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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개성공단은 통일모델… 그 가치 너무 몰라”

 

[유인경이 만난 사람]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개성공단은 통일모델… 그 가치 너무 몰라”

 

2013.08.13  주간경향 1038호

 

남북화해와 평화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기로에 서 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지난 7월 28일 북한에 개성공단 문제 해결을 위한 마지막 회담 제의 방침을 밝히면서 “개성공단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북한의 명확한 약속이 없을 경우 ‘중대결단’을 내릴 것”임을 천명했다. 북한에 최후통첩을 보내면서 개성공단 폐쇄를 시사한 것이다. 남북 당국간 기싸움에 애꿎은 개성공단만 새우등이 터지게 된 셈이다. ‘중대결단’으로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사업장과 직장을 잃을지 모르는 입주기업인들의 속은 삼복더위보다 더 뜨겁게 타들어가는데 정작 청와대 외교안보라인과 통일부 장관 및 주요 당직자들은 휴가 모드란다. 참 여유만만이다.

‘개성공단’ 하면 떠오르는 얼굴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다. 장관 시절에도 개성공단을 자주 방문했고 지난 17대 대선후보 때는 자신을 ‘개성 동영’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장마처럼 지루하고, 무더위처럼 답답하기만 한 개성공단의 해법이 있는지 궁금해 정 전 장관을 만났다.

 


북한 연구를 많이 한 분이니 묻겠다. 왜 북한이 침묵으로 일관할까.

“북한측 심경도 복잡할 게다. 우리측의 ‘마지막 통첩’이라는 말의 속내를 파악하느라 부산하지 않겠나. 사실 북측이 덜컥수를 놓긴 했다. 4·3 통행 차단이 그것이다. 그걸로 촉발된 것이고 남쪽이 언포, 즉 말로 포를 쏜 것이다. 남이나 북이나 개성공단을 걸고 정치적으로 흔들면 안 된다. 지난 10년간 개성공간은 정경분리의 원칙이 지켜졌다. 북핵실험,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 등이 터졌어도 개성공단은 흔들림이 없었고, 매일 1000여명이 오갔다. 내 생각으로는 북한도 절대 개성공단 폐쇄를 바라지 않으니 곧 답을 줄 것이다.”

개성공단 입주업자들 대책회의에도 다녀왔던데, 어떤 반응들인가.

“기업인들은 당연히 정부의 눈치를 본다. 그래서 정부 대책에 화가 나도 큰소리를 못낸다. 응급실에 환자가 실려오면 생명부터 살려야지 누가 사고 냈나 책임을 따져서야 되나. 참고 참던 그들도 ‘우리가 다 죽어간다’고 분통을 터뜨리더라. 그분들도 공감하듯이 북측에서 내놓은 안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안이다. 개성공단을 저해할 일체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동안 통행·통신·통관 등 문제가 많았는데 인터넷과 휴대전화도 허용한다고 했다. 북의 다급한 심정이 읽히더라. 그런데 정작 우리 정부의 목표가 개성공단 살리기는 아닌 것 같다. 기업체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데도 큰 반응이 없으니 말이다.”

개성공단이 남북 경제발전과 평화의 상징이지만 보수층에서는 대북 퍼주기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정부가 강경책으로 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가 북측에 의연하게 대처해 지지도가 올랐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 시각 자체가 구태다. 과거 정권에서 북한을 제압해 국내 지지율을 올리는, 즉 안보나 남북문제를 국내정치에 활용하곤 했는데 이 정부가 그걸 답습하는 것 같다. 그들은 화해와 협력보다는 북한이 붕괴돼야 하고 붕괴시킬 수 있다는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상대방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은 망상이다. 서로 공존하자는 세계사적 전환이 1990년대 이뤄졌고, 남북한도 2000년대 들어 상호공존의 역사적 대전환이 진행됐다. 그럼에도 아직도 시대적·역사적 조류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개성공단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뭔가.

“오해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과 무지다. 개성공단을 만들면서 이명박 정부 시절의 4대강 수준으로 널리 자주 알렸어야 했다. 정부는 개성공단 생산액수가 5000억원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10분의 1로 축소된 것이다. 실제는 5조 내지는 6조원가량 된다. 원자재와 부자재는 빼고 임가공·노동비·전기비·세금·관리비만 5000억원이라는 것이다. 실제 생산액은 여기에 12배를 해야 한다. 현재 123개 공장에서 생산된 것이 5조원이라는 것인데, 개성공단이 계획대로 추진됐다면 생산총량의 가액은 100조원, 1000억 달러 수준이 됐을 것이다. 개성공단이 북한 경제 전체보다 더 크다. 북한이 이것을 닫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이를 꽁꽁 묶어버렸다. 원래 구상했던 것의 20분의 1, 30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것을 키우는 것이 평화를 만드는 것이고, 통일비용을 줄이는 것이고, 우리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고, 잠재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개성공단이 그토록 큰 가치가 있나.

