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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작가 지망생들과의 만남 -경춘선 기차에서-

작가 지망생들과의 만남 -경춘선 기차에서-


3월 5일 춘천에서 열리는 평화경제포럼 창립식에 참가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평화경제론'에 관한 강연을 하기로 돼 있었지요. 청량리역에서 기차가 출발하자 일기예보와 같이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의 마지막을 알리며 봄을 불러오는 고마운 비였습니다.


경춘선 무궁화호를 타는 건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대학시절 이후엔 타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차창 밖으로는 비에 젖은 산자락이 펼쳐지며 스쳐지나가고, 곧 봄이 올것 같은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앞자리에 앉은 작가 지망생 아가씨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3명의 아가씨들은 모두 MBC아카데미 작가과정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습니다. 나를 보고 어떤 일로 기차를 타게 되었냐고 묻기에 “춘천에 기 받으러 간다”고 대답하자,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지요.


우연한 동행에 어색하던 분위기가 그 말 한마디로 사라지고, 그뒤로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이 작가 지망생이다 보니 화제는 주로 방송과 드라마 쪽이었습니다. 각자 자신이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내게 "의장님은 글을 써본적이 없으세요?"하고 물었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에는 웬만한 학생은 다 문학청년이요 문학소녀였습니다. 저 역시 한때는 시인 지망생이었고, 그래서 꽤 긴 소설을 밤새워 썼던 적도 있지요. 내용은 연애소설이었는데, 중고등학교 시절 사춘기를 겪는 소년의 낭만적 연애 이야기였지요.


1982년생이라는 학생에게 내가 “학생이 태어날 때 나는 기자를 하고 있었다”고 하자,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제가 기어다닐 때 의장님은 기자셨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그 말에 함께 웃었지요. 세월이 참 빠르긴 빠른 것 같습니다. 내가 기자생활을 시작할 때 태어난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나와 함께 문학을 이야기하고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야기 도중 내가 학생들의 정치성향에 대해 질문하자, 한 학생이 자신은 ‘진보를 지향하는 보수’라고 대답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부모님과 함께 지내려고 돌아온 학생이었는데, 자신은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뒤쳐지는 사람들도 챙겨 함께 걸어가고 싶기 때문에 진보만을 지향하고 싶지는 않다”고 대답하더군요. 그 학생의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내가 가야할 길이 그런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쳐지는 사람 없이 모든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 그 길이 정동영의 길이 되야 할 것입니다.


학생들과 사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작가 수업을 하면서 부업으로 논술과외를 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체육과외까지 포함해서 일주일에 7개가 넘는 과외를 받으면서 월 200만 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쓰는 학생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더군요. 체육과외까지 한다니 말입니다. 아울러 그녀는 논술과외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자신은 아이들에게 의미를 깨닫을 수 있는 깊이 있는 교육을 하고 싶지만, 학부모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원하기 때문에 결국 천편일률적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이런 말을 들으면서 “내가 여의도에만 안주해 있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쳐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자료를 통해서 현실을 진단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많은 국민이 여의도와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도 아마 이런 직접적 소통의 부재 때문일 겁니다. 일반 국민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전달되지 않고 가공되고 왜곡돼 전달된다면, 결국 국회의원들이 듣는 국민의 목소리에는 절실함이 부족하겠지요. 나로서는 자주 강연을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생각하는 정책을 전달하려 애를 쓰지만, 그 정책 역시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생동감있는 그들의 생각을 반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태도가 정치인의 본분이라 생각합니다.


즐거운 이야기, 깊은 이야기, 세상살이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춘천에 도착했습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던 한 학생은 "의원님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과 함께 내게 <컬쳐코드>라는 책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꼭 좋은 정치인으로 남으셨으면 좋겠다”는 말도 함께 전해주었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이러한 젊은 사람들이 만들어 갈 것입니다. 나와 같은 정치인들은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활짝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새삼 정치인으로써 무거운 책무를 느끼는 계기가 됐습니다. 좋습니다. 내 어깨에 짊어진 짐이 아무리 무겁더라도 그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면 결코 외면치 않겠습니다. 나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분들의 뜻을 한 순간이라도 잊지 않고 그들을 위해 소명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에 젖은 남춘천 역사를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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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이야기나눈 학생들과 함께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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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받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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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돌아온 학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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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기 전에 사인을 부탁한 아이와 한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