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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정동영-2015년 새해를 맞이하며] 정치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는 새해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정동영-2015년 새해를 맞이하며]

 

정치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는 새해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2014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의 큰 슬픔과 아픔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장사는 안 되고, 취직도 안 되고, 미래는 불안하고, 그런데 정치는 겉돌고, 약자는 기댈 곳이 없습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정책은 우울하고 실망스런 소식들뿐입니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비정규직은 영원히 비정규직으로 살게 하고, 궁극적으로 모든 정규직을 <미생>의 '장그래'로 만드는 사실상 비정규직양산법입니다. 정규직을 흔들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발상은 재벌과 대기업을 위해 노동자를 분열시키고 희생시키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계층간 갈등을 조장하는 악법 중의 악법입니다.


대법원의 쌍용차 판결과 노동자의 잇단 죽음, 법의 보호막에서조차 버려지고 의지할 만한 정치세력도 없어진 노동자들이 굴뚝과 전광판으로 올라가 절규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씨앤앰(C&M) 노동자들은 해를 넘기기 전인 오늘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과 연대해서 싸워준 결실이어서 그 의미가 더욱 큽니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찬바람을 맞아가며 절규하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땅에서 더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세상은 비정상입니다. 이런 비참함, 곤궁함, 불안함은 850만이라는 비정규직 숫자가 말해주듯 대한민국 평범한 노동자들의 일상 현실이고 미래입니다. 


노동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하거나 방관할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섰습니다. 유럽에서는 정치의 80%가 노동의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여전히 노동을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은 하층배제적이고 상층편향적입니다. 제1야당도 소수의 의식있는 정치인 외에는 관성적으로 노동과는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노동이 빠진 정치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비정규직과 노동을 외면하는 정당은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은 대형마트가 아니다'는 황당한 판결이 영세자영업자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재벌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공세에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이 속속 붕괴되고 있습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기술 탈취 등 대기업의 슈퍼 갑질로 중소기업은 생존에 허덕이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산업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정당과 정치인에게 표를 주고 국회로 들여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정글 같은 시장에 모든 걸 맡겨놓지 말고 강자와 약자 간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존재 이유입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정치인으로 산다는 게 부끄러운 적이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1인1표'의 원리가 핵심인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1인1표 대신 '1원 1표'의 원리만이 지배하면서 약자들이 곳곳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죽어가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중소기업 문제가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가 되고, 나라의 온 역량이 투여될 수 있도록 정치가 작동해야 합니다.


정치가 제자리를 찾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새해를 기대합니다.

 

2014. 12. 31


17대 대통령 후보·전 통일부장관  정  동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