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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정동영 "특정 계파가 사당화... '새 야당' 논의 봇물 터졌다"

 

"특정 계파가 사당화... '새 야당' 논의 봇물 터졌다"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169]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2014.10.28  오마이뉴스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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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 이희훈

 


새정치민주연합은 여전히 7·30재보선 수렁에 빠져 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볼까.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그의 연구소 '대륙으로 가는 길'을 찾아 의견을 들어봤다. 다음은 정동영 상임고문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최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개헌을 거론했습니다. 청와대는 개헌에 대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개헌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크게 보면 '세월호 탈출용', '세월호 지우기용'입니다. 모든 국민이 4월 16일 이전의 대한민국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야, 보수와 진보 구분 없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죠. 6개월이 지난 지금, 단 한 발짝도 달라진 게 없다는 걸 판교 참사에서도 알 수 있죠.

무책임하고 오만한 대통령과 정부여당, 무능하고 무원칙한 제1야당 새정치연합의 책임이이라고 생각해요. 세월호는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잖아요. 세월호 특별법은 유가족만을 위한 법이 결코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와 합의가 담긴 법이죠.

세월호같은 사건으로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계기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겠어요. 유가족이 원한 특별법의 핵심인 수사권과 기소권이 빠진 유명무실한 반쪽짜리 특별법을 만들어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못하고 유야무야 넘어가면, 여야 모두 그 역사적 책임을 면하지 못할 거예요. 골치 아픈 세월호 국면을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 개헌 문제를 이슈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어요."

- 일각에선 개헌에 앞서 선거제도부터 바꾸자고 주장합니다. 
"그렇습니다. 개헌 논쟁에서 선후관계가 잘못 설정된 것이지요.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정치에 문제 있는 거고, 그건 정당과 선거제도의 문제이기도 해요. 대한민국 국민 중 절반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투표를 해도 절반 정도가 사표가 되는 현실에서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대표되지 않습니다. 이게 개헌보다 핵심이고 본질입니다."

"개헌 카드는 세월호 이슈 탈출용"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단 한 표도 사표를 만들지 않습니다. 설사 찍은 후보가 떨어지더라도 표는 비례대표 당선자 수 결정에 반영됩니다. 독일은 정치도 안정되었고 통일도 먼저 했습니다. 대학까지 가는 데 부모들 부담이 없어요. 기술이 강하고 노벨상도 많이 받았어요. 독일의 지금 정치체제는 효율성이 높다고 봐요."

- 진보정당은 찬성하지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반대하잖아요.
"기득권 때문이죠. 지금 제도를 그대로 두면 새누리당은 유리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지역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항상 1당과 2당을 할 수 있죠. 이걸 내려놓지 않으면 정치가 안 변해요. 이걸 놔두고 개헌하자고 하면 설득력이 없죠.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고 선거제도를 바꾼 다음 개헌을 주장해야죠."

- 정 고문께서는 열린우리당 때 의장을 두 번이나 했고, 선거제도를 바꿀 힘도 있었는데 왜 그 땐 안 하셨죠?
"반성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010년 8월,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정치인 중 처음이자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반성문을 제출했습니다. 개혁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고민이 다소 부족했다는 걸 인정합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 드리자면 당시 국가보안법과 사립학교법 등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대표가 이끈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이 워낙 강경하게 반대했습니다. 거기에 에너지를 소비하다 보니 선거제도 개혁으로까지 나가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 새정치연합은 지난 7·30재보선 패배 이후 계속 침체돼 있습니다.
"야권의 지지율 추락과 사상 최악의 침체는 정부 여당이 잘해서가 아닙니다. 야당 특히 제1야당이 자멸한 결과예요. 사실 당시 동작을 전략공천 파동이 있기 전, 그러니까 선거 후보등록 불과 10여 일 전만 해도 새누리당은 영남을 제외하고 전패 위기였어요. 세월호 참사, 총리 인사 참극 등 박근혜 정부의 연이은 실책으로 민심 이반이 매우 컸죠.

