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옷을 벗지만, 다시 함께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민주 당원 여러분
그리고 민주당을 사랑하는 지지자 여러분!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오늘 잠시 민주당의 옷을 벗지만, 다시 함께 할 것입니다.

설마 했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고,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었는데, 내민 손을 뿌리 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설마가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저는 내민 손이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하지만 원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제가 지은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날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갑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았습니다. 역시 가장 선명하게 남는 기억들은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당원여러분들, 지지자 여러분들의 사랑과 애정이었습니다.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에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정권교체를 위한 최전선에서 야당 대변인으로 싸우던 시절,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여당이 된 새천년민주당에서 당을 살리기 위해 쇄신정풍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인간적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당을 구했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 정당민주화의 꽃인 국민경선을 제안하고 참여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끝까지 완주해서 국민경선을 지켜냈습니다.

2003년 9월 지역주의의 벽을 넘겠다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습니다.

2004년 1월 당의장에 당선돼 몽골기병의 기치를 들고 국민 속으로, 국민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몇 달째 꿈쩍 않던 지지율 3등 정당을 한달 만에 지지율 1등으로 끌어올린 것은 국민들께서 주신 과분한 영광이었습니다.

2004년 3월 탄핵이 강행되던 날, 국회 본회의장 바닥에서 밤을 지새면서 과반수 의석 확보를 위해 내가 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탐색, 번민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저는 떨어질 각오를 하고 저의 지역구인 전주 지역구를 양보하며, 과반수 의석 확보 마지노선인 비례대표 22번을 선택하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구설 위기로부터 당을 구하기 위해 의원직마저 사퇴했습니다.

2006년 초, 지방선거에서 전패가 예상되었지만 독배일지라도 마실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고, 6월 지방선거 지휘의 책임을 맡았습니다. 고군분투했으나 역부족이었고 당에서 물러났습니다.

2007년 열린우리당의 옷을 벗고 민주당과 합치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을 고수하려는 노 대통령 측과 의견 충돌이 불가피했습니다.

2007년 12월 제 개인의 대선패배나 당 차원의 패배에 머무르지 않고, 그 결과가 수많은 국민들께 고통을 안겨드리게 된 것에 대해 죄스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저 정동영에게 표를 주신 617만 4,681분의 소중한 마음을 저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작년 3월, 절멸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기 위해 서울에 출마하라는 요구를 받아 들였습니다. 현 정권은 저의 원내 진입을 막기 위해 무리한 표적 공천을 감행했고, 저는 패배했습니다.

2009년 이명박 정부 1년 만에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고, 중산층은 더 추락했고, 남북관계는 실종되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지표인 언론자유지수는 지난 2006년 31등에서 47등 국가로 추락했습니다. 선진복지국가를 향한 꿈은 멀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저는 경제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 국민과 위기에 처한 한반도 그리고 어려움에 빠진 당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고 귀국했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반대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많은 당원과 지지자들은 원내에 들어가서 힘을 보태라고 성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도부는 당원과 지지자들의 뜻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시기마다 제각기 당의 이름은 달랐지만, 저의 정치인생 13년은, 제 삶은 온전히 민주당원으로서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옷을 벗고 바람부는 벌판에 나앉은 심정입니다. 홀로 바람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비판과 아픈 지적은 달게 받겠습니다. 저, 정동영의 종아리를 때려주십시오. 그 아픔을 참아내는 것 또한 저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원 여러분과 지지자 여러분께서는 민주당을 굳건히 지켜주십시오. 제 몸 위에 옷을 두르든 아니든 제 몸 속에는 민주당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만나면 헤어지는 이치를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합니다. 이 말은 헤어지면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뜻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민주당의 옷을 벗지만, 다시 함께 할 것입니다.
반드시 다시 돌아와 민주당을 살려내겠습니다.
민주당을 사랑합니다. 민주당원과 지지자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 4. 10

정 동 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