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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정동영 "안철수, 6.15·10.4 제외? 역사 의식의 부재"

 

"정동영 "안철수, 6.15·10.4 제외? 역사 의식의 부재

[인터뷰] "기초 무공천은 새정치 아니다. 재고해야"

 

2014.03.18  임경구 기자, 선명수 기자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무공천. 이걸 고리로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손을 잡았다. '약속 대 거짓'으로 여권과 각을 세웠다. 하지만 딜레마다. 새정치민주연합 홀로 무공천을 할 경우 풀뿌리 정치의 토양을 생짜로 새누리당에 바치는 결과를 맞을 수 있다. 광역선거에도 영향을 미친다. 선거에 '아름다운 패배'는 없다. 지방선거를 내주고도 '새 정치'의 승리를 말할 수 있을까? 기초선거 출마자들을 중심으로 속이 바짝바짝 탄다. 그런데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어렵다. '약속'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동영 상임고문이 정면으로 문제제기 했다. "기초단체장 무공천 결정으로 서울시 현역 구청장 20명이 다 전멸하고, 그 여파로 서울시장까지 놓치게 되면, 안 의원 역시 그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는 18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기초선거 무공천이 과연 안 의원이 얘기했던 새 정치인지 회의적"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래도 약속인데. 정 고문은 "이게 양보할 수 없는 새 정치의 핵심이라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서도 "그런데 무공천이 새 정치인가? 오답인 것이 분명하다면 지금이라도 재고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최소한 기초단체장 선거에선 더욱 그렇다"면서 "선거는 결과가 말해주는데, 일방적으로 당하고 나서 우리는 도덕적이었다고 합리화하는 게 정치적으로 용납이 되겠느냐"고도 반문했다.

 

외부인들로 구성된 '새정치비전위원회'가 굴러가고 있다. 여기서 '새 정치' 알맹이를 만들어 제안하기로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그 결과를 적극 수용하겠다고 했다. 정 고문은 '새정치비전위원회'가 기초선거 무공천에 관한 '유턴'을 제안하는 방식을 거론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새 정치라는 안 의원의 생각은 존중돼야 하지만, 이제 윤리적인 검토가 아니라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에 있어 민주당의 '기본 정신'과도 같았던 6.15와 10.4 공동선언을 신당의 정강정책에서 제외하자는 안 의원 측 제안에 대해선 "역사의식의 부재"라고 비판했다. 지난 대선 당시 안 의원 스스로도 공약 안에 포함시켰던 이 선언의 내용들을 끊어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질타였다. 덧붙여, "이 시대에 남북문제를 이념의 눈으로 봐선 안 된다"며 "남북관계는 능력의 문제"라고 충고했다.  

 

새 정치의 요체로는 '제도 개혁'과 '삶의 정치'를 주문했다. 우선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이다. 그는 이를 '50대50 비례대표제'라고 표현했다. 국회의원 정원의 절반을 비례대표로 뽑고, 각 정당의 의석을 득표율에 걸맞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정 고문은 "정치 판 바꾸기의 핵심은 민의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정치 시스템으로 혁신하는 것"이라며 "승자 독식주의를 깨면 정치의 판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신당이 이를 다음 총선의 공약으로 내걸어야 한다고 했다.

 

'삶의 정치'와 관련해 정 고문은 "노동 의제가 신당의 주요한 전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경제 민주화 같이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대기업 빵집으로부터 골목 빵집을 지켜드리겠습니다' 같은 구체적 약속이 신당의 정체성이 돼야 한다"며 "좌우 논쟁을 그만두고 아래로 내려가자"고 제안했다.

 

다음은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과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6.15, 10.4 선언 삭제는 역사의식의 부재…즉각 바로잡아야"

 

프레시안 : 안철수 의원 측이 신당의 정강정책 초안에서 6.15와 10.4 선언을 제외해 당내 논란이 거세다. 어떻게 보나?