야당이 자만하지 않고 관리만 잘했더라도 충분히 이겼을 것이고, 그랬으면 오히려 지금쯤 여권이 큰 자중지란에 빠졌겠죠. 야당에게는 다음 총선, 대선 등 정권교체로 가는 고속도로가 열렸을 겁니다. 7·30재보선에서 야당이 자멸하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승리를 헌납한 것이 야권 추락의 큰 원인입니다. 이후에도 패배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교훈을 얻기는커녕,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패착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선거 패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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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하는 문희상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차기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된 문희상 의원이 지난 9월 18일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문재인, 정동영, 박병석 의원 등과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 세월호 특별볍 협상에서 야당의 자중지란이 큰 원인 아니었을까요?
"세월호 문제를 아주 엉망으로 다뤘습니다. 유가족이 요구한 수사권과 기소권, 그 중 수사권은 새정치연합 법안에도 있었어요. 그것이 핵심인데, 협상 테이블에 아예 올리지도 않았죠. 야당이 자기검열해서 협상 테이블에서 뺀 겁니다. 야당이기를 포기한 겁니다.

얼마 전 한국갤럽 여론조사(10.14~16일 자 조사)에서 우리 국민 55%가 '세월호의 진상(사고 원인과 책임)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58%가 '세월호 특별법 등 관련 소식들에 여전히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어요. '관심이 없다' 즉, 세월호 피로감을 말하는 사람은 40%에 불과했죠.

이 40%를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아주 잘 대변하고 있고, 매우 집요하고 끈질기게 지지자들의 요구를 관철 시키고 있죠. 그 40%는 현재 새누리당의 지지율 40%대와 정확히 일치하고, 그 지지기반도 공고해요. 여전히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55%와 세월호에 관심있다는 58%의 국민은 누가 대변해야 하나요? 새정치연합이 해야죠. 그런데 이걸 제대로 대변하지 않고 있어요. 이미 세월호를 버린 정당입니다. 그래서 지금 국민이 새정치연합을 버릴 생각을 하는 거예요."

"새정치연합 비대위는 계파 독과점 연합"

- 새정치연합 비대위에 비판이 많습니다. 과연 혁신을 하고 있나 하는.
"현 비대위가 당을 위기에서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지율을 10%대로 추락시켰습니다. 비상대책이란 무얼 의미하는가. 환골탈태에 가까운 혁신인데, 지난 9월 18일 현 비대위가 뜬 후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뭘 혁신했다는 얘기를 우리 국민들이 들어본 일이 없어요. 비대위가 '계파 극복'이라는 사명으로 출발했는데 특정 계파의 독과점 연합체가 됐습니다. 비대위 자체가 혁신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죠. 이게 진짜 위기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 계파 문제도 크지만, 야성을 잃은 것도 문제 같아요.
"노선과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죠. 정당의 기본은 노선과 정체성이잖아요. 그것이 사라지면 벌거벗은 권력 투쟁만 남게 돼요. 야당은 반대자로서, 또 대안자로서 기능해야 해요. 정부가 독선, 불통, 독주로 가면 명백하게 '아니오'라고 말하면서 강한 야당성을 보여줘야 하고, 대안자로서는 '이런 방향으로 대한민국호의 방향을 틀어라'라고 말할 수 있어야죠. 현 정부가 실패하면 국민이 야당을 다음 정부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투지와 결기를 상실한 야당,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지켜야 할 것을 제대로 세우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깃발이 분명하지 않고, 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지금 야당은 나침반 없는 항해를 하고 있어요. '나는 누구인가, 누구를 대변할 것인가' 하는 자기 중심과 야당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봐요."

- 그럼 어떤 노선이 옳다고 보세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더 깊게는 1997년 IMF 이후 우리사회가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해졌어요. '이명박근혜' 노선이 아닌 거예요. 이명박근혜 노선은 규제완화고 민영화잖아요. 노동유연화와 감세를 말하잖아요. 양극화와 불평등은 심해지고, 비정규직은 늘어났으며, 국민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OECD 국가 중 행복도는 최하위고 자살률은 1위예요. 새정치연합은 대안 노선으로 가야죠."

