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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 team/Today's DY Issue

박근혜는 정동영 표절녀? '해도 너무했다!'

 박근혜는 정동영 표절녀? '해도 너무했다!' 
 
 2007년 정동영 대선 슬로건 '가족행복' 그대로 사용‥정책·핵심참모까지 똑같아 

  [김영국] 2012.7.25    

선거 슬로건은 그 후보의 이미지와 노선·정체성을 상징하는 핵심 구호이다.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슬로건 하나가 전체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만큼 이 짧은 슬로건 하나를 정하는 데 모든 후보가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때 아닌 ‘슬로건 표절’ 논란이 일고 있다. 그 중심에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있다. 이미 심벌 이모티콘과 일부 슬로건 표절 논란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박근혜, '옷만 바꿔 입은 정동영'
 
언론이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마치 침묵의 카르텔을 맺은 것처럼 외면하고 있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작금 박 전 위원장측이 벌이고 있는 ‘정동영 표절’은 가히 ‘표절녀’ 저리 가라 수준이다.  

정동영 상임고문의 2007년 대선 슬로건인 ‘가족행복’을 글자 하나도 안 바꾸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정 상임고문이 지난 3년 동안 줄기차게 주창해왔던 경제민주화·복지확대·증세·남북문제까지 정책노선의 핵심 부분을 사실상 베끼다시피 하고 있다. 심지어 핵심 참모까지도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를 도왔던 인물이다. 슬로건 표절, 정책 표절, 사람 표절. 겉으로만 보면 ‘옷만 바꿔 입은 정동영’이다. 

박 전 위원장이 최근 들어 부쩍 자주 사용하고 있는 ‘가족행복’ 슬로건은 많은 국민들이 기억하고 있다시피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메인 슬로건이었다. 정 후보는 ‘가족행복 시대’라는 슬로건 아래 중산층과 서민가족의 행복을 위협하는 일자리·교육·주거·노후 문제 등 4대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보편적 복지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정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가족이 행복해야 진짜 선진국”이라며 “차별없는 성장으로 가족이 행복한 시대를 열겠다”고 외치며 전국을 누볐다. 선거대책위원회도 ‘가족행복위원회’로 명명했고, 후보가 직접 가족행복위원장을 맡을 정도였다. 전국의 선거조직도 ‘행복우체국’과 ‘행복은행’이라는 이름으로 가동됐다. 그야말로 <가족>과 <행복>이 정 후보의 2007년 대선 핵심 키워드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3월 27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새누리당은 총선 공약으로 ‘가족행복 5대 약속’을 떡하니 발표했다. 가족행복 5대 약속으로는 △건강 걱정 없는 편안한 노후 △비정규직 차별 없는 일자리 만들기 △주거비 부담 덜기 △새로운 청년 취업시스템 도입(스펙타파 취업) △보육에 관한 국가 완전 책임제를 공약했다. 정 후보의 ‘가족행복’ 슬로건을 그대로 사용했고, 공약 내용도 복지를 핵심으로 하는 것으로 매우 유사하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현재 박근혜 공식 홈페이지 상단에는 박근혜 이름 위에 ‘국민이 행복한 나라’라는 슬로건이 버젓이 박혀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의 메인 슬로건이자 벽보 포스터 문구였던 ‘가족이 행복한 나라’에서 가족을 국민으로 단어만 살짝 바꾼 것이다. 박 전 위원장과 새누리당은 이미 지난 3월 가족행복 5대 약속을 발표하면서 ‘가족행복이 국민행복’이라고 명시한 바 있다. 결국 ‘국민이 행복한 나라’는 ‘가족이 행복한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은 또 대선 캠프의 이름을 ‘국민행복캠프’라 명명하고 홈페이지까지 개설한 상태다. 이는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의 선거조직인 ‘가족행복위원회’와 너무도 유사하다.
 