 

정동영 : 6.15와 10.4 선언은 민주당의 정체성이다. 이것을 부인할 민주당원은 없다. 정체성은 당연히 계승되어야 한다. 6.15와 10.4 선언은 분단의 질곡을 넘고자 분투해온 이 땅의 양심세력을 대표해 민주정부가 이룩한 역사적 성과물이다. 따라서 신당의 정강정책에서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명문화되어야 한다.

 

이것을 정강정책에서 제외한다는 발상은 역사의식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 남북문제를 이념의 눈으로 봐선 안 된다. 능력의 문제로 봐야 한다. 6.15와 10.4 선언은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민주개혁 세력이 철학과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온 결과물이다. 1972년 7.4 공동성명과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연장선 속에서 진화해온 업적이다.

 

프레시안 : 6.15와 10.4 선언을 홀대하면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 한계가 있다는 말인가?

 

정동영 : 6.15와 10.4 선언은 앞으로 남북문제를 풀어나갈 근거이기도 하다. 이것을 제외하고 부정하자는 것은 남북관계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대선 시기 6.15와 10.4 선언 안에 있는 내용들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다. 이 점에 비춰서도 6.15와 10.4 선언을 제외하자는 안 의원 측의 제안은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

 

프레시안 : 이제 본격적인 창당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간의 통합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정동영 : 우리 정치권에 '새 정치 현상'이 나타난 지도 이제 2년 반이 지났다. 이제 신당을 통해 새 정치 현상을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신당의 짐이 무거워졌다. 지방선거에서 일단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본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야 창당의 의미도 살아날 것이다.

 

무엇보다 신당의 핵심은 새 정치 아니겠나. 내가 정치를 한 지 이제 18년이 됐는데, 그 시간 동안 추구해온 것이 정치 개혁이었다. 우리 정치를 바꾸는데 기여하겠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열린우리당에 투신했는지도 모르겠다.

 

새 정치 현상이 생기는 원인은 결국 주권자인 국민이 우리 정치와 정당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민의가 반영되지 못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민의라는 것이 선거 때만 반짝 투표를 통해서 반영될 뿐이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정치가 내 삶과 동떨어져 버린다.

 

OECD 국가 중 선거 때마다 의원이 절반 가까이 물갈이 되는 국가는 우리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상하원은 현역의 재선 비율이 90%를 전후라고 한다. 이렇게까지 계속 물갈이를 하는데도, 여전히 국민들의 욕구는 해소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게 '새 정치'의 핵심 질문이어야 한다.

 

프레시안 : 통합을 선언했지만 여전히 새 정치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동성도 떨어지고 지지율도 답보 상태인 것 아닌가?

 

정동영 : 일단 신당의 목표는 분명하다. 2017년 정권 교체다. 목표는 분명한데, 정권을 교체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림이 아직 없는 것이다. 2007년 대선과 2012년 대선 실패도 여기에 있다. 그 이후의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2017년 정권 교체를 이뤄 민주정부 3기를 시작하려면, 지난 1,2기 정부와는 다르고 박근혜 정부와도 다른,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 없이는 집권은 여전히 어렵다.

 

"기초선거 무공천이 '새 정치'?…기초선거 대패한다면 安 정치적 책임 있어"

 

프레시안 :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통합의 지렛대가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이었다. 과연 그것이 통합의 명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정동영 : 기초선거 무공천이 과연 안 의원이 얘기했던 새 정치인지 회의적이다. 기초단체장 무공천 결정으로 서울시 현역 구청장 20명이 대부분 낙선하고, 그 여파로 서울시장까지 놓치게 되면, 안 의원 역시 그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 점을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 마키아벨리도 반드시 지켜야 할 불가피성이 없다면 잘못된 정치적 약속은 폐기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무공천 약속은 기본적으로 여야 모두 무공천인 것이지, 새누리당은 공천하고 우리는 스스로 무장해제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프레시안 : 그것을 약속으로 통합에 합의한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 된 것 아닌가.

