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y's team/Today's DY Issue

‘악화일로’ 남북관계, ‘싸움’ 붙이는 보수언론

‘악화일로’ 남북관계, ‘싸움’ 붙이는 보수언론

[비평] “주관적 보도 두드러져”… “사태 악화시키는 역할 했다”

 

2013.04.30  허완 기자

 

개성공단이 사실상 ‘폐쇄’ 수순으로 가고 있다. 지난달 30일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 위협에 이어 한 달여간 이어져 왔던 ‘개성공단 사태’가 끝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보수 성향 신문들이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해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부추겨 도리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이유에서다.


北 달러 때문에 개성공단 유지?… 언론의 ‘도발’
 
조선일보는 지난달 12일자 신문 5면 <核 불바다 위협하면서 ‘개성 달러’는 챙긴다> 기사에서 “북이 개성공단에 집착하는 것은 달러 때문”이라며 “북한은 노동자 5만3500여명의 임금으로 매년 현금 9000만 달러(약 990억원)를 챙긴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등 도발을 감행하면서도 개성공단을 정상 가동시키고 있는 건 ‘달러가 아쉽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북한의 ‘이중성’을 비판한 대목이다. 
 
중앙일보도 3월29일자 3면 <북의 달러 박스 개성공단…도발 위협 속에 근로자 늘려>에서 이를 ‘남북 교류협력의 상징’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달러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근로자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통해 대부분의 이익을 북한 당국이 챙기고 있고, 북한 노동자를 포함한 주민 20만여명이 “공단에 목을 걸고 있는 셈”이기 때문에 북한이 “개성공단에 집착하는 이유란 분석”이라는 것이다. 

 
 
▲ 조선일보 3월12일자 5면

동아일보도 같은 날 <北, 군 핫라인은 끊고 개성공단 달러만 챙기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북한이 개성공단의 입출경까지 막지 않은 것은 전면적 대결 기조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달러는 안정적으로 챙기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놨다. “개성공단 가동에 차질이 생기면 북한 근로자들도 일자리를 잃고 북한 정권도 상당한 재정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이 개성공단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보도(4월9일자 3면)한 것처럼, “개성공단은 2004년 12월 첫 가동 이후 한 번도 멈춘 적인 없다. 2010년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에 포탄을 퍼부을 때도 운영돼 ‘남북 간 최후의 접촉선’ 역할을 해왔다.” ‘달러 때문’이라는 논리대로라면, 북한은 천안함 침몰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달러가 아쉬워’ 개성공단을 유지해온 게 된다. 긴장과 대립 속에서도 개성공단을 유지해왔던 남북 정부의 노력을 폄훼한 것과 다르지 않다. 
 
북한은 이튿날인 3월30일, “우리의 존엄을 조금이라도 훼손하려 든다면 공업지구를 가차 없이 차단, 폐쇄해버리겠다”고 개성공단 폐쇄를 위협했다. 물론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북한이 일부 언론의 보도를 문제 삼아 폐쇄 위협에 나선 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달러 때문’이라는 보도가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언론들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동아일보 4월4일자 1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우리나라) 언론을 보고 대응하고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정부 입장을 듣고 싶다’고 나왔어야한다”면서도 “그런 식의 접근에 북한이 자극을 받는 건 당연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또 “보수든 진보든 기본적인 (남북) 교류협력과 대화 필요성을 인정해야한다”며 “남북문제만 터지면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계속되고, 북한이 그걸 이용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한다”고 덧붙였다.
 
김연철 교수는 “사태의 본질을 봐야 하는데 북한이 발표하는 성명들에 대해 언론이 말꼬리를 잡아 감정적 비판만 키워서 갈등을 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친구들끼리도 시비가 붙으면 원인에 집중해야 하는데, 말투나 이런 것들에 신경을 쓰다가 싸움이 커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과 같다”는 설명이다.
 