박근혜의 2012년 대선 슬로건의 핵심 키워드도 <가족>과 <행복>에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명백한 ‘정동영 표절’이요 ‘뻔뻔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증세·남북문제·핵심참모까지 '닥치고 정동영 베끼기'   

박근혜 전 위원장과 새누리당의 최근 경제민주화와 증세 논란을 보면, 정동영 상임고문의 선견지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7월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제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개인의 삶과 행복 중심으로 확 바꿔야 한다”며 “국민행복의 길, 이 길이 박근혜가 가고자하는 새로운 국가발전의 길”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경제민주화 실현·일자리 창출·복지의 확대)와 오천만 국민행복 플랜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복지수준과 조세부담에 대한 ‘국민 대타협’을 추진하겠다”며 복지를 위해 증세도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다음 날 <평화방송>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박근혜의 대선 출마선언문과 관련해 “지금은 복지 재원 마련 때문에 비교적 여유있는 사람들에 대한 ‘증세’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1년 반 전인 2011년 1월 20일. 정동영 의원이 국회 복지재원 토론회에서 “보편적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부자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것과 판박이다. 당시 정 의원은 박 전 위원장을 향해서도 “박근혜는 복지를 자선으로만 본다. 복지 얘기하면서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허한 얘기”라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박 전 위원장이 제시한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 중 ‘경제민주화 실현과 복지의 확대’도 정 상임고문이 지난 3년 동안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아가며 주창했던 어젠다였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남북문제 관련해서도 정동영 표절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10일 대선출마 선언을 하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겠다”며 “안보는 확실하게 다지면서 북핵문제 진전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정 상임고문의 평소 지론이다.
 
특히 박 전 위원장은 “새로운 안보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통합적인 외교안보 콘트롤 타워를 구축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 상임고문이 이명박 정권에게 통합적인 외교안보 콘트롤 타워로 ‘NSC(국가안전보장회의) 복원’을 줄기차게 권고했던 취지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 같은 주장에 이명박 정부는 콧등으로도 듣지 않더니 결국 천안함·연평도 사태 등 안보도, 평화관리도 모두 실패한 정권이 되었다.
 
박 전 위원장은 또 지난 18일 강원도 철원 DMZ 생태평화공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등 역대 정권의 남북선언은 다 지켜져야 한다”며 “그것도 못 지키면서 새로운 약속을 해서 신뢰를 쌓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했다. 이 역시 정 상임고문이 이명박 정권을 향해 기회 있을 때마다 강력히 주장했던 것이다. 정 상임고문은 2010년 12월 29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남북기본합의서, 6.15 정상회담 선언, 10.4 남북공동선언 등은 대한민국 정부가 체결한 합의”라며 “이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심지어 대선 핵심 참모까지도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를 도왔던 인물을 끌어다 쓰고 있다.
 
현재 박근혜 대선 캠프의 좌장인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은 2007년 대선 때는 민주당 의원으로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에게 경제 자문을 해주며 적극 도왔던 인물이다. 당시 정동영 후보는 김종인 의원에 대해 “평소에 사숙하는 대선배님”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 전 의원은 지금 박근혜 캠프의 핵심 참모가 돼 박근혜 노믹스를 주도하고 있다.
 
참다못한 민주통합당이 발끈했다. 김현 대변인은 10일 논평을 통해 “박근혜 의원은 도를 넘은 표절을 중단하라”며 “캠프의 키워드인 ‘국민행복’은 지난 대선 민주당 후보의 공약과 유사하며, 경제민주화 역시 민주당에서 도용한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저작권자의 허락이나 저작권료도 내지 않고 가져다 쓰는 것도 파렴치한 일이지만, 도용하려면 제대로 쓰기나 하라”고 힐난했다.
 
5년 전 새누리당, "가족행복은 얼토당토않다" 맹비난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정동영 후보의 ‘가족행복 시대’ 슬로건은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경제성장 중심의 ‘국민성공 시대’보다 더 많은 국민들의 호감을 얻었었다. 대선 슬로건 경쟁에서만큼은 우위를 선점한 것이다.
 
2007년 10월 문화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가장 호감이 가는 대선 슬로건’에서 정동영 후보의 ‘가족행복 시대’가 25.6%로 1위를 차지했으며, 이명박 후보의 ‘국민성공 시대’는 21.5%,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의 ‘사람중심 진짜경제’는 20.2%로 나타났다. 또 11월 1일 발표된 SBS 여론조사에서도 정 후보의 ‘가족행복 시대’는 28.8%의 지지를 받아 1위를 차지했고, 이 후보의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은 23.6%, 문 후보의 ‘사람중심 진짜경제’는 20.2%로 조사됐다.
 