 

정동영 : 아니다. 불가피한 게 아니라면 잘못된 약속은 시정해야 한다. 물론 민주당이 무공천을 (안 의원에게) 내주지 않았다면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한길 대표의 판단을 존중하고, 또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질문 역시 나올 수밖에 없다. 이게 양보할 수 없는 새 정치의 핵심이라면 물론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과연 무공천이 새 정치인가? 무공천을 하면 새 정치가 달성되나? 무공천을 한다고 해서 국민들의 욕구가 얼마나 충족되나? 그런 약속이 오답이라면, 오답인 것이 분명하다면 지금이라도 재고해야 한다.

 

최소한 기초단체장 선거에선 더욱 그렇다. 당장 통합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지방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런데 기초의원은 차치하더라도 단체장만 놓고 봤을 때, 무공천으로 후보가 난립하면서 대패할 가능성만 커졌다. 무공천 약속은 기본적으로 여야가 함께하는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이 문제 대해 단 한 마디 언급도 없지 않나. 선거는 결과가 말해주는데, 일방적으로 당하고 나서 '우리는 도덕적이었다'고 합리화하는 게 정치적으로 용납이 될까?

 

신당 밖에 설치된 새정치비전위원회가 이번 결정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연 기초선거 무공천이 새 정치 비전으로 옳은지에 대해서 말이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 모두 기초의원 전국 집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무공천을 약속했다. 그들의 요구를 거스를 수 없다 보니, 일단 약속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옳지 않은 약속이었다. 정당공천은 정당민주주의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본인데, 그 뿌리를 자른 것이다. 정당을 육성하고 지원하라는 헌법 정신과도 배치된다.

 

새정치비전위원회가 당 밖에 외부 전문가들로 꾸려졌다고 하니, 거기서 원점 검토하는 게 맞다고 본다. 무공천이 과연 정당 민주주의 발전에 유익한 것인지 해악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새 정치'라는 안철수 의원의 생각은 존중돼야 하지만, 이 문제는 윤리적인 검토가 아니라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양당 기득권 구조 바꿔야…'50대50 비례대표제' 필요"

 

프레시안 : 단순한 '약속 지키기'와 다른, 새 정치의 내용물은 어떻게 채워야 한다고 보나?

 

정동영 :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 하나는 제도개혁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문제다.

 

일단 제도의 문제가 있다. 현재의 정치 시스템이 유권자 뜻과 괴리돼 있다. 정치가 그들만의 싸움을 하고 있어, 유권자가 아프고 가려운 부분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와 괴리된 정치의 판을 바꾸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새누리당이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상황에선 불가능하다. 신당이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창당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총선을 통해 정치 지형을 바꿔야 한다. 20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달라고 호소해야 한다. 과반 의석을 얻게 되면 정치의 판을 바꾸겠다고 호소해야 한다.

 

 

총선에서 제시할 판 바꾸기의 핵심은 민의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정치 시스템으로 혁신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양당 기득권 체제가 공고하다. 새누리당이 19대 총선에서 42%의 지지를 얻었는데, 득표율로 따지면 총 300개 의석 중 42%는 126석이다. 그런데 현재 새누리당 의석 수는 150석을 넘는다. 과대 대표돼 있는 것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총선에서 36%의 정당 득표율이 나왔는데, 득표율대로 계산하면 108석이 돼야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양당이 현 정치 시스템의 수혜자인 셈이다. 양당제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감이 높다면 정당성이라도 확보되지만, 그것도 아니다. 정치 불신과 탈정치 현상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지 않나.

