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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대담] '10년 후 통일' 펴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세계 2위 경제대국 VS 경제성장률 0%, 한국의 선택은?

[대담] '10년 후 통일' 펴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2013.11.29  프레시안 이재호 기자(정리)

2013년 한 해를 관통하는 단어는 '종북'이었다. 지난 대선 때부터 2013년이 저무는 현재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위기의 순간마다 종북 카드를 꺼내 들며 물타기를 시도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정권 안보에 기여했다.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3대 세습이 초래한 혐북 정서 역시 종북을 우리 사회에 확산시키는 데 더없이 좋은 밑바탕이 됐다.

반북정서와 종북몰이는 한국 사회에서 건강한 통일 담론조차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남북 화해와 관계 개선을 바라는 것이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지탄받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통일이 우리의 밥줄이라며 사실상의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최근 <10년 후 통일>이라는 책을 통해 앞으로 10년 이내에 사실상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다.

<프레시안>은 통일을 이념이나 정치적 영역이 아닌 경제적 영역에서 접근한 정동영 전 장관과 만나 정 전 장관이 생각하는 10년 후 한반도의 미래상을 들어봤다. 정 전 장관은 10년 내에 남북이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이뤄 사실상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며, 통일로 가는 두 바퀴로 개성공단과 2005년 6자회담의 결실인 9.19 공동성명을 꼽았다.

정 전 장관은 2040년 한국경제가 독일과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는 골드만삭스, 반면 2031년이 되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OECD 등 두 개의 상반된 경제 전망을 제시하며, "전자는 한국 경제가 평화적, 점진적으로 북한 경제와 결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고 후자는 남북 경협 없이 남한이 단독으로 경제를 운용하게 되는 경우를 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자명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정 전 장관은 골드만삭스가 예측한 장밋빛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남북 경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개성공단이 바로 한국형 통일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개성공단을 확장·발전시키고 이와 비슷한 남북 경제협력을 추구하면 사실상의 통일이 도래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도 한층 더 나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정치적·군사적으로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정 전 장관은 9.19공동성명에 그 해답이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까지 북핵 문제 20년 역사상 언제 해결 모델을 만들어봤나. 9.19밖에 없다"면서 이 합의를 기반으로 북핵과 한반도 안보 상황을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지난 25일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이 진행한 대담의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책 제목이 <10년 후 통일>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10년 후에는 통일할 수 있다, 통일하자"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여기서 말하는 통일이 남북 단일체제로의 통일은 아닌 것 같다. 어떤 통일을 뜻하는 것인가?

정동영 : '사실상의 통일' 이라는 의미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사실상의 통일이 되어야 법적·정치적 통일이 그다음에 오는 것이다. 사실상의 통일 없이 완전한 통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현재 중국 본토와 대만과의 관계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자는 것이다. 자유롭게 왕래하고 투자하면서 사실상 경제 공동체 단계까지 가자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중국-대만과는 달리 정전체제를 바꿔야 하는 군사적 문제도 병행되어야 하지만 이는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 인프라를 깔았다고 본다. 그래서 10년 내에 남북한은 충분히 중국 본토와 대만의 상태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사실상의 통일을 말씀하셨는데, 사실 10년 전에는 남북관계가 중국-대만보다 훨씬 더 가깝지 않았나? 통일 단계에서도 훨씬 앞서 있었고.

정동영 : 그렇다. 당시에는 대만이 미국에서 무기 사들여오는 것 때문에 양안이 계속 긴장 상태였다. 역사적으로 봐도 국공내전도 있었고, 50년대 후반에는 중국이 진먼다오(금문도)에다 하루에 3만 발의 포탄을 쏘기도 하지 않았나. 이후 20년간 서로 포격이 이어졌고. 중국과 대만 사이에도 전쟁의 증오와 상처가 있다. 여러모로 우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0년 전과 달리 지금은 남북보다 중국-대만이 훨씬 더 가까워졌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뤄진 눈부신 결과다.

대만과 중국 간 1주일에 평균 800편의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대만에서 연간 500만 명, 중국에서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이 상대 지역을 방문한다. 전화, 편지, 송금, 투자, 여행, 관광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게다가 대만 인구의 10분의 1인 200만 명이 중국 영주권을 받았다. 이 정도면 거의 서로 간에 고통이 없는 사실상의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대만의 이러한 변화는 마잉주(馬英九) 총통 체제하에 있었던 지난 5년 동안 일어났다. 이 변화는 세 가지의 원칙 아래에서 진행됐는데 대만과 중국 간 통일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무력사용 얘기하지 말자, 정치와 경제 분리하자는 것이었다.

