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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사랑의 집 식구들과 함께한 설 연휴 그 두번째 이야기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눈이 내릴 철인데 비가 오니 지구 온난화가 심각하긴 심각하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일곱 시에 아침 먹고, 설거지 하고, 청소하고 나자 한 대의 봉고차가 왔다. 주말마다 자원봉사 하는 것을 도와주는 분이 봉고차를 몰고 온 것이다.



젤뚜르다 수녀님과 시몬, 미카엘, 도현, 홍도마 등 보행이 가능한 4분과 함께 사랑의 집을 나섰다. 김치와 떡, 과일 상자를 차에 싣고, 쌍촌동에 있는 장애인 임대아파트를 찾아갔다. 봉고차를 가지고 온 윤상하 씨는 입시학원을 하는 분인데 15년 전부터 매주 토요일이면 차를 가지고 와서 사랑의 집 식구들에게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봉사 활동을 한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해가 가면서 강한 의무감을 느끼게 돼 15년 동안 한 번도 토요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쌍촌동 임대아파트 7.5평짜리 좁은 공간에 전신 장애, 정신 지체 등 중증장애를 가진 가족들이 어렵게 살고 있었다. 첫 번째 집에서는 윤상하씨가 나서서 전신장애 아주머니의 머리를 감겨드렸다. 두 번째 집에서는 같이 간 홍도마씨가 누워있는 전신장애자 분의 어깨를 잡고 십자가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해드렸다. 같이 간 사람들 모두 그 모습을 보면서 방긋이 웃었다. 홍도마씨는 49살인데 동글동글한 얼굴과 밝은 웃음으로 사랑의 집에서 기쁨조 역할을 한다. 춘향가와 심청가 등의 창을 곧잘 뽑기도 하고 나에게 때때로 형님이라고 불러 좌중을 웃기기도 한다.



3번째 집에서 만난 이씨 성의 아저씨는 대한민국이 고맙다고 말했다. 7.5평의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기초 생활 수급비 23만, 장애인 수당 14만원으로 한 달을 지내면서도 ‘이 정도라도 어디냐,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나에게 말했다. 방도 깨끗하게 도배해 놓았고 두 다리를 못 쓰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매사에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같이 간 사람에게 오히려 기쁨을 주는 것을 느꼈다.



쓸데는 없지만 이씨는 핸드폰을 가지고 다닌다. 일상생활의 비중에 있어서 인터넷과 휴대폰 사용에 드는 비용이 큰 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올 때는 없지만 항상 가지고 다니는 이유에 대해 물으니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가다 한번은 배터리가 나가는 바람에 애를 먹었는데 그 때 휴대폰 덕을 크게 보았다며 그 이후에는 항상 가지고 다닌다며 웃었다.



가지고 간 선물을 주고 아파트 밖으로 나오는 데 비가 더 세차게 내렸다. 비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곳 사랑의 집 식구들은 모두가 어렵지만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서 사랑을 나눈다. 그런 수녀님과 식구들의 마음씨가 내 자신에 비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파트를 나와 이번에는 무등산으로 향했다. 증심사를 지나 무등산 골짜기를 300미터 쯤 올라가자 계곡 앞에 움막이 나타났다. 무등산 입구에서 구걸을 하며 살고 있는 김재호(70대)씨의 집이다. 그 분의 부인과 아들은 정신지체자이다. 움막 안에는 얻어온 낡은 옷가지와 담요가 창고처럼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가족들은 외출하고 없었다. 특별한 경우이긴 하지만 이분들은 기초보장 대상자가 아니다. 구걸해서 모은 돈이 통장에 있어서 선정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통장에 든 돈이 얼마나 큰 돈 인지는 모르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분의 집을 떠나 내려오는 길에 무등산 입구 동동주 집에 들러 사랑의 집 식구들과 외식을 했다. 도토리묵과 파전, 그리고 열무 비빔밥 등을 맛있게 먹었다.



집에 돌아오니 근처 금호동 성당에서 목욕 봉사자들이 오셔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열일곱 식구들은 모두 깨끗하게 목욕했다. 그 분들은 매주 2번씩 목욕봉사를 온다고 했다. 힘든 것도 모른 채 웃으며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그 분들의 모습에서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눈으로 보는 것과 머리로 아는 것, 그리고 몸으로 체험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얼마나 다른 지 알아가는 게 바로 내가 얻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남모르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이웃이 있는 한 우리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끼며 사랑의 집에서의 하루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