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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NLL을 바다의 개성공단 만드는 것인데 팔아먹은 사람으로 비난”

[지승호가 만난 사람]

“NLL을 바다의 개성공단 만드는 것인데 팔아먹은 사람으로 비난”

ㆍ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민주통합당 정동영 상임고문을 만났다. 그가 주도해서 만든 사단법인 ‘대륙으로 가는 길’ 사무실에서였다. 5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대패했다. 이후 정치인 정동영에 대한 철저한 성찰을 통해 반성의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숱한 오해와 비난을 받으면서도 갈등의 현장에 나타나 거리의 정치인으로 각인되었다. 한·미 FTA 반대집회 당시 빠짐없이 참석해 길바닥에 앉아 협정문을 읽던 모습, 청문회에서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마세요! 해고는 살인입니다”라고 외치던 모습이 이제 낯설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지금 참여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으로 개성공단 사업을 성사시킨 그의 더 큰 역할이 기대되고, 보편적 복지, 노동문제, 경제민주화, 재벌개혁과 관련해서 많은 화두를 던진 그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인터뷰는 11월 20일 오후 3시부터 2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지승호(이하 지) 최근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약속하자”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정동영(이하 정) 현 제도의 최고 수혜자는 새누리당이고, 두 번째는 민주당인데요. 1·2위가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한 불가능하죠. 그래서 국민투표론을 제기한 겁니다.

국회가 현재의 청와대보다 신뢰도가 낮기 때문에 그 숫자를 줄이는 것이 개혁처럼 보이는 상황인데요. 국회가 왜 이렇게 신뢰를 얻지 못할까요.

국회 구성원의 책임이 첫 번째겠지만,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봅니다. 언론이 끊임없이 반정치, 탈정치를 부추기잖아요. 독일식 비례제로 바꾸자는 것의 핵심은 뭐냐 하면 주권자의 권리를 살아 숨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반정치, 탈정치의 늪에서는 주관자가 참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참여해도 사표가 엄청 많잖아요.

지금 민주당 당론은 중대선거구제잖아요.

제가 문재인 후보에게 “김대중 대통령도 염원을 했고, 시민사회에서도 답으로 내놓고 있는 독일식 비례를 받으시오.” 그랬어요. 그래서 나온 것이 비례대표 100석, 지역구 200석입니다.

비례대표 확대를 제안한 것이 문재인 후보에게는 받아들여진 거네요.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새정치 7개항을 합의했는데, 눈에 띄는 것이 ‘국민의 고단한 삶’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새정치를 하자고 합의하면서 두 후보가 사람들의 고단한 삶에 주목한 거예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란 말이죠. 그 다수파의 지지를 조직하는 쇄신을 하자, 한국판 뉴딜 연합을 하자, 농민, 도시노동자, 비정규직, 청년실업자, 자영업,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뭉쳐서 다수파 정권을 만들어내자, 그리고 이 다수파 정권은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켜주자, 그러면 다수파가 강화될 것 아니냐, 그러면 정권을 재창출, 재재창출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박근혜 후보 같은 경우 경제민주화 공약을 상당히 후퇴시킨 것 같은데요.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의 이미지만 취했죠. 문 후보는 골목빵집에 가서 애로사항을 듣고 “앞으로 프랜차이즈 빵집 횡포 막아드리겠습니다”라고 해야합니다. 2008년 초에 골목빵집이 8000개였고, 프랜차이즈 빵집이 3000개였습니다. 그런데 5년 지났더니 숫자가 골목빵집 5000개, 프랜차이즈 5300개로 역전이 됐습니다. 경제민주화가 거창한 것이 아니고, 그런 골목빵집도 좀 먹고 살자, 이런 것까지 재벌 2·3세가 하냐, 이런 얘기를 해야 합니다. 인천공항이 세계 최우수 서비스 공항이고, 작년 순이익만 5000억입니다. 그런데 정규직 800명, 비정규직이 6000명이에요. 6000명 비정규직에게 희망을 줘야 하잖아요. 그랬으면 경제민주화가 확실하게 전선이 됐겠죠. 경제민주화 전선이 흐릿하니까. 경제민주화를 하기 위한 주체의 문제로서 정치쇄신의 문제가 나오는 거죠.

복지국가를 하기 위해서는 증세라는 불편한 얘기를 꺼내야 한다고 몇 년 전부터 주장해오셨잖아요.