한중관계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92년에만 해도 우리 여권으로 중국도 못 들어갔는데 그런 한중관계가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 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봤을 때 적국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위의 두 사례를 보면서 남북은 왜 그렇게 가까워지지 못할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북이 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향해 가면 그 안에서 역동성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군사적인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 통일로 가기 어렵지만, 사실상의 통일을 향해 가면 평화체제 문제, 핵문제 등을 병행해서 풀 수 있는 힘이 나올 수 있다.

프레시안 : 하지만 북한에 대해 여전히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이들에게 남북통일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인 것 같다.

정동영 : 통일이 밥 먹여준다는 담론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가 고단하고, 젊은 사람들은 앞길이 막막하다고 하지 않나? 이런 상황 속에서 통일 문제를 당위적인 측면이나 정치적 설득으로 접근하면 다 고개를 돌리고 말 것이다.

또 통일이 밥 먹여준다는 관점은 실용적이기도 하고 가장 현실주의적인 접근법이다. 이념적으로 종북, 친북, 반북이니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밥이 있고 일자리가 있고 꿈이 있다"고 접근하면 외면했던 고개가 좀 돌려지지 않을까? 일단 돌려세우기만 하면 그다음에는 설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책에서 10년 후 통일로 가는 두 바퀴로 하나는 개성공단, 하나는 9.19 공동성명을 언급했다. 우선 개성공단을 살펴보면 올해 개성공단은 사실상 죽다가 살아났다. 개성공단이 한국형 통일모델이라고 했는데 왜 중요한 것인가?

정동영 : 지난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개성공단이 잠정 폐쇄되면서 오히려 개성공단의 값어치가 도드라진 것 같다. 개성공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계기가 된 것이다. 사실 개성공단의 존재 자체를 대다수 국민이 잊었거나 모르고 있었는데 공단이 닫히면서 뉴스에도 등장하고, 그러면서 국민들이 개성공단의 실체를 알게 됐다. 또 5달 동안이나 닫혀있었는데 죽지 않고 살았다. 역설적으로 힘을 받은 측면이 있다.

개성공단이 왜 통일 모델인가 하면 현존하는 통일 모델을 우리가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모델로 독일과 베트남 모델이 있는데, 둘 다 한반도 상황에서 불가능하거나 비현실적이다. 독일은 동독 의회가 흡수 합병을 결의했다. 북측 인민대표자회의가 남측의 흡수 합병을 결의할 수 있을까? 베트남 모델은 무력을 사용한 것이다. 이 모델은 선택지에서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 개성공단 전경 ⓒ개성공동취재단

그럼 대체 한국이 지향해야 할 통일 모델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것이다. 우리가 분단 68년 속에서 발견하고 실천했던 모델 중에 개성공단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2006년 독일 통일의 설계사로 알려진 에곤 바르 박사를 만나서 개성공단에 대해 설명했을 때 "이것이 한국형 통일 모델"이라고 하더라.

바르 박사는 개성공단에 대해 대단한 상상력이라면서, 독일이 동방 정책을 설계할 때 동독 지역에 서독 공단을 만들었더라면 통일 비용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고, 이후 동·서독 통합 과정도 훨씬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통일로 가려면 개성공단을 계속 확대하라고 조언하더라. 개성공단을 확장하면 중간에 경제 통일이 올 것이고 결국에는 한반도의 통일로 갈 수 있다는 판단이다. 통일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첫 번째 걱정거리가 통일 비용이다.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 경제협력을 확대하면 통일비용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

또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 경협은 남쪽의 좋은 일자리를 늘려줄 수 있다. 좋은 일자리가 많아지는 데에 핵심은 중소기업의 이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역대 정부 중에 중소기업 살리겠다고 말하지 않은 정권이 없었다. 하지만 잘 된 경우는 별로 없다. 승자독식의 경제 체제 속에서 중소기업 출구를 찾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개성에 갔더니 남쪽에서 힘들어하던 기업들이 팔팔하게 살아나더라. 중소기업이 살 수 있는 모델이 나온 것이다. 작게는 개성공단이지만 크게 보면 남쪽의 자본과 북쪽의 노동력·토지·광물이 결합하니까 성공한다는 실증 모델인 셈이다.

