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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개성공단의 가치는 전쟁 조기경보 기능”

 

“개성공단의 가치는 전쟁 조기경보 기능”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이 북한의 군사행동 출발선을 뒤로 밀어 전쟁 경보기능을 24시간 향상시켰다”라고 말했다. 북한 문제는 우리가 직접 주도해야 가장 잘 풀리고, 미국도 그걸 원한다고 말했다.

2013.04 시사인 제292호 천관율 기자

북한발 위기의 불똥이 개성공단으로 튀었다. 해법을 들으러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4월12일 만났다. 정 전 장관은 개성공단이 가동을 시작할 때 통일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북․미 관계를 중재한 경험이 있다. 2007년 대선 후보 때는 ‘평화경제론’을 내놓았지만 ‘경제성장론’에 밀렸다.

경제적 가치 말고, 개성공단의 가치는 뭔가?

북한의 남침로 최단거리가 대략 40km다. 북한이 전격전을 선택할 경우 대책을 세우기 힘들 정도로 짧다. 그 때문에 한국군과 미군은 조기 경보 기능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 붓는다. 개성 공단은 북한의 군사행동 출발선을 뒤로 밀어 조기경보 기능을 24시간 이상 향상시켰다. 장사정포 역시 15km를 뒤로 물렸다. 2004년 8월에 럼스펠드 당시 미국 국방장관을 만나 이런 내용을 설명했더니, 핵심 반대파였던 미국 국방부가 개성공단 찬성으로 돌아섰다.

미국은 왜 회의적이었나?

당시는 2차 핵 위기가 진행 중일 때다. 미국은 개성공단을 일종의 ‘보상’으로 봤다. 도발에 보상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했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은 보상이 아니라 군사․안보 전략적 가치가 크다고 설득해서 분위기가 뒤집혔다. 럼스펠드가 다음 날 부시 대통령을 만나 오케이를 받았다. 북한을 믿지 않던 공화당 정부도 전략적 가치에는 동의한 것이다.

개성공단이 북한의 ‘달러 박스’여서 핵 개발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사실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과 관계를 끊은 동안 북측은 중국에서 훨씬 더 많은 달러를 벌어들였다. 중국과의 광물 거래로 벌어들인 돈만 16억 달러다. 개성공단의 8000만 달러보다 20배나 많다.

이명박 정부의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전략적 부담론’을 제기하며 개성공단을 포기하자고 했다. 우리 근로자와 기업의 자산이 북한의 ‘인질’이 된다느 얘기인데.

남북관계에 실패한 이명박 정부의 안보 사령탑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하는 소리다. 상황을 이렇게 끌고 온 핵심 책임자가 할 말이 아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서울에 왔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화 의지를 보였다.

마주 보고 달리던 두 열차 중에서 한쪽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일단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김정은 제1비서의 귀에 들어가도록 채널을 동원해 대화 의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서 얘기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직접 전달되어야 한다. 이번 위기는 우리가 주도해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를 겪은 북한이 한국 정부를 신뢰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북한 엘리트들 사이에는, 선거로 정권이 바뀌는 남한 정부는 오래 믿고 도모할 파트너가 아니라는 ‘학습효과’도 있다고 한다.

나는 2차 핵 위기가 한창이던 2005년 6월17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2007년 이후 어떤 정부가 들어올지 알 수 없다며, 참여정부와 남은 2년 동안 ‘통 큰 해법’을 찾자는 합의를 했다. 김 위원장은 그 자리에서 “비핵화는 아버지의 유훈이다”라고 했다. 즉시 미국으로 가서 네오콘의 수장인 체니 부통령을 만났다. 체니는 김정일을 믿기 힘들다는 투로 한 달 안에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면 그의 제안도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북한은 정말로 한 달 뒤에 복귀했고, 6자회담은 그해 9월19일 핵포기 선언까지 끌어냈다. 북한 문제는 북한이나 미국이 아니라 우리가 주도할 때 가장 잘 풀린다. 미국도 그걸 원한다.

‘평화와 비핵화의 교환’이 지금도 유효할까.

더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북한은 이제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만들려 하고, 미국은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북한의 핵을 눈감아주는 것이 옵션에 없다. 북․미 사이에서 해법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가 주도해 해법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대화 의지를 직접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