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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 team/Today's DY Issue

[현장] 기초연금 노인 만민공동회…어르신들 갑론을박

"다 타먹으려는 게 도둑놈" vs. "그럼 왜 약속했어?"

[현장] 기초연금 노인 만민공동회…어르신들 갑론을박

 

2013.10.02  김윤나영 기자

"그냥 다 타 먹으려고 그러는 게 다 도둑놈들이여."

"도둑놈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여. 몇십 억씩 가진 게."

노년의 날을 맞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 공원에는 어르신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고성이 오갔다. 기초연금 공약 후퇴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날 노년유니온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는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기초연금안을 두고 '노인 만민 공동회'를 개최했다. "진보·보수 어르신이 종묘 공원에서 맞장 토론을 벌인다"는 토론회 취지와는 달리, 본 무대보다는 방청석에서 논쟁이 뜨거웠다.

"가난해서 표 몰아줬더니…" vs. "그냥 타 먹으려는 게 도둑놈들"

▲ 최영구(67) 씨가 2일 서울 종로구 종묘 공원에서 열린 노인 만민 공동회를 방청하고 있다. 기초연금에 대해 묻자 최 씨는 "잘 모른다. 그냥 놀러 왔다"고 말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무대에 올라 발언에 나선 양재덕(69) 씨는 "기초연금 20만 원을 걸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도 못 넘어서 돈이 없어서 못 주겠다고 한다"며 "기가 막히다"고 말했다.

노인복지관을 자주 이용한다는 양 씨는 "복지관에 행사가 있으면 정치인들이 우르르 오고 자기 자랑하다가 가고 선거 끝나면 아무것도 안 한다"며 "(노인들이) 가난해서 표를 몰아줬고, 경제가 갑자기 나빠진 것도 아닌데 (원안대로 가는) 실천 방안이라도 따져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양 씨가 발언하는 동안 조명원(63) 씨는 무대 뒤편에서 "그냥 다 타 먹으려고 그러는 게 도둑놈들"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조 씨는 "외국은 근로자가 세금을 내도 안 아까워하는데, 그만큼 복지에 철두철미하게 쓰고 청렴하기 때문"이라며 "10년, 20년 복지기금을 내서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아무 준비도 없이 복지 정책을 내놓은 민주당,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다 똑같다"고 비판했다.

조 씨는 "그리스가 왜 부도났는지 아느냐"며 "우리도 IMF 사태가 나면 어떡하느냐"며 혀를 차고 자리를 떴다. 몇몇 노인들이 "옳소"라며 박수를 쳤다. 반면 조 씨가 떠난 자리에 한 노인은 "그러면 왜 약속을 했어? 20만 원씩 줘야지"라고 혼잣말을 했다.

"국민연금 가입자 돈 깎는 게 말 안 돼"

조용히 방청석을 지키고 있던 국민연금 장기 가입자 김윤상(61) 씨는 "국민연금 든 사람과 안 든 사람에 따라 기초연금 금액에 차이를 두는 게 문제"라며 "국민연금 받는 사람들 돈 까먹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조심스레 말했다.

정년퇴직하고 올해 처음으로 국민연금 24만 원을 손에 쥐어봤다는 김 씨는 "(기초연금이 지급되는 나이인) 65세가 돼봐야 알겠지만, (내가 받는 기초연금이) 깎일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노인들은 병원도 못 가고, 살지도 못하고 쩔쩔 매는데, 돈이 있어? 뭐가 있어?"라고 되묻기도 했다.

"약속할 때부터 안 믿었다…우린 힘 없어"

무당파로서 지난해 대선에서 기권했다는 유동열(74) 씨는 "지난 대선 때 복지 공약에 대해서 많이 들었는데, 다 '선거용'이라고 생각하고 믿지 않았다"며 "여야가 'ㅕ'와 'ㅑ'의 차이만 있지 엇비슷하다"고 말했다.

유 씨는 "우리는 (정부나 정치권에서) 숫자 놀음하면 (얼마나 깎이는지) 완전히 이해를 못 한다"며 "복지를 하려면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재벌이 정계를 움직이지, 여기(종묘 공원) 오는 사람들은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체념했다.

그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실업자들이고 아마 거의 전부 하위 70%라서 다 받긴 받을 것 같다"는 단서를 달았다.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한 노인이 불쾌한 듯 의자를 집어 던지자, 유 씨는 "자기와 의견 다르면 저렇게 욕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방청객들이 갑론을박하는 사이 심상정 정의당 의원, 안철수 의원,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이 각각 '복지는 권리'라는 취지의 발언을 마치고 떠났다. 몇몇 방청객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가서 악수를 나눴고, 몇몇은 욕을 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며, 대다수는 뿔뿔이 흩어졌다.

▲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노년유니온,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가 2일 종묘 공원에서 '노인 만민 공동회'를 열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심상정·안철수·정동영 "기초연금 제대로 도입해야"

'노인 만민공동회' 행사에 참석한 야권 정치인들도 2일 기초연금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상정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 열흘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은 45일을 앞두고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씩 준다고 약속해 놓고 어겼다"며 "약속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속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은 "노인 빈곤을 해결하는 목적으로 도입한 제도가 기초노령연금 제도인데, 정부는 비용을 줄이려고만 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국무총리에게 기초연금을 도입하면 노인 빈곤율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물어보니 모르겠다고 답했다"면서 "세금이 얼마 경감되는지만 알고 정작 정책의 목표는 모르는 것은 선후가 뒤바뀌었다"고 비판했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시내버스 새벽 첫차를 타면 어르신들이 병원이나 빌딩 청소하러 가신다"며 "기초연금 도입은 어르신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던 것인데 헌신짝처럼 버려졌다"고 비판했다.

정 상임고문은 "복지국가로 가는 게 우리의 소망"이라며 "이제는 국민이 복지를 헌법적인 권리로서 누리고, 국가는 이에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