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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뽕빨이너뷰 4/5

파토: 북한 관련해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의원님께서는 계속 평화적인 접근을 말씀하시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 중심적인 사상 같은 게 있으신가요?

 

정: 정치는 전쟁이냐 평화냐, 이 두 갈래 길에서 전쟁의 가능성은 제로로, 평화는 백으로 만드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민주정부 10년은 성공한 정부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5년은 실패한 정부였습니다. 그래서 12월 19일, 우리는 선언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5년을 청산하고 다시 민주정부의 십 년, 화해협력 정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포용정책 2.0의 시대를 열어야 하는 거지요.

 

파토: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수한 상황이 있는데, 이번 정권에서지만 연평도 포격 등 저쪽에서 공격을 해오지 않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평화적인, 유화적인 대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을 우익 쪽에서는 계속 하고 있거든요.

 

정: 원인 없는 결과가 없지요. 그러니까 대북 적대시정책, 대북 증오정책이 계속된 결과입니다. 민주정부가 계속됐다면, 제가 지난 번에 지지 않고 대통령이 되었다면, 지금 남북은 경제공동체를 향해서 질주하고 있을 겁니다. 그 상황에서 연평도 포격,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결국 한반도 문제의 주인이 누구냐, 주체가 누구냐, 이것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미국이 우리의 평화를, 중국이 우리의 평화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 주인, 주체는 우리입니다. 남과 북입니다. 특히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대통령의 신념과 철학이 중요합니다.

 

지난 5년 동안 남과 북이 다시 서로 증오하는 시대로 갔잖아요. 이것을 근본적으로 증오를 화해로 바꿔놓는 것이 근본 해법이지요. 저는 12월 19일 다시 민주세력이 집권하면, 그 날로 지난 오 년 동안의 대북적대시 정책이 잘못됐다는 걸 선언하고, 6.15의 복원, 2007년 10.4 정상합의의 복원, 2005년 9.19 베이징 공동성명, 북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 일본이 평양을 승인하는 이런 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을 추진할 것을 선언해야 한다고 봅니다.

 

파토: 그런 부분에서 현실적인 문제가, 요즘 종북 문제가 대두됐지 않았습니까? 통합진보당 사태와 종북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정: 원 위원님 등 떠밀어서 평양 가서 살라고 하면, 이북에 가서 살라고 하면 사시겠어요?

 

파토: 절대 안 되죠. (웃음)

 

정: 정상적인 대한민국은 등을 떠밀어도 가지 않습니다. 글쎄요, 저는 신 매카시즘, 2012년에 한국에서 불고 있는 이 광풍, 이것은 역사의 퇴행입니다. 전세계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민주통합당의 대북평화 노선, 화해협력의 노력까지를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이것은 미친 짓입니다. 종북은 나쁘지요. 그런데 종북을 이용한 장사는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통북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북과 통해야지요. 그래야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가 관리할 수 있지요. 이미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평화를 관리할 만한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누가 주체냐? 우리가 주체지요. 주인이지요. 미국이 그 평화를 담보합니까? 중국이 담보해줄 수 있나요? 도움이 필요하죠. 도움을 끌어와야죠. 그러나 주인은 우리지요.

 

파토: 자신감을 갖고 주체적으로 나가야 된다.

 

정: 그렇죠. 자신감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지금 북한이 남북경제교류협력 총 액수가 작년 말로 15억 불인데요, 개성공단 반출입 물자가 총 15억 불입니다. 개성공단 하나가 딱 남북교류 전부에요. 반면에 작년에 북한과 중국과의 교역이 60억 불입니다. 남북교역 15억 불의 4배인데요. 지난 정부 때까지는 비슷했거든요. 한 20억 불, 20억 불 정도로. 그러니까 우리가 관리를 포기하니까 중국이 (북한을) 관리하는 거지요. 이게 이명박 정부 5년의 결과입니다.

 

 

파토: 아까 잠깐 얘기 나왔던, 현장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많이 다니신 건 들어서 알고 있는데, 어디를 어떻게 다녔는지 간략하게나마 얘기를 해주신다면?

 

정: 정봉주 의원 식 표현이면 깔때기 (웃음) 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뭐, 오라는 데는 다 갔습니다. 가서 좀 성과를 냈다고 할까요, 결과적으로 푸는 데 도움을 드린 곳이 일고여덟 군데는 됐던 것 같아요. 한진, 세종호텔, 또 도봉구 한일병원, 청주의 아시아제지, 부산 고신대학의 청소 아주머니들, 전주 시내버스, 인천 세관 비정규직 노동자들 등등. 그런 데에는 어쨌든 제가 문제를 푸는 데 좀 도움을 드렸고 그 점에 대해서는 보람 있게 생각합니다.

 

파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실 희망버스.

