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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 공보실

"4대강 사업 20조면 달나라 2번 가고, 항공우주강국 된다"



9월 2일 오후3시, 정동영 의원은 ‘야후 미디어’의 생방송 프로그램 “송지헌의 사람IN"에 출연, 최근 정치현안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국 방향에 대한 견해를 밝혔습니다.

정동영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계기와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에 대한 소회를 밝히며 “40개월 동안 최장수 대변인을 하며 김대중 대통령의 가슴과 머리를 제 입으로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며 “그 분의 사상과 철학, 정치관, 인생관을 사사할 수 있어서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사진 : 야후 미디어 생방송 화면 캡처>


3김이 마무리되고 2정, 즉 정동영, 정세균 대립으로 이어지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게 보이냐”고 반문한 뒤 "정세균 대표와는 정치를 같이 시작했고, 서로 도왔다“며 ”큰 틀에서 통 크게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북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반도 문제의 대변화, 전조가 보이고 곧 오게될 것”이라며 “해결방안은 남북대화, 6자회담 틀 모두가 필요하며 이것을 미국의 오바마, 일본 민주당, 이 시기에 풀어내겠단 의지만 있으면 대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또, 정부의 4대강 사업대신 항공우주산업으로 가야한다며 “항공우주산업은 노동집약 산업, 좋은 일자리 만드는 핵심 산업”이라며 “4대강 들어갈 돈 20조면 달나라 두 번 갔다오고 완전하게 항공우주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고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정동영 의원은 “정치인생에서 공도 있고 과도 있지만 감히 말씀드리면 사사로움은 없었다”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치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고통받는 국민들과 항상 현장에서 대변자로 함께 있을 것”이라며 인터뷰를 마무리 했습니다. 


다음은 이날 인터뷰 전문을 부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송지헌(이하 송): 미국에 있는 동안 정동영을 들여다 볼 기회가 되었나?

정동영(이하 정): 내가 정치인인가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역사적 변화가 일어났다. 흑인 대통령이 당선 된 것과 80년 만에 미국 대공황이 엄습한 것 이 두 가지다. 미국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경제위기를 어떻게 대응해 가는가,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큰 공부 됐다.


송: 대선 실패 했다. 실패라는 말보다 대선에 참여했다고 하는게 낫겠는데...

정: 97년 김대중 후보, 2002년 노무현 후보 성공하셨는데 2007년 내가 주자로 나서서 제대로 변변한 싸움도 못하고 실패한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

 
[네티즌 질문] 용산 참사 해결은 커녕 재판도 파행되고 있는데, 용산 문제의 현실적 해결책은?

정: 정기국회가 개회되었다. 용산참사 해결을 촉구하는 의원 결의안 서명을 받고 있다. 결의안의 내용은 정부로 하여금 진상을 규명하고,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제일 어둡고 힘든 부분인데 이를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통합을 얘기 하겠는가.

용산참사 발생을 생각해 보면, 다섯 분의 생명을 앗아갈 만큼의 강경하고 무리한 진압을 꼭 했어야 했는가 생각된다. 사건발생 이후 7달이 넘었는데 방치, 외면하고 있는 것이 정부의 태도다. 과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정부로서 온당한 태도인가.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 국회에서 결의안 통과시키는데 주력할 생각이다.

[네티즌 질문] 개성공단 역할 컸는데, 장기적 계획은?

정: 개성 공단은 꼭 좀 가보셨으면 좋겠다. 한국이 한반도에서 제대로 된 미래를 여는 열쇠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개성공단이 어려웠을 때 신종 직업병이 생겼는데 그것이 “ 자다가 벌떡병”이라고 한다. 다행히 특사 조문단 방문을 전후해서 개성 제재가 풀리면서 한숨 내려놓게 되었다. 핵심은 불안만 제거하면 된다. 개성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 없이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고, 중소기업이 중국, 인도네시아로 빠져나가지 않고 바로 수도권 근처에서 대안 찾을 수 있는 희망을 주는 것이고, 우리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위해서도 반드시 키워가야 할 희망 사업이다. “자다가 벌떡병”의 근원은 일말의 불안에 있다. 그것을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정치 뿐이다.