이게 확산되면 남쪽에서 북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30% 사람들의 마음도 녹일 수 있다고 본다. 나한테 이익이 되는데, 내 자식의 취직자리가 생기는데 왜 반대하겠나. 이렇게 되면 우선 남남갈등이 줄어들 것이다. 남북 통합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내부적 동의가 확산될 것이고, 그럼 훨씬 힘있게 통일을 추진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들도 기회를 만들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삼성전자 이후에는 무엇이냐'를 고민하고 있지 않나? 전자, 반도체, 조선, 철강, 화학 이런 부분들에서 중국이 추격해오는데 거기서 한발 짝 펄쩍 뛰어서 달아날 수 있는 기반이 남북통합경제라는 것을 개성공단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야기하는 창조경제도 북방 정책, 남북경협에 그 해답이 있다고 본다. 서울대학교에 초빙교수로 와 있는 토마스 사전트가 창조경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 "헛소리 하지 마"라고 말하면서 그 대안으로 "북방경제해라, 개성공단 정상화해라, 여기서부터 시작해라"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보기에도 한국의 창조경제는 그 길에 있다고 본 것이다. 외국 학자들의 견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안에서 보나 밖에서 보나 그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런데 개성공단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도 있지 않나? 이번 잠정적 폐쇄 상황처럼 투자 리스크가 있으니 실적도 별로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개성이 북쪽 지역 이다보니 신변에 대해 걱정하는 경우도 있다.

정동영 : 일단 개성공단에 들어온 기업은 거의 다 흑자를 보고 있다. 물론 3년 동안은 감가상각한다. 회계법상 투자비를 3년 동안 감가상각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장부상은 적자로 되어 있지만, 지금 대부분 기업들이 3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123개 기업들이 다 흑자다. 판로가 있는 기업은 만드는 대로 팔리는 셈이다. 제조단가에 경쟁력이 있지 않나.

공단 입주 기업들이 적게는 1000~2000 평, 많게는 4000 평 정도를 쓰고 있다. 토지 비용이 평당 14만9000원에 불과해서 공장 부지를 넓게 쓰는 것이다. 남쪽 땅값에 비교해보면 거의 제로에 가깝게 수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건비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양질의 노동력을 쓰는 데 한 명당 13만 원 수준이다. 남쪽에서 1명을 고용하는 비용으로 북쪽에서 15~20명 정도를 고용할 수 있는 셈이다. 사실 중소기업의 원가비용 핵심이 땅값, 임대료다. 인건비도 있고. 이런 부분 때문에 동남아나 중국으로 가는 건데 개성이 동남아나 중국에 비해 여러 이점이 있다.

개성공단이 존폐의 기로에 놓였던 지난 4월, 박근혜 정부가 우리 국민의 신변 위협을 이야기했는데 이것도 터무니없는 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개성공단에서 단 한 번도 신변 위협은 없었다. 정부의 철수 조치에도 왜 끝까지 기업인들이 나오지 않으려 했겠나?

개성에 물자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북한이 통제하면서 개성에 주재하고 있는 인원들이 식량난에 처해있다는 것도 와전된 이야기다. 특히 우리 국민이 쑥을 뜯어 먹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창고에 5만3000명이 먹을 점심, 야간 간식을 위한 식량과 부식이 가득했는데 식량이 부족했을 리가 없다. 쑥을 캤다는 이야기는 먹을 것이 없어서 쑥으로 연명했다기 보다는 개성공단 근처에 해마다 3, 4월이면 쑥이 많이 나오고, 공장을 돌릴 수 없어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주재원들이 쑥을 뜯은 것이다.

개성공단이 전체가 다 돌아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지금 돌아가고 있는 공단 면적은 개성공단 전체 면적대비 64분의 1이다. 물론 공단은 2천만 평 중에 8백만 평이 공단이다. 공장 사이즈만 보면 25분의 1 정도가 돌아가는 것이다. 3단계까지 계획대로 완성되면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생산가액의 비중이, 덩치가 북한경제 GDP를 몇 배 넘는다.

한국은행 통계로는 북한 GDP를 300억 불로 보는데 맹점이 좀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1200불이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국민총생산을 100억 불 정도로 추산한다. 개성공단이 원래 계획대로 3단계까지 완공되면 연간 생산품의 가치가 500억 불 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경제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인 것이다.

프레시안 : 향후 한국 경제에 대해 골드만삭스와 OECD가 엇갈리는 전망을 내놨다. 책에서 이런 대조적인 전망은 남북 경협이 활성화되느냐의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 것인가?

