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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 team/Today's DY Issue

손학규-정동영 지도부 '가장 야당답고 성공적'

손학규-정동영 지도부 '가장 야당답고 성공적' 
 
정동영이 손학규 찾아 강진 토굴으로 간 까닭은... 

   

▲ 2011년 6월 정동영 최고위원이 주최한 반값 등록금 토론회에서 '정동영-손학규' ⓒ 박진철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최근 손학규 전 대표를 전격적으로 찾아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정치권과 언론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손 전 대표는 7·30 재보선 패배 직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현재 전남 강진의 백련사 근처 '토굴'(흙집)에서 칩거하고 있다.
 
정 상임고문은 지난 1일 진도 팽목항을 방문한 뒤 서울로 상경하는 길에 손 전 대표를 사전 예고 없이 찾아간 것으로 8일 알려졌다. 그러나 마침 손 전 대표가 휴대전화를 안 가지고 산책을 나간 바람에 회동은 불발됐다. 정 상임고문은 한참을 기다리다 배 한 상자와 함께 "왔다 갑니다"라는 메모를 남긴 채 발길을 돌렸다. 
 
흙집으로 돌아온 손 전 대표는 정 상임고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정 상임고문은 8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의 요청에 따라 사지에 출마한 손 고문의 낙선은 당의 패배이지 개인이 짊어질 몫이 아니다"며 "손 고문은 하루빨리 돌아와서 같이 협력하고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눈이 올 무렵 다시 강진을 찾을 생각"이라고 말해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친노계파의 노골적 사당화, '정동영 등판' 불러 
 
정치권과 언론은 두 사람의 회동 성사 여부를 떠나, 정 상임고문의 이 같은 행보를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한때 새정치민주연합 내 최대 주주였다. 더군다나 새정치연합은 지금 최대 위기 상황이다. 문희상 비대위에 대해 당 안팎에서 '계파 나눠먹기의 극단적 전형', '친노의 당권장악 프로젝트'라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세월호 협상의 3연속 패착, 이상돈 교수 당 대표 영입 파동 등으로 당 지지율도 10%대로 추락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 때문에 신당 창당 등 야권발 정계개편설도 꾸준히 흘러 나오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정 상임고문이 손 전 대표를 찾아간 것 자체가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치권과 언론은 벌써부터 "정동영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신(新)쇄신파'가 비노(非盧) 그룹의 세력 규합에 본격 나선 것", "내년 초 전당대회에서 친노가 당권을 잡거나 당권 장악이 유력시되면 원심력이 크게 작동하면서 신당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등의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정 상임고문이 손 전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데는 문희상 비대위 출범 이후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친노계가 노골적이고 급격하게 당권을 장악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 상임고문측과 비노 진영을 크게 자극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9일 실시된 새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친노가 지원한 우윤근 의원이 선출되면서 '친노의 사당화' 논란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전임 박영선 원내대표가 세월호 협상의 실패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상황에서 정책위의장으로 함께 세월호 협상을 주도했고, 실제 여야 합의문에도 같이 사인을 했던 인사가 친노의 지원을 받아 원내대표로 승격을 한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새정치연합의 현 비대위는 어떤 잘못을 해도 당권욕에 사로잡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지도부'라고 힐난하기도 한다.
 
정 상임고문도 7일 국민TV 라디오에 출연해 '친노계파의 사당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당 내에서 특정계파의 사당화가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것을 막는 게 최고의 혁신"이라며 "구당모임은 중도파의 결사체가 아니라 특정 계파의 사당화를 막기 위한 신(新) 쇄신모임"이라고 말해 세력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런 특정 계파의 패권은 결국 정권교체를 무산시키고 보수의 장기집권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이것은 진보와 중도를 떠나서 같이 고민하는 지점"라고 강조해 사실상 친노계를 겨냥했다.
 
그는 또 "당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게 혁신이지, 비대위도 권력이라고 이 비대위를 맡은 틈에 조직강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당을 장악하겠다는 것이야말로 구태 정치"라며 문희상-문재인 친노 지도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조직강화특위 같은 걸 만들지 않고 당원들이 직접 지역위원장을 뽑을 수 있도록 당원주권을 실현하겠다"고 언급해, '온라인 참여정당'을 주요 가치로 내세우는 친노그룹과 뚜렷한 각을 세웠다. 그는 더 나아가 "야당이 제 역할을 못 하고, 계속 권력투쟁에만 몰두하면 신당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던졌다.
 
