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동영의 말과 글

"北 설득할 남북간의 채널 필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北 설득할 남북간의 채널 필요"

 

2013.04.10 TV조선 인터뷰 전문

 

 

 

앵커 : 지금 화면에서도 보셨습니다만 여러 가지 북한이 도발카드를 다각적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북한이 원하는게 전쟁일까요 아니면 대화일까요 아니면 또다른 속셈이 있는 걸까요. 이 가운데 지금 위기에 처한 곳이 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개성공단입니다. 우리 근로자가 아직 300명 가까이 북한에 지금 남아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북한이 어떤 움직임을 어떻게 나타낼지 그야말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위기의 개성공단, 오늘 개성공단을 만드신 주역입니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을 모시고 개성공단 문제를 집중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정동영 : 네, 안녕하세요.

 

앵커 : 개성공단, 사실상 이틀째 올스톱 상태인데 북한이 원하는 게 먼가요? 이런 거를 통해서...

 

"공단 차단,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노린 카드"

 

정동영 :나름대로 정치적 의도가 있지요. 미국의 대북정책, 한국의 대북정책을 바꾸기를 원한다고 봅니다.

 

앵커 : 어떤 대북정책을 바꾸기를 원할까요?

 

정동영 : 지난 5년 동안 남북대화는 다 끊어졌지요. 또 새 정부가 출발했는데 지난 5년과 같은 건지 다른 건지 분명치 않지요. 여기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고 봅니다. 또 오바마 정부 1기 4년 동안, 전략적 무시라고 합니다만, 어쨌든 북한이 원하는 북미간의 직접 대화 협상은 없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한, 미 양측을 향해서 정책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위기를 계속 고조시키고 있다, 이렇게 보입니다.

 

앵커 : 그건 북한이 원하는 거고요, 원칙적으로 그렇다면 우리 정부, 대화와 타협을 하겠다, 신뢰 프로세스를 가져가겠다라고 천명을 했는데 북한이 원하는 게 진정한 대화라면 대화의 창구로 나와야 되는데 이렇게 도발을 하는 이유, 합당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정동영 : 이렇게 봐야 되겠지요. 그러니까 지난 5년 동안은 남북 관계가 적대적이었단 말이지요. 그러면서 이것이 북핵문제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갔어요. 그 증거가 6자회담이 5년 동안 한 번도 못 열렸습니다. 6자회담이라는 것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 만든 틀이란 말이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핵문제가, 3차 핵실험으로 붉어진 문제가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쳐서 그 불똥이 개성공단 폐쇄 위협으로 엉뚱하게 튄 거란 말이지요. 이게 악순환인 거지요. 북핵문제는 기본적으로 북미간의 적대관계 속에서 지난 20년 동안 역사가 있는 것이고 개성공단은 남북이 당사자이지 않습니까?

 

앵커 : 북핵 문제는 남북간의 문제는 아닙니까?

 

정동영 : 우린 당사자입니다만, 기본적으로 그러나 북핵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거에 있어서 이것을 냉전의 산물이다, 지구상에서 지금 아직 적과 적으로 남아 있는 나라가 드물지요. 그 중의 하나가 6.25 때 적으로 싸웠던 한국과 미국이 한 편이었고, UN군.. 북한과 중국이 한 편이였는데, 우리와 중국, 우리와 소련, 당시, 우리와 러시아는 우방이 됐어요. 동반자가 되 버렸어요. 그런데 여전히 북쪽은 미국과 적대 관계란 말이지요. 이 속에서 핵문제 20년이 있었다고 봐 지는 거지요.

 

앵커 : 그러면 장관님은 북핵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는 빠져야 된다, 북한과 미국과의 문제이다, 둘이 양자 회담을 해야된다 라고 보시는 겁니까?