▲ 정동영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동영 :
세계적 금융기관인 골드만삭스는 2040년 한국경제가 독일과 일본을 추월하고 2050년에는 미국 다음으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예측 보고서를 발표했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1년이 되면 0%대로 떨어진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성장 엔진이 꺼진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한국 경제가 평화적, 점진적으로 북한 경제와 결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즉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 경협이 계속 확장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전망한 것이다. 반면 OECD의 전망은 남북 경협 없이 남한이 단독으로 경제를 운용하게 되는 경우를 산정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골드만삭스는 우리 경제가 독일과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핵심은 북한의 노동력을 우리 경제에 이식하라는 것이었다. 북한의 노동력과 토지, 광물 자원이 투입되면 남한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예측이다. 2030년대에는 1인당 국민 소득이 8만 6000불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남한만 이득을 보는 것은 아니다. 남북 간 투자, 송금, 왕래가 자유로운 사실상의 통일 상태로 가게 되면 20년 후에는 북한이 남한 경제의 절반 수준까지 따라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통일 비용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OECD는 2031년 잠재성장률을 0%로 전망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처럼 분단경제체제를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우리 경제에 희망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 중에 청년실업 문제가 있는데,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제 성장은 이미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OECD가 예측한 2031년의 잠재성장률 0%가 현실화되면 젊은이들은 어떻게 되겠나? 이것은 국가적 재난이다.

이미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3%대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 5년간 성장률 끌어올리려고 4대강도 파헤치고 안간힘을 썼지만 5년 평균 2.9%에 불과했다. 이것이 지속되면 지금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에 나올 때는 국가 경제의 성장이 멈추는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자명하지 않나?

2007년 10.4 정상선언이 골드만삭스가 예측한 모델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당시 정상회담을 찬찬히 살펴보면 사업 프로젝트 합의나 다름없다. 총 48개 중 24개 항이 경제 사업 합의다. 문산에서 개성, 개성에서 신의주까지 철도 연결하고 고속도로 놓고 그 철로와 도로로 컨테이너 실어 나르고.

예를 들어 북한 안변에 조선공업단지를 만드는 계획이 있는데 이 계획이 실현됐다면 지금쯤 중국의 추격에서 멀리 달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안변에 조선 단지를 건설했다면 안변, 울산, 거제로 잇는 조선 클러스터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조선산업의 일관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변에서 화물선, 여객선, 컨테이너 선박 같은 저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하고 LNG선이나 해양 플랜트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은 남쪽에서 지으면 서로 시너지 효과를 가져와 조선 산업 1등 자리를 100년은 더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이미 수주 총액으로는 중국이 우리를 넘어선 현실에서는 더욱 안타까운 대목이다. 물론 북한 경제를 성장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평화·경제 공동체를 이루기도 쉬웠을 것이라는 점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꼭 조선 산업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경쟁력이 있는 다른 제조업들도 북한과 협력을 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현대자동차의 국내 생산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해외에서 만드는 것이 300만대 이상이고 국내 생산이 300만대 이하로 내려갔다. 자동차 생산 공장을 남포든 원산이든 함흥이든 만들어서 생산 조립라인을 북쪽에 놓고 생산하면 플랜트 자제가 해외로 옮겨지는 것과는 다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과 협력 없이 자력으로 세계 5위까지 갔는데, 만약 이런 효과를 업을 수 있다면 세계 1위도 노려볼만하지 않겠나? 이런 전망들을 살펴보면 통일이 밥 먹여준다는 이야기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나 통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는 이 부분밖에 없는 것 같다.

MB정부 출범 이후 위기의 남북 경협, 5.24조치 해제로 돌파구 마련해야

프레시안 :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교류가 늘어가다 보면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고, 또 그러다 보면 경제교류가 더 늘어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전망인데, 문제는 MB정부 이후 사실상 남북 경협이 멈춰버렸다는 데 있다. 5.24조치 이후에는 거의 단절되지 않았나. 또 북핵 문제도 있고. 이러한 정황을 살펴봤을 때 북핵 문제 해결이나 5.24조치 해제 없이 개성공단 확대는 불가능한 것 아닌가?

▲ <10년 후 통일> (정동영·지승호 지음, 살림터 펴냄) ⓒ살림터
정동영 : 5.24조치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 더 이상 효력이 없다. 북한은 5.24조치에다 유엔 제재 4개를 중첩해서 받고 있다. 그런데 그걸로 인해 북한이 좀 괴로울 수는 있어도 붕괴되거나 와해되지는 않는다. 북의 경제가 폐쇄·고립 경제이기 때문에 체제붕괴로는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결국 실효성이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조치인데, 박근혜 정부가 왜 여전히 매달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 이후 나진-하산 철도 연결 사업과 관련해 러시아의 일부 지분을 코레일과 포스코, 현대상선과 같은 대기업이 매입하겠다는 소식이 나왔다. 이건 5.24조치와 충돌되는 것이다. 이 철도 연결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곧 중국 동북부지역의 무연탄, 북한의 철광석 등을 나진항에서 포항으로 실어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나진-포항 항로를 이용하는 것인데, 5.24조치 이후 나진항을 거친 어떤 화물도 국내 항에 선적을 못하도록 막았다. 이런 부분이 5.24조치와 모순되는 것이다.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대기업은 투자하면서 5.24조치를 현 상태로 유지하면 왜 대기업은 되고 중소기업은 안 되냐는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안 그래도 남포 공단을 비롯해 금강산 관광 관련 서비스업 종사자들, 물류 업체 등등 1000개가 넘는 기업들이 5.24조치 때문에 묶여있는 상황이다.

