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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박근혜, 한국의 닉슨 대통령이 돼야 한다"

 

"박근혜, 한국의 닉슨 대통령이 돼야 한다"

[인터뷰]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2013.04.14  권우성 기자, 이주연 기자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의 닉슨을 목표로 삼는다면, 전쟁의 위협에 빠진 한반도를 화해와 협력·공존의 길로 이끌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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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의 닉슨이 될 기회다."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됐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어느 선까지 진행될지 누구도 확답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할 것"이라며 나섰다. 미국은 북핵 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 한·중·일을 바삐 오갔다.

이런 상황을 두고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의 닉슨을 목표로 삼는다면, 전쟁의 위협에 빠진 한반도를 화해와 협력·공존의 길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4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그는 "극우 반공주의자인 닉슨 대통령이 중국과 협상한다고 나섰을 때 미국이 분열되지 않았듯,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과 협상해도 '종북 논란'은 빚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내부적 반발이 덜할수록 외교적 보폭은 넓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국이 역할할 수 있는 외교적 틈도 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핵 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선 상황"이라며 "강 대 강으로 부딪힐 때 중간에 한국이 개입해 발언권을 회복하고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닉슨 대통령이 되기 위한 첫 걸음은 개성공단 재가동이다. 정 전 장관은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부터 열어야 한다"며 "대북채널을 통해 개성공단에 대한 생각과 남북관계에 대한 철학을 김정은 위원장 귀에 직접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역할 역시 박 대통령이 져야 할 몫이다.

정 전 장관은 민주통합당에도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민주당에는 지난 10년 동안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온 경험, 사람, 철학이 있다"며 "야당에만 머물게 아니라 자신감 있게 움직여야 한다, 미국·중국도 가고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성공단의 군사·전략적 가치를 제대로 알려내는 것 역시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박근혜 "대화할 것"이라고 나섰지만... "미국이 앞서가고 우린 따라가는 느낌"

-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할 것"이라고 직접 밝혔다. 직전에 김행 청와대 대변인이 '대화 재개가 아니다'라고 밝히는 등 내부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11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우물쭈물 하고, 정홍원 총리가 '대화 제의는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그 날 저녁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화 제의가 맞다고 정리했다. 내부 정리가 아직 명쾌하지 않구나 인상을 줬다. 박 대통령이 대화 제의가 맞다고 확인한 다음 날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이 한국에 왔다. 긍정적으로 보면 한미 조율이겠지만 앞서서 끌고 가는 건 미국이고 우리는 따라가는 느낌이 있다."

-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정부의 대화 제의에 대해 "교활한 술책"이라고 했다. 사실상 대화 거부로 읽힌다.

 

"조평통은 선전기구다. 그걸 너무 크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상황 관리다. 우리도 대화하자는 원칙만 밝힌 거지 구체적으로 제안한 건 아니지 않나. 우선은 통일부가 나서서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 만나자고 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극우단체의 삐라 살포를 막았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관리는 잘하고 있다고 본다. 정부 내 혼선이 일어나지 않게 잘 관리하고 개성공단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면 북한도 미사일을 쏘지 못하지 않겠나."

- 존 케리 장관은 "북한이 대화의 진정성을 보인다면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서 밝힌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북에 어떤 메시지를 줬다고 생각하나.

 

"북한은 지난 20년 동안 북미 적대 청산에 초점을 기울여 왔다. 케리 장관의 언급을 통해 북한은 5월 한미 정상회담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오바마 2기의 대북 정책과 박근혜정부의 남북관계 정책이 어떻게 조율될까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또, 케리 장관이 중국에 가서 '북이 비핵화 하면 미국이 동아시아 MD(미사일 방어망)를 축소할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밝힌 것도 굉장히 중요한 언급이다. 북핵 문제의 해법은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인데 이를 향해 가는 길목에 MD는 큰 장애물이다. 이걸 축소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 결국, 미국이 움직이니 뭔가 해결되는 분위기다. 대북 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을 또 빼앗긴 거 아닌가.

