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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사랑의 집 식구들과 함께 한 설 연휴 그 첫째날 이야기

15일, 광주로 내려가기로 한 날이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그 곳에 도착하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 많은 생각들을 했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사람들은 과연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까지 많은 상념들이 스쳐갔다. 그러한 생각들을 하는 동안 어느새 차는 광주시 서구 용우동 난마을 사랑의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15일 오후, 설을 보내기 위해 사랑의 집 정문을 들어섰을 때 첫 눈에 보인 건 3층 벽돌건물이었다. 처음에는 그 건물이 조금은 낯설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곳을 떠날 땐 정말로 많은 느낌을 던져준 건물이 되었다. 정문을 지나 현관문을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인 건 환하게 맞아주는 안젤라 원장 수녀님과 젤뚜르다 간호 수녀님 두 분의 환한 미소였다. 그 두 분의 환한 미소를 보며 긴장해 있던 내 마음은 어느새 풀려있었다.


1층 넓은 홀 바닥에 누워있고, 또 앉아있던 17명의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20살에서 70살까지 전부 남자들이었다. 전신장애나 언어마비 장애, 뇌성 마비, 다운증후군, 중증 정신지체 등 다양한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을 보면서 예전에 수십차례 이상 방문했던 장애인 시설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단지 하루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며칠동안 함께 먹고, 자고 일상을 보내기 위해 온 것은 처음이었기에 '과연 내가 잘 어울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쳐갔다. 그러나 나를 보면서 이분들 얼굴에 떠오르는 아기와 같은 천진한 미소와 웃는 얼굴에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오후 5시가 되어 식사준비에 들어갔다. 약 오십 평생을 누워서 밥을 먹은 이재명씨(세례명 베드로)에게 밥과 김치를 잘게 썰어서 비빈 밥을 떠먹여 주는 일을 했다. 그분의 모습을 보며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만도 축복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분의 식사를 도와준 후 나머지 형제들과 밥상에 앉아 밥과 시금치국, 김치, 무말랭이, 고사리 무침 등의 반찬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뒷정리를 했다. 각자 상 닦기, 접시 나르기, 그리고 설거지 하는 사람, 그릇 닦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 커피 타는 사람 등으로 나눠 뒷정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설거지 당번을 했다. 사실 집에서 자주 했기 때문에 설거지는 익숙했다. 설거지 하는 모습을 본 수녀님이 많이 해본 솜씨 같다고 칭찬해 주었다. 옆을 둘러보니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미카엘 형제가 물기 흐르는 접시와 그릇들의 물기를 닦아서 멸균 건조기에 차곡차곡 진열, 저장하는 역할을 꼼꼼하게 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성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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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양치질까지 마친 뒤 수녀님을 앞세우고 산책에 나섰다. 사랑의 집 건너편 송정리 멀리 뒷산으로 지는 붉은 석양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모두가 노을 진 서쪽하늘을 가리키며 좋아라 했다.


두 다리와 한쪽 팔이 없는 강요셉아저씨의 휠체어를 밀면서 논두랑을 걸어갈 때 공기는 차가웠지만 참 맑고 신선했다.


트랙터로 잘 갈아놓은 벌판의 논과 이제 막 파릇파릇 쑥잎이 보이기 시작한 논두렁길, 그리고 농토를 따라 길게 늘어선 전선주의 모습이 평화로웠다. 걸어가면서 안젤라 수녀님에게 “이분들은 거짓말은 하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수녀님은 “우리아저씨들은 거짓말을 할 줄을 모른답니다”라고 대답했다. 물어본 내가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팔 다리가 멀쩡하고 정신이 멀쩡한 일반인들이 문제지, 중증 장애인들의 세상에는 거짓과 미움 같은 것은 없다. 어쩌면 사람은 착하게 태어나지만 사회에서 때가 묻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