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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정동영, 보수 진영은 색깔론을 그만 두고 민주 진영에서도 소통을 방해하는 종북적 목소리 없어져야

 정치권, 대북·통일 문제 정치적 이용 말아야

[창간 60주년 지상 대토론 갈등 넘어 통합으로]

 

2014.06.02  한국일보  김현빈 기자

 

남북 대치 상황에서 대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북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갈등 넘어 통합으로’라는 주제로 진행하는 한국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연속 토론회에서 박세일 한반도 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과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대북 문제를 우리 사회 남남 갈등의 원인으로 지적하면서 “정치권이 대북ㆍ통일 문제를 국내 정치의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박 이사장은 “민족의 통일 문제를 정파나 권력 다툼에 이용한 건 옳지 못하다”며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모여서 정직하고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하면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통일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특히 “우리 사회에서 수구보수와 종북 좌파의 목소리가 커질 때 남남갈등이 격화된다”며 “보수 쪽에선 개혁적 보수가, 진보 쪽에선 합리적 진보의 세력이 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고문도 “과거 서독에서 동독 정책에 초당적 협력이 가능했던 것 분단 문제를 국내 정치에 동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에 반해 분단 문제가 국내 정치의 한 도구로 이용돼온 게 우리 현실이었다”고 지적했다. 정 고문은 또 “남남갈등의 핵심에는 시대착오적 이념인 색깔론이 있다”며 “보수 진영은 색깔론을 그만 두고 민주 진영에서도 소통을 방해하는 종북적인 목소리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전문가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에 대해서는 평가를 달리 했으나, 대북 문제로 빚어지는 남남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양 극단의 목소리를 지양하고 정확한 사실 관계에 기반한 합리적 토론이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남북통일은 정파·이념적 아닌 과학·합리적으로 이해해야”

[ 지상대토론 갈등넘어 통합으로 ] <6> 대북갈등과 실천적 해법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박 “개혁적 보수·합리적 진보 시각서 바라봐야”

정 “북은 이념이 아닌 국익의 관점에서 접근을

 

역대 정부 대북정책

박 “개성공단 의미 크지만 북한 궁정경제 유지”

정 “신뢰프로세스 성과 거두려면 통합정책 필요”

 

박세일 (66) 한반도 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 ▲ 전 서울대 법대·국제대학원 교수

▲ 김영삼정부 정책기획·사회복지수석비서관 ▲ 17대 국회의원 ▲전 한국개발연구원 수석 연구원

 

 

정동영 (61)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 16대 대통령선거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 전 통일부 장관 ▲ 전 열린우리당 당의장 ▲ 15·16·18대 국회의원

 

 

70년 분단 역사에서 우리 사회의 핵심에 또아리를 튼 문제가 대북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다. 한반도 통일이 우리 사회 숙원 과제지만, 냉전체제가 와해된 이후에도 남북 관계는 북핵 문제로 좀체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론을 제시해 통일 논의의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으나, 남북 긴장 관계는 여전하다.

 

특히 한국과 적대적 체제인 북한의 존재는 우리 사회 골 깊은 남남갈등의 핵심 요인이다. 한반도 통일과 평화?번영이란 기본 지향은 다를 바 없음에도, 북한에 대한 보수?진보 정권의 상이한 접근법은 단순한 정책적 차이를 넘어 이념적 갈등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선거 때마다 북풍과 색깔론 시비, 종북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지난 대선에서도 서해 북방한계선(NLL) 폐기 논란이 대선 판을 흔들었다. 이렇다 보니 보수 진보 진영간 대북 정책에 대한 합리적 토론과 논의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한국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연속토론회‘갈등 넘어 통합으로’ 의 여섯 번째 토론에서는 ‘대북 갈등’을 주제로 박세일 한반도 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과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머리를 맞대 실천적 해법을 모색했다. 좌담은 지난달 27일 한국일보사에서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대북갈등의 원인

 

김호기 교수(사회자)=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핵심적 질문의 하나다. 대외정책의 기본 방향은 국익을 극대화하고 한반도의 평화ㆍ안정ㆍ번영을 이루는 것인데, 대북 인식과 대북 정책은 뜨거운 갈등을 빚어왔다. 갈등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세일= 남북갈등은 기본적으로 적대적 갈등이다. 한쪽은 자유민주주의, 다른 한쪽은 수령절대주의 성격을 띠고 있어 화합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적대적 상황이 남한에서 어떻게 투영되느냐다. 우리나라의 이념 지평을 네 그룹으로 나눈다면, 자유지상과 특권유지의 ‘수구 보수’, 자유와 공동체적 가치를 모두 중시하는 ‘개혁적 보수’, 평등과 약자보호를 소중히 여기는 ‘합리적 진보’, 그리고 반 자유ㆍ반 평등의 ‘종북 좌파’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구보수와 종북좌파의 목소리가 커질 때 남남갈등이 격화된다. 이를 해소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선 보수 쪽에서 개혁적 보수가, 진보 쪽에선 합리적 진보 세력이 커져야 한다.

