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손기정 선수는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 신의주 시베리아대륙을 거쳐 13일 만에 베를린에 도착했다. 일제 때도 달렸던 대륙으로 가는길이 끊어지고 남한이 '섬' 처럼 고립된 것은 분단 직후 부터였다.
분단과 '섬'에 갇힌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 두마리 토끼를 잡은 우리 국민의 저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 국민은 대체로 행복하지 않다. 자살율 세계 최고와 출산율 세계 최저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변화와 탈출구를 요구하고 있는 명백한 신호다.
내년 우리 경제는 위기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가계부채 920조는 국민 1인당 1,800만원의 빚을 짊어진 꼴이니 당장 허리를 펴기 어렵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집이 빈깡통이 돼버린 하우스푸어 가구의 고통은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거기 더해 '완전한 폭풍'(Perfect storm)이라 불리는 미국 유럽 중국의 동반 침체가 삼각파도 처럼 닥쳐올 경우 한국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희망의 출구가 있다. 지금까지 위기와 부담과 고통이었던 북한문제를 경제적 기회로 바꾸는 대전환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앞에는 '10.4 합의' 라는 유산 보따리가 있다. 2007년 대선을 두달 앞두고 열린 10.4 정상회담에서 노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농업 수산업 광업 경공업 조선 과학기술 정보통신 철도 도로 물류 인프라 등' 경제 전분야에서 40개 협력사업을 진행할 것을 합의했다.
하지만 정상간 합의는 현정부 아래서 철저히 묵살 되었다. ABR(Anything But Roh, 노무현 때 한것은 몽땅 버려라) 이라는 편협한 사고와 대북 적대시 정책 아래 '10.4합의' 보따리를 바다 속으로 던져버렸다.
재작년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우리나라 가전제품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공장장은 '물건이 없어서 못 판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동시에 한국에서 부품을 실어 오는데 배로 두달씩이나 걸리는데 만일 철도를 이용해 육로로 올 수 있다면 보름도 안걸릴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개성 평양을 거쳐 만주와 시베리아로 철도와 도로가 연결 된다는 것은 신북방경제가 열리는 것을 뜻한다.
현재 개성공단은 1단계 100만평에 전기 수도 폐수 교육시설 도로 가로등 까지 완비돼 있는 상태다. 가동중인 30만평 123개 공장은 전체가 흑자를 낸다. 땅값 평당 15만원, 한달 임금 8만원에 흑자가 안난다면 이상한 일이다.
개성공단을 10개 만들면 한국의 GDP(국민 총생산) 성장율이 1% 더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은 2~3% 저성장 시대에 복음과도 같다. 휴전선 북방 개성공단은 경제사업 일 뿐 아니라 군사 안보사업 이기도 하다.
2004년 8월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개성공단에 부정적이었던 럼스펠드 미국방장관을 설득하면서 내가 편 논리도 그것이었다. 군사적 측면에서 한미연합사 측에 가장 취약한 요소는 휴전선에서 서울 까지 종심이 60km 밖에 안된다는 점이다. 휴전선에 근접 배치한 북한군 장사정포 사거리 안에 수도권 전체가 들어 온다는 점이다. 개성공단이 3단계 2천만평이 완공돼 50만명 규모의 도시가 형성될 경우 수도권 안보는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점을 럼스펠드도 동의했다. 그 결과로 미국은 개성공단에 대한 회의적 시각과 속도조절론을 접고 적극적인 협력 자세로 돌아섰다.
개성을 거쳐 대륙으로 가는 신북방경제는 중국 쪽으로 기울어 가는 북한경제를 남북경제공동체 속으로 끌어들여 통일의 시간표를 앞당기게 될 것이다.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사는 날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뛴다.
동의보감에 나오는대로 '通즉(곧 즉)不痛,不通즉(곧 즉)痛'(통하면 아프지 않고 불통하면 아프다) 하지 않겠는가?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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