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이여, 일어서라]
힘이 없으면 동네북 되기 쉽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가 사상 최악으로 기록되면서 책임 추궁 바람이 거세다. 시는 시고 비는 비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대로 응당 책임을 지고 비판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전북을 동네북으로 만들어 비난의 표적으로 삼는 것은 옳지않다. 새만금 잼버리 행사의 실패를 몽땅 전북 책임으로 씌워 전북을 희생양으로 몰고 새만금 사업 자체를 훼손하는 것을 두고만 봐서는 안된다.
잼버리 초기,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기 시작할 무렵 걱정스러운 마음에 새만금 현장을 찾아가 봤다. 황량한 갯벌 벌판에 태양은 뜨겁고 습도는 높아 숨이 턱턱 막혔다. 큰일 났구나 싶었다. 전북이 걱정됐다. 본부 건물을 찾아가니 지방경찰 수장과 향토사단장이 2층 복도를 서성거리고 있었고 안에서는 국무총리, 여가부장관, 행안부장관, 문체부장관, 김관영 지사, 스카우트 총재 등이 모여서 행사 중단 여부를 놓고 심각한 토론이 진행중이라고 했다. 그날 결론은 정부의 집중 지원과 함께 행사를 계속한다는 것이었지만 그 다음 날 천우신조인지 몰라도 태풍 북상을 빌미로 행사 조기 종료를 선언해야 했다.
엄연히 잼버리 행사의 주최자는 스카우트 세계연맹과 한국연맹이고, 주관자는 정부 내의 조직위원회이다. 조직위원장은 여성가족부장관, 행안부장관, 문체부장관 등이고 예산 배정도 중앙정부가 한다. 전북지사는 집행위원장을 맡았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유치하고 전라북도에서 진행하는 행사여서 매사 문정부 때 일을 비판해온 윤석열 정부의 관심과 집중도가 떨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5명이나 되는 조직위원장의 난립으로 콘트롤 타워가 불분명했다는 점도 조직위의 무능을 부른 요인이다.
행사 개최지의 소유권을 따지자면 아직 전라북도에 편입되지도 않은 국토부 산하 새만금청이 관할하는 중앙부처의 땅이다. 따라서 기반시설 조성 미비의 책임은 명백히 중앙정부에 있다.
사실 프레 올림픽처럼 잼버리도 1년 전 8월에 프레 잼버리를 개최해 실제 상황아래 폭염대책과 시설 인프라, 위생시설 등을 점검하고 위험 요인들을 걸러냈어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 재확산과 예산 문제 등을 이유로 프레 잼버리를 건너 뛴 것이 결정적이다.
행사를 기획하고 주관하는 조직위에 행사 개최지인 전라북도가 들러리 서는 형태의 한계도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명칭도 지방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이다. 지금의 자치는 예산과 권한 측면에서 중앙과 지방의 비율이 8:2에 불과한 형식적 자치일 뿐이다.
정부가 주도하고 민간이 따라가는 국가주도형 국제행사의 한계때문에 민간차원의 참여나 아이디어를 수용할 수 없는 조직위의 폐쇄성도 크게 한 몫을 했다.
특히 잼버리를 이용해 새만금 SOC 예산을 끌어왔다는 일부 언론과 정당의 주장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전형적인 가짜뉴스다. 새만금 항만과 국제공항 동서도로 남북도로 등은 잼버리 유치와 상관없이 새만금 투자환경 개선과 내부개발 촉진을 위한 기반시설로 십수년 전부터 추진되고 진행돼온 사업들이다. 잼버리 실패를 새만금 사업 자체로 몰고가는 것은 새만금에 대한 전북도민의 열망과 꿈을 짓밟고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다.
잼버리에 참여했던 세계 청소년들은 떠났다. 전북에 남은 것은 도민들의 가슴에 남은 상실감과 새만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이다. 이것을 치유해 줄 주체는 중앙정부가 아니다. 중앙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전라북도 도민들이 똘똘 뭉쳐 자존심을 회복하고 불명예를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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