 

"9·19 선언은 한국 외교의 주도로 이룬 것"

"한국, 핵 문제의 당사자로서 적극적으로 역할 해야"

 

정동영 : 아주 좋은 질문을 하셨는데요. 북핵 문제가 93년 3월이 1차 위기에요. 2013년이니까 딱 20년 됐자나요? 여기서 1차 핵위기 때 핵위기를 동결, 봉합한 것은 제네바 북미 협상이였어요. 그 때 우리 외교관이 할 수 있는 일은 미국 외교관이 브리핑 해주는 것을 받아 적는 것 밖에 없었어요. 완전히 빠졌단 말이지요. 그런데 2차 핵위기가 2003년입니다, 10년 뒤에. 그땐 참여 정부 때인데, 한국이 끼어든 겁니다. 적극적인 외교를 발휘한 거에요. 그래서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만들어 낸 것은 한국 외교의 개가입니다. 그 때 제가 통일부 장관 겸 NSC 위원장으로서 그 과정을 지휘도 하고 지켜봤습니다. 한국이 북을 설득했고 북을 설득해서 북한과 미국이 적대 관계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겠다, 대신 핵을 내려놔라, 그래서 결과적으로 9.19라는 것은 한국의 주도력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았단 말이지요. 그 다음에 3차 핵위기가 이번에 생겼지 않아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북한과 미국이 치열하게 주고 받는 것이지 한국이 빠져있는 거에요. 여기서 주문은 한국이 핵문제와 관련해서, 개성공단 문제는 당사자고,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한반도 비핵화의 당사자로서 여기에 적극적으로, 창의적으로 역할을 해야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난 3,4개월 동안 핵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의 역할은 없었어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 북한이 무시전략을 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우리는 주도적으로 가고 싶어 하는데 북한이 ‘너는 빠져’ 그래서 그런 것 아닐까요? 여태까지 계속 그랬자나요.

 

정동영 : 주도를 하려면 어쨌든 만나야 될 거 아니에요, 얘기를 해야 될 거 자나요.

 

앵커 : 북한이 6자 회담의 틀 안에 안 들어오는 것 아닐까요?

 

정동영 : 남북간의 일체의, 적십자 대화까지 다 끊어진 지난 5년이었단 말이지요. 그것이 부정적인 영향이 미쳐서 6자 회담이 5년 동안 한번도 안 열렸어요. 남북 회담도 없지, 6자 회담도 없지, 그 상황에서 결과는 북한의 핵능력은 몇 십배가 커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부시 정부 5년 동안의 핵능력 강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의 미국은 전략적 무시, 이런 상황 속에서 핵능력의 강화, 지난 10년 동안의 산물이 북한의 핵 실험 3번, 위성 발사 성공, 계속적인 위협적인 위기의 증폭. 그 속에 지금 느닷없이 한반도가 세계의 뉴스에 주목에 놓이게 되었어요.

 

앵커 : 그러면 장관님 논리대로라면, 10년 동안의 남북 대화의 단절, 미국의 무시전략이 없었다면 북한이 핵개발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북을 설득할 남북간의 채널 필요"

 

정동영 : 북해 20년 역사에서 대화가 작동될 때는 북한의 핵능력 증진도 멈췄습니다. 93년, 94년 1차 핵위기 때, 제네바 합의에 의해서 동결됐자나요. 그게 10년 됐습니다. 2차 핵위기가 2003년 폭발하고 그 당시 미국의 부시 정부는 북한을 악으로 규정했습니다. 악은 사탄이고 사탄은 제거 대상이자나요. 적대적인 관계 속에서 북은 핵에 매달립니다. 그 때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남북관계를 통해서 소통하면서, 한미 공조를 강화하면서 북에 대해서 핵을 포기하도록 지속적으로 설득한 거에요. 오늘 현재 북을 설득할 아무런 채널이 없자나요, 대화 자체가 끊긴지 5년이 넘었는데. 그래서 지금 해야 할 일은 우선 남북간에 채널을 열어라 하는 겁니다. 1차적으로는 개성 공단을 살리기 위해서 채널이 필요한 것이고, 두 번째로는 핵문제에 직접적인 피해자로서, 당사자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일단 만나서 대화를 해야 무슨 역할을 할 것 아니에요.

 

앵커 : 대화를 할 상대가 된다고 보십니까, 지금 북한의 상황이?

 

정동영 : 전쟁 중인, 교전 중인 당사국 간에도 대화는 있습니다.

 

앵커 : 그렇죠, 물밑대화나 이런 채널은 나와 있겠죠.