 

정: 그렇죠. 희망버스는 사실 우리 시민사회가 노동문제와 결합한 최초의 사례이고, 또 성공적으로 김진숙 씨를 크레인에서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만든 성공한 연대운동이었지요. 그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평가 받을 수 있는. 그리고 광주라든지 촛불이라든지 희망버스라든지, 시민의 위대한 저력은 과거 역사에서도 쭉 발현되지 않았습니까? 동학이든 항일운동이든, 이것이 우리의 DNA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토: 현장에 계셨던 느낌은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리드를 했던 부분도 있고.

 

정: 그래서 정치가요, 저는 협치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들만의 정치가 아니라, 대통령만의 통치가 아니라, 시민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나라를 끌어가는 거지요. 요즘 집단지성이라는 말도 있는데, 우리 국민처럼 현명하고 시대정신을 충실하게 가슴 속에 담고 품고 있는 국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국민처럼 선량한 국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상식과 선의를 기초로 정치를 해나간다면, 저는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문명국가 반열에 올라가리라고 생각해요.

 

파토: 여기서 질문을 드리자면, 이런 일련의 변화와 노력조차도 정치적인 재기를 위해서 계산된 쇼다. 이런 시각이 있는데요.

 

정: 야박하긴 해요. (웃음)

 

파토: (웃음) 아닌가요?

 

정: 다른 분들이 하는 얘기에는 그런 토씨가 안 붙는데, 왜 저한테는 그런 것들이 따라 붙는지, 스스로 반성합니다. 어쨌든 저는 현장에서 답을 찾았고, 그것이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이 쇼라면 저는 정치를 끝내는 날까지 그 쇼를 할 생각입니다.

 

파토: 한편으로는 일주일에 몇 번씩 멀리까지 다니고 하시는데,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정: 배우는 거지요. 그리고 그 에너지를 얻는 거죠.

 

파토: 현장에서 오히려 에너지를 얻으신다.

 

정: 내가 이걸 몰랐구나, 하는 깨달음도 있고요, 거기서 또 희망을 봅니다. 이렇게 인간으로서의 고결함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서 김진숙 씨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목숨을 건 건 아니잖습니까? 타인의 삶의 일상성을 찾아주기 위해서,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끌어다가, 내 목숨을 건 투쟁을 한 그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지요. 많이 배웠습니다.

 

파토: 이번에 강남을에 출마하고 낙선하셨는데, 노무현 전대통령이 부산에서 여러 번 출마하고 낙선한 일이 있잖습니까. 정 의원님도 이번 대선에 출마하려는 계산에서 그 전철을 밟는다는 생각을 한 건지.

 

정: 노무현 대통령이 떨어지고 대선 나갈려고 부산에, (웃음) 계산한 것은 아니었겠지요. 저는 정말 강남에서 제 주장을 받아주면, 강남 한복판에서 부자증세와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확 탄력을 받을 것 같았어요. 제가 떨어진 것보다도 더 안타까운 것은 제가 이겼더라면, 저의 주장 FTA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 그 다음에 재벌개혁으로 갑시다, 복지국가로 갑시다, 하는 주장에 힘이 붙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요.

 

 

파토: 예민한 질문을 또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이럴 수밖에 없으니 이해하시고요. 지난 대선 때 1982년에 전두환 정권 아프리카 순방에 동행해서 정권을 옹호하는 말씀을 했다는 지적이 있었고, 그 영상이 TV 시사프로그램까지 등장을 했었습니다. 그때 관련 인터뷰를 거절하는 모습까지 나오고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이제 이야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정: 아픈 얘깁니다. 인정합니다. 인터뷰 거절한 건 잘못됐죠. 변명 같아서 피한 건데요. 저는 5공 때 기자를 했습니다. 늘 가슴 속에 사표를 품고 다녔습니다. 가장 부끄러운 한 대목이죠. 1982년인가요. 정권은 방송사에 기자 파견을 요구했고, 회사는 아프리카 정상외교에 선발대를 구성해서 막내기자로 포함이 됐어요. 그것을 거절하는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후회합니다.

 

그리고 현장에 간 이상 그걸 보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좌담회에 관한 것인데요, 스트레이트 보도라고 하지요. 스트레이트 보도는 철저하게 사실관계 위주로 보도했던 기억이 있고. 좌담회에서 케냐의 쿠데타, 아시아태평양 시대, 객관적인 것들을 에둘러서 말하려고 나름대로는 고심했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파토: 당시에는 언론이 정권에 대한 노골적인 아부성 보도를 포함해서, 지금과는 굉장히 다른 시대였는데, 방송 언론의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정: 관제언론의 시대였죠. 땡전뉴스라고(웃음) 그때는 모두가 다… 부끄러운 시대였습니다.

 

파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앞서 나가서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정: 네. 뭐…

 

파토: 알겠습니다.

 

- 아래 영상 보고 직접 판단들 하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