오바마는 2% 상위, 25만 달러니까 우리돈으로 3억원 버는 사람들의 세금을 올려서 재정적자를 메워간다는 건데, 우리는 MB가 5년 동안에 감세로 해서 80조원, 그 중에 부자 감세, 즉 부자하고 대기업에 깎아준 것이 70조원입니다. 그런데 지출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그 다음에 조세 형평성을 잘 해가지고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수사죠. 그걸로는 국정운영 원리를 바꿀 수 없어요. 미국은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부자 감세와 중산층·서민을 위한 경제노선을 선택한 반면, 야권 후보들은 박근혜 후보가 얘기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어떻게 다른지 명확하게 차별화하지 못했죠.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재벌개혁과 노동권 보장이라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접근해 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금 상황은 크게 봐서 미국의 1929년 대공황 전야와 유사점이 있다고 봅니다. 양극화가 극심해진 거죠. 답은 뭐냐, 사회보장의 확대와 우리가 얘기하는 보편적 복지국가로의 방향과 노동권 보장입니다. 1936년 GM이 파업을 두어달 하니까 회사에서 구사대를 조직해서 노동자들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니까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방위군을 투입해서 구사대를 끄집어내고 “노동자들은 불만을 표출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때부터 중산층이 두꺼운 사회가 됐고, 그게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와 일치하는 거구요. 그런데 지금 미국의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잖아요.

루스벨트 대통령은 구사대가 투입되는 것을 부당한 상황이라고 본 거네요.

사용자와 노동자의 힘의 균형에 있어서 정부는 공정한 법 집행자로서 회사의 불법행위를 막은 거잖아요. 박근혜 후보가 줄푸세를 얘기했잖아요. 세금을 줄인다, 감세, 규제를 푼다, 시장만능주의로 가자, 법을 세운다는 것이 뭐냐 하면 노동을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것 아닙니까? 줄푸세와 경제민주화는 180도 다른 개념인데, 본인은 같은 말이라고 해요. 정말로 그렇게 믿고 말했다면 자격이 없는 것이고, 알면서도 그렇게 얘기했다면 기만하는 것이고, 이것을 짚어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인데, 지금 방송이 언론입니까?

지난 몇 년 동안 갈등의 현장을 지속적으로 방문하셨는데요.

제가 2010년 8월에 반성문을 썼습니다. 반성문이 반성문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실천으로 가야죠.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정치가 어떠해야 하고, 한국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구나 하는 것에 대한 제 나름대로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그 확신으로 나온 것이 민주당에 대해서 ‘담대한 진보의 길로 가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구요. 그런 주장이 당의 강령에 반영이 되었는데, 지금 강령은 민주당 57년의 역사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강령입니다. 강령 1조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입니다. 강령 24개 조항 중 10개가 복지예요. 여성·장애인·아동복지. 강령 17조에 보면 생태민주주의까지 선언합니다. 원전의 전면 재검토를 얘기하고, 토건주의라든지, 성장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요. 한명숙 대표 때인가, 영등포 당사 외벽에다가 강령을 새겨라, 작은 책자에 헌법과 당 강령을 인쇄해서 나눠주라고 했습니다. 강령은 정당의 정신이고 정체성입니다. 그러면 그 정체성을 학습해야죠.

지난 11월 6일 사단법인 ‘대륙으로 가는 길’ 창립식에서 “차기정권에서 1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문 후보가 2007년 10월 4일에 남북정상 합의의 추진위원장이었잖아요. 이 과정을 막후에서 다뤘기 때문에 민주정부 1·2기의 성과를 그대로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특장점이 있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위대한 유산이 됐는데, 48개 합의사항 중 절반이 경제·사업 합의입니다. 이것을 새 정부가 이행하기로 마음 먹으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죠.

문재인 캠프 남북경제연합위원장을 맡고 있는데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요.

이탈리아프랑스의 하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섬유 원단이 있잖아요. 디자인도 있고, 제조, 봉제가 있고, 그러니까 자기들이 한 번 해보자고 해서 지금 패션의 본고장이 됐습니다. 위기에 봉착한 동대문과 개성공단이 결합하고, 정부의 전략적 지원만 가미되면 이탈리아 모델이 나올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얼마나 큰 부가가치산업이 되겠어요. 현재의 개성공단은 전체 계획의 5% 정도가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남쪽 GDP 성장률에 작년에 0.02%를 기여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면 개성공단 같은 게 몇 개만 돌아가면 북방 경제를 통해서 GDP 성장률 1%를 끌어올릴 수 있는 거죠.

보수진영에서 참여정부가 NLL 무력화를 기도했다고 비판하고 있잖아요. 서해오적이라는 표현도 나오던데요.