안동 대마 방직이라고 삼베 만드는 회사가 있다. 북에서 삼베 밭, 즉 토지를 대고 인력을 제공하고 남쪽에서 기계와 자본을 들여서 2008년 말에 북한에 공장이 완공됐다. 그런데 공장을 돌리려던 그 순간 북한에 못 가게 해서 결국 도산했다. 이게 이명박 정부가 말한 친기업 정책인가? 명백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됐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이를 과감하게 해제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런데 2010년 천안함,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남북관계가 더 나빠졌고 올 초에는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엄습했다. 이러면서 국민들 사이에 반북 정서가 많이 퍼진 것이 사실이다. 남북 간 군사적 신뢰나 화해 없이 경제협력을 풀어가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동영 : 큰 그림부터 그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북핵 위기가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1993년 1차 핵 위기는 북한이 5메가와트 영변 원자로에서 추출한 플루토늄 양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했는데 그 신고한 양과 IAEA가 추정한 양의 차이에서 시작됐다. 몇 그램 정도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IAEA가 특별 사찰을 해야겠다고 나서면서 핵 문제가 폭발한 것이다.

이후 20년이 지난 2013년, 결국 북한의 3차 핵실험까지 이어졌다. 20년 전에 비하면 북핵 위기가 몇 배 더 커진 것이다. 20년 전에는 투발수단도 없었고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는 먼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것들이 갖춰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또 20년 전 북한의 핵 보유 의지도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20년 사이에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좀 더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60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우리는 왜 한 발짝도 못 움직였을까? 일단 외부적인 문제에서 보면 지난 60년 동안 미국의 군사주의가 한반도에 어떻게 투영됐는가를 봐야 한다. 핵 위기 20년 동안도 마찬가지로 미국의 군사주의가 한반도에 투영됐는데 이것이 외곽에 있는 본질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내부에서는 분단을 이용하는 세력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이 있지 않았나. 이런 사건이 비단 지난해에만 나왔던 것은 아니다. 선거 때마다 매번 있지 않았나. 분단에 기생해서 정권을 유지하고 창출해 온 세력의 반(反)역사성도 주요 원인이다.

프레시안 : 그 부분과 관련해서 1992년 이동복의 훈령 조작사건도 있다.

정동영 : 결정적인 사건이다. 나중에 통일 이후에 단죄되어야 할 아주 주요한 사건 중에 하나다. 당시 사건을 좀 살펴보면, 1992년 9월 평양에서 남북총리 회담이 열렸다. 당시 남측 대표단은 북이 요구하는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북측에 송환하는 조건으로 이산가족 상봉과 판문점 면회소 설치 운영을 보장받으려 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이 두 가지 외에 동진호 납북 선원 송환이라는 조건을 북이 들어주지 않으면 협상을 깨라는 전문이 날아왔다. 대표단은 이를 바탕으로 협상을 진행했는데 결국 이 협상을 불발되고 말았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 전문은 조작된 것이었다. 이동복 당시 안기부장 특보가 주축이 되어 훈령을 조작한 것이다. 남북관계를 파탄시켜 안보 불안과 긴장을 조성하는 것이 정권 창출에 유리하다는 생각에서 이런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6자회담과 북핵문제 해결하려면 남북관계 획기적인 개선 있어야

프레시안 : 통일로 가는 또 다른 바퀴인 9.19공동성명의 의미와 현재 상황을 짚어보자. 얼마 전까지 6자회담 재개 움직임이 굉장히 활발했다. 미·중 간 협의도 진행했는데 우리 정부는 미국과 입장을 같이 하면서 대화에 소극적인 모습을 이었다.

정동영 : 이 정부는 스스로를 6자회담의 '객(客)'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스스로를 6개국 중에 하나의 참가국인 6분의 1로 생각하는 것이다. 6분의 1이 아니라 6자회담을 우리의 무대로 만들어야 한다. 거기서는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 등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 않나. 북핵 문제는 우리 문제니까. 나름대로의 해법을 내고 중재를 하고 조정하고 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6자회담이라는 틀이 길게 보면 동북아의 평화 안보를 논의할 수 있는 집단안보체제 구상의 틀인데. 여기서 북핵문제에 대해 주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미래의 발언권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5년 만에 다시 6자 이야기를 하는 근거는 9.19 공동성명 때문이다. 북핵문제는 북미문제이면서 동시에 남북문제다. 북핵문제에서 일정한 진전이 있으려면 남북 간 획기적인 관계개선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상회담을 의미한다. 6자회담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남북 정상회담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하지만 2005년 9.19공동성명이 나왔을 때는 북한의 핵실험이 없었다. 지금은 3차례의 핵실험이 있었고. 상황이 다른 것 같은데?