 

"박근혜 당선자 시절 나는 '외교적 공간을 열심히 만들라'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 말이 맞았다. 북한과 미국이 강 대 강으로 부딪힐 때 우리가 외교적 공간을 만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케리 장관이 서울, 북경을 바삐 움직이는 건 당연하다. 한국도 그렇게 움직여야 한다. 통일부·외교부 장관이 서울에 앉아 있을 게 아니라 워싱턴, 북경 등을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정부 초기라 아직 팀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건 이해하지만,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발품을 팔아야 한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2차 핵 위기 때는 부시 정부였고, 지금은 오바마 대통령이다. 문제의 본질은 악화됐어도 주변 환경은 더 좋아진 것이다. 지금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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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도권이 빼앗긴 상황이 계속될 거라고 보나.

 

"1차 핵 위기는 1993년, 2차는 2003년, 3차는 2013년에 일어났다. 1차 때는 우리 정부의 역할이 없었다. 그 때는 외교관들이 미국 협상 대표가 말한 내용을 받아 적는 역할을 했다. 2차 핵 위기와 함께 참여정부가 출범했는데 그 때는 미국과 함께 6자 틀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6자 틀이 가다 서다를 반복할 때도 한국이 움직여서 6자 틀을 가동시켰다. 2005년에 내가 직접 평양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고, '비핵화가 아버지의 유훈이다, 미국이 우리를 대등한 상대로 인정하면 다음 달에라도 6자회담에 나간다'는 말을 얻어내기도 했다.

이제 3차 핵 위기다. 미국이 움직이는 건 당연하지만 우리가 같이 움직여야 한다. 어물어물 하다보면 1993년 핵 위기 꼴 나게 된다. 1994년 10월 제네바 기본합의 때 한국은 아무 역할을 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경수로 건설에 3조 원의 돈만 지불했다. 그 때 상황과 지금이 굉장히 비슷하다. 2차 핵 위기 때는 부시 정부였고, 지금은 오바마 대통령이다. 문제의 본질은 악화됐어도 주변 환경은 더 좋아진 것이다. 지금 나서야 한다."

- 북한의 강경 노선 자체가 대미 메시지 아닌가.

 

"북한은 지난 5년의 경험을 통해 남쪽에 힘을 빌려 자신들이 원하는 체제 보장과 안전 보장을 이뤄낼 수 없음을 체득했다. 남북협력 없는 독자 생존 추구로 가게 됐다. 로켓 발사, 핵실험은 철저하게 미국을 상대로 한 계산된 행동이다. 전략적 무시·전략적 인내를 계속할 건지 오바마 정부 2기에 묻는 것이다.

1기 오바마 정부는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 국내 경제 위기 등 골치아픈 현안이 너무 많아 북한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산적한 현안에 북은 우선순위에 밀렸고, 오바마는 북에 대해 '동맹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만 했다. 그걸 전략적 인내라고 포장했다. 실은 방치였다. 그 기간 동안 북한은 핵 능력을 결정적으로 강화했다. 플루토늄을 생산하고 우라늄 농축·핵 실험·로켓 발사 등 모든 걸 해치워버렸다. '핵 없는 세계'를 만들겠다는 오바마 정부의 목표를 두고 본다면, 미국의 정책은 실패한 것이다."

- 2기 오바마 정부는 대북 정책을 바꿀 거라고 보나.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인들에게 빚이 있다. 2009년 노벨평화상을 가불받지 않았나. 오바마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수상 소감에서 '안전하고 평화로운 핵 없는 세계를 위해 노력하라는 뜻에서 이 상을 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 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케리 장관과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 장관을 전면으로 내세운 건 '오바마 외교'를 해보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이 둘은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자 베트남 수교에 앞장 선 사람이다. 폭탄으로는 베트남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지 못했지만 미-월남 수교를 통해서 미국은 동남아시아에서 확고한 지위를 얻었다. 케리·헤이글 장관에게는 가장 성공적인 외교 성과 중 하나로 꼽히는 미·월남 수교를 이끈 자부심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오바마의 두 팔로 포진된 것은 우리에게 굉장한 기회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의 닉슨이 될 기회다. 극우 반공주의자인 닉슨 대통령이 중국과 협상한다고 나섰을 때 미국은 분열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과 협상한다고 했을 때 누가 의심하겠냐. 진보 정부가 대북 협상할 때는 '종북 논란'이 빚어지며 발목 잡을 사람이 많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점에서 자유롭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헨리 키신저(전 미국 국무장관)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닉슨에서 설계도를 그려준 국제 정치학의 대가인 키신저 같은 인물이 박근혜 대통령 곁에도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다."

