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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정동영, 서민 증세 폐기하고 '사회복지세'로 가자

[서민 증세 폐기하고 '사회복지세'로 가자]

 

최근 세계적 화두는 불평등 문제다. 화두에 불을 붙인 사람은 프랑스의 43살 소장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교수다. 그는 지난주 한국을 다녀갔다. 그는 한국의 불평등 수준이 일본 유럽보다 높고, 세계 최악인 미국 다음 정도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의 격차는 합리적인 수준까지만 벌어져야 한다. 지나치게 격차가 벌어지면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한국의 불평등은 합리적 수준인가?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답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통계는 한국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위험 수준에 와 있음을 경고한다.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한다. 미국은 50%.

 

1929년 미국에서 대공황이 왔을 때 상위 10%가 소득 50%를 점했다. 나머지 50%를 갖고 90% 중하위층이 나눠 갖는 양극화 상황에서 대다수 서민은 소득이 낮으니 소비 지출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소비가 줄어드니 생산한 물건들이 팔려 나갈 수 없어 극심한 불황이 왔고 그 끝에 대공황이 발생했다.

 

피케티는 한국에서 불평등을 줄이려면 누진 소득세와 노동시장의 정상화 그리고 대학 교육의 무상화를 검토할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굳이 피케티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숙고해야 할 처방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최근 정부는 담뱃세 주민세 자동차세를 두 배로 인상하는 서민 증세 안을 발표했다. 하루 담배 한 갑, 중형차를 모는 30대 직장인의 경우 내년에 '세금 3'만 올해보다 75만 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대외적으로는 증세를 안 한다고 하면서 서민들의 세금을 주로 늘리고 있다.

 

'세금 3' 올려봐야 고작 3조 원 남짓 세수가 더 걷힐 뿐이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이어져 온 부자 감세로 줄잡아 100조 원의 세금 혜택을 재벌 대기업, 고액 자산가, 고소득자들에게 베풀어 준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같이 부담하는 '세금 3'은 오히려 불평등 격차를 더 벌리는 역진적 세금 정책이다. 재벌과 부유층의 세 부담을 늘리는 대신 서민 주머니 털 생각만 하는 정부에게 조세 정의와 형평성은 먼 나라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세금 문제는 '세금 있는 곳에 대표 있다'는 명언이 상징하듯 대의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세금 3' 인상은 집권 세력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현재 한국의 양당 체제에서 새누리당은 재벌 대기업, 부유층, 기득권층을 충실하게 대변하고 있다.

 

문제는 야당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한쪽은 수구보수파로서 정체성이 뚜렷한 반면 다른 쪽은 그저 '잡탕' 정당처럼 보이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담뱃세 주민세 자동차세로 고통이 늘어난 압도적 다수의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야당의 존재감이 없는 것이 오늘 한국 정치의 핵심 문제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을 대표해야 마땅할 제1야당이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무시당하는 오늘의 비정상적 현실이 핵심 문제다.

 

지난주 광화문 세월호 천막에서 만난 아주머니 한 분이 자신은 보문동에서 왔다며 내 팔을 잡고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어려서부터 죽도록 일만 하고 살았어요. 옛날에는 하루 천 원 받고 일한 때도 있었어요. 지금도 식당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면서 살아요. 그런데 정말 먹고 살기 힘들어요. 우리 같은 사람에게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우리가 민주당 말고 믿을 데가 어딨어요. 그런데 민주당이 이게 무슨 꼴이에요. 어디를 믿고 살란 말이에요.."

 

가슴이 먹먹했다. 그저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국가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그 답이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 아니었던가.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복지국가 약속은 일찌감치 허언이 되었고, 경제민주화는 이미 충분히 했다며 팽개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야당이라도 복지국가를 향한 현실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사회복지세 신설이다.

 

1970년대 자주국방을 위해 방위세를, 1980년대에는 미래세대 교육을 위한 교육세를, 1990년대에는 WTO 가입에 따른 농어촌 지원을 위해 농어촌 특별세를 신설했듯이 지금 국민이 열망하는 복지국가를 위해 사회복지세를 마련해야 한다.

 

사회복지세는 이미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등 복지단체들이 국회에 입법 청원을 한 상태이다. 사회복지세는 누진성을 지닌 소득세-법인세-상속증여세-종합부동산세 등 4개 세목에 20%를 추가하는 부가세 형태로 연간 20조 원을 거둬들일 수 있다.

 

사회복지세는 소득에 비례하기 때문에 저소득자는 적게 내고 고소득자는 많이 낸다. 200만 원 이하 소득자는 월 700원을 부담하면 되고, 300만 원은 6000, 500만 원은 52천 원, 천만 원 소득자는 24만 원을 내야 한다. 저소득자는 커피 한 잔 적게 마시는 대신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야당이 집권하려면 '반대자'를 넘어 '대안자'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경제적 약자의 눈물을 닦고 한국 경제를 저성장의 늪에서 구해내기 위한 처방으로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의 구체적 방도를 제시하고, 그것을 온 당력을 기울여 밀고 나가는 것 말고 정권교체로 가는 다른 길은 없다.

 

정 동 영 (민주당 대통령후보)

 

(본 글은 새전북 신문과 창원일보 기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