[네티즌 질문] 김대중 대통령과의 일화 중 대중에게 공개 안 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정: 흐느껴 우는 모습을 처음 본 적이 있다. 대선 투표 날 전날 동생 분이 돌아가셨는데 동생분이 형님께 알리지 말라고 해서 다음날 알게 되어 대선 끝나고 출구조사 발표가 된 이후 병원에 찾아가셨다. 설움에 겨워 재수씨를 껴안고 펑펑 우시는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틈만 나면 책상에서 늘 메모하셨다. 당시에는 대통령 당선되고 IMF가 엄습했을 때였다. 2~3일 지났는데 노트가 빽빽할 정도였다. 책상 위 노트 분량 쌓여가는 것을 보면서 그분의 치밀함에 감명 받았다.


송: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정치에 입문했는데 서거하셨을 때 느낌은?

정: 막막한 느낌이었다. 순간,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구나 하는 느낌이 밀려왔다. 중환자실 계실 때 거의 매일 찾아가다가 중간에 담당 주치의께서 한달, 두달 정도 버틸 수 있고, 안정화된 상태라고 하셔서 예정되어 있던 미국에 갔다. 그런데, 가자마자 상태가 위독해 지셨다. 그래서 이틀 만에 귀국했고 거의 매일 병원 지켰다. 8월 13일. 그날이 동경에서 납치되신 후 생환하신 날이다. 생환기념 미사가 열렸는데 병원에서 이희호 여사님이 슬퍼하고 우셨다. 그래서 ‘어렵게 되신 모양이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때 직감 했다.


송: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의 시작은?

정: 청소년 시절에 그분의 40대 기수론에 매료됐다. 그래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되었다. 4대국 보장론 주장을 듣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그것을 실현하려고 온몸을 던졌던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생이었고 후배들이 이어받아야 하는 부분이다.

방송기자로 일하다 96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는데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고 정치에 입문, 정당에 들어오면서 바로 당 대변인, 총재 대변인을 맡아 40개월 동안 김대중 대통령의 가슴과 머리를 제 입으로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그 분의 사상과 철학, 정치관, 인생관을 사사할 수 있어서 큰 행운이었다.

송: 김 전 대통령 유언 논란이 있는데...

정: 박지원의원이 전한 말은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정동영을 중심으로 단결하라고 말씀할 수는 없는일 아닌가. 손학규 전 대표가 대표 할 때도 똑같은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통들 대표는 양해를 구하는 글을 남긴 걸로 알고 있다.


송: 야 4당 통합 문제에 대해

정: 여당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미디어법도 밀어붙이고 4대강 예산도 밀어 붙이고 있다. 이런 것에 맞서기에 민주당은 3분의 1이 안돼 의석이 모자란다. 혼자 힘 가지곤 안된다. 야 4당이 굳건하게 연합하는 것이 상식이다.


송: 3김이 마무리되고 2정, 정동영, 정세균 대립으로 이어지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

정: 그렇게 보이나?(웃음) 정세균 대표와는 정치를 같이 시작했다. 같은 해 입문 했고. 서로 돕고 해 왔다. 큰 틀에서 통 크게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송: 미국의 고어 후보의 경우 패배 이후 다른 일을 찾았는데 우리는 그런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정: 미국 시골에 있으면서 정치는 축복이라는 생각 들었다. 막상 정치를 할 때는 생각 못 했다. 공적인 봉사를 할 수 있다. 누구나 다 나라를 걱정하고 정치를 얘기하지만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된다. 그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낮은 자리에서, 맨 처음 시작했던 지역에서 심판을 받고 다시 초선의원으로 복귀하는 심정, 그런 각오였다.


송: 그러나 자격없는 사람들이 하면 정치가 재앙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정: 정치가 재앙이면 국가가 재앙으로 빠진다. 우리 보다 나은 선진국 중 정치가 우리보다 못한 나라는 거의 없다. 우리보다 문제가 많은 나라는 정치가 엉망인 나라다. 정치를 어떻게 올려놓느냐, 결국은 우리 아들 딸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이다.