정동영 : 그러니까 정상회담이 더 필요하고 9.19공동성명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실무 외교 라인에서 접근할 수가 없는 상황 아닌가. 미국이나 중국은 북핵을 안고 갈 생각도 한다. 자신들의 국익에 그리 나쁘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보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안고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우리한테는 근본문제다.

지금까지 북핵 문제 20년 역사상 언제 해결 모델을 만들어봤나. 9.19밖에 없다. 비록 미국 내 강경파의 방해 공작 때문에 뒤집히기는 했어도 9.19 합의는 앞으로 적어도 10년 동안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표준 문서가 될 것이다. 9.19의 핵심은 세 가지다. 북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과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수교하며 불안정한 정전 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바꾼다는 것이다. 이 합의를 만드는 데 한국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북한 입장에서는 2개의 합의가 중요하다. 하나가 2000년 10월 13일에 있었던 조미공동코뮤니케. 당시 미·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던 시기였는데 이러한 국면이 도래한 이유는 4개월 전 6.15 정상회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담이 조미공동코뮤니케를 추동한 것이다. 또 하나는 9.19 공동성명이다. 이는 3개월 전인 6월 17일 김정일 위원장과 남쪽 특사의 회동으로 제2의 6.15 국면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9.19 성명을 추동했다고 북한이 평가했다.

그럼 그다음 국면, 즉 북한의 세 차례 핵실험 이후 다시 6자회담을 통한 대화와 협상이라는 국면으로 가려면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전환이 있어야 가능하다. 남북이 냉랭한 상태에서 6자가 돌아가 봐야 헛바퀴 도는 것이다.

획기적인 개선은 정상회담과 관련이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향해서 가야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특히 북한은 모든 정책 결정 권한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북의 최고 지도자와 직접 대화하는 것이다.

2010년 9월 19일 자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를 보면 "평양에서 북남 수뇌 회담이 열린 지 4개월 후 워싱턴에서 조미 공동코뮤니케가 발표되었다"며 자신들의 최고 지도자와의 소통과 남북 관계가 북미 관계를 푸는 열쇠였다고 강조했다. 또 "2005년 6월 남측의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총비서와 만나 '제2의 6.15'라고 하는 새 국면이 열렸으며,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것은 그 3개월 후"라며 최고 지도자와의 소통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국면을 크게 전환시키려면 김정은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다.

프레시안 :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한가? 이번에 이란 핵 협상을 보니 9월에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됐는데 미국과 이란은 이미 3월부터 5번을 만났다고 하던데, 북핵 문제에서 미국이 그렇게 나올 수 있을까?

▲ 정동영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동영 : 어렵다고 본다. 미국의 여론과 남한 정부의 입장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일단 미국 내에서 현재 북한 정권이 김정일 위원장 때보다 더 희화화되어 있다. 오바마 입장에서 북한과 이란을 둘 다 방치하면 노벨 평화상 반납하라는 이야기가 나올 것인데, 북한 문제는 화급성도 떨어지고 여론도 안 좋다.

또 미국의 '아시아로의 귀환' 정책의 핵심은 중국이다. 괌, 오키나와, 한반도로 이어지는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축선을 구축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의 긴장 지속이 나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동맹국인 남한 정부도 적극적이지 않다. 여기서 오바마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이유가 뭐가 있나.

프레시안 : 결국 한국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북핵문제 해결은 어렵다는 말인데?

정동영 : 박 대통령에게 달려있다. 남북관계를 이런 식으로 관리해서는 6자회담에서 무슨 발언권이 있겠나. "핵 포기해라" 라는 원론적인 이야기 말고 역할을 할 수 있는게 없지 않나. 또 한국 정부의 입장이 뻔한데 누가 한국의 입장을 중요하게 생각하겠나. 지금 상태로는 6자회담이 열린다고 해도 아무 영향력이 없는 것이다.

2005년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서 5시간 동안의 담판을 통해 6자회담 복귀와 핵 포기를 설득했다. 대신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 공급을 거부할 경우 남측이 전기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느낀 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우리의 발언권과 영향력이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6자회담 할 때 일본이 우리한테 회담에서 납치문제도 이야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찾아왔다. 미국도 진짜 북쪽의 의향이 무엇이며 남한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알아보려 우리를 찾아왔다. 중국도 우리와 대등한 위치에서 이야기했고.