- 양극화는 민주정부의 책임도 있지 않나요?
"맞아요. 때문에 반성이 필요합니다. 저희는 10년 동안 집권해서 업적을 많이 만들었어요. 사회, 경제에 역동성이 생겼고, 정치적 민주주의 토대를 확실히 닦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비정규직이 늘고, 불평등은 심화되고, 부동산은 폭등했어요. 저는 새정치연합이 공식적인 반성문을 체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정치연합이 대표해야 할 층은 비정규직 850만 명과 자영업자 350만 명인데, 저희 때문에 그들이 득을 본 게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지를 못 받는 거죠."

- '비노'를 축으로 신당 창당설이 나오고 정 고문도 이쪽에 무게를 뒀다는 보도가 있어요.
"친노-비노 얘기가 계속 나오고 그렇게 구분되고 표현되는 한, 새정치연합이 정권교체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해요. 더 한심한 지경에 빠진 것은 현 비대위가 들어선 이후 특정 계파가 당을 사당화하려는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는 것이죠. 새정치연합에 희망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야당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얘기가 봇물터지 듯 나온다고 생각해요. 특정 계파의 사당화는 향후에도 당의 앞날에 커다란 장애요소가 될 겁니다."

- 판교 참사를 보면서, 세월호 참사 후 과연 우리는 무얼 했나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지점이죠. 7·30재보궐 선거에서 이긴 후 대통령은 뒤로 빠져 뒷짐 지고 나 몰라라 했고, 나중에는 국회와 국민을 상대로 으름장을 놓고 윽박지르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야당은 너무나 무능하고 무기력했죠."

- 합의된 특별법으로 진상규명이 가능할까요?
"3차 합의는 문희상 비대위가 한 거죠. 만장일치로 박수쳤죠. 그러나 가장 나쁜 합의예요. 유족을 완전히 배제했잖아요. 대통령의 가이드라인 안에서 협상하고 합의했단 말이죠. 어떻게 야당이 대통령 지시사항 테두리 안에서 협상하나요? 또 여당이 아쉬운 정부조직법까지 다 처리하기로 양보했어요. 만일 3차 합의대로 법을 통과 시키면 진상규명은 불가능하고 야당도 그것 때문에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북관계, 현 정부가 잘 풀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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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 대북삐라 살포를 위해 버스를 타고 도착한 대북전단날리기국민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가스가 실린 트럭에 올라 대북삐라 살포 강행의지를 밝히고 있다. 전단과 풍선은 살포에 반대하는 주민과 시민단체회원들이 훼손해서 부근에 버렸다.
ⓒ 권우성

 


- 대북전단지 살포가 논란입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대북전단지도 표현의 자유라고 했는데요.
"1970년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시대착오적이죠. 국제사회 웃음거리라 생각합니다."

- 보수 측에서는 삐라로 북한 주민이 정권을 바로 알고 탈북에 도움을 준다고 하는데요.
"좀더 크게 봐야죠. 삐라를 뿌리면 그 지역 주민들이 고통을 받아요. 감시, 조사하고 더 억압하는 부작용도 있어요. 박 대통령은 남북대화를 하겠다고 하는데 정직해야 해요. 대화를 하겠다면서 삐라를 방치하고, 국방부도 심리전을 강화한다며 삐라 뿌리는 기계도 사왔어요. 이건 앞뒤가 안 맞죠."

- 남북관계 전망을 부탁드려요.
"남북문제를 박근혜 정부가 잘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가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를 잘 풀어가려면 대통령 임기 반환점 돌기 전에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것이 맞아요. 그걸 목표로 남북관계를 관리할 필요가 있는데 과연 그런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남북 문제는 통일 문제고 정치군사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젊은이들에게 일자리 문제고 그들에게 희망을 열어주느냐 못 주느냐의 문제예요. 대륙으로 가는 길을 열어야죠. 그건 지도자의 의지와 철학에 따라 당장 내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도 아셈 회의에서 자기 꿈이 부산에서 기차 타고 이탈리아 가는 거라고 말했어요. 그런 꿈이라면 왜 실행을 안 하나요? 실행하면 되는 거예요. 이미 북이 대화하자고 손을 내밀었잖아요. 손을 잡으면 돼요. 때문에 박 대통령의 철학과 의지가 중요하다고 봐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n.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