정치권 내 모 인사는 7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권노갑 고문 등 상당수 인사의 요구에도 정동영 고문을 비대위에서 배제해 결과적으로 정 고문 중심의 세력이 새롭게 형성되는 계기가 됐다"며 "정치상황에 따라 신당창당 등 의외의 상황도 연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학규(중도)-정동영(진보) 지도부, 가장 야당답고 성공적"
 
정동영 상임고문의 한 측근 인사는 9일 <브레이크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정 상임고문이 손학규 전 대표를 찾아 간 것은 진도 팽목항과 가까운 곳에 계시기 때문에 안부와 위로 차 들른 것"이라며 "비노의 세력화 같은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방문한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측근 인사는 그러나 "아마 만남이 성사됐더라면, 자연스럽게 당이 최근 세월호법 협상과 이상돈 교수 당 대표 영입 파동 등으로 휘청거리는 위기 상황에서 특정 계파는 당권 장악을 시도하고 있고, 그러는 사이 당 지지율은 추락하는 등 안타깝고 답답한 상황들에 대한 걱정과 고민을 나누지 않았겠느냐"고 예상했다.
 
그는 또 "손 전 대표와 정 상임고문은 2010년 민주당의 당 대표와 최고위원으로 당을 함께 이끌었던 적이 있다"면서 "현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을 보면서 당시를 회상하며 서로에게 많은 위로가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 두 분은 한미FTA와 햇볕정책 등 사안마다 이견을 보이는 등 노선 투쟁이 치열했었다"면서 "하지만 역대 어떤 지도부보다 진보적이었고, 대여 투쟁에 있어서도 선명하고 실천력이 강력한 지도부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돌이켜 보면, 당시 손-정 지도부가 가장 야당답고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실제 처음으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지지율을 추월한 적도 있는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손학규-정동영 지도부, 자력으로 새누리당 지지율 추월  

 


정동영 상임고문이 손학규 전 대표를 전격적으로 찾아가면서 지난 2010년 10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1년여 동안 민주당의 당 대표와 1등 최고위원으로서 함께 지도부를 이끌었던 시절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지난 12년 동안, 민주당 지지율이 새누리당(전 한나라당)을 앞선 적이 거의 없었다. 그 와중에 민주당 지지율이 새누리당을 역전한 때가 딱 3번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인 2009년 5월, 그리고 2년 뒤인 2011년 5월과 11월 손학규-정동영 체제 때였다.
 
그러나 2009년은 노 대통령의 갑작스럽고 비극적 서거에 따른 일시적 현상에 불과했다. 서거 이후 1~2달 만에 다시 한나라당에 역전당하고 말았다. 엄밀히 말하면 민주당 지지율이 아니었다.
 
2011년 5월과 11월은 경우가 달랐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한나라당 텃밭인 성남 분당을 재보선에 몸을 던져 당선되는 개가(凱歌)를 올렸고, 정동영 최고위원이 한진중공업, 한미FTA 등으로 맹렬히 뛰어다니며 정국 이슈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던 바로 그때였다. 민주당 지도부가 주어진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서 만들어낸 지지율인 것이다.
 
당시 민주당은 이념 노선 상으로도 '중도 손학규 vs 진보 정동영'으로 양분되며 가장 훌륭한 경쟁 구도가 형성됐었다. 그 때문에 중도와 진보 그룹이 적절히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큰 틀에서는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노동권 강화, 한반도 평화 등 대부분의 정책에서 차근차근 진일보했었다.
 
손-정이 올려놓은 지지율, 친노 지도부의 패권 공천으로 '역전패'
 
그러나 손학규-정동영 체제 이후 바로 다음에 등장한 한명숙 친노 지도부는 뼈아픈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다. 민주당이 문재인, 문성근 등 당 밖의 친노세력(혁신과 통합)과 통합하면서 모바일 투표를 도입해 실시한 민주통합당의 초대 당 대표 선거에서 친노세력의 열성적 지지를 바탕으로 한명숙 후보와 문성근 후보가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한명숙 지도부 뒤에는 문재인-이해찬 의원이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었다. 
 
결과적으로 친노의 패권 공천으로 내부 분열을 심화시켜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과반수를 내주는 어처구니없는 역전패를 당했다. 그 때문에 한명숙 대표는 총선 후 이틀 만에 '총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또한 친노세력이 주도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형성된 '친노 vs 중도 비주류'의 경쟁 구도는 야당의 진보성이 퇴색되고 우경화와 더불어 정치 행태에서도 퇴행적 구조로 이어졌다. 질래야 질 수 없다던 총선과 대선 패배는 그 연장선에 불과했다.
 
돌이켜 보면, 민주당 역사에서 황금기는 친노나 중도파가 주도할 때가 아니라 '야당다운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 가장 민주당다울 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