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정치인 정동영…국회로의 복귀를 고대하는 이유

"전 대통령 후보 정동영, 국가위하는 일에 봉사기회 갖기를 고대한다!"

 

20160412 브레이크뉴스 박채순 정치학 박사

 

필자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지역주의라는 주제로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내용을 가지고 강의도 하고 글도 쓰는 학자다. 현재는 한국 국제교류재단의 파견한 객원교수로 해외에 나와서 한국의 민주주의 성취, 경제 발전과 찬란한 문화에 대해 외국인 학생들에게 강의 한다. 또한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인 지역주의를 소개하기도 한다.


한국의 정치적 지역주의는 고 김대중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과 겨루었던 1971년의 대선에서부터 일기 시작한다.


호남 소외 한국의 지역주의는 영남 쪽에서 독재시대의 박정희와 전두환에서 최근의 이명박을 거쳐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는 동안, 일곱 명의 대통령이 55년 동안 집권한 사이에 호남 지역에서는 유일무이하게 김대중 대통령이 5년 동안 집권한 것과도 많은 연관이 있다.

 

 

▲ 정동영, 언제나 현장에서 어려운 국민들과 함께하는 정치인이다. 왼쪽은 필자. ©브레이크뉴스

 

박정희 대통령 이후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정치사를 설명할 때, 이 지역주의 보다 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주제나 테마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바탕에서 절대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4수 만에 충청지역의 김종필과 연대하여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대통령의 예는 아무리 분석하고 복기해 보아도 거의 기적에 가깝다.


독재 시절에는 영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대통령이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었고, 민주화 이후에도 영남세력에 비해 많이 부족했던 호남지역 출신의 정동영이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로 당내 어려운 경선을 거쳐서, 2007년 12월 19일 제 17대 대통령 후보에 오른 것 또한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나라당 이명박과 상대하여 11,492,389대 6,174,963표로 겨우 26.1%만을 얻었다. 그가 57만 표의 차이로 패한 것은 대선 역사상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불명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울 변두리 지역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정동영의 선거 운동 책임자로 그와 처음 알게 되었다. 최근에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 진영에서 경쟁자인 이명박을 지원하고, 이명박의 형 이상득과 노무현의 형 노건평의 묵계로 이명박을 지원했다는 등의 말들이 전해진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이 적장인 이명박을 지원했다는 소식도 접한다.


그런 확실하지 않은 내용을 접어 두고라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거부가 매우 심해서, 정동영에 대한 선거 운동원들은 설 자리가 없을 만큼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배척을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열린 우리당’에 대한 국민들의 노골적인 적대시는 도저히 정상적인 선거운동을 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물론 후보자 정동영의 능력 부족도 있었을 것이라고 감안하더라도, 당시의 환경과 분위기는 어떠한 신출귀몰한 후보가 출마했어도 당선은 불가능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정해진 대선의 실패로부터 정동영의 고난이 시작된다.


이번에 그가 제20대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그 동안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전주시민에게 등한시 했던 점에 대해 설명하면서 많은 사실들이 공개 됐다. 정동영이 17대 대선에서 패한 후 정치인으로서 걸어온 길은, 대부분 그를 견제하거나 경쟁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난의 길이다. 물론 정치인은 이러한 여건을 과감하게 극복해야 하지만, 그에게 씌어진 호남 출신의 패장의 길은 참으로 험난했다.


그의 정치 행로는 생사까지 저당 잡혀야 했던 고 김대중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정치인 중에서는 가장 고통스러운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선에서 패했다는 멍에를 지고 두 번씩이나 전국 최고 득표로 그를 지원해 준 자기의 지역구인 전주 덕진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온통 개발 붐이 불던 18대인 2008년에 동작구에서 정몽준에게 희생양이 되었고, 2009년 전주 덕진의 자기 선거구 보선에서는 공천을 방해하는 386들과 당시 지도부에 있던 당내 경쟁자들이 그를 공천에서 배제해 버렸다.


이는 당에서 억지로 밀어내다시피 한 상황에서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다시 친정으로 복귀하게 된다.

 

▲ 2011년 7월 민주당에 보편적복지 특별위원회를 만드는 데 주도했던 시절의 정동영(오른쪽)과 필자. ©브레이크뉴스

 

2012년 총선에서는 공천을 주지 않고 뭉개는 지도부에게 부산에서라도 출마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으나, 강남 사지로 보내면서 비례대표 초선의원과 공천 경쟁을 시키는 수모까지 주어, 사실상 재기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 당시 친노인 문재인 그룹인 이해찬, 한명숙과 문성근이었다. 2014년 동작을에서 실시되었던 보궐선거에서도 정몽준에 당한 연고를 주어 그에게 회생할 기회를 주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배제해 버린 선거에서 국회의원을 새누리당에 진상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대선에서의 실패와 맹목적인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인하여 국민에 겪은 어려움에 대해 유일하게 공개적인 반성을 한 정치인이다. 그 동안 남북 문제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국가 장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보편적 복지를 도입한 정치인이다.


정동영은 비정규직, 실업자, 중소 자영업자, 노동자 농민 등 한국 사회의 약자들의 삶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울어주는 정치인이다. 2015년 무력해진 새민련에서 나와 관악을 보선에 뛰어들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했다. 하향하여 고향인 순창에서 감자 농사를 짓는 그에게 무력해진 당을 일으키기 위해서 문재인과 안철수가 차례로 그를 찾았다. 그러나 그는 새 정치를 외치는 국민의 당 안철수와 뜻을 함께하여 이번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정치인은 당연히 자기의 본연의 업무에 나서야 하고, 그처럼 국가를 경영해 본 많은 경험과 밖에서 체득한 능력을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경쟁자가 있는 법, 온갖 고난을 겪고 찾아간 고향에서 차가운 주민들의 시선을 대하여야 했고, 온갖 험담을 일삼는 경쟁자 진영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사실 그가 가진 정치 지도자로서의 국가적인 비전과 능력으로 볼 때 현존하는 정치인 중에서는 가장 앞 순서라고 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남북 대화와 평화를 상징하는 개성 공단을 만들었던 국제적인 식견, 한진중공업의 부당한 처사를 질타하던 정동영 의원, 노동자, 농민, 고난 한 삶의 현장을 찾아서 고통을 나누던 정동영이다. 정동영 그가 현명한 전주 시민이 손잡아 주어, 이제 다시 고향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는 일에 봉사할 기회를 갖기를 고대한다.

 

*필자/박채순. 정치학박사(Ph.D)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 연구위원. 월드코레안 편집위원. 복지국가 society 정책위원. (사) 대륙으로 가는길 정책위원.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역임.

 

 

출처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437599&section=sc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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