“개성공단은 군사적 가치, 경제적 가치, 미래적 가치 세 가지가 있다. 개성공단은 원래 탱크와 포대병력 등 북한의 병력과 화력이 밀집한 지역이었다. 게다가 산악지대도 아닌 툭 터진 지역이다. 그런 군사지역을 공단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가 문산·파주의 부대들을 다 후방에 배치하고 북한측 기업에 공단을 내주겠나. 또 경제적 가치를 보자. 골드만삭스는 2031년에 대한민국이 독일이나 일본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을 것이란 핑크빛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 OECD는 2031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제로, 즉 성장 엔진이 꺼질 것이라고 회색빛으로 예측했다. 이런 상반된 결과를 내놓은 이유는 골드만삭스는 개성공단 및 통일 가능성 등 북방 자료를 포함한 것이고, OECD는 현재 한국의 지표만 본 것이다. 2031년이면 가까운 미래다. 우리 자식들에게 뭘 물려줘야 할까. 정전체제 60년을 정전 80년으로 이어지게 해야만 할까.”

지난 정부 때 유난히 남북관계가 경색된 이유는 뭔가.

“남북관계의 국내정치화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이다. 포용정책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MB정부 시절에 북한 핵능력이 엄청 커졌다. 일부에선 ‘MB의 핵’이라고 할 정도다. 국내엔 4대강의 재앙을 키웠고, 밖으로는 북한 핵을 키워 한반도의 운명을 꼬이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개성공단이나 남북관계에 관해서는 사실에 입각해 평가해야 원칙과 신뢰에 입각한 프로세스, 해법이 나온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햇볕정책은 폄하하면서 MB정책은 노코멘트다.”

남북문제는 통일부 소관이 아닌가.

“통일부가 안쓰럽다. 통일부는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구현하는 팔이다. 현재 통일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개성을 살리라는 것인지, 죽이라는 것인지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사이에 강경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주도권을 쥔 결과가 이런 사태를 키웠다. 기본적으로 냉전시대에서 못벗어났다. 북을 섬멸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강경파들에게는 개성공단이 그저 골치 아픈 존재일 뿐이지 않겠나.”

통일부 장관 시절 남북관계에 어떤 역할을 했나.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이어가는 역할이었다. 당시 북한은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너무 본다며 비판했다. 2003년 6월에 개성공단 기공식 때도 통일부 국장이 참석했다. 2004년 7월, 정부 내 입장은 속도조절론이었다. 핵문제 상황의 추이를 봐가며 천천히 하자는 것이다. 그걸 바꾼 역할을 했다. 개성공단을 거점으로 북한에 남한의 목소리를 내자고 주장했다. 미국 럼스펠드 장관을 설득하고 북한측도 압박하고…. 당시로선 과속하다시피 밀어붙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더 나갔어야 했다. 지금 통일부는 기본 노선을 못정한 것 같다. 화해·협력과 북한 압박 사이에서 갈피를 못잡고 있다. 박근헤 대통령의 정리가 필요하다.”

만약 박 대통령이 정파를 떠나 대북특사로 파견한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북한이 내가 가면 반가워할까.(웃음) 그쪽도 대통령이나 여권 실세가 오길 바랄 것이다. 그래도 만약 가게 된다면 허심탄회하게 진정성을 갖고 민족의 번영을 생각하자고 설득할 것이다. 장관 시절에 북으로 가는 문턱을 없애자고 주장해 많은 이들이 북한에 갔고 북한 사람들을 접촉했다. 정부·종교·학계·문화예술계만이 아니라 금강산 관광 등으로 일반인들도 접촉면을 넓히는 동반정책을 썼다. 2005년 6월 15일, 김정일 위원장과도 만나 “통 크게 한 번 하자”고 말했다. 통 크게 핵을 내려놓으라는 설득이자 요구였다. 평화공존의 시대를 같이 개척하자고 했다. 대북관계에선 자신감이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외통위 소속 의원이었는데 당시 같은 소속이던 김문수·홍준표·박계동 의원 등이 개성을 다녀와 공개적으로 말로나마 반성문을 발표했다. 남북관계 미래의 창인 개성을 보고 오니 생각이 바뀌었다는 얘기였다. 그때 박 대통령이 개성을 다녀왔다면 대북관계며 개성공단에 대한 자세가 달라졌을 것 같다.”