 

정동영= 북한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실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은 정치ㆍ경제적으로 문제가 많은 국가라는 게 실체다. 그러나 동시에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북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과거 서독에서 동독 정책에 초당적 협력이 가능했던 건 분단 문제를 국내정치에 동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우리는 분단문제가 국내 정치의 주요한 변수다. 1992년 9월 북에서 제8차 총리 회담이 열렸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특사에게 “어떻게든 회담을 성사시켜라. 그래서 며칠 뒤 추석 때 이산상봉 성사시켜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북에 가 있는 특사에게 갑자기 “회담 깨고 남한으로 내려오시오”라는 전문이 도착했다. 결국 회담을 깨고 남한으로 내려와 보니까 이 전문은 조작된 것이었다. 노 대통령도 펄펄 뛰었다. 안기부 특보인 이모씨와 지휘부가 주도한 조작 사건이었다. 분단 문제를 국내 정치의 한 도구로 이용해 온 게 우리 현실이었다. 독일은 통일로 갔는데 우리는 못 가고 있는 이유다.

 

진보ㆍ보수정부의 대북정책

 

사회자=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특히 김대중ㆍ노무현정부의 ‘포용정책’과 이명박정부의 ‘강압정책’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정동영= 정책은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로 평가 받는다. 강압정책이 뭘 이끌어냈나. 북핵문제는 더 악화됐고, 남북관계는 완전히 깨졌다. 남북경제협력은 제로상태다. 개성공단 하나 빼곤 북한과 ‘무관계시대’다.

 

박세일= 나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유화 노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압박 노선’이라고 표현한다. 모두 적극적인 통일전략, 즉 북한을 정상적 개혁개방의 국민국가체제로 바꾸려는 전략이 없었다. 북한을 저렇게 비정상국가로 놓아두면 통일이 되지 않는다.

 

햇볕정책의 경우 볕으로 옷을 벗게 만든다는 주장이었지만, 북한의 구체적 변화를 거의 이끌어내지 못했다. 과거 서독이 동독을 경제적으로 지원한 대가로 3만4,000명의 동독 정치범을 데려 왔다. 우리는 한 사람의 납북어부도 데려오겠지 못했다. 아니, 요구도 안 했다. 유화 노선은 상호주의와 투명성이 약했고 단기 성과주의가 많았다.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유화정책은 결국 분단 관리일 수밖에 없다.

 

압박노선은 두 가지 이유로 효과가 없었다. 첫째, 압박을 하려면 정확히 해야 한다. 북한 경제는 궁정경제(통치자금), 군사경제, 인민경제로 나눠지는데, 압박노선의 화살은 궁정경제가 아니라 대부분 인민경제로 향했다. 그래서 압박의 효과가 없었다. 둘째, 중국의 북한지원을 막는 전략을 병행했어야 했다. 그동안 여야를 막론하고 분단관리와 현상유지가 목표였고, 북한 이슈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데 급급했다.

 

정동영= 유화가 아니라 개입정책 또는 포용정책이다. 포용정책은 기본적으로 강자만이 쓸 수 있는 정책이다. 레이건이 북을 악의 제국이라고 하면서도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이나 닉슨이 중국과 수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포용정책과 압박정책의 결과를 보면 차이가 분명하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10년 간 포용정책의 결과로, 예를 들어 2005년 한해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국민 10만 명이 북한 땅을 밟았다. 그 전의 50년을 다 합쳐봐야 2,500명에 불과했다. 또 포용정책의 결과물로 개성공단이 있다. 독일 통일을 이룬 당국자들도 ‘놀라운 상상력이다, 우리도 그런 시도는 미처 못했다’고 평가했다.

 

박세일 한반도 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왼쪽부터)과 김호기 연세대 교수,

정동영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좌담에서

대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북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북핵을 어떻게 봐야 하나

 

사회자= 포용정책의 성과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의 시선에서 보면 2006년 북한 핵 실험이 있었다.