 

정동영 : 예를 들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보면, 케네디 대통령 옆에 있는 참모들 중에 별을 단 장성들은 다 선제폭격을 주장했어요. 케네디 대통령이 그 말을 들었으면 세계는 재앙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지 않고, 올해 쿠바 관련 문서가 해제되서 올 여름쯤 책으로도 묶여 나오는데요, 거기에 보면 당시 백악관과 소련의 흐루시초프 간에 300회가 넘는 교신이, 물밑 접촉이 이루어집니다. 그런 전쟁 일보전 상황에서도 결국은 문제를 대화를 통해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 그러니까 싸우지 않고 평화를 만드는 것이 가장 강한 것이고 이기는 것이지..

 

앵커 : 너무 이상적인 거 같은데요, 장관님. 지금 상황에서 북한의 입장을 하나하나씩 정리해 보겠습니다. 정전협정 파기했지요. 사실상 전쟁을 하겠다는 레토릭 아닙니까? 수사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개성공단 이틀째 문 닫았지 않습니까? 미사일 지금 발사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조성중앙TV라는 자기들의 공영 매체를 통해서 남한 내에 있는 외국인들한테 다 나가라는 것 아닙니까? 이건 사실상 전쟁 선포나 다름 없는 상황인데, 이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나 특사가 ‘김정은 너한테 대화 할 테니까 나와 달라’. 이게 합리적일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 경우에도 전쟁 용납할 수 없어"

 

정동영 : 사실을 쭉 나열하셨는데요. 그건 북한의 행동과 조치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팔짱을 끼고 있는 것, 군사적인 대응을 하는 것, 채널을 가동시켜서 대화를 다시 하도록 외교력을 발휘하는 것, 이런 선택이 있겠지요. 그런데 대원칙은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3일만 꾹 참고 견디면 북한 밀어붙일 수 있다 하는데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만 대화는 굴복이 아닙니다. 약자가 대화를 얘기할 때는 비굴할 수 있지만, 강자가 대화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가장 강한 수단입니다. 남북간에서 누가 강자입니까? 이미 체제 경쟁은 오래 전에 끝나 있었어요. 2000년에 남쪽의 대통령이 북쪽에 갔다 오셨지요? 김대중 대통령이 뭐라 그랬어요, 첫 선언이...

 

앵커 : 장관님, 남과 북의 군사적 우위나 이런 상황들, 아니면 경제적 우위나 이런 상황들은 전문가 분들이 이미 해석을 해 놓으셨으니까 시청자 분들이 잘 아실 것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과연 약소국이냐,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가장 가난한 나라의 문제, 외교로 풀어야"

 

정동영 : 제가 이 얘기를 하나 소개하지요.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죽의 장막을 열어 젖힌 국제 정치의 대가가 키신저 박사인데요. 한국에도 여러 본 오고, 조선일보 행사에도 오셨고, 저도 세 차례 만난 적이 있습니다. 2006년 핵실험 직후의 얘기입니다. 인상적인 얘기가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난한 나라다, 인구도 작고 땅덩어리도 작고 자원도 없다, 그런데 핵문제를 가지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한국, 이런 나라들이 외교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한다면 외교란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앵커 : 지금 외교가 사라졌지 않습니까?

 

정동영 : 1차 핵실험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잘 알고 계시지 않아요? 2007년 2월 13일, 2.13 합의라는 거에요. 2.13 합의를 통해서 북한은 핵을 포기하기로 하고, 미국은 북한을 인정하고 관계를 정상화 했어요.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당시는 부시 정권이 8년 갔는데. 6년 동안은 북을 악으로, 악이니까 대화 상대가 아니지요. 제재와 봉쇄와 압박 속에서 북은 핵능력을 키웠고 핵실험으로 갔어요. 결국 2년 남겨 놓고 부시 대통령이 강경파들을 퇴진 시킵니다. 네오콘 럼스펠트 장관이 퇴진하고 등등.. 그러면서 이제 북과 최초로 직접 협상에 나서죠. 직접 협상을 해서 북이 2007년도에 2.13 합의에 따라서 영변에 냉각탑을 폭파 하지요. 미국은 북한을 테러리스트 국가에서 빼주지요. 이렇게 1년 갔어요. 그런데 2007년 말에 남쪽에서 제가 대선에서 떨어집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뀝니다. 남북 관계는 적대로 돌아섭니다. 그러면서 2.13 합의는 물 건너 갑니다. 그리고 오늘 현재까지 6자 회담은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적대와 봉쇄, 압박이 가해질 때 북은 핵에 매달립니다. 그러나 대화가 가동되고 외교가 가동될 때 북은 핵능력을 중지합니다.

