에요 이걸 따라가잔 말이죠

 

정 : 이 대목에서 꼭 한번 제가 책에도 담겨있습니다만 저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인데요, 럼스펠드와의 만남, 도널드 럼스펠드하면 네오콘의 사실상 수장, 또 딕 체니 부통령의 선배 이기 때문에 럼스펠드 같은 경우에 이미 1970년대 국방부 장관을 한번 했고, 21세기 미국의 첫 국방부 장관을 했던 인물일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과 아주 확고한 그런 군사우위, 이런 쪽을 추구했던 국방부 장관이었는데요, 이 럼스펠드를 만나서 개성공단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저는 이 과정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의 내용을 소개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동 : 시간이 있나요?

 

김 : 3분 정도 남았습니다만

 

동 : 그러니까 제가 통일부 장관으로 간 이유가 개성공단을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만들자는 거였는데 가서 딱 열어보니까 아 미국의 속도 조절론이 있는 거에요. 2차 핵 위기가 터져있는데 급할 것 없지 않느냐 이거였어요. 그럼 미국의 태도를 바꿔야 되는데 당시 국무장관은 파월, 파월은 오히려 개성공단을 이해하는 편이었죠

 

김 : 개성공단을 잘 아는 사람이었어요

 

동 : 동두천에서 중령 달고 대대장을 했단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네오콘이란 말이죠, 럼스펠드, 그래서 어떻게 럼스펠드를 설득할까를 이제 사전 준비를 많이 했죠, 그래서 결국 핵심은 뭐였냐 하면 한미동맹의 취약요소, 그러니까 휴전선에서 서울까지의 종심이 짧은데, 그걸 보완하기 위해서 늘 조기 경보에 많은 자산과 돈과 인력을 쓰지 않습니까?

 

정 : 대포동 레이더니,

 

동 : 인공위성으로 사진 찍고 정찰기로 감청하고, 인간정보를 통해서 분석하고 등등을 하는데, 아니 북한영토 DMZ에 붙어있는 영토를 가로 8킬로미터 세로 8킬로미터 64평방 킬로미터를 우리 쪽에 경제 영토로 내준다는데 조기 경보 기능이 최소한 24시간 48시간 올라갈 꺼 아니냐? 그 말에는 반론을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것은 개성공단은 경제사업 이전에 군사 안보 전략적 가치가 큰 사업이다 라는 것에 대해서 수긍을 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미국이 바로 럼스펠드가 바로 그 다음날에 부시 대통령과 주례 점심자리였는데 개성공단 얘기를 보고했다고 합니다.

 

정 : 반대할 것 같은 사람이죠.

 

동 : 부시 대통령이야 잘 모를 테니까, 미국의 속도 조절론이 적극적인 협조로 유턴하게 된 거죠.

 

정 : 잠깐 제가 보안 말씀을 드리자면, 한국산 설비나 부품, 여기에 미국제가 10%이상 들어가면 미국 상무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됩니다. 웬만한 제품들은

 

동 : 적국일 경우에 북한 이란

 

   
▲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이 13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박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지원방안으로 남북협력기금 대출금의 상환을 유예키로 했다고 밝혔다. ⓒ 뉴스1

 

정 : 미국의 수출 행정 규제라는 법에 있어서 그 법에 따라서 북한에 들어가는 반출하는 것들은 다 받아야 되는데, 사실상 개성공단을 운영을 못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지난주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얘기할 때 김정일 위원장이 왜 개성공단 만들어놓고 이렇게 지지부진 하냐 핵심적인 얘기가 바로 여기 있었고, 이게 자주문제까지 비화되는 이런 맥락들이 담겨 있었다. 저는 끝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실 말이 쉽지요, 부시 대통령이나 딕 체니나 럼스펠드를 설득한다고 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대게 그 사람들의 이익은 확실하기 때문에 해봐야 안 된다고 자포자기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우리 장관님 말씀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는 게요, 정치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고, 얼만큼 준비를 잘 하고, 얼마만큼 우리의 의지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거듭 확인 할 수 있는 거죠