정동영 정치인생은 개혁정치의 13년이었다고 자부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지 않았다. 늘 현실 정치를 바꿔보려 했다. 실패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상처도 받았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정치를 불신하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정치를 행태와 제도적 측면에 있어서 뜯어 고쳐야 한다는 확신도 있었다. 그 맘 변함없이 정치개혁 할 것이다. 국민에게 정치가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정당민주주의가 완성돼야 한다.


송: 포스트 DJ는 누구인가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1위를 했는데?

정: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누가 포스트 DJ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포스트 DJ 시대는 어떻게 열어가야 하나. 여기에 집중하고 경쟁해야 할 것이다. 과제를 중심으로 보면 민주정부 10년 정권을 빼앗기고 나서 1년, 핵심은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것, 소득 양극화다. 한반도는 대결과 냉전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평화체제를 하루 빨리 우리 손으로 이루어내야 한다. 이 두 가지 과제가 포스트 DJ 시대의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을 잘 수행하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송: 9월 18일 김 전 대통령의 미국 연설을 대신하기로 했는데?

정: 당초 9월 18일 김 전 대통령께서 미국 언론인 협회 초청으로 토론하게 돼 있었다. NPC 연설 연사위원회에서 논의 끝에 나를 초청해 주었다. 주제가 ‘북한 핵문제, 한반도 평화, 남북한 및 6자회담 중단’인데, 주제에 합당한 연사로 불러주신 것이다.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한반도 문제에서 키가 되는 인물은 김정일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과 남쪽에서 회담한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다 서거하셨는데 내가 김정일 위원장과 핵문제를 놓고 담판한 적 있어 부른 것 같다.


송: 외국 언론이 포스트 DJ로 보는 것인가?

정: 가서 물어보겠다.(웃음) NPC는 우리와 인연이 있다. 1950년 에치슨 미국무장관 초청연설에서 그는 한국을 미국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연설을 했다. 그것이 6.25전쟁 발발의 도화선이 되었다. 94년 5월 12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초청 연설에서 카터 대통령을 평양에 보내 핵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 실현됐다. 이 덕분에 1차 핵 위기 넘겼다. 그 외 드골, 만델라, 달라이 라마 등이 여기서 연설을 했다. 무거운 자리다.

요즘 연설문 기초위원회를 만들어 연설문을 준비하고 있다. 소신껏 철학을 펼칠 생각이다.

크게 봐서 한반도 문제의 대변화, 전조가 보인다. 곧 오게될 것이다. 그 시작이 북미직접대화가 될 것이다.6자회담에 먼저 들어오라는 것이지만 어쨌든 미국이 원하는 것은 한반도의 비핵화, 북이 원하는 것은 생존과 번영이다. 우리도 비핵화를 원한다. 해결방안은 남북대화, 6자회담 틀 모두가 필요하다. 오래 지연되었다. 이것을 미국의 오바마, 일본 민주당, 이 시기에 풀어내겠단 의지만 있으면 대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송: ‘대변화’란 무엇을 말하는가?

정: 부시 대통령때 강압적으로 북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제거해야 한다고 주먹으로, 예방적 타격으로 하겠다는 무시무시한 얘기 오고갔지만 아무성과 없었다. 내년 5월이 되면 세계 비확산 체제, NPT가 전체적으로 재점검하는 회의가 열린다. 3월이 되면 세계핵정상회의가 열린다. “핵이 없는 세계”는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주제이자 국제정치 리더로서의 목표이다.. 평화, 외교적 수단으로 북한이 핵 포기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이 협력하고, 일본 정권이 바뀌며 북과 대화하겠다는 정권이 들어섰다. 큰 틀에서 정세가 바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공든탑이 무너지고 있다. 극적으로 김대중 대통령께서 돌아가시면서 다리를 놔주었다. 북 조문단이 서울 와서 청와대를 갔다. 남북대화 시동이 걸렸다. 이산가족 상봉을 시도하고, 개성공단도 원상회복되어 자유롭게 통행하고... 이런 현상들을 물밑의 거대한 변화 위에 나타나는 빙산의 일각으로 보는 것이다. 모스크바와 북경이 이미 적이 아닌 친구, 우방이 되었으나 아직 워싱턴과 도쿄는 북과 수교하지 못했다. 이것을 완성하면 새로운 경제시장이 열린다. 오래 기다려왔으나 한번도 현실로 이루지 못했다. 눈앞에 와 있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다.