아무리 남의 슬로건이 탐난다 해도, 상대 당의 직전 대선후보의 슬로건을 글자 하나도 안 바꾸고 그대로 사용하는 건 선거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표절 논란을 떠나 정치 도의적으로도 예의를 크게 벗어난 일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정동영 후보가 가족행복을 들고 나왔을 때, 당시 한나라당이 논평을 통해 맹비난했던 걸 생각한다면 박근혜 후보의 표절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 정권 아래서 삶의 질의 악화가 가족 불행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자살률이 OECD에서 1위이고, 가계 부채가 700조에 달한다. 가구당 4,500만원씩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늘어나는 이혼의 가장 큰 요인도 경제적 고통으로 인한 것이다.  

국정의 실패를 말장난으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가족불행을 만든 장본인들이 ‘가족행복시대’ 운운 하는 것은 얼토당토하지 않다. 정동영 후보나 신당이 가족행복 시대를 만들겠다는 것은 돌로 양치질하겠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 논평-2007.11.4)
 
자, 이제 이명박 시대 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5년 전 새누리당이 노무현 정권을 향해 그토록 비난했던 자살률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이고, 가계부채는 200조가 더 늘었으며, 이혼률도 훨씬 높아졌다. 그만큼 이명박 시대의 가족이 훨씬 더 불행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5년 전 새누리당이 정동영 후보에게 쏟아낸 비난을 똑같은 가족행복을 다시 들고 나온 박근혜 후보에게 두 배로 돌려주는 게 공평하지 않을까.
 
이명박 747·박근혜 줄푸세‥'망한 슬로건'의 대명사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줄푸세를 타고 747로’를 주창하며 신자유주의적 성장론을 골격으로 하는 ‘경제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당시 박근혜의 경선 슬로건이었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까지 포함해서 ‘747’(7%성장, 4만달러 국민소득, 7대 경제강국)를 외쳤던 이명박 대통령의 슬로건은 임기 5년이 끝나가는 지금 사실상 ‘대국민 사기극’이었음이 판명되고 있다. 747 공약은 이 대통령 자신도 이미 포기한 지 오래됐다. 경제대통령 슬로건에서 경제는 ‘재벌경제’였음이 드러났고, 서민들의 삶은 노무현 정권보다 더 고단해졌다. 양극화는 더 극심해졌고, 재벌 대기업의 끝없는 탐욕은 펄벅의 메뚜기 떼처럼 동네슈퍼·문방구·떡복이집·콩나물집·빵집 등 골목상권까기 싹쓸이하며 서민들의 삶을 터전을 속속 위협하고 있다.
 
줄푸세 주창자인 박근혜 전 위원장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증세와 경제민주화(재벌개혁)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시대착오적인 슬로건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당시 많은 국민들은 정동영과 이명박 슬로건의 차이점에 대해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양극화가 심화됐고, 일부 정치행태에 대한 반감이 압도한 상태에서 ‘대기업 CEO 출신이 대통령 되면 경제 하나는 잘할 것’라는 망상에 빠져 이명박 후보에게 몰표를 던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동영 후보 자신도 가족행복이라는 슬로건을 정치적 신념으로 내면화했다는 신뢰를 국민에게 주지 못했고, 정책의 구체성과 정밀성이 부족했던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정동영의 가족행복 구호가 뜬금없다는 느낌을 준 것도 그 때문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정동영은 이미 반성문까지 썼다.
 
박근혜의 정동영 표절, '진보 낚시용 훼이크'
 
가족행복,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증세 논란, 남북 문제 등 진보적 노선을 취하는 척하면서 박근혜 전 위원장이 중도·진보층을 상대로 일정 부분 어젠다 잠식 효과를 누리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박 전 위원장과 새누리당의 기본적 토대는 여전히 선별적 복지, 재벌 대기업 법인세 인하, 대북 상호주의이고, 진보적 어젠다를 실현시킬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대표적인 게 증세와 관련한 자기모순이다. 박 전 위원장은 자신의 출마선언문이 증세 수용 논란으로 이어지자, 지난 7월 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꼭 증세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며 “법인세는 가능한 한 낮춰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근혜표 증세가 재벌 대기업이 아닌 일반 서민에게 표적이 맞춰져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대기업 감세를 유지하면서 증세를 한다는 건 하나 마나 한 소리다. 사회적 양극화로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 재벌 대기업에 증세를 안 하고, 일반 서민들을 상대로 증세를 한다는 건 그 효과도 미미할 뿐더러 사실상 ‘증세 사기극’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면서 법인세 인하를 주장하는 것도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얘기다.
 