 

동 : 확실한 것은 남북이 긴밀하게 소통하면 미국도 설득할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아무리 생각이 달라도 남북이 서로 대화를 하고 협력하려고 하면 거기에 끌려오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끝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10년 후 통일, 그러니까 이게 약간 갸우뚱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사실상 10년 후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고, 대만과 중국 본토를 보자는 거죠. 대만과 중국 본토는 우리보다 더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런데 불과 5년 만에 정경분리원칙으로 밀고 오니까, 일주일에 600편 비행기가 뜨고, 700만 명이 작년에 오고 가고, 마음대로 여행하고 전화하고 편지하고 투자하고 거기다가 대만사람 200만 명한테 영주권까지 줬단 말이죠. 자 이런 상황을 한반도에 대비해서 앞으로 10년 뒤에 우리가 마음대로 전화하고 편지하고 할머니 집에 가서 평양에 살다 오기도 하고 땅도 사고, 예를 들어서 마음대로 자동차로 백두산도 왔다갔다하고 영주권도 받고, 이런 상황만 되면 아무런 고통이 없는 사실상의 통일 상태가 되고 이렇게 되면 골드만 삭스가 얘기한대로 북한의 노동력 천만 명과 6조 달러가 넘는 광물자원을 한국 경제에 결합하고 북쪽의 토지를 이용해서 한국의 제조 경쟁력이 독일과 일본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미래가 우리 앞에 있다는 거죠.

 

김 : 어떻게 보면 참 꿈만 같은 얘기이기도 합니다만 우리의 의지문제 같기도 합니다만

 

동 : 중국사람이 하는데 왜 한국사람이 못합니까?

 

정 : 남북 관계를 부러워 했던..완전히 역전된. 불과 몇 년 사이에.

 

김 : 뭔가 제 가슴속에서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제가 다시금 자각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촌철살인 같은 이런 말씀이 우리 어떤 이상과 열정을 각성시키고, 우리 가슴에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이런 어떤 말씀이라고 생각되니까 정말 독자 여러분들이 책 꼭 한번 읽어보셔야 돼요.

 

정 : 10년 후 통일입니다. 오늘 나눈 말씀은 이 책의 10분의 1도 안됩니다. 꼭 이 책을 한번

 

김 : 너무 많이 하는 것보다 궁금하게 만드는 것도 책에는 도움이 돼요.

아니 그런데 끝으로 대통령 선거에서도 낙선을 하셨고, 또 국회의원선거도 사실 낙선을 하셨단 말입니다. 그러면서 현장으로 많이 달려가서 현장의 정치인, 길 위의 대통령 이런 별칭도 있으세요. 앞으로의 정치활동의 전망 구상이 있으시면 좀 간략하게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동 : 이 책에 나온 내용을, 특히 젊은 층에게 어제도 경북 대학교 평화 연구소에 가서 특강을 했습니다만, 내일인가 서강대학 연세대학 원광대학 대학 강의를 쭉 다니면서 젊은이들에게 '통일이 밥 먹여 준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김 : 자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면 정전 협정 일에 태어나신 정동영 장관님의 제2의 인생이 열립니다. 여태까지는 정전협정의 인생, 그 다음에는 평화 체제의 인생입니다. 네 그렇게 해서 살 맛나는 세상, 천지개벽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정말 주옥 같은 말씀 감사 드리고요, 앞으로의 정치활동 또 젊은이들과의 만남도 큰 성과를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동 : 네 진짜 안보 팟케스트의 더 큰 융성을 바랍니다

 

김 : 네 감사합니다

 

정 : 네 장관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오늘도 어느덧 방송을 마쳐야 할 시간이 됐는데요, 아마 또 많은 청취자 분들께서 기다리고 계신 게 있습니다.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 김 종대 편집장님의 3분 칼럼, 이거 오늘 빼 놓을 수 없죠. 이거 칼럼 듣고 오늘 순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 편집자주 : 라디오 방송 녹취록을 조합원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주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 김윤상, 최정희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