송: 북한이 6개월 이후 도로 그 자리로 가면?


정 : 그래서 정치, 정부, 지도자의 철학과 의지가 중요하다. 10년 동안 2만명의 이산가족이 만났고, 북의 읍면단위까지 장마다 시장이 생겼다. 시장경제의 싹이라고 볼 수 있다.

북은 6.25 전쟁 이후 지금까지 미국과 기술적으로 전쟁상태다. 교전중단이지 평화상태가 아니다. 부시정부 때 북을 제거해야할 대상, 정권교체 대상으로 보았다. 그 속에서 선택은 문을 열고 항복하든지, 스스로를 방어하든지 둘중의 하나다. 그러나 의도를 해소하면 해결된다. 시각차이가 크다.  보수파는 절대적으로 북측의 김정일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2005년 김정일 만나서 5시간 대화했는데 그 중 1시간이 북한 핵문제 였다. 보수진영 사람들은 북이 핵포기를 안한다고 확신한다, 어떻게 믿게 하겠냐고 거듭 물었다. 마지막 나온 대답이 이것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  초강대국이 나를 밟아죽이지 않겠다는 보장이 주어지면 내가 핵을 개발하고 가져야할 이유가 없다, 포기하겠다고 했다. 말만 가지고 믿을 수 없지만 회담 결과를 가지고 1년간 중단되었던 6자회담 다시 재개되었다. 6월에 만나고, 7-8월에 회담 재개되어 9.19 공동성명 합의가 이루어졌다. 북한은 현존하는 모든 핵과 핵무기를 폐기,미국은 국교수립,경제 지원 제공, 6.25 정전 협정을 항구적 평화협정으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 이것을 실천하면 된다.

핵을 내려놓고도 북 체제를 유지하려면, 권력을 유지하려면 미국과 잘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아시아에 3개의 공산국가가 있다. 베트남,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정치지만 시장경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우리의 희망도 북이 핵을 내려놓고 베트남, 중국처럼 시장경제 받아들여서 굶어죽는 사람 없도록, 국제사회에 나오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 실효성 있는 방법이다.

중국도 개방 전에 얼마나 인권문제, 경제상황 등이 힘들었나.지금 중국은 우리와 1주일에 항공기 800여편이 오고가고 유학생과 사업하는 사람이 상주하고 있다. 그런 상태 만들면 한반도에서 얼마나 좋겠나.


송: 국회의장 자문기구가 헌법개정안 보고서를 발표하며 개헌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 87년 헌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생각은 4년 중임제, 정부통령제, 결선투표제가 답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개헌이 정략적 접근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이익을 위한다는 진정성을 획득하려면 선행조치가 있어야 한다. 여야가 협력 파트너, 대화파트너로 인정되어야 한다. 지난번 미디어법을 몸으로 밀어붙이는 연장에서 논의하자면 실제로 논의가 되겠나. 용산 참사를 저대로 내버려두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개헌한다는 것이 진정성 있나. 과감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헌법 손질하자고 한다면 제가 생각한 것이 가장 합리적인 안이라고 생각한다.


송: 내가 대통령이라면 4대강 사업할 돈으로 달나라 가겠다고 했는데?

정 : 달나라에 가겠다는 비전이 있어야 우리에게 희망이 생긴다. 나로호 관련 수고하신 관계자에 경의를 표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된다.

왜 항공우주산업이냐,대선 때 AIR-7세븐 공약을 냈다. 세계 7대 항공우주국가로 가야 한다. 우수한 인재들을 항송산업에서 길러냈는데 그 인재들과 함께라면 자동차, 배도 되는데 비행기 로켓이 안되겠는가?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항공우주산업은 노동집약 산업이다. 반도체 산업은 사람을 쓰지 않는다. 사람 많이 쓰는 사업을 해야 한다. 항공우주산업은 자동차 산업보다 노동유발효과가 3배다. 항공, 비행기 전부 손으로 해야 한다. 중국이 중형항공기 산업에 150만명 고용 계획을 갖고 있다.좋은 일자리 만드는 핵심산업이다.
두 번째는 한국경제 고질병이 소재부품인데, 소재부품이 안되서 고급휴대폰 만들어도 핵심부품은 일제나 독일제다. 소재부품 문제 해결 위해서는 항공우주산업에 뛰어들어야 한다.항공우주산업은 가볍고 강해야 한다. 항공우주산업을 포기한 채 소재부품 타령해도 해법이 안나온다.

