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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정치쇄신, 국회에 맡겨선 못해..독일식 비례대표 도입 국민투표 공약해야"

"정치쇄신, 국회에 맡겨선 못해
 독일식 비례대표 도입 국민투표 공약해야"

[인터뷰]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제안한 정동영 상임고문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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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 방법만을 앞세우는 것은 마차를 말 앞에 놓는 꼴이죠. 말을 앞에 둬야 합니다."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차분하던 목소리가 격양됐다. 그는 "단일화 협상 방법만 전면에 내세우면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며 "의제를 앞세워 단일화 협상을 끌고 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 고문은 후보 단일화의 생생한 과정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17대 대선에 출마했던 정 고문은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했다. 양측은 몇 차례 줄다리기 협상에 나섰지만 결국 결렬됐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범여권 분열을 발판 삼아 역대 최다 표차로 당선됐다. 

지난 날의 뼈아픈 경험 때문일까. 지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근처 카페에서 만난 정 고문은 의자에 앉자마자 '정치쇄신 방안을 기반으로 한 정권교제를 시작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2011년 4월 총선 때는 의제가 없었어요.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결국 2012년 12월에 국민이 바라는 대로 정치교체가 되려면 의제가 떠올라야 해요. 두 후보가 뚜렷한 의제를 만들도록 분위기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세력 통합이 되고 통합 이후에도 지지자 이탈 현상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정동영 고문은 세력통합의 의제로 '독일식 소선거구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지역구 의원을 소선거구제로 뽑고 비례대표 의원을 정당 투표로 선출하되, 각 정당의 총 의석 수를 전국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정하는 방식. 권역별 의석수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게 된다. 이럴 경우 각 정당마다 전통적으로 불리한 지역에서 정당 득표에 따라 의원을 낼 수 있고, 소수 정당은 지역구 당선자가 없어도 권역 대표 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정 고문은 "두 후보 다 민의를 대변하도록 정치제도를 바꾸자고 이야기하는데, 이를 조합하면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공통 분모가 될 것"이라며 "국민투표로 정치혁신을 이루겠다고 공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후보 등록 이후 단일화를 추진하자는 일각의 주장에 정 고문은 "정말 무책임하다"며 "구태 정치를 비판하면서 구태 정치를 닮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최근 김한길 최고위원의 사퇴로 논란이 된 민주당 지도부과 관련해 "내부 기득권을 해체해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정 고문과의 일문일답.


"야권 후보, '국민투표로 정치개혁 하겠다'고 공약해야"


- 문재인·안철수 후보에게 "정치개혁의 대안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독일식 소선거구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문 후보는 권역별 정당명부제와 비례대표 의원 수 확대, 안 후보도 비례대표 의원 수 확대를 제안했다. 둘 다 민의를 대변하도록 정치제도를 바꾸자는 입장이다. 이를 조합하면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공통분모로 된다. 이번 총선 당시 새누리당이 부산에서 얻은 표는 46%였는데, 의석은 88%를 가져갔다. 호남에서의 득표율은 15%였는데 의석은 하나도 없었다. 이러한 지역 구도의 문제를 깰 수 있는 제도가 독일식 정당명부제다.

또한 이 제도의 핵심은 각 정당이 지지율만큼 의석을 갖는 것이다. 권역별로 의석을 가지려면 정당으로서는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말하자면 각 정당은 지지를 받기 위해 경쟁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말로만 재벌개혁이 아니라 실제로 그 공약을 실천해야 지지율을 올릴 수 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시행하면 필연적으로 과반 정당이 나오기도 어려워진다. 선거에서 지지를 받은 소수 정당이 지역구 당선자가 없어도 권역 대표 의원을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국회에서 과반수 집권당 되려면 정당끼리 연합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합의민주주의의 성격이 강화된다. 앞으로 선거 때 후보 단일화를 추진할 필요 없이 연정으로 갈 수도 있다."

- 하지만,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현실적으로 도입이 이르다"며 반대한다.
"현행 제도의 수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대로 하면 각자 지지 지역에서 의석 수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 그러니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통한 정치쇄신을 국회의원들에게만 맡겨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대통령 말 한 마디로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대통령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11~12월 대선 기간에 '대통령 되면 정치개혁안 만들어서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말해야 한다.

노태우 후보도 대통령 재임 기간 중간에 평가받겠다고 공약해 표를 얻었다. 당선될 수 있는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국민투표로 정치제도 바꾸겠다고 해야 한다. 뉴질랜드는 국민투표로 선거제도를 바꿨다. 120석 전부 소선거구제였는데, 국민투표로 개헌해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가 60:60으로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양당제가 다당제로 이행됐고, 합의 민주주의와 연합정치 형태의 정치문화가 전개됐다."

-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시행되면 사실상 지역구 의석수를 줄여야하지 않나.
"지역구를 150석까지 줄여야 한다. 국민정서상 의원 수를 늘리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지역구 300석, 비례대표 180석이다. 일본처럼 지역구 의석수를 60%로 절충할 수 있다."