 

앵커 : 결론적으로는 그런데 우리가 역사를 되짚어 보건데 북은 결국은 그 동안에 핵을 중간에 멈췄던, 아니면 자기들이 핵시설을 파괴하는 연출을 했던 간에 지금 상황에서는 4차 핵실험을 앞두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결국 그 동안의 모든 것들의 과정은 그냥 지나고 보면 결론은 북은 결국 핵의 보유국 아니겠습니까?

 

"근본 문제는 북-미간 대립의 냉전관계 넘어서는 것"

"개성공단 최단 시간내에 정상화 해야"

 

정동영 : 거기서 아쉬운 대목이 있어요. 2000년 10월 달인데요. 북한과 미국이 조미 공동 코뮤니케라는 것을 워싱턴에서 발표합니다. 그 내용은 6.25 때 적과 적으로 싸운 관계를 청산하자, 그리고 당시 핵은 제네바 합의에 따라서 동결 상태에 있었어요. 당시에는 미사일이 문제였어요. 미사일을 모라토리움-유예하기로 하고 미국 대통령과 정상 회담 하기로 합의한 겁니다. 그런데 역사는 불운해요. 한달 뒤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이 바뀝니다. 부시 대통령이 등장하지요. 그리고 미국의 북한을 악으로 규정하는 대북 제재 봉쇄 정책이 시작됩니다. 이게 지금 현재 1차, 2차, 3차 핵실험으로 이어지는 뿌리이지요. 결국 개성 공단 문제를 포함해서 근본 문제는 미국과 북한의 오래된 적의 관계, 이것을 어떻게 넘어서느냐, 다른 말로 하면 한반도에서 냉전을 넘어서는 겁니다. 아직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냉전지대, 이것이 핵문제에 근본이자나요? 이 문제에 접근하는 첫 걸음은 개성 공단 문제를 잘 풀어내는 겁니다. 개성 공단이 지금 이틀째 닫혀 있는데 최단 시간 내에 이것을 다시 소생시킬 수 있다면 이것은 정치적, 군사적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공단은 돌아간다는 개성 공단의 빛나는 가치를 확인하는 거지요.

 

앵커 :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정동영 : 이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인 거지요.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정부입니다.

 

앵커 : 북한이 지금 악으로 깡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개성공단에 대한 정부의 의지 분명히 보여줘야"

 

정동영 : 두 가지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우선 개성 공단 문제에 있어서는 우선 통일부에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이라도, 내일이라도 통일부 장관이 개성 공단에 대한 우리 정부의 확고한 의지, 북에 대해서 폐쇄 조치를 철회하라는 요구와 함께, 개성 공단이 남과 북이 함께 공영할 수 있는, 서로 이기는 프로젝트이지 않습니까? 여기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동시에 북경 채널도 열려 있고, 채널은 여러 군데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갖고 갈 것인지, 대북 신뢰 프로세스라는 제목만 있지 그 내용과 개성 공단을 유지 발전 하고자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공개적일 필요도 없어요. 그래서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 전달되게 하는 것, 바로 지금이 그런 행동을 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 대화를 계속 강조하시니까 여쭤 볼게요. 대화라는 게 가진 자가 양보를 해야한다고 보시는 것 같은데요.

 

정동영 : 대화는 양보가 아닙니다.

 

앵커 : 그렇다면 우리가 대화를 하자고 제안을 했을 때, 북한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 우리가 북한에게 줄 수 있는 것, 결국 대화와 타협이라는 게 그것 아니겠습니까?