 

그래서 나온 것이 이른바 새 정치 현상이다. 정치의 판을 바꾸라는 것인데, 결국 유권자의 의사가 한 표 한 표 모두 국회에 대표되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열린우리당 때는 상향식 공천과 돈 선거 근절이 정치 개혁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이런 민의와 동떨어진 정치 시스템 개혁이 새 정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정치의 승자 독식주의를 깨면 정치의 판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정동영 : 그렇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50대50 비례대표제'인 셈이다. 국회의원이 총 300명이면,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을 150씩 반반으로 나누자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인 19대 국회에선 이 제도의 실현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20대 총선에서, 신당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정치 개혁 약속으로 제시해야 한다.

 

아직 국민들은 새 정치의 내용을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신당이 향후 제도 개혁을 한 축으로, 삶의 문제를 한 축으로 새 정치의 내용을 채워가야 한다. 현행 제도로는 유권자가 찍은 표가 사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식의 선거 제도를 개혁하는 걸 20대 총선 공약으로 내걸어야 한다. 만약 신당이 과반 의석을 얻어 이를 실행할 수 있게 되면, 그 다음 총선에서 생태주의 정당이 나와 5%를 얻으면 국회에서 15개의 의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국가 운영의 방향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국민 100명 중 5명이 생태주의 정당에 한 표를 던졌다면, 그런 의사를 가진 5명의 목소리가 국회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주권자의 뜻을 그대로 반영하는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 20대 총선 공약으로 돌파될 수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개헌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정동영 : 개인적인 견해로는 아직 어렵다고 본다. 우리 개헌의 역사만 보더라도,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 12.12 쿠데타, 6월 항쟁 등 혁명적인 상황이나 쿠데타에 의해서만 개헌이 이뤄졌다. 총칼에 의하거나 아래로부터의 에너지 분출이란 압도적인 힘의 관계에 의해서 헌법 체제가 바뀌어온 것인데, 평시 체제에서 정치 세력 간의 타협 또는 담합으로 개헌이 성사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또 단기적으론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개헌 이전에 현실 가능성이 높은 법 개정을 통해 의회부터 판을 바꾸자는 것이다.

 

오히려 개헌은 2017년 대선을 통해 의제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87년 체제에서 '2020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하는 것이다. 2020년 21대 총선까지로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고, 총선과 대선 시기를 맞추는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당선된 권력의 자기희생을 통하지 않고선 어렵다. 우리 사회 시스템을 87년 체제에서 2020년 체제로, 분권형 대통령제로 현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다음 대선이라고 본다.

 

"좌우 아닌 '아래'로 내려가야…신당, 노동 의제 중심적으로 다뤄야"

 

프레시안 : 신당이 채워가야 할 '새 정치'의 두 가지 트랙 중 하나를 제도 개혁, 다른 하나를 삶의 문제라고 제시했다. '삶의 문제'는 대표적으로 경제민주화나 복지로 좁혀진다. 안철수 의원과의 결합으로 이런 점에서 선명성이 다소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동영 : 작은 성과라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강정책의 문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논란보다는 구체적인 결과물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지금 신당의 환경이 나쁘지 않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약속 파기로 일관하고 있고,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다. 이제 신당의 규모만 해도 130석이 되지 않나. 정의당 등 야권을 모두 합치면 140석이 넘는데, 이렇게 야권이 거대한 규모를 이룬 적은 없었다.

 

기본 원칙에 있어선 보편 복지가 기본이고, 선별 복지는 보완이다. 이걸 바꿔버리면 새누리당과 똑같아지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역시 민주당 강령에선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을 위해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못 박고 있다. 그 역시 손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경제민주화와 보편 복지라는 시대적 화두를 선도한 것은 민주당이었는데, 대선에서 확실히 깃발을 든 것은 박근혜 후보였다. 그걸 다시 신당의 정체성으로 끌어오려면, 분명한 원칙 하에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을지로위원회와 같은 의미 있는 활동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본다.