신종 색깔론이죠. 목표는 뭐였냐 하면 바다의 화약고 NLL을 바다의 개성공단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NLL은 지키면서 우리 인명 손실은 없고, 거기가 개성공단이 되니까 생산물이 나오는 거잖아요. 제가 2005년에 평양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을 6월 17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만났는데요. NLL을 서해 평화지대로 만들어갑시다, 바다의 화약고를 바다의 개성공단으로 만들자고 하는 얘기를 직대면해서 북한 지도자에게 한 거죠. 그런데 내가 NLL을 팔아먹은 사람이라고요? 실제 북의 포가 날아온 지역이 황해남도 강령군이에요. 제2의 개성공단을 해주에 만들자고 했어요. 대포를 쐈던 자리가 제2 해주공단 자리가 될 수도 있었다는 거잖아요. NLL 문제를 박근혜 후보 진영에서 제기하는데,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NLL 문제를 해결해야 될 것 아닙니까? 이걸 선거 도구로 써먹으면 되겠습니까?

“2013년의 새 정부는 ‘2013년 체제’를 시작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안쪽으로는 복지국가이고, 밖으로는 평화체제입니다. 서해 평화지대가 평화시대로 가는 관문입니다. 평화체제의 핵심은 평화협정입니다. 전 세계 동서고금의 전쟁 역사에서 전후 처리를 60년 동안 못하고 정전상태 또는 사격중지 상태에 머물러 있는 전쟁이 어디 있습니까? 정전협정 60주년이 되는 2013년 7월 27일, 시진핑·오바마·김정은 그리고 한국 대통령이 판문점에 서서 “한국전쟁은 끝났다. 이제 한반도는 평화를 향해서 전진해야 한다”고 선언을 했으면 좋겠어요.

사회 갈등의 현장에 갔을 때 처음에는 외면당하셨잖아요.

끊임없이 가서 듣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한진 같은 경우 최근 10~20년 사이 노사갈등 현장에서 정치권이 뭔가 중재안을 내서 타결로 이르게 한 드문 예가 됐습니다. 2009년에 용산참사가 나고 거리 미사에 빠지지 않고 갔죠. 문정현 신부님 말씀이 “저기 정동영 의원이 와 있는데, 저 사람이 조금만 잘 했으면 이분들이 안 죽었다.” 이 얘기가 저한테는 아픈 얘기였고, ‘아, 내가 이분들 죽음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구나. 책임의 몫이 나에게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정치라는 것이 눈물 흘리는 분들 옆에 있어주는 것이고, 닦아줄 능력이 있으면 닦아주는 것이고 그런 것 아닌가요?

이번 선거를 통해 이명박 정권도 넘어서야 되지만, 노무현 정권 때의 한계나 과오도 넘어서야 된다고 얘기가 나오는데요.

기득권을 넘어 개혁을 하기 위해서 다음 정부는 정말 유능해야 합니다. 다른 정권이어야 하죠. 우리 사회에 사회·경제적 약자가 다수 아닙니까? 그 기득권을 누리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당에 의지하고 그러려면 24개의 강령을 종이쪽지로 놔둬선 안 되죠. 줄기차게 실천을 해나가야죠. 그래서 새 정부가 사람을 쓸 때 그 강령 24개조를 리트머스 시험지로 삼아서 그 철학에 어긋나는 인사라면 기용해선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관료에 포위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기득권들이 얼마나 막강합니까? 제가 그래서 경선에 불참을 선언하면서 팀으로 승리합시다라고 얘기한 겁니다. 그런데 다 깨져버렸어요. 문재인, 안철수 두 분은 팀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 정부의 성격은 루스벨트 정부, 룰라 정부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룰라의 지지자들은 자신의 눈에서 나오는 눈물을 닦아줬기 때문에 열광한 거 아닙니까? 한국판 뉴딜 연합으로, 다수파 정권으로 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찍은 표를 가지고 왜 재벌에 복무하냐구요. 왜 보수언론이 시킨 대로 따라가냐구요. 왜 기득권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냐구요.

‘대륙으로 가는 길’은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요.

대륙으로 가는 길을 빨리 열어서 북쪽의 철도하고 도로를 고쳐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이용하고, 청소년들이 철도로 만주로 시베리아로 파리로, 수학여행도 갔다오고, 그것이 꿈이 아니라 당장 2013년, 2014년부터 가능하잖아요. 그렇게 만들자는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글·지승호 인터뷰 전문작가 sibidori@paran.com>
<사진·김석구 선임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