 

"북한은 개성공단을 남한에 많이 양보했다고 의식"

"개성공단은 국가 안보사업"

"공단 폐쇄는 국가 신인도 하락"

 

정동영 : 서로 오해가 많아요. 우리는 개성이 북한을 많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북은 개성 공단이 남쪽에 많이 양보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개성 공단은 휴전선에 바로 붙어 있자나요? 거기는 북한의 포병 화력이 집중된 지역입니다. 제가 2004년에 통일부 장관으로 처음 개성 공단에 갔을 때는 개성 공단이 설계도만 있고 땅고르기만 했지 잡히는 물건이 없었어요. 그래서 물건을 만들어 내겠다고 가서 시작을 했는데 장해물이 있어요. 미국의 속도 조절론이였어요. 2차 핵위기가 발생해서 6자 회담도 흔들리는데 지금이 공장 지을 때냐 라는 입장이었어요. 제가 그래서 워싱턴에 날라 가서 럼스펠트 국방 장관을 만나서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개성 공단 지도를 갖다 놓고, 개성은 서울에서 불과 40km 밖에, 광화문 복판에서도 60km인데, 거기에 북한의 포병화력이 집중되어 있는 곳인데, 이 지역을 8km, 8km 2000만평을 남쪽에 경제 영토로 내 준다는 것은 그 만큼 서울이 안전해 지는 거다, 경제 사업 이전에 군사 안보 사업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럼스펠트 장관이 이해했고 부시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서 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원합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개성공단 123개 공장이란 말이지요. 그런데 이틀 째 닫혔어요. 정말로 폐쇄된다고 보십시오. 그러면 제일 걱정은 한국에 대한 국가 신인도 하락입니다. 증권 시장과 금융 시장의 충격입니다. 이어지는 우리 국민들의 불안감입니다. 물론 개성 공단에 체류하고 있는 우리 국민의 안전한 철수가 최우선되어야 되겠습니다만..

 

앵커 : 그게 지금 가장 우선인 것 같은데요. 그 부분은 어떻게 우리가 보장 받을까요?

 

"북 자극하는 말은 백해무익"

 

정동영 : 그러나 지금 문틈이 조금 있는 거에요. 김양건 대남 담당 비서가 와서 잠정 폐쇄한다, 근로자를 철수 시킨다, 남쪽에 대응 조처를 봐서 영구 폐쇄 여부를 결정하겠다. 이런 틈이 있는 거란 말이지요. 이 틈에서 예를 들어 만일의 사태에 인질 구출 작전을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런 얘기는 백해무익한 얘기입니다. 인질 구출 작전이라는 것은 경우의 수에서 배제해야하는 얘기입니다. 인질 구출 작전이라는 것은 곧 전쟁을 말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되지 않는다라는 대전제가 성립한다면, 이 문틈을 이용해야 합니다. 문틈이라는 것은 5년 동안 중단되었던 누적된 피로가, 개성 공단 폐쇄까지 누적된 증오이지요. 이것을 해소하기 위한 숨구멍을 터야 합니다.

 

앵커 : 2009년도 그렇고요, 지금도 그렇고, 자기들이 뭔가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개성 공단을 사실상 볼모 아닌 볼모로 삼는데, 애초에 개성 공단을 만들 때 개성이 아니라 비무장 지대나 아니면 남과 북 사이에 두 개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제3국들을 넣었으면 북한이 사실상 이런 조치까지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까지 끌려다닐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요?

 

"김정일, 공단 위치로 개성 결정해"

 

정동영 : 아주 좋은 말씀이신데요. 원래 개성은 1999년 정주영 회장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정상 회담을 통해서 추진되는데요. 처음에는 신의주였어요. 그런데 중국이 반대해서 못 갔어요. 두 번째는 정주영 회장이 해주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북한 해군 사령부가 있습니다. 못 갔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개성을 제의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안보측면에서는 더 중요한 자리가 개성이지요. 그 때 정주영 회장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뭐라고 물었느냐, 2012년이 목표였어요. 2012년에 3단계까지 완성이 되면 35만명의 노동자가 필요한데 개성인구를 다 합쳐도 30만 밖에 안 되요. 이 노동력 확보를 어떻게 할 겁니까 물어봤더니, 그 때 대답이 김정일 위원장 왈, ‘그 단계가 되면 북한 인민군 병사들의 옷을 벗겨서 공장에 넣겠소’ 그랬단 말이에요. 그 방향으로 전진하는 방향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지..

 

앵커 : 우리가 원하는 방향은 그건데 북한이 안 따라 주니까, 그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원하고..