개성공단 폐쇄 北이 더 손해?… “해법 중심 보도가 필요”
 
한편 조선일보는 4월1일자 5면에서 “공단 폐쇄 시 경제적 피해가 123개 입주기업에 국한되는 한국과 달리, 북한은 정권 차원의 고통을 각오해야 한다”며 ‘엄포’를 놨다. 그러나 이는 일단 사실과 다르다. 개성공단이 폐쇄될 경우, 그 피해는 남한의 입주기업들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협력사들로 이어지고, 피해규모는 최대 6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의 경제적 피해가 ‘정권 차원의 고통’일 것이라는 분석도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 
 
김연철 교수는 “전체 공정으로 치면 남쪽에서 하는 공정이 더 많다”며 “입주기업 123개가 전부가 아니고 1차·2차 협력업체까지 따지면 6000개 정도 된다고 보는 상황인데 (피해규모는) 북한과 비교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정권 차원의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분석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북한은 개성공단이 없을 때도 살았고, 노동력을 가지고 공단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며 “개성공단에서 활동하던 우리 기업들은 거기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4월1일자 5면

그런데도 이 신문은 ‘북한이 더 손해’라며 연달아 ‘으름장’을 놨다. 19일자 사설에서는 “한국이 개성공단을 유지하는 것은 남북 교류 협력의 상징성 때문이지 경제적 가치 때문은 아니다”라고 강조했고, 26일자 사설에서는 “지난 9년 동안 개성공단은 우리보다는 북한에 더 많은 경제적 도움을 줬다”고 주장했다. 상대적 피해는 북한에 더 크다는 분석은 일견 그럴듯하지만, 이 역시도 개성공단이 지닌 ‘교류 협력의 가치’를 배제한 단편적 접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통일부 장관을 지냈던 정동영 전 의원은 “(일부 언론들이) 사실관계를 보도하기 이전에 이념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개성공단 폐쇄로 몰고 갔다”며 “그런 보도는 언론의 본분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전 의원은 “개성공단 문제는 전쟁과 평화의 문제”라며 “감정적이고 편향적 보도로 균형감각을 상실하면 이는 국익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누가 더 손해냐 따지는 기사들은 굉장히 무의미하다”며 “북한도 크고, 우리도 손해가 큰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개성공단이 어느 날 갑자기 악화된 게 아니고, 2010년부터 시름시름 병을 앓아왔다”며 “그런 과정에 대한 언론의 분석이 너무 약했다”고 덧붙였다. “이제 와서 기업들의 피해 상황과 (입주기업들의) 심정에 대한 보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왜 이렇게 되어왔던 과정은 (언론에) 나타나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 동아일보 4월4일자 4면

일부 신문들은 사태 초기부터 북한이 우리 기업인들을 ‘인질’로 삼을 수 있다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 “정부는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우리 국민의 신변 안전에 두고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조선일보 4월4일자 사설)이 대표적이다.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보다는 사태 악화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인질 사태’ 가능성에 대해 지난 3일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군사적 조치’를 언급한 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군사작전 시나리오가 보도되기도 했다.
 
정동영 전 의원은 “김장수 장관의 발언이 현실 가능성이 있는 건지 좀 더 균형감각을 가지고 비판적인 보도를 했더라면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언론이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개성공단에 있던 사람들 말을 들어봐도 (김 장관의) 인질구출 작전 발언이 기름을 부은 격이라는 건데, 언론이 부채질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는 “언론이 정확한 팩트를 국민에게 전달하고 여론을 수렴하면서 사태를 분석하고 대안을 내놔야 한다”며 “최근 상황에서 언론이 객관적 사실보다는 주관적으로 보도한 경향이 많았다. 일종의 선동을 했다”고 말했다. “대안 제시보다는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4월4일자 3면
김연철 교수는 “개성공단 문제는 (정상화) 의지만 있으면 풀 수 있다”며 “언론은 북한의 의지를 물을 수도 있고, 우리 정부에게도 의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남과 북 모두 민족의 길이나 한반도 평화통일의 길은 없고 자기 길만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해법 중심의 보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대화의 장이 열리면 언제든지 풀릴 수 있다. 개성공단은 언젠가 다시 살아난다고 본다”며 “개성공단이 다시 살아나면 언론들은 뭐라고 할 거냐”고 반문했다. 그는 “언론이 자극적인 보도를 할 게 아니라 국민들이 사실관계를 직시하고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