 


개성공단만이 아니라 경색된 남북관계의 해법은 없을까.

“지금 조건이 참 좋다.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 정책의 자율성을 발휘할 공간이 열려 있다. 미국과 일본도 우리보고 운전대를 잡고 조수석에 북한을 태우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느긋하게 뒷자석에 타려 한다. 그러면 그 운전석에 북한이 앉고, 조수석에 미국이 타는 형국이다.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강하게 나가야 한다.”

통일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지금 통일을 논하는 것은 공허하다. 한국전쟁이 기술적으로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전쟁이 종전 60년간 변함이 없는 이유는 외적으로는 이런 현상유지가 미·중·일 등 주변 강국들의 이해관계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내부 요인으로는 이 분단대결 상태가 정권 유지에 유리해서다. 이게 더 나쁘다. 일제시대 조국 해방보다 자기들의 기득권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 친일파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도자는 이걸 꿰뚫는 것이 중요하다. 이 비극적인 분단정치를 타파하고 분단 감수성이 제로인 국민 감성을 깨뜨려야 한다. 분단을 그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거나,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지 말고 고통스러운 혁신을 해야 한다. 70~80년대만 해도 냉전상황에서 그런 혁신을 주도할 힘이 없었다. 지금은 아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목표와 공감대를 만들고 주변국을 설득할 역량도 생겼다. 지도자가 그 방향을 제시하면 국민 역량이 폭발하고 자긍심이 커진다. 2002년 월드컵 신화는 우리 국민의 자신감과 자긍심의 결과다. 통일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통일은 절대 공포스럽고 두려운 일이 아니다. 지도자가 비전을 보여주면 된다.”

개성공단이 남북통일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나.

“독일 통일의 설계자로 1970년 동·서독 정상회담 당시 정무장관을 지낸 에곤 바르 박사를 만났다. 그는 한국의 통일모델은 독일도 베트남도 아니고 한국형 모델, 즉 개성공단 모델이라며 개성공단을 따라가다 보면 경제통합, 경제통일이 먼저 올 것이고, 그 끝에 통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도 개성공단으로 엄청난 학습 모델 효과를 얻었다. 그들이 나진·선봉 등 다른 경제특구를 만들었지만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북한의 유일한 초현대식 시설인 개성공단을 통해 전기·도로·수도 등 기반시설과 인프라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의 30만평이 아니라 800만평으로 규모가 확대되고, 중소기업만이 아니라 대기업도 진출했어야 했다. 이렇게 경제교류를 하다보면 무력충돌 없는 정서적 통일이 가능하다. 대만과 중국을 보라. 양국 사이에 일주일에 800편의 항공기가 운항한다. 2000만 대만인 중 10%인 200만명이 중국 영주권을 얻어 중국에서 공장을 짓고 사업을 하는 등 경제활동을 한다. 5년 사이의 변화다. 정경분리의 원칙을 상호 지킨 덕분이다. 통일을 앞세우지 말고, 무력을 내세우지 말고, 경제와 상호교류로 사실상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정치이고, 그래서 지도자의 철학이 중요하다. 대만과 중국도 했는데 우리가 못하란 법이 어디 있나.”

개성공단의 미래도 중요하지만, 정 전 장관의 미래 계획은 무엇인가. 10월 재·보궐선거에 나간다는 소문도 있다.

“손사래를 쳤다고 써달라. 요즘 사단법인 ‘대륙으로 가는 길’ 연구소를 꾸리고 있다. 우리 민족이 가야 할 길이 대륙으로 가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경제적으로 북방경제를 여는 것이고, 교통으로는 서울역에서 기차로 모스크바·파리·베를린을 가는 시대를 여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남북 평화체제 속에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통일로 가는 길이다. 8·15 무렵에 시베리아로 간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차를 타고 바이칼호까지 가서 나와 조국의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계획이다.”

정동영 전 장관은 말을 너무 잘 한다. 게다가 잘 생겼다. 그런 장점이 때론 남들에겐 질투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조금만 말을 버벅거리며 어눌하게 하고, 좀 더 나이 들어 보이면 훨씬 지지도가 오르지 않을까. 개성공단의 역할과 가능성, 잠재력에 대해 확고한 관점을 갖고 있는 정 전 장관을 보면서 정권에 따라,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싸움만 하고 있는 당국자들이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