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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 team/Today's DY Issue

기초연금에 들썩인 종묘공원 “노인이 무슨 봉인가!”

기초연금에 들썩인 종묘공원 “노인이 무슨 봉인가!”

[현장]노인의 날 종묘광장공원에서 열린 ‘노인 만민공동회’…

“박 대통령 표 몰아줬는데, 이건 사기야”

2013.10.02  김병철 기자

서울 강북구에 사는 여든 두 살의 김동일씨는 2일 어김없이 종로구에 위치한 종묘광장공원을 찾았다. 이날이 '노인의 날'이기 때문이 아니라 할 것도 갈 곳도 마땅치 않는 그에게 이곳으로 출퇴근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자녀들의 용돈과 매월 10만원 수준으로 지급되는 기초연금으로 생활하는 그는 외출길에 항상 '쇼핑백'을 챙긴다. 공원을 오고 가는 길에 떨어져있는 신문과 박스를 주워 담기 위해서다. 이렇게 모은 폐지로 그가 하루에 받는 돈은 고작 500~600원. 
 
이날 기초연금 공약 파기를 주제로 이 공원에서 열린 '노인 만민공동회'에 들른 김씨의 목소리엔 화가 가득했다. 공약 파기로 자신이 지급대상에서 제외되는 건 아니지만 박 대통령이 노인들을 속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일 오후 서울 종묘광장공원에 열린 만민공동회에 참석한 노인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대선 때는 노인 모두에게 준다고 해놓고선, 이제 와서 돈이 없어서 못준다고? 이건 그냥 사기야, 사기. 다른 사람(노인)들도 불만이 아주 많아. 말로 할 수가 없어"
 
이날 오후 노년유니온,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이 개최한 이 행사에는 200여명의 노인들이 모여 기초연금 공약 후퇴에 불만을 털어놨다. 
 
자유발언 차례에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양재덕씨(65)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20만원씩 준다고 공약을 걸어놓고 몇 개월도 되지 않아서 '못 주겠다'고 하는 걸 보고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다 표를 몰아줬는데. 돈이 없어서 못하겠다고 하면. 경제가 갑자기 나빠진 것도 아니고. (대선 전에) 자세히 조사해서 실천 가능한지를 따져봤어야 하지. 노인이 모슨 봉입니까?!"
 
이어 올라온 김선태 노년유니온 위원장(70)은 "제가 한 달에 20만원을 주는 공공복지 일자리를 하는데 이거로는 한 달 라면값도 다 안된다"면서 "그런데 우리 동네(홍제3동) 3000여명 노인 중에 공공복지 일자리를 얻은 건 46명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머지 노인들은 그런 일자리라도 얻으려고 애쓴다. 그런 분들에게 20만원씩 준다고 하니 얼마나 기대를 했겠는가. 그런데 이게 무너졌다"고 한탄했다. 
 
이날 행사엔 야당 정치인들도 대거 참석해 정부에 대한 질타를 쏟아냈다. 그러나 보수 성향의 노인들이 많은 종묘광장공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항의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2일 오후 서울 종묘광장공원에서 열린 기초노령연금 축소에 대한 노인 만민공동회에 참석한 안철수, 심상정 의원과 정동영 민주당 고문이 노인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은 며칠 전 부산에서 간암 판정을 받은 70대 노인이 '자식들에게 수술비 등으로 부담을 주기 싫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야기를 하며 노인들의 현실을 지적했다. 
 
"작년 대선은 복지 전쟁이었다. (국민들은) 모든 어르신에게 20만원을 드리겠다는 공약을 철석같이 믿었다. 노인빈곤 현실이 심각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생활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데에 국민적 합의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합의가 헌신짝처럼 깨졌다"
 
그러면서 그는 복지 성장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상임고문은 "공약대로 모든 어르신들에게 20만원씩 드리면 노인들이 이걸 저축하지 않는다. 국밥 한 그릇 사먹고, 할머니 미장원이라도 한 번 더 가고, 손자들 용돈이라도 더 드린다. 그러면 이 돈이 다 소비시장으로 흘러들어가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작년 대선 후보로 출마했던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됐는데. 지금은 해결하자는 문제는 사라지고, (정부는) 어떻게 하면 비용을 줄일 것인가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은 "우리는 어르신이 절대 다수의 비중을 차지하는 노령화 나라다. 어르신이 불행하면 국민 다수가 불행하고, 어르신이 행복하면 국민 다수가 행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서 복지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이날 오전 '제17회 노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어떻게 해서라도 (노인빈곤율·자살율)사각지대를 이제는 국가가 메워야 한다는 심정으로 기초연금제도를 확충하고자 몸부림치고 있다. 그런데 경제 여건이 갑자기 나빠지고 있다. 상위 30% 어르신들께 못 드리는 것에 대해 대통령께서도 사과를 하고 저희 정치하는 사람들도 머리를 숙여서 용서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