북핵문제, 한반도 문제, 분단 문제가 누구의 문제인가. 이게 미국의 문제인가 중국의 문제인가? 내 문제다. 우리의 문제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게 빠져있다. 미국이 결정하면 우리는 따라간다는 식은 냉전적인 관행이다. 오랫동안 여기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 문제인데,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앞날을 개척하기 힘들다.

이명박 정부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없어지면서 자기들끼리 집단 사고만 하고 있다. 특히나 현 정부는 국정원, 국방부, 청와대 외교안보를 모두 군인이 장악한 상태에서 사고만 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이야말로 외교를 잘해야 살아남는 민족이라는 그 말이 들어맞는 시기다. 동아시아 정세가 지각변동하고 있지 않나. 여기서 우리가 발언권과 영향력을 가지려면 남북관계 해소 없이 힘들다. 남북이 개별로 어떻게 중국과 같은 강대국을 상대할 수 있겠나.

프레시안 : 2000년 6.15와 조미코뮤니케, 그리고 2005년 6.17 특사와 9.19 공동성명에서 보듯이 남북관계의 획기적 관계 개선이 없는 한 6자회담과 북핵 해결은 어렵다는 전망인 것 같다. 그래서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개선을 위해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논리인데, 지금이라도 특사 등의 방식을 통해 우리 쪽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하면 성사될 가능성이 있을까?

정동영 : 길은 여러 가지 있다. 예를 들어 금강산 관광 재개하자고 생각하면 이산가족 상봉 금방 된다. 또 개성공단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도 풀릴 수 있다. 당장 불거져 있는 남북 간 현안들을 풀면서 접근하면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지금 상태에서 특사는 좀 공허한 이야기인 것처럼 보인다.

사실 남북 관계 개선하는 것은 진보보다 보수 정부가 훨씬 쉽다. 국내 반발이 적기 때문이다. 1970년대 보수 반공주의자인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과 수교한다고 할 때 누가 뭐라고 했나. 그래서 박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 박 대통령에게 한국의 닉슨이 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닉슨이 중국을 열었듯이 박 대통령도 북한을 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미다. 박 대통령이 아주 좋은 조건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철학이다. 박 대통령이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할 수도 있다는 하나의 근거는 그래도 2002년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북쪽의 최고 지도자와 소통한 경험은 중요한 자산이다. 이러한 기억을 바탕으로 박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동아시아 정세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지금, 박근혜 정부가 실패하면 민족사가 실패하는 것이다.

남북 화해를 원하는 세력, 제대로 된 비전은 보여줬나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가 실패하면 민족사가 실패한다는 말이 인상 깊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만의 책임으로 현 상황을 돌리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국내에서 남북화해를 원하는 세력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되물어 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안철수 등 야권 대선 후보가 남북관계에 대해 보다 더 강하게 나갈 수는 없었는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 두 후보는 남북관계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을 보여주지 못했고,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국민적 정서가 강해진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남북관계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문제 및 민생과 직결된 문제이고 사활적인 문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국민 정서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지 않았을까?

정동영 : 안보가 보수로 가서는 경제가 진보로 갈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한의 정치·경제·사회의 제반체제를 규율하는 것은 분단이다. 분단 구조 속에서 분단 기득권 세력이 승자독식 경제체제 속에서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 양극화 구조고 사회적 불평등이다. 그래서 제가 제시하는 것이 남북화해가, 통일이 밥 먹여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 정동영 전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남북대결을 화해로 돌려야만 종북 공세가 풀린다. 말하자면 1992년 남쪽의 보수 세력이 기본합의서를 찢은 이유는 남북 긴장과 안보 불안이 조성돼야만 보수 후보가 유리하다는 뜻이다. 작년 대선에 흠결과 하자가 있는 당선자가 그걸 덮기 위해 선택한 것이 종북 공세이고 공안 통치인데, 이것이 힘을 가지려면 남북 긴장과 안보 불안이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또 하나 아쉬운 것이 2007년 정상회담이 너무 늦었다는 의견도 있다. 2005년 9.19공동성명이 나온 여세를 몰아서 그 해 안에 정상회담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도 있던데, 2007년으로 미뤄진 이유는 무엇인가?

정동영 : 아쉽지만 2003년 당시 진행됐던 대북송금 특검이 결정적이었다. 1차 남북 정상 회담을 특별검사를 통해 수사한 것인데 그것이 정치적 패착이었다고 본다. 2007년 10월 4일이 아니라 2003년 10월 4일에 정상회담을 했다면 한반도의 역사가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대북 송금 특검의 여파로 2003, 2004년 남북관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도 했다.