박 전 의원장의 좌클릭이 진보 유권자를 낚기 위한 훼이크(fake)에 불과하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는 대목이다. 

대선 슬로건의 역사 그리고 '가족행복'

우리나라의 대선 슬로건 역사를 살펴보면, 당시의 시대정신과 대결구도가 고스란히 보인다.
 
우선 1956년 3대 대선에서 야당인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기념비적인 슬로건을 남겼다. 비록 정권을 바꾸지는 못 했지만, 이 간결하고 직설적인 구호로 장기집권을 노리던 이승만 독재정권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민주화의 열망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진 1987년 제13대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는 ‘보통사람’을 자임하며 ‘이제는 안정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당선됐다. 당시 김영삼 후보는 ‘군정종식’을, 김대중 후보는 ‘평민은 평민당, 대중은 김대중’을 내걸었다.
 
1992년 제14대 대선에서는 김영삼 후보가 ‘신한국 창조’와 ‘문민정부’를 내세워 당선되었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이번에는 바꿉시다’를 주장했다.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는 IMF 외환위기 국면에서 야당의 김대중 후보가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 하에 ‘경제를 살립시다’를 주창했고,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를 내세운 집권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역사적인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내세운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처럼 2002년까지의 대선 슬로건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에 있어서 안정이냐, 변화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핵심이었다. 따라서 인물론이 강조되었고, 의제 면에 있어서도 경제성장론에 치중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정동영 후보가 2007년 대선에서 인물론도, 경제성장론도 아닌 ‘보편적 복지’에 바탕을 둔 ‘가족 행복’의 개념을 대선 슬로건에 등장시킨 것은 선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성장론을 앞세워 양극화로 치닫는 격차사회를 차별 없는 성장과 보편적 복지를 통해 가족이 행복한 사회로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또한 ‘보편적 복지’ 논쟁이 정치권에서 본격화되는 최초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가족 행복’ 슬로건의 등장은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절녀는 승승장구, 선구자는 왕따·불출마 수모
 
비록 2007년 대선에서 패배는 했지만, 정동영의 국가운영 철학과 비전만큼은 시대정신과 시대적 과제를 정확히 담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사회적 분위기에 비해 의제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은 아닌가, 그래서 모난 돌이 정 맞듯이 선도적으로 주장하는 족족 보수언론과 정치권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맞고 왕따를 당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09년 국회 재입성 이후 정동영 상임고문은 비주류 소수파를 이끌고 여러모로 불리한 악조건 속에서도 보편적 복지뿐만 아니라 부자증세, 재벌개혁 등 경제민주화, 노동권 보장 및 강화, 한미FTA 독소조항 제거까지 진보적 어젠다들을 전방위적으로 의제화시키며 이를 민주당의 정강 정책으로 만들고, 시대적 대세로까지 이끌어냈다.
 
그가 1년 전 이런 주장들을 펼칠 때만 해도,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물론 같은 편인 민주당 내에서조차 지나치게 앞서간다며 비웃고 비아냥대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정 상임고문이 느꼈을 모멸감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러나 결국 2012년 현재 정동영이 지난 3년 동안 선도적으로 주창했던 진보적 어젠다들은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조차 외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모했다.
 
작년 10월 재벌 출신의 한 보수신문은 진보적 주장과 실천을 선도하는 정동영에게 “한국 현대사의 실패”라며 저주에 가까운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정동영의 저주스런(?) 발언들은 지금 새누리당의 독보적 대선후보인 박근혜가 똑같이 따라하고 있다. 심지어 정동영의 2007년 대선 슬로건까지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표절해 쓰고 상황이다. 아마 정동영이 과거 박근혜의 주장과 슬로건들을 표절해 사용하고 있다면, 정치권과 언론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동영 표절녀’ 박근혜는 대선 국면에서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선구자 정동영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해야 할 정도로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철저하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 어쩌면 한 정치인에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가 있을까. 과연 정동영이 호남 출신이 아니어도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2012년 대한민국에도 ‘친일파는 3대가 떵떵거리며 살고, 독립운동 선구자들은 3대가 가난과 궁핍에 시달리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건 ‘상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