- 문·안 양쪽에서는 정 의원의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제안에 대해 양쪽에서 아직 공식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문 후보에게는 '독일식으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문 후보도 원칙적으로 찬성했다. 다만 의원들의 반발을 걱정해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정치쇄신안이 나왔다.

그러나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4·11 총선 결과 새누리당이 과반을 획득하면서 국회에 '개혁 저지 장벽'이 생겼다. 정치쇄신을 통한 정권 교체 시도는 이들의 개혁 저지 장벽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정치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11~12월 동안 두 후보가 정책적으로 공조해야 한다. 정치쇄신을 핵심으로 의제로 앞세우면 경제민주화·복지·남북평화체제도 자연히 이뤄질 수 있다. 정치를 쇄신해야 에너지가 생기고, 그 힘으로 기득권의 저항을 뚫고 경제민주화도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일화 협상 방법만 전면에 내세우면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 단일화 방법만을 앞세우는 것은 마차를 말 앞에 놓는꼴이다. 말을 앞에 둬야 한다. 말은 곧 의제다. 의제를 앞세워 단일화를 끌고 가게끔 해야 한다. 단일화 방법론은 뒤에 따라오게끔 하면 된다."

- 야권 지지자들에게는 후보 단일화 협상이 큰 관심이다. 그런데 협상이 공식적으로 시작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 단일화 물꼬를 터야할까.
"단일화는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의제 없이는 승리가 없다는 게 내 입장이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때는 '무상급식'이란 의제를 중심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2012년 4월 총선 때는 의제가 없었다. 그저 'MB 심판'뿐이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2012년 대선의 의제 역시 현재까지는 뚜렷하지 않다. 결국 2012년 12월에 국민이 바라는 대로 정치교체가 되려면 의제가 떠올라야 한다. 현재 정치쇄신·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등의 의제가 나왔지만, 구체적으로 손에 딱 쥐어지지 않는 느낌이다. 두 후보가 뚜렷한 의제를 만들도록 분위기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세력 통합이 되고, 통합 뒤에도 지지자 이탈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후보 등록 이후 단일화하자? 무책임하다"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지난 10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대선 후보캠프에 묻는다-정치제도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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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후보등록 전에 단일화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후보등록 전에 단일화해야 한다고 못 박아야 한다. 후보 각자 등록하면 국민들이 얼마나 실망하겠나. 1987년 단일화에 실패한 악몽도 있고…. 후보 등록 이후 단일화를 하자는 사람은 정말 무책임하다. 구태 정치를 비판하면서 구태 정치를 닮는 것과 다름없다."

- 대통령 4년중임제 등의 개헌도 거론된다.
"4년 중임제에 대해서 이론(異論)은 없다. 개헌 문제는 민주당 당론으로도 정해져 있다. 개헌공방이 합의하면 개헌할 수 있다."

-안 후보 쪽에서는 민주당 먼저 정치적으로 쇄신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외에도 민주당이 아직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당 중앙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낮다. 계파정치 같은 얘기가 나온다. 내부 기득권을 해체하고 투명성·개방성·민주성을 높여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 이야기 나오는 인적쇄신과 관련해 문 후보가 '나에게 맡겨 달라, 시간을 달라'고 했다. 후보에게 생각이 있을 것이다. 또한 민주당이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이유를 성찰하고, 혁신해야 한다. 이번에 강령의 중심을 경제민주화·노동에 두면서 진보적인 민주당 시대를 선언했다. 문제는 의원 127명 전원에게 강령이 체화돼있지 않다는 점. 당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심화시켜야 한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쇄신을 위해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한다. 
"웃음으로 대신하겠다. 문 후보에게 맡겨보자. 본인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김한길 민주당 전 최고위원은 지도부 쇄신을 요구하며 사퇴했다.
"나름대로 충정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본다."

-정 고문은 앞으로 당에서 어떤 활동에 주력할 것인가.
"남북연합위원장으로서 남북관계 회복에 집중하겠다. 지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제일 후퇴한 분야가 바로 남북관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겨둔 10·4 공동선언의 48개 사업계획 합의서를 바다 속에 던져버렸다. 차기 정부에서는 이 유산 보따리를 꺼내 풀고, 출범 동시에 48개 사업계획을 시행해야 한다.

내년 경제 상황은 어려울 것이다. 선진국의 저성장 문제가 우리에게도 현실이 됐다. 새로운 출구를 북방 경제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투자가 이뤄지니 수요 창출도 되고, 점진적으로 통일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북한 경제를 한반도 경제로 통합해갈 수도 있으니 일석삼조다. 이는 민주당이 가장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다. 민주당에는 사람·경험·정책이 있다. 참고로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사단법인 '대륙으로 가는 길' 연구소를 등록했는데, 11월 6일 국민일보사에서 차기 정부의 북방경제 구성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