 

정동영= 민주정부 10년 중 핵 문제가 제기된 건 참여정부 5년 간이다. 참여정부는 2005년 9ㆍ19 공동성명(북한 핵 파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나. 오늘날 북핵을 둘러싼 국제 정치에선 강대국 정치만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9ㆍ19공동성명은 한반도 정치의 산물이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페이지를 쓴 합의인데 그 뒤 방코델타아시아 금융제재로 인해 핵 실험이 다시 야기됐다. 2006년 핵 실험 이후 북핵 포기와 북미 수교를 핵심으로 한 9ㆍ19로 돌아가는 길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2007년 2ㆍ13합의라는 게 다시 9ㆍ19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영변 냉각탑 폭파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가다가 다시 북한과의 대화가 끊겼고 6자 회담은 이후 6년째 중지된 상태다. 이 6년 동안 북한은 핵의 경량화?소형화?다종화를 집중적으로 이뤄냈다. 참여정부가 핵실험을 막지 못하지 않았냐는 지적을 이해는 하지만,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릴 필요가 있다.

 

박세일= 변화를 위해서 수고는 했는데 실제 변화가 없었다. 유화를 하든 압박을 하든 북한은 지난 40년간 끊임없이 핵을 개발해 왔고 수령절대주의를 계속 강화해왔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고 북한체제의 기본 특징이다. 6자 회담에 나왔어도 핵개발하고 수령절대주의 지키겠다는 북한의 기조에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개성공단은 의미가 큰 사업으로 잘 하셨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개성공단 지원금의 80%는 아마 궁정경제, 즉 체제유지의 돈줄로 들어갔을 것이다. 이건 분명 북 체제 변화라는 목표를 오히려 더디게 한다. 이처럼 통일은 단순하게 생각하기 어렵기에 정파적이고 이념적인 이해가 아니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해가 요구된다.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평가

 

사회자= 박근혜정부가 내건 ‘신뢰 프로세스’는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정동영= 결과가 중요한데 현재까지 결과가 없다. 박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을 하는 날 지난 20여 년을 통틀어 최대의 상륙작전인 ‘쌍용훈련’이 진행됐다. 북한에선 무슨 메시지를 받겠나. 이는 정부 정책이 통합ㆍ조정된 결과로 나온 게 아니라는 방증이었다. 국방부, 통일부, 청와대가 엇박자를 많이 낸다. 결국 정책도 사람이 하는 거라면 이번 기회에 통일ㆍ외교 라인도 평화와 통일 구상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교체해야 한다. 박 이사장 말처럼 개혁적 보수, 합리적 진보 같은 인물을 찾아서 통일ㆍ안보 팀을 만들어야 한다.

 

박세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나온 배경은 유화정책이나 압박정책을 넘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말한 통일 대박론은 두 가지 큰 기여를 했다고 본다. 그동안 통일을 부담과 비용으로 보고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패배주의가 많았으나 통일이 큰 기회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또 국제적으로 한국의 통일 의지를 보여줬다. 다만 내용과 전략이 아직 안 나와 답답하다. 가능한 빨리 정부와 여당은 통일이 왜 대박인지, 어떻게 대박으로 만들 것인지를 알려줘야 한다.

 

"8월에 교황 오면 개성공단 방문케 해 한반도 평화 물꼬 터야"

 

美·中의 역할

박 “동아시아 전략목표가 같은 한미동맹이 우선”

정 “미와는 안보동맹, 중과는 적극적 경제협력을”

 

통일준비와 갈등 해소책

박 “북동포와 교류 중요… 통일외교 적극 펼쳐야”

정 “색깔론 그만두고 종북적 목소리도 없어져야”

 

미국과 중국의 역할

 

사회자= 남북문제는 한반도 뿐만 아니라 동북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특히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정동영=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핵심축은 미일동맹일 수밖에 없다. 이 동맹을 강화시키기 위해 한국을 끌어들인다는 건데 여기에 편승하면 우리는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 문제에 우리가 목소리를 내려면 남북이 소통도 하면서 미국과는 안보동맹을, 중국과는 적극적인 경제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양자택일을 할 때는 해법이 없어진다. 지난 번 미국 바이든 부통령이 방한해 ‘베팅을 잘 하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베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1동족 1동맹 3우방’의 환경 속에서 핵심가치는 국익에 둬야 한다. 최근 북ㆍ일관계의 진전도 눈여겨봐야 한다.

