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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 칼럼

화면이 아닌 실제로 서로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며

화면이 아닌 실제로 서로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 지난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해 중단되었던 이산가족 화상상봉이 재개 되었습니다. 그동안 헤어진 부부가 50, 60년 만에 만나고 어머니와 딸이 기막힌 사연을 주고받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가 어느 시대, 어느 땅에 살고 있는지 인간적 갈등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인간적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것이 정치의 몫, 정부의 몫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 서로 화면을 통해 눈물을 흘리는 이산가족의 모습은 바로 6.25가 낳은 우리의 자화상이자 우리가 하루 빨리 벗어나야할 분단의 그림자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산가족 화상상봉은 지난 2005년 6월 17일, 제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직접 만나지 못한다면 화면으로라도 만남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김정일 위원장에게 제안해서 제15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통해 확정된 일입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도 저의 이산가족 화상상봉 제안을 듣고 나서 무릎을 치며 크게 환영했습니다. 화상상봉을 통해 이산의 아픔을 가슴에 담고 살아 온 분들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화상 상봉을 넘어서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개성공단과 같은 공단이 북한 내에 10개만 생긴다면 그러한 일은 보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내일 개성공단의 설계자였던 임동원, 박재규 두 분의 전 통일부장관님과 함께 개성공단에 갑니다. 개성공단에 가서 북한 당국자들을 만나 제2, 제3의 개성공단의 필요성을 역설할 생각입니다.



현재 매일 오전 7시 반에는 광화문에서 개성공단으로 가는 통근버스가 2대 출발합니다. 벌써 1년여 정도 되었습니다. 남쪽에서 천명의 기술자들이 북으로 가고, 북의 근로자 만천명과 함께 옷도 만들고 화장품도 만드는 개성공단이 이제 다음 달이면 1단계 본 단지에 착수합니다. 이제 본 단지가 되면 450개 공장이 되고, 총 근로자가 10만 명에 이릅니다. 남쪽의 젊은이 만 명이 개성에 가서 근무하게 됩니다.


그동안 제가 “평화가 돈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은 개성공단을 10개 이상 만들어서 우리 중소기업의 활로를 찾아주고 서민경제의 돌파구를 찾는 비전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길이 바로 평화와 부국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성공단을 다녀와서 4월 초부터는 ‘155마일 평화대장정’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철책선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왜 평화가 소중한지 국민들과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그 길에 블로거 분들도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