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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말과 글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사진 출처: 노동과 세계>


   [김진숙 지도위원 고공농성 300일] 
 

조남호 회장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조남호 회장께


오늘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35m 크레인에 오른지 300일이 되는 날입니다. 겨울에 올라 봄, 여름, 가을을 지나 또다시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은 상황 앞에 가슴아픈 참담함을 느낍니다. 조남호 회장께서도 다르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국민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에 분노하며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청문회를 통해 정리해고의 부당성이 드러나자 국민적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그 결과 김진숙 지도위원의 처절한 자기희생으로 세상에 알려진 한진중공업 문제는 단지 한진만의 문제가 아닌 전 사회적 의제로 확장되었습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여와 야, 그리고 정부의 대표가 한진중공업문제 해결을 위한 권고안을 만들고 그것을 조남호 회장께서 받아들였을 때, 국민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드디어 김진숙 위원을 비롯하여 크레인 중간의 박성호, 박영제, 정홍형 조합원이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잘 수 있다는 안도감에 환호했습니다. 94명의 정리해고자들과 그 가족들이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쁨에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권고안이 채택된지 24일이 지난 오늘까지 그들은 여전히 크레인 위에 있습니다. 해고자들은 복직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진정 조남호 회장의 뜻입니까?


권고안 수용 당시 조남호 회장은 통큰 결단을 했습니다. 그동안 풀리지 않던 매듭의 많은 부분을 결자해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며, 이에 대해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지금 많은 국민이 그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현재 노사 교섭은 쳇바퀴 돌 듯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측 협상단은 노조의 요구가 무리하다며 형식적 대화와 일방적 퇴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속년수 보장은 당시 조 회장이 구두로 약속한 사항이며, 퇴직금의 차별시정 또한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했었습니다. 얼마 전 새로 선출된 차해도 지회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측 협상단이 마음을 열고 성의껏 협상에 임한다면 노조 또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양보할 뜻이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다른 몇 가지 요구사항 또한 합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노조는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6차 희망버스가 제안되며 추진되고 있으며, 조속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또다시 정치가 작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상황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분명 조 회장께서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진중공업 문제에 대해 지난 수개월의 과정을 보면서 역시 중요한 결단은 오너의 몫임을 절감했습니다. 권고안의 수용도 조남호 회장의 과감한 선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결단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한진중공업의 발전적 운영을 위해서나 김진숙 지도위원과 세명의 조합원들에 대한 인도적 차원에서나 다시 한 번 조남호 회장께서 직접 나서야 합니다.

 
조선업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간산업입니다. 또한 한진중공업은 최고의 인력과 기술을 갖춘 대표적 조선업체입니다. 조남호 회장이 또 한 번의 결단으로 문제를 온전히 해결한다면 여야를 막론하고 한진중공업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협조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설 것입니다.

 

추위가 더욱 깊어지면 크레인 위는 인간이 감내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더 이상 한진중공업에서, 노동의 현장에서 사람이 죽어서는 안됩니다. 조남호 회장의 결단이 하늘보다 귀한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국회에서 국민들 앞에 한 약속을 지켜주십시오. 간절하게 호소합니다.


 

2011년 11월 1일

     정 동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