 

 

 

프레시안 : 사실 민주당에서도 노선 논쟁은 해묵은 화두였는데, 안철수 세력과의 결합으로 더 복잡한 갈등이 노정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동영 : 우클릭이나 좌클릭 이야기는 무익하다고 본다. 그게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실체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IMF 위기 전엔 소위 봉우리가 하나인 사회였다. 그래프로 표현하자면 맨 왼쪽의 빈곤층부터 가장 오른쪽의 부유층까지, 거꾸로 된 U자 형태였다. 일단 당시엔 75%의 국민들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봉우리가 하나인 '단봉(單峰) 사회'에선 민주당은 오른쪽으로, 새누리당은 왼쪽으로 움직이는 게 맞다. IMF 위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제 봉우리가 두 개인 '쌍봉(雙峰) 사회'로 바뀌었다.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47%가 스스로를 하류층이라고 인식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른쪽 봉우리(부유층)를 대표하는 새누리당은 왼쪽으로 이동하는 게 맞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 깃발을 든 것 아닌가.

 

흥미로운 점은 왼쪽 봉우리(서민층)에서 거의 6대4로 박근혜와 문재인을 찍었다. 그게 패배의 결정타였다. 850만 비정규직, 600만 자영업자, 300만 농민, 200만 청년실업자들이 6대4의 비중으로 새누리당을 뽑아준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새누리당이 포진해 있는 오른쪽으로 가야하나? 그렇게 되면 집권은 불가능하다. 왼쪽 오른쪽이 아니라, 바닥으로 내려가야 한다. 사람들의 삶 속으로 내려가는 것이 답이다.

 

그런데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재능교육 등 노동자들의 싸움 현장에 항상 민주당은 빠져 있었다. 그 사람들은 우리 국민이 아닌가? 신당에게 그들의 표는 필요가 없나? 그들의 표는 100% 야권에 오나? 아니다. 6대4로 이미 왼쪽 봉우리에서조차 패배하지 않았나. 그래서 더욱 아래로 내려가야 하고, 노동 의제가 신당의 주요한 전선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2017년에 정권이 바뀌면 IMF 위기 이후 계속되어온 정리해고 시대, 비정규직 시대를 끝내겠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정리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하겠다는 게 왼쪽인가? 그건 왼쪽 오른쪽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민주화 같이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대기업 빵집으로부터 골목 빵집을 지켜드리겠습니다'라는 약속이 신당의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 좌우 논쟁을 그만두고 아래로 내려가자는 것이 나의 대답이다.

 

"계파?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프레시안 : 정치적 노선과 관련한 논쟁의 연장선에서 민주당 내에서도 계파 갈등이 상당했다. 여기에 지난 대선 과정에서 앙금이 남은 세력까지 한 지붕 아래 묶인 셈인데,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동영 : 정치 노선과 관련한 논쟁이나 토론은 치열해야 한다. 그게 일종의 건강성의 지표다. 그런데 그에 대한 토론은 없고, 하지 말아야 할 친노(親盧)니 비노(非盧)니 계파 논란만 있다. 그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2012년 대선 국면에서도 문재인 후보에게 친노 계파 해체 선언을 해달라고 두 번 요구했다. 결국 응답이 없었는데, 그 이후에 (문 후보가) 친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다. 이는 말과 실재가 다른 얘기다. 

 

예컨대 2012년 총선만 해도 어땠나. 계파주의에 함몰돼 계파 한풀이를 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170석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민주당의 선거 결과가 어땠나. 우리 정당사에서 가장 편협했으며 실패한 공천이 2012년 4월 공천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지난 대선 역시, 나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을 하면서 팀으로 가야한다고 제안했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우뚝 선 대선의 상수였고, 다른 후보들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으니 우리가 집권하려면 팀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한 팀으로 선거 캠페인을 했나? 아니다. 계파 후보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나는 지금도 2017년 대선에서 탁월한 후보 한 사람으론 집권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후보의 경우 한 사람으로서 충분한 표 결집력이 있었지만, 우리는 사람을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 국민들이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서 가장 알기 쉽게 향후 국정 운영을 알아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선거 전략이라고 본다.