두가지만 봐도 달나라 가야한다. 미래 생존 전략 관련 2020년 중국인이 달나라에 사람 올려놓고, 일본은 과학기지 만드는데 우리만 땅으로 가는 것은 우리 미래 생존을 위해 안된다. 전략적 방위산업이다. 지난 80년 5공정권 때 한미관계 때문에 안타깝게 포기했다. 한세대 시간낭비했다. 4대강 들어갈 돈 20조면 달나라 두 번 갔다온다. 우리는 완전하게 항공우주 강국이 될 수 있다. 4대강 사업은 강바닥 파는데 많은 돈 들이는데 강물을 맑게 하는 사업으로 전환하고 대부분 예산을 항공우주산업으로 돌려야 한다.


[네티즌 질문] 대통령 되지 않아서 섭섭한 점이나 아쉬운 점은?

정: 용산참사 추모 미사 현장에 매주 갔다. 문정현 신부님의 미사 강론 중 “정의원이 대선에 패배하지 않았더라면 이분들 죽지 않았을 텐데”라고 하신 말씀이 통절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돌아가신 분들께 죄송하고 남아있는 유족들의 가슴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국회에서 노력하겠다.



송: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 핵심은 중산층, 서민 구제다. 지금 중산층, 서민들 고통스럽다.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공룡수퍼 때문에 골목상권 예를 들면 골목길의 문방구, 제과점, 골목수퍼 다 떨고 있다. 어디에 기대하겠는가? 민주개혁진영의 정동영을 기대하고 의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핵심이라고 본다.

송: 정계개편에 대해

정: 지금은 정계개편을 논하는게 아니라 각자의 원칙과 가치를 가지고 실현하려고 노력해야 할 때이다. 유럽의 경우 연정이 많다. 일본의 경우도 그렇다. 연정과 정계개편은 좀 다르다. 정당의 정체성 유지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위해 노력하고 정권획득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정상이다.


송: 복당은 언제할 것인가?

정: 제가 나오고 싶어 나온 건 아니죠. 때가 오리라고 본다. 통 크게 하나가 되는 것을 위해 노력하겠다.


송: 정세균 대표가 정동영 의원의 복당을 두려워 하는 것인가, 어려워 하는 것인가?

정: 정당에 문턱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주 추미애 의원이 이 인터뷰에 나와서 “당의 누구는 되고 안되고가 있을 수 있느냐” 시원스럽게 말 했다. 같은 생각이다.


송: 대권 도전계획은?

정: 지금은 그런 얘기 할 단계가 아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귀국 할 때 고통스러워하는 국민들 현장에 함께 있기 위해 왔다. 그 일을 성실하게, 묵묵히 해나갈 것이다. 사실, 대권이란 말은 거슬리는 단어다. 큰 봉사라는 말이 적합하다. 큰 봉사의 자세로...


송: 좌우명은?

정 : 구동존이(求同存異)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공존하고 적을 줄여라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가까이 모시면서 대변인 할 때 해주신 말씀이 있다. “사람들과 잘 지내라. 도저히 잘 지내지 못하겠거든 잘못 지내지는 마라”는 말씀인데 구동존이란 뜻과 이어진다.


송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계획은?

정 : 김대중 대통령의 옥중서신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어떤 어려운 도전에도 반드시 응전의 길이 있고, 어떤 불행의 배후에도 반드시 행운으로 돌릴 일면이 있다.” 국민 여러분께서 어려움이 크다. 어려움 뒤편에 기회가 있고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13년 반 정치에 몸담았다. 그 동안 비판도 있었고 격려도 있었다. 정치인생에서 공도 있고 과도 있지만 감히 말씀드리면 사사로움은 없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치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고통받는 국민들과 현장에 있을 것이고, 여러분의 대변자로 함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