 

정동영 : 아니지요. 지난 5년 동안 대북 적대 관계에 증오에 누적의 결과라고 말씀드렸자나요. 지난 5년 동안이 아쉽다는 거지요. 원래는 2012년에 완공되고,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 회담에서 무슨 합의가 있었나요? 북한의 해군 사령부가 있는 해주에 제2공단을 만들기로 했자나요. 원산에 조선소 만들자고 했자나요. 진남포에 수리 조선소 만들자고 했자나요. 서해에 바다의 개성 공단 만들자고 했자나요. 이런 방향으로 갔다면 인민군복을 벗겨서 공단에 집어 넣는 그런 날을 만들자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바람직한 미래 아니겠어요?

 

앵커 : 이상적이기는 한데, 금강산 관광도 결국 그래서 이루어졌는데, 지금 다 뺏겼자나요. 그리고 중국이 들어왔지 않았습니까? 개성 공단 외에 제2, 제3의 다른 공단들이 만들어져서 평화 화해의 무드, 당연히 좋지요. 통일이 이루어지면 모든 국민이 좋은데, 북한이 지금까지 해 왔던 걸 보면 신포 경수로도 그렇고 우리가 투자하려고 했던 것을 쏙 빼가고, 금강산도 쏙 빼가고, 개성 공단도 혹시 쏙 빼가는 것 아닌가...

 

정동영 : 한 가지 이슈를 가지고 쭉 얘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개성 공단으로 돌아와서 말씀 드리면, 독일 통일 됐지요? 동방 정책의 종점에 가서 독일이 통일로 갔단 말이지요. 동서독 통일 정책의 설계자가 에곤바르 박사라는 분이 있어요, 브란테의 오른 팔..

 

앵커 : 그런데 동독은 이렇게 도발을 하지 않았자나요. 북한과 같이 비이성적인 집단은 아닌 것 같은데요.

 

"한국의 통일 모델은 개성공단"

 

정동영 : 독일과 한국이 큰 차이가 세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동서독 사이에는 증오가 없습니다, 전쟁을 안 했기 때문에. 두 번째 동독 내에는 시민 사회가 있었습니다. 기독교 국가 2000년의 전통 속에서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89년에 라이프찌히 한 교회에서부터 촛불 시위가 처음에는 50명, 500명, 5000명, 나중에는 수 만명, 백만명 이렇게 됐자나요? 세 번째 차이는 70년 정상 회담 이후에, 서독과 동독이 신문과 방송을 서로 보고, 그러니까 TV조선을 평양에서 보고 우리가 평양방송, 노동신문을 읽는 이런 큰 차이가 있는 거에요.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면 에곤바르라고 하는 동방 정책의 설계자가 뭐라고 했느냐, 월남 모델, 탱크로 밀고 통일이 됐어요. 독일은 동독이 백기 들고 통일이 됐어요. 월남, 독일 두 모델 모두 한국에 적용 불가능하다, 그런데 개성 공단 얘기를 듣고 에곤바르 박사가 무릎을 치면서 ‘내가 동방 정책을 설계하면서 미쳐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다. 참으로 대단하다. 한국의 통일 정책, 다른 것 필요없다. 개성 공단을 따라가라. 제2, 제3의 개성 공단을 따라가다 보면 그 중간 지점에 경제 통일이 올 것이다. 그걸 발판으로 한국에 궁극적 통일이 있다. 한국형 통일 모델은 개성 공단이다.’ 이 말씀을 소개하면서 개성 공단이 이틀째 닫히고 있는 것이 얼마나 절박하고,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 당장의 이 위기를 극대화해서 보기 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전체적인 맥락에서 크게 보고 대화와 협력을 그리고 신뢰를 가지고 얘기를 해야 된다, 이런 측면이신 것 같아요.

 

정동영 : 하루 종일 지금 방송들에서 미사일 쏜다고 시시각각 생중계를 하는데, 저는 국민들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우선은 우리 정부가 집중해야 할 것은 개성 공단을 빨리 다시 소생시키는데 모든 정책 능력의 최우선 순위를 거기에 집중시켜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 알겠습니다. 오늘 개성 공단, 그리고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해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말씀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