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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 team/Today's DY Issue

“재개발로 쫓겨난 뒤 내 인생은 구멍났다”

 

“재개발로 쫓겨난 뒤 내 인생은 구멍났다”

2013.01.17  최유빈 기자

용산참사 유가족 및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17일 저녁 서울 용산구 참사현장에서 구속자 석방과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며 추모 4주기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용산참사 4주년 피해증언대회
“생활고로 일용직 전전” 불안한 삶
강제퇴거금지법·철거민 사면 요구

서울 내곡동 헌인마을에서 가구점을 운영하던 김상철(48)씨는 2008년 재개발로 쫓겨났지만 아직도 그곳을 떠날 수가 없다. 당시 업체 80여개가 들어서 있던 동네엔 김씨를 포함해 3가구만 남았다. 헌인마을의 재개발 시행사는 사업의 수익성을 보고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은행권으로부터 4000억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땅값만 올라갔을 뿐 분양시장 침체 등의 이유로 5년째 공사가 중단돼 있다. 김씨는 “인생에 구멍이 났다. 어느 누구 하나 우리에게 신경쓰는 사람이 없다. 생활고로 일용직을 전전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김명희(40)씨도 2011년 경기도 부천 중3동에서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15년 동안 운영하던 중국집을 닫고 살림집에서도 쫓겨나야 했다. 재개발 조합은 사업승인이 나기도 전에 철거를 시작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를 이유로 공사는 중단됐다.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발지역 피해자 증언대회’에 나선 시민들은 하나같이 ‘무자비한 철거로 쫓겨났지만 정작 재개발 공사는 중단됐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대책 없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재개발과 철거를 중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증언대회는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와 정청래·윤후덕·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 오병윤 통합진보당 의원이 함께 열었다. 용산참사 4주기를 맞아, 여전히 대책 없이 진행되는 강제철거와 무분별한 재개발을 공론화하고 해법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이날 참가자들은 개발사업에서 주거권과 재정착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을 요구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폐기됐고, 19대 국회에서 정청래 의원 등 20명이 발의했지만 상임위원회에 계류중이다.

이 법안을 18대 국회에서 대표발의했던 정동영 전 민주통합당 의원은 “강제퇴거금지법에는 퇴거 현장에서 폭력과 폭언을 금지하고, 혹한기와 해가 진 뒤 강제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9대 국회에선 꼭 이 법이 통과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또 정부가 용산참사 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을 밝힐 것과,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중인 철거민 6명의 사면을 요구했다. 징역형을 받은 철거민 8명 중 2명은 지난해 10월 가석방됐고, 나머지 6명은 짧게는 올해 10월까지, 길게는 2015년 1월까지 수감 생활을 해야 한다.

이원호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 사무국장은 “용산참사 현장은 4년째 아무런 진행 상황 없이 주차장으로 변했다. 책임지는 사람 없이 철거민만 감옥에 있다. 용산과 같은 무분별한 개발과 폭력 철거를 막기 위해 강제퇴거금지법안을 마련했다. 유엔 인권위원회가 권고한 대로 강제퇴거는 중대한 인권침해인 만큼 빨리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범국민추모위는 19일 오후 2시엔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터에서 추모대회를 열고, 20일에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역을 찾아가 희생자들을 참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