물론 북한의 입장 때문에 늦어진 측면도 있다. 역지사지해보면 북은 남쪽도 의심하고 미국도 의심한다. 그런데 북이 통 큰 조치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남에 대한 의심은 풀었다. 그런데 미국이, 부시 정권이 보통 정권이 아니지 않나. 이라크를 공격한 네오콘 정권이기 때문에 북은 '남쪽 말을 믿고 그냥 쭉 가도 되나' 하는 의심이 있었다. 그래서 북한은 9.19를 보고 정상회담을 하자는 것이었다.

제가 2005년 6월 17일 평양에 특사로 가서 북에 이야기한 것은 9.19로 가는 과정 속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6자회담 합의 이전에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견해 차이가 좀 있었다. 특사로 갔을 당시에는 김정일 위원장한테 3개월 내에 하자고 했다. 그리고 6자회담 돌리자고도 요구했다. 그래서 일단 6자회담 돌아갔다. 우리는 9월 중순 전에 해야 그 추동력이 핵문제 타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이 꾸물꾸물하다가 시기를 놓친 것이다. 정상회담이 그 전에 이뤄졌다면 9.19가 네오콘에 의해서 그렇게 쉽게 파기되지 못했을 것이다.

프레시안 : 당시에는 김정일 위원장을 두고 '광폭정치다. 통 큰 정치다'라는 평가가 주류였는데, 2007년 정상회담을 분석한 유시민 전 장관은 굉장히 소심한 사람인 것 같다는 평가를 하더라.

정동영 : 그 부분도 맞다. 두 번의 실기가 안타깝다. 하나는 방금 설명드린 2005년 남북 정상회담이고 또 하나는 2000년에 있었던 조미공동코뮤니케다. 이것이 한두 달 만 빨랐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2000년 5월에 김정일-장쩌민(江澤民)의 북경 정상회담이 있었다. 그리고 6월에 남북 정상회담 있었고. 7월에 북-러 정상회담이 있었다. 이후 8월이나 9월에 조명록 차수가 미국에 건너가서 북-미 대화와 정상회담을 추진했다면 한반도 냉전 해체의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북한이 좀 꾸물거렸다. 이런 것들을 보면 김 위원장이 너무 신중했다고도 볼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소심했다고도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민주당이 남북관계에 대해 상대적으로 좀 수세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정치라는 것이 국민 여론을 타고 가는 측면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라면 돌파하겠다는 추진력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민주당 지도부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안된다면 야당에서라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동영 : 해보니까 되더라는 확신은 있다. 박 대통령이 2005년 미국에 가서 북핵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더라. "북핵 문제는 밥상론으로 해결해야 한다. 서양에서는 음식 먹을 때 스프, 메인요리, 후식 등이 단계적으로 나오지만 한국은 밥상에 밥, 국, 찌개, 반찬 등을 한꺼번에 올려놓고 다 먹는다. 북핵 문제도 한국인들에게는 한 상에 해법을 모두 올려놓고 포괄적으로 타결하는 방법이 익숙하다. 북핵 문제를 그렇게 해결한다면 북한도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것은 결국 북핵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포괄적 해법의 대표적인 것이 9.19 공동성명 합의다. 밥상론은 결국 뒤집어보면 민주정부의 북핵 문제 해법과 궤도가 같은 것이다.

민주당은 국정원 선거 개입 문제에 어떤 면에서는 발목이 잡힌 셈이다. 남북문제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어진 점도 있다. 또 자신감도 좀 모자란 것 같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평화 잘 관리했다, 북핵문제도 해결하려고 주도력을 발휘했다는 유산을 갖고 자신감 있게 대안도 더 제시하고, 특히 종북 공세에 대해 맞설 것은 맞서고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과감함이 없는 것 같다.

프레시안 : 현 집권세력이 지난 대선부터 지금까지 정국을 종북몰이로 끌어온 것인데, 그럼 박근혜 정부 내에서 남북관계가 풀기는 힘들다고 봐야 하나?

정동영 : 지방선거까지는 힘들다고 본다. 지방선거까지는 이석기 의원 재판,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청구 등등을 이용하면서 계속 종북, 공안 몰이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박 대통령도 업적에 대한 욕심이 있지 않겠나? 일단 경제민주화는 포기했고. 남은 것은 대외정책뿐이다. 외교·안보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는데 그것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이 국면을 타개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5년이 북핵 문제를 최고로 악화시켰고 남북관계를 증오시대로 되돌린 시간이었다면, 이를 풀어야 하는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고 본다. 시점은 지방선거 이후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