 

신당 안의 유력 대권 후보들을 보면 새누리당을 압도한다. 다 모아서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100% 대한민국을 이야기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우리 정치에서 가장 큰 구멍 아닌가. 야당이 집권할 수 있는 길, 정당 지지율에서 새누리당을 역전할 수 있는 길은 팀으로서의 당을 보여주는 것과 역동성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친노의 해체 선언이 지금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보나?

 

정동영 : 2012년부터 줄곧 얘기해온 주제였다. 친노 뿐만 아니라 계파의 해체가 있어야 하고, 노선과 정체성을 갖고 건강한 토론을 해야 한다.

 

프레시안 : 안철수 의원이 '호랑이 굴'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동영 : 안 의원이 성공하는 게 신당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함께 협력하고 경쟁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 언젠가부터 내부에서 서로에 대한 앙금이 많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는 야당 밖에 못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 친박과 친이가 서로 적대하고 갈라져 있었지만, 선거 국면이 도래하니 콩크리트 공조를 하지 않았나. 반면 우리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안철수 의원의 경우 이번에 어려운 결단을 했다. 연대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통합은 결단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는데, 안 의원의 결단을 보고 다시 평가하게 됐다. 결단을 할 수 있는 지도자인 것 같고, 성공하길 바란다.

 

"경기도 승산있어…오거돈 무소속 출마가 맞다"

 

프레시안 : 지방선거가 석 달도 남지 않았는데, 통합 이후에도 수도권 판세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아 보인다.

 

정동영 : 이번 지방선거의 중심 축이 이른바 경부선이다. 서울과 경기, 부산을 이기면 박근혜 정부 1년 반 동안의 국정운영 방향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기의 경우 일단 경쟁력 있는 후보군도 있고,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개인 인물 경쟁보다 노선 경쟁이 일 것으로 보이는데, 버스공영제라는 의제도 떠오르지 않았나. 일단 의제를 주도하면 새누리당은 끌려온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의제가 그렇지 않았나. 경기도는 승산이 있다고 본다.

 

서울의 경우 저쪽의 경선 흥행이 문제인데, 박원순 시장이 상당히 시정을 잘하지 않았나. 다만 걱정되는 것은 언론 환경이 나쁘기 때문에 저쪽에는 경선 흥행 찬조부대가 많다. 그런데다 이번 무공천으로 구청장선거까지 난립해 버리면, 우리 구청장들이 패하고 시장 선거까지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다. 

 

 

프레시안 : 오거돈 전 국토해양부 장관의 경우 무소속 출마를 고집하고 있다. 신당 입장에선 어떻게 돌파해야 하나?

 

정동영 : 개인적인 견해로는 무소속 출마가 맞다고 생각한다. 부산에서 새누리당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의 국정운영 방향을 바꾸기 위해선 부산에서 심판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오 전 장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신당이 돕는 것이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

 

프레시안 : 정 상임고문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중진 출마설이 돌기도 했는데, 향후 어떤 정치 계획을 갖고 있나?

 

정동영 : 지방선거는 나의 길이 아니라고 지난해 말부터 일관되게 얘기해 왔다. 지난 총선에서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최고의 선(善)이 정권교체라고 누차 얘기해 왔다. 지난 대선 당시엔 어땠나. 국민들은 '이명박 시즌2'도 원하지 않았지만 '민주정부 시즌2'도 원하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의 경우 이명박 정부 시즌2가 아니라는 것을 포장하는 데 성공한 것이고, 우리는 민주정부 시즌2를 뛰어넘으려는 모습 자체를 보여주지 못했다. 정치를 18년 동안 해온 경험을 당이 2017년 집권하는 데 밑거름으로 쓰고자 한다.

 

프레시안 : 7월이나 10월 재보궐선거 때 기회가 열린다면?

 

정동영 :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