 

박세일= 친중결미(親中結美)라고 표현하고 싶다. 중국과 친하고 미국과 결합돼야 한다. 다만 국제관계에서 중국과 미국은 큰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중국과 우리는 영토를 맞대고 있기 때문에 영토적 측면에서 이해상충의 관계가 있다. 한미 동맹이 우선돼야 하는 것은 미국과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동일한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패권적 대국이 등장할 때 한반도는 늘 힘들었다. 미국도 아시아에서 패권적 대국의 등장을 싫어한다. 미국과 중국의 차이를 정확히 알아야 한미관계를 필수 생존전략이라고 여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중국과 더욱 친해져야 하지만 말이다.

 

통일 준비, 어떻게 해야 하나

 

사회자= 통일에 대한 젊은 세대의 무관심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통일이 향후 우리 사회 변동에 결정적 계기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어떤 정책을 통해 통일로 가야 하는가.

 

박세일= 젊은 세대가 통일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은 기성세대 책임이다. 우리사회 지도자들이 한반도 상황의 급박성과 통일의 가치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았다. 우리가 통일을 이루려면 우선 국민과 정부가 통일에 대한 의지와 열정을 가져야 하고 통일지향의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분단관리가 아니라 북한체제의 정상화를 위한 대북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동포와의 교류이다. 2만 6,000명의 탈북자, 50만의 조선족 동포가 한국에 있다. 이분들과 소통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북한 동포들과 소통하는 첫 시작이 될 것이다. 또 외국에 나가서 우리 통일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을 게 아니라, 통일 외교를 펼쳐야 한다. “우리는 통일하겠다” “우리는 통일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 “우리 통일이 당신들에게 좋은 것이다. 한반도 통일 없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은 없다” 등 세 가지를 주장하고 설득해야 한다.

 

정동영= 가장 안타까운 건 통일의 주체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체가 누구냐를 정립해야 한다. 장성택이 처형됐을 때 한 신문의 1면 톱 기사에 미국 캐리 장관과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전화 통화로 이 비상사태에 대비하자고 대화한 게 실렸다.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해법을 찾아야 마땅한 데도 신문의 톱 기사마저 미국과 중국을 쳐다보는 것에 모멸감을 느꼈다.

 

우리가 통일을 주도하려면 남북이 소통해 공통분모를 만들어야 하고, 통일의 중간단계에 대한 정부의 밑그림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박 대통령이 통일 의지를 국제사회에 밝힌 것은 바람직하다. 그 의지를 실행할 전략과 사람이 문제인데, 내가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하겠다. 곧 교황이 방한을 한다. 8월에 교황이 오면 개성공단 방문을 추진해 한반도 평화와 탈냉전의 물꼬를 트게 하겠다. 교황도 남북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건 이미 알려진 얘기이지 않은가.

 

대북갈등 해소 방안

 

사회자= 대북갈등과 남남갈등을 묶어 ‘이중적 분단갈등’이라고 부를 수 있다. 선거 때만 되면 ‘북풍’ 논란이 일기도 한다.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박세일= 남북갈등은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개화문명파와 수구척사파와 갈등이고, 상이한 세계관ㆍ역사관의 싸움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이념의 지평이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로 좀 더 많이 수렴되어야 하다고 생각한다. 진보진영을 보면 종북좌파의 수는 많지 않지만, 영향력과 목소리가 너무 크다. 보수진영에도 수구보수가 많지 않지만 그 기득권이 너무 크다.

 

정동영= 남남갈등의 핵심에는 시대착오적 이념인 색깔론이 있다. 색깔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애국자라고 생각하면서 상대는 비애국자라고 편가르기를 한다. 이 뿌리엔 친일파 문제가 있다. 일본이 근대화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색깔론의 근저와 연결돼 있다. 이제는 보수진영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색깔론은 그만두고 국가비전을 가지고 국민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를 가지고 논쟁해야 한다. 민주진영도 역시 반성해야 한다. 소통을 방해하는 종북적인 목소리는 없어져야 한다.

 

사회자= 언론과 정치권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정동영= 언론에게 첫째로 중요한 건 신중성이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 선정적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 NLL 포기 발언 논란 문제에서 볼 수 있듯이 언론은 사실 관계를 검증해주는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 국민들이 남북 관계 상황을 접하는 건 언론을 통해서다. 통일이라는 대명제 아래 국민들에게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줬으면 좋겠다.

 

박세일= 정치권은 통일 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지 말아 달라. 민족의 통일문제를 정파나 권력다툼에 이용하는 건 옳지 않다. 더불어,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모여서 정직하고 솔직한 의견 교환, 자료 교환을 할 공론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팩트에 기초한 대화와 토론이 많이 이뤄지면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방안이 분명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