"박근혜 평화체제를 터부시 하지 말고 생각을 전환해야"

- 박근혜정부가 현 국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

 

"마주보고 달리던 열차 중 한 쪽이 멈췄다. 이를 대화 국면으로 바꿔야 한다. 전례로 보면 북한은 큰 행사 전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가 그 이후에는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15일이 태양절(김일성 주석의 생일)인데 당분간은 큰 액션이 없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우리 정부가 할 일은 개성공단을 빨리 여는 거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 귀에 박 대통령의 생각과 의지를 빨리 전달해야 한다. 언론을 통해 얘기한 게 다일 수는 없다. 대북 채널을 통해 개성공단에 대한 생각, 남북관계에 대한 철학을 직접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움직이지 않겠냐. 정상적인 정부라면 벌써 이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것도 안 하고 있으면 바보들이지.

지금 박근혜정부에 필요한 건 상상력이다. 개성공단은 창조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금강산 관광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상력이 발휘돼야 한반도 정세를 주도할 수 있다. 지금 북의 목표는 평화체제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닉슨이 되라고 하는 건, 평화체제를 터부시 하지 말고 생각을 전환하라는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한반도 평화 체제를 주도할 수 있다면 대단히 큰 역사적 의미가 있다. 민족 이익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박근혜정부의 대북 정책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고 하는데 개성공단 정상화가 곧 신뢰의 상징 아니냐. 이걸 재가동 시키면 정치·군사적 위기가 오더라도 개성 공단은 살아남음을 또 한 번 보여주게 된다. 동방정책 설계자인 에곤 바르 독일 정무부 장관을 만난 적 있는데 개성공단에 대해 '한반도 통일 모델이 곧 개성 모델'이라고 하더라. 개성공단을 쭉 유지해 확장·발전시키다 보면 경제 통합이 있을 것이고 그 종점에 통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확신을 갖고 얘기하더라.

실제 이번에 전쟁 위기가 고조 됐을 때 국민들이 라면 사재기를 안 한 게 개성공단 효과라고 본다. 지난 8년 동안 매일 같이 개성공단 통근 버스가 북한을 오갔다. MB 정부 5년 동안 연평도 포격, 천안함 사태가 있었지만 (통근은) 계속됐다. 이같은 비정상적 상황 덕분에 한반도는 상당부분 안정화 됐다.

내가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면 개성공단은 2012년 완공됐을 것이고 50만 도시가 운영됐을 거다. 해주 공단, 원산 조선소·남포 조선소, 서해바다 개성공단까지. 이렇게 진행됐다면 2차, 3차 핵실험은 상상할 수 없다. 핵은 불능화로 갔을 것이다. 북미 관계도 정상화 수순을 밟아 갔을 것이고 2012년에 북한 미 대사관에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었을 것이다. 한반도 냉전은 녹았을 것이다."

- 이런 국면에서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민주당에는 지난 10년 동안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온 경험, 사람, 철학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에도 가고, 미국도 가고,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만나야 한다. 내가 당 대표였다면 당장 보냈을 것이다. 민주당이 야당에만 머물 게 아니라 자신감 있게 움직여야 한다. 또, 개성공단이 단순히 경제 사업이 아니라 군사·전략적 가치를 갖고 있음으로 집중적으로 알려내야 한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박근혜 대통령은 가능한 빨리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야 한다. 동족 간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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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한반도 운명의 결정적 장애물이 핵이다. 이걸 우리가 설계하고 관리해야 한다. 동족과는 소통하고 동맹과는 공조해야 하고 동반자는 끌고 가야 한다. 그 성공모델이 2005년 9·19 공동성명이다. 9·19 성명은 한반도 평화, 통일로 가는 깃발이다. 핵 포기도 담겨 있고 북미 적대 관계 개선도 포함돼 있다. 그걸 우리가 주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가치가 있다. 케리 장관도 '9·19를 이행하자'고 하지 않나.

현재 북한은 핵 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고, 미국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선 상황이다. 강 대 강으로 부딪힐 때 중간에 한국이 개입해야 한다. 발언권을 회복하고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고 9·19 성명을 재작동시키는 것, 그게 우리의 과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가능한 빨리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야 한다. 동족 간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중반에 정상회담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종반에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 북과 직접 소통한다면 그 의미가 크다. 한국의 닉슨을 목표로 삼는다면, 전쟁의 위협에 빠진 한